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독교 교리사의 '구원론'에 대한 예리한 통찰

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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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1. 기독교 교리사의 '구원론'에 대한 예리한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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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리사에서의 구원론을 두고


- 발전 모습을 살핀다면

초대 교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감당하던 깨달음으로 계속 이어 져 왔음은 틀림 없으나
천주교 1천 년의 기본 구원과 루터 칼빈의 이후 5백 년 간 건설 구원 단계에서는 너무 늦어 졌습니다.
다행히 현재 백영희의 구원론에 이르러 구원론 교리사가 최종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은 다행입니다.

위 글은 백영희 구원론을 알지 못하는 분이, 그 이전까지 기독교 교리사의 구원론을 총촬한 것으로
구원론을 두고 모두들 알면서도 대충 덮어 두었던 우물의 뚜껑을 활짝 열어 젖히고 조명한 글입니다.


- 구원론 교리사는 논리적 모순 역사

구원론은 교회사의 큰 논쟁과 교파 분열과 심지어 종교 전쟁까지 유발한 사안이어서 글쓴 분의 지적처럼
너무 예민한 교리 분야이면서 그 내용조차 복잡한 체계를 가지고 있어 살피기에 참 조심스럽습니다.
구원론 저서나 강의를 읽고 듣다 보면 알면서 강의하는지, 또 알면서 옮겼는지 의심스런 경우가 많으니
마치 중국공회가 인성 교리에 대한 남의 글을 읽을 줄도 옮길 줄도 몰라서 A를 읽고 B라고 하는 것처럼
구원론 교리는 이론 자체의 논리적 모순에서부터 실제 적용했을 때 모순까지 허다한 문제가 있습니다.
대개 역사적으로 나타난 각 구원론의 초기 주창자들의 경우는 최소한 이론적 구성은 잘 다음은 듯 하나
위 글이 지적한 그런 모순점에 대해서는 각 주창자들이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하고 덮어 버렸습니다.

대개 정통 구원론 교리들은 실제 당대를 감당할 구원론 교리를 바로 깨달았으나 이후 이어지는 모순에
대하여서는 당시로서는 더 이상 논리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었는데 논리 이전에 그들이 깨달은 영감은
확실하게 맞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안 것까지만 설명하고 모르는 부분은 복음의 비밀로 남겨 두었는데
중국공회처럼 말이 막히면 퍼뜩 딤전3:16을 끄집어내서 자기 모순과 무지를 막아 버린 경우도 있었으나
정통인지 이단인지에 따라 서로 상대방이 그런 경우라고 서로가 같은 논리로 논박하고 온 것이 구원론이며
사실 범위를 넓혀 보면 기독교 교리 모든 분야에서 그렇지 않은 경우가 없습니다.

교리사적으로 볼 때 그 중요성을 두고 말한다면
'성경론' '삼위일체' '신인양성일위' '기본구원' '건설구원'으로 이어지는 교리 체계는 어느 것 하나도
덜 중요하고 더 중요하다 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분명한 것은 뿌리로부터 열매로 이어 지는 계통으로 본다면
성경, 삼위일체, 신인양성일위, 기본구원, 건설구원의 순서가 될 것이며
바로 이 면 때문에 하나님께서 역사적 교리 전개 순서도 그렇게 잡아 두셨고 또 악령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그 순서를 따라 뿌리에서부터 마지막 열매에 이르기까지 훼방하느라고 부지런히 2천 년을 달렸습니다.

구원론은 교리사 발전의 최고 절정에 위치하고 있어 복잡하기도 하며 미혹도 많고 그만큼 논란도 많은데
위 글을 적은 분은 그런 구원론에서 한 발 떨어 져 서서 어느 한 편을 들지 않고 전체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결론을 말하면 기독교 교리사 최종 최대의 사안인 구원론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의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애당초 말이 될 수 없는 말을 했고 그렇게 발전이 되었고 그 모순은 끝까지 늘 따라 다녔다는 것입니다.
앞서 수고한 교리사의 선배들의 열정은 이해를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다 틀렸다고 맺고 있습니다.



- 이 홈의 입장은

위 글의 모든 자세한 지적 사항 거의 전부를 두고 다 이해하고 동의하며 깊이 경탄합니다.
그러나 위 글에서 하나 빠뜨린 중대한 문제는 그 모순의 구원론 교리사 전체를 통해서
초대 교회로부터 말세 마지막까지 자라 가고 있는 정통 교리의 흐름을 함께 묻어 버렸습니다.

1 세 유아의 인간으로 부족한 점
5 세 아동의 인간으로 부족한 점
10 세 아동의 인간으로 부족한 점을 두고 일일이 설명한다면 그 지적이 다 맞을 수 밖에 없으나
1 세, 5 세, 10 세 아동이 점점 완전한 성인으로 자라 가는 과정을 밟고 있는데도 이 면을 잊고
그 각각 당시 나이에서 그들을 하나의 완성 된 인간 상태로 보고 인간으로 부족하다고 비판했다면
그 비판은 좁은 면에서는 거의 다 맞는 말이지만 넓은 면으로 볼 때는 아주 틀린 말이 됩니다.

교회사에서 '정통'이라는 표현은 구약 바리새파로부터 시작하여 오늘 고신 교단에 이르기까지
과거나 팔아 먹고 이름만 가지고 싸움이나 하고 현실은 도외시한 부패 세력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통'이란 그 계통에 선 후배들이 잘못 이용할 때는 그렇게 비판을 받아 마땅한 꼴이 되지만
그 '정통'을 바로 사용한다면 '정통'이란 계통과 같은 것이니 뿌리에서 열매가 맺어 지는 그 중간에서
둥치나 대목 가지나 잔 가지든 어느 한 토막이라도 빠지거나 잘못 되면 열매가 맺어 지지를 않으니
정통이 원래 정통의 의미로 바로 작동할 때는 정통이란 곧 생명입니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 사항입니다.

구원론 교리는, 모든 정통 기독교의 다른 교리와 마찬 가지로, 생명을 가진 참 교리이기 때문에
한 번 확정 된 정통 교리란 다음에 바꾸거나 고치거나 대체를 할 수 있는 교리가 아니며
동시에 그 교리는 그 교리에서 더 이상은 움직이지 않는 무형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이어 지는 계통으로 보면 반드시 정통 교리란 뒤에 이어 지는 교리와 연결이 되면서 자라 가고
이렇게 이어 져서 자라 가기 때문에 앞 뒤의 교리들의 속에 있는 본질은 항상 단일의 한 진리입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의 모든 교리 전체도 이런 원리가 적용 되지만
구원론이라는 한 분야의 한 교리도 그 교리 자체적으로 정통 교리 역사는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세부 평가에 앞서 총평을 하자면

위 글을 적은 분의 예리한 통찰력은 대단하다고 인정을 하나 너무 아쉬운 것은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분이
정통 교리에 서서 정통 교리의 발전 단계에서 과거 어린 상태에서 제시 된 내용들을 살필 때 그 교리들의
모순점을 통해 그 모순점을 그 교리의 구조적 한계로 보지 않고 바로 그 모순점이 그 교리의 자라 갈
다음 단계를 표시하고 있다는 점으로 살펴 보았더라면 오늘 이 노선 구원론과 같은 입장에 서지 않았겠는가?
이 노선 구원론이 오늘 교계에 넓게 인용 되고 있으니 단박에 구원론의 결정판으로 알아 차리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위 글에서 그런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구원론의 교리사를 비판한 그 비판력이 자신을 위하지 않고
자신의 신앙에 반대로 사용 되는 자해력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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