백영희의 1950년대 고신 활동 - 남영환, 고신역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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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30 00:00
8월 27일, 중요한 일이 있어 출장을 가다가 천안에 있는 고신대학원을 방문했습니다. 이 날은 백목사님 가신 20년 째 되는 시점이어서 공회의 역사를 특별히 생각하게 되는 날입니다. 고신대학원이 주남선기념관 건립을 추진하다가 2006년에 고신역사기념관으로 이름을 바꾸어 개관했고 이후 고신 사료를 수집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여 이를 듣고 있었습니다. 설립 2주년 정도면 고신의 범위가 좁다는 점으로 미루어 중요 자료 대부분이 수집되었을 시점입니다.
고신역사기념관을 찾는 이유는 그 곳에 있을 사료는 고신이 출발한 1945년부터 1960년까지를 주 대상으로 할 것이며, 이 시기에 대한 그 곳의 자료는 공회 초기 역사와 겹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1960년 이후 고신 역사는 일반 한국교회 수 많은 교단 중의 하나에 편입되어 이 홈이 관심있게 살펴볼 내용이 거의 없고 또 고신으로서도 1960년대 이후 자료는 '역사 유품'이라는 차원에서 전시할 수 없는 현재 진행 중인 자료라고 볼 것이므로 자료 전시 대상이 아닐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따라서 고신역사기념관의 수집 자료는 이 홈의 관심 대상이었습니다.
기념관은 고신대학원이 천안에 캠퍼스를 건립할 때 지었던 도서관의 1층 로비에 설치한 소규모였고, 전시 자료는 불과 40여 점 정도였고 대부분 공간은 전시 전문가의 디자인으로 확대 된 사진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보안이나 연구 목적 때문에 일부로 주요 자료들이 별도 보관되었는지 생각하였으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이 홈은 2001년 초 당시 기념관 준비 책임자로부터 고려신학교의 초기 강의록 일체에 해당하는 백목사님 소장 자료를 기증해 달라고 부탁을 받은 적이 있었고, 저는 기념관 측에 자료를 데이타화하여 공개하자는 조건을 제시했는데 학교측이 예산 부족으로 거부하여 그만 둔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고신은 1940년대와 50년대 졸업생 및 교수 전체를 상대로 수 차 관련 자료를 수집하였으나 몇 점에 불과할 정도였으나 백목사님만이 신학과정 전체 자료를 소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념관측이 자료 수집의 의사가 정말 있었다면 시골 한 교회 예산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일을 거부할 일은 아니었다고 보입니다. 아마 고신의 복잡한 내부 사정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이후 잊고 있었습니다.
일단 고신역사기념관이 2006년에 기념 시설을 완비했으므로, 범 교단적 전 신학교 차원에서 자료 수집을 했다면 2년이라는 기간이면 고신 자료는 충분히 확보될 것으로 보았습니다. 고신은 알려진 교단치고는 인물이나 교회가 적고 서로 관계가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수집되는 자료는 이 홈이 관심 있게 살펴보고 내용이 없을 수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유심히 살펴보았으나 너무 허무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은 족보 하나에 가문의 전부를 걸고 살기 때문에 집에 불이나도 심지어 사람이 죽어나가는 변란이 생겨도 족보는 지켜왔고 그래서 수백 년씩 된 족보들이 전국에 흔한데, 역사를 그토록 외치는 고신이 불과 수십 년 전의 자료를 마치 수백 수천 년 전 자료처럼 구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일까?
전시관에 들어가자 첫 안내 책장에는 기념관이 발간한 고신역사연구서 제1호가 비매품으로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2008 제1호, 장로교회와 역사, 고신역사기념관/고신역사연구소, 고려신학대학원 발간'이었습니다. 책의 글은 6개인데 책의 첫 머리에 있는 '발간사'와 6개의 글은 고신 초기사에 관심이 있는 제게는 한 눈에 고신 역사와 오늘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특히 제가 기념관을 방문한 8.27. 한 주 전인 8월 19일에 돌아가신 남영환목사님이 1999년 1월 1일에 남겨놓은 글이 실려 있었는데, 책 출간일이 6월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본인에게 게재 허락을 받았다고 느껴지는 시점입니다. 임종 전 의사 표시가 어려웠다 해도 글의 일자와 그간 행동을 본다면 그리고 남목사님의 평소 성향을 본다면 발간 주관측이 일방적으로 글을 실었다 해도 아주 영광스럽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고신은 주목사님 사후 그리고 1960년의 합동측과 통합 이후 이미 고신 스스로 초기에 주장한 내용을 스스로 뒤집고 나왔으며 그 결과 역사적으로 수치스런 걸음만 걸었습니다. 어느 한 면이라도 과거 생명성에 대한 노력이나 가능성조차 없었기 때문에 이 홈은 평소 고신에 대하여 고신의 초기사에 해당하는 과거만 인사를 할 뿐입니다. 그런 인식을 가진 제게, 기념관이 발간한 '고신역사연구소'의 250페이지 글 대부분은, 고신은 현재 볼 때 희망조차 없다고 생각한 짐작을 더욱 굳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 중에는 백영희 목사님에 대한 표현이 너무 심각하게 왜곡 되어 있어, 시간이 아까와도 몇 가지 발언을 해야 하겠다고 느꼈습니다.
공회와 직접 관련 있는 고신 측 인사들은 이미 하나님 앞에 서셨기 때문에 이후 세대인 이 시대 우리로서는 소속을 물론하고 말씀대로 가야 할 신앙 노선만 살펴보면 됩니다. 고신도 공회도 말씀대로만 살겠다고 스스로 대내외에 공표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씀이라는 기준은 동일하며 또한 고신에서 공회 노선의 출발 방향이 잘못 되었다는 점을 고신역사기념관의 발간 도서 1호에서 그렇게 강조했다면, 그 글의 사실 확인은 해야 할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고신의 지적에 옳은 점이 있다면 우리는 출발 때부터 내재 된 문제점을 잘 파악하여 어떤 고통이 있다 해도 얼른 제거해야 건강한 노선이 될 것이고, 만일 잘못 지적했다면 그 피해가 최소화 되도록 할 대처하는 것이 실제 필요할 것입니다. 대개 역사를 연구하는 어떤 단체가 계속하여 발간하려 생각한다면 첫 권에 실을 내용은 가장 많게 됩니다. 고신역사연구소 차원에서 그 제1권의 글을 그렇게 발표할 내용이었겠는가? 또 그 글이 한국교회에 전해질 때 신앙에 유익을 위해 이 홈이 발언할 내용이 있겠는가?
당분간 이 게시판에서 해당 글에 대한 사실 관계와 신앙 시각 그리고 관련 여러 내용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앞으로 발언할 글은 일단 이 홈의 /초기화면/연구실/자료/959, 960번/에 소개된 기념관 발간 자료나 전시자료 등을 전제로 할 것입니다. 250페이지 분량의 책 내용 중 다른 부분에 대한 발언은 그 발언에 앞서 해당 내용 소개를 새로 하든지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