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논리적 모순'의 모순

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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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3. '논리적 모순'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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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선 외에는
거의 모든 신학이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철학을 먼저 공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의대를 가는 학생들이 생물학을 공부하듯이, 신학을 하려는 사람들은 학부에서 철학을 하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있습니다. 위 글을 적은 분도 철학에 조예가 있는 것으로 보아 철학과를 했든지 아니면 철학과 과목을 일부 공부를 했다 하더라도 깊이 있게 공부를 잘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위 글이 표절이 아니라
위 글을 적은 분이 직접 적은 창작이라고 한다면 위 글을 적은 분이 논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철학은 일반인들로서 그렇게 쉽게 인용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신학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빠져 있다며 구체적으로 여러 예증을 들어 설명한 것으로 보아 위 글을 적은 분은 철학을 제대로 그리고 확실하게 잘 공부했습니다. 학적으로도 유능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위 글이
바울이나 초대 교회의 기독론이나 루터에 이르기까지 모두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한 일반 세상의 철학에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고 말하면서 특히 성경 이후의 2천 년 신학은 그 철학에 확실하게 빠져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철학을 아는 사람이 기독교 신학이 철학에 빠져 있는 것을 본 대로 말하고 들은 것을 들은 대로 말하는 것을 두고는, 일단 아니라고 할 사람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말해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철학에 빠졌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이 노선은
이 노선의 초기부터 지금까지 아예 철학이라는 것 자체를 알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읽지도 않은 것을 자랑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1982년 초, 어느 날 제가 전도했던 분 중에서 역사와 철학에 해박한 어느 한 분이 '백 목사님은 아마 조선 시대 영남 학파의 유교 철학에 깊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심오한 깨달음을 가진 것 같습니다.'라고 설교 평을 한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교회를 막 출석하던 분입니다. 설교와 신앙과 성경과 신학에 전혀 상관이 없었던 분입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고양이를 보면 천상 호랑이입니다. 참새와 독수리를 비교하면 덩치나 좀 차이가 있지 모든 면에서 다 닮았습니다. 육상 동물과 날 짐승의 차이를 비교한다면 참새와 독수리는 너무 닮았습니다. 그렇게 보면 사람과 원숭이는 수 만 또는 수십 만 종류의 동물들 중에서 이처럼 꼭 빼다 박은 듯 닮은 경우가 없을 것입니다. 원숭이를 처음 본 사람이 사람을 닮았다... 사람은 원숭이라는 동물의 일족이다... 자꾸 그렇게 말하다 보면 다윈이 되는 것입니다. 다윈이 본 것을 봤다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본 것을 봤다고 하면 다 진리인가, 맞는 말인가, 본 것을 봤는데도 잘못 볼 수는 없는가?

하나님께서 성경을 우리에게 주실 때는 그 내용은 일점일획도 가감이 없도록 주신 진리이지만, 그 성경을 읽고 그 말씀대로 살 때 우리에게 그 말씀을 깨닫는데 도움이 되도록 곁들여 주신 것이 있으니 그 것을 자연 계시라고 합니다. 돌 나무뿐 아니라 움직이는 동물과 사람의 인체와 마음까지도 다 자연 계시입니다. 심지어 사람의 마음이 생각하는 것까지도 자연 계시이니 철학 심리학 경제학 정치학 법학 등 모든 것이 자연 계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 자연 계시들은 성경에 가르친 것을 쉽게 알 수 있도록 눈에 볼 수 있는 전시물들입니다. 따라서 저자는 기독교 신학을 보면서 '철학이네, 철학에 빠졌네, 철학이 속에 들어 앉아서 신학의 실권을 다 쥐고 있네...'라고 말한다면 바로 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까 그 사람은 철학자이거나 적어도 철학도입니다. 마찬 가지로 동물을 사육하는 동물원의 사육사가 제대로 눈이 있어 속 깊이 관찰을 했더라면 신학 2천 년은 동물의 왕국에 존재하는 약육강식과 그 사이에 펼쳐 지는 수 없는 행동 양식들로 다 해석할 수가 있으니 사육사나 동물학자에게는 2천 년 기독교 신학이 동물 행동학 또는 동물 심리학에 빠져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철학자가 철학의 관점에서 신학을 평한다면, 동물학자뿐이 아니라 대학에 설치 되어 있는 모든 종류의 학과들이 특히 인문 사회학과들의 경우는 더듬을 것도 없이 신학 2천 년은 자기 학문의 우물에 빠져 있다고 표현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억해를 해서가 아니고 너무 확실하게 너무 자연스럽게 그냥 눈에 그대로 보일 것입니다.



무엇을 몰랐는가? 어디에서 착각이 생겼는가?

위 글을 적은 분은, 신학의 초보인, 신앙의 기초인, 자연 계시와 특별 계시를 잊고 있었습니다. 성경이라는 절대 진리의 말씀조차 안 믿는 세상 인간들이 하나님 없이 사는 세상 생활을 위해 만든 언어로 기록 되었습니다. 즉 기독교의 모든 출발의 출발인 성경조차 불신자의 언어라는 우물에 빠졌습니다. 빠진 정도가 아니라 그 불신자들의 하나님 없는 언어 생활을 가지고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즉 진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검정색 크레파스를 들고 흰선을 긋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종류의 언어를 공부하는 학자들이 본다면 기독교는 신학이라는 말을 입에 담기 전에 기독교 자체가 우리 인류의 언어 속에 담겨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 말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며, 이 말이 사실이라면 기독교는 잘 믿는 목사들보다 안 믿는 언어학자들이 더 정통할 것입니다.

어디에서 이런 착오와 모순이 시작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안 믿는 사람들을 만드시고 그들이 하나님 없이 살아 가면서도 그들에게 언어를 주셨고 그 언어를 가지고 살아 가게 만드신 다음에 때가 되어 그 언어를 가지고 성경을 기록할 필요가 있어 일부러 그 언어와 그 표현으로 성경을 기록하셨습니다. 이 내막을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이고 이 내막을 믿지 않고 원숭이나 사람이 닮았는데 화석을 보니까 원숭이가 먼저 살았다고 나타나니 사람의 조상은 원숭이라 이렇게 단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불신자라고 합니다.

위 글을 적은 분은 믿는 사람이겠지만, 위 글의 내용은 안 믿는 글입니다. 안 믿는 글이니 보이는 대로 적은 것이 안 믿는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독교 신학 중에는 거의 대부분이 철학에 빠진 사람들이 철학을 가지고 신학을 재구성하여 겉으로는 신학인데 그 속은 인간 철학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교회가 기부 운동에 앞장 서고 장기 기증 운동에 앞장 서며 자연 보호 운동에 앞장 서자는 신학이 활발한데 이런 것은 겉은 신학이나 속에는 간디 허균 맑스와 같은 세상의 잡다한 사상들입니다. 바로 이런 경우를 가리켜 신학이 철학의 우물에 빠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독론이 중심이 된 삼위일체와 신인양성일위의 교리 그리고 이어 진 루터의 구원론과 같은 것을 만일 철학적 요소가 보인다고 하여 철학에 빠진 구원론이라고 표현한다면, 강아지를 데리고 사는 주인을 향해 그 강아지도 눈이 2 개이고 입으로 밥을 먹고 그 집 주인도 그러니 그 집 주인이 원래 강아지의 조상이든지 아니면 그 강아지가 그 주인의 조상이든지 아니면 그 위 조상대에 교잡이 되었든지, 그런 경우가 아닌가 라고 비판을 할 때 그런 비판을 수용할 수 있을까요?

이 것이 바로 다음에 설명하고 싶은, '논리적 모순'이라고 비판한 위 글의 논리적 모순입니다. '1+1=2'라는 논리는 큰 물 통에 '1+1+1+1+.... = 1'처럼, 아무리 더해도 큰 물 통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수'라는 개념이 '양'이라는 세계로 들어 가면 갑자기 단수와 복수의 개념이 없어집니다. 영어로 말하면 복수를 나타내는 '-s'를 가지고는 갯수에만 그 논리가 통하지 양의 문제로 넘어 가는데도 '-s'라는 논리로 모순을 찾고 있다면 그 논리를 사용하는 사람이 그 논리를 모순되게 사용하여 모든 것이 모순이 되는 것이지 원래 모순이라 모순으로 드러난 것이 아닙니다.

이 노선은, 기독교의 거의 모든 신학이 철학에 의하여 만들어 지고 철학에 지배를 받아 철학에 빠져 버렸으니 신학 위에 철학이라는 현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 글에 대하여 99.9 % 찬성을 합니다. 다만 위 글이 예를 든 기독론이나 어거스틴이나 루터의 구원론은 철학이 끼어 들 자리도 없이 100 % 순수한 신학이며, 위 글에서 철학에 빠졌다고 본 것은 그 연원을 살피지 않고 겉으로 관찰한 겉 모습만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나온 실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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