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 않으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 시무 투표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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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0 00:00
(비록 신앙 세계에서라도)
아무리 좋은 것이 있고 그 것을 확실하게 가질 수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 주지 않으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입으로 먹을 수 있다고 다 먹으라는 것이 아니며
손으로 가질 수 있다고 무엇이든 끌어다 놓는 것이 아니듯이
내가 마음 먹으면 가질 수 있는 경우에도 무조건 가지고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인지 잠깐 살펴 본 다음에 가지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지 알아 보는 방법은 크게 3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성경이 금하지 않는다면
둘째, 신앙 양심을 통해 막지 않는다면
그리고 세 번째는, 주신 현실이 가질 수 있게 된다면 가질 수 있습니다.
순교라 해도, 하나님께서 주지 않으면 못하는 것입니다.
선교라 해도, 연보라 해도, 목회자로 출발하는 희생의 걸음도, 교회를 개척하는 일도
하나님께서 주시면 하고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착각을 유도하는 날쌘 일꾼, 욕심)
눈에 좋아 보이면
그 다음부터는 지식도 양심도 감정도 판단도 오로지 그 것을 가지는 방향으로만 움직이므로
우리는 매사 결정을 두고 내 마음의 각 요소들이 내 판단을 흐리게 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여당이 모이면
대표도 총무도 위원도 당원도 전부가 일치 단결하여 한 목소리를 냅니다. 속기 쉽습니다.
침례교 총회가 열리면 모든 분들의 의견이 전부 침례가 옳다는 것으로 결론이 납니다.
하물며 사람이 자기 눈에 좋아 보이면 자기 마음의 각 요소들이 일치 같은 소리를 냅니다.
그런데 겉 보기로는 각계각층이 스스로 원하여 한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욕심이라는 세력 하나가 뒤에서 목소리를 조율해 버렸습니다.
욕심이 들어서 지성에게 감정에게 습관에게 심지어 양심까지도 포섭을 해 두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에 눈이 멀면 그 다음부터는 그 사람이 기도를 해도 무슨 연구를 해도 결론은 하나이고
무작정 서울로 떠나려는 시골 아가씨 마음에 바람이 들면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심지어 신앙도 정신 차려 자기를 살피지 않으면 자기가 세운 목표 하나에 끌려 가게 되는데
그 목표는 그 목표를 세운 자기가 속에 들어 있으니 그 목표는 곧 자기의 다른 모습입니다.
목표는 일견 신앙이나 은혜나 복음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정해 지는데, 실은 속은 것입니다.
(공회의 집단 최면 역사)
부공2가 총공회 주도권을 잡던 1999년
부공2는 과거 10 년 세월 속에 부공1의 탄압으로 거의 소멸이 된다고 볼 만큼 되었는데
부공1의 전위대이자 핵심 지지 세력들이 전부 조사들이었고 그들에게 안수라는 이름은
그들에게 신앙과 인생과 목회와 소속까지 송두리째 뒤집을 큰 이권인 줄을 간파한 귀신이
안수를 위해 부공1과 부공2의 모든 조사들이 합하자고 미끼를 던져 보았습니다.
부공2를 향해 개떼처럼 짖고 물고 난리를 하던 개떼들이 살코기를 보자 순간 적막이 감돌고
곧 이어 그 개떼들이 방향을 반대로 바꾸고 그 살코기를 향해 죽자살자 대들었습니다.
그 살코기를 던진 귀신은 그 살코기를 끈에 매달고 부공2 본부 속으로 가져 들어왔습니다.
부공1이 대세를 잡고 부공2를 고양이 쥐 놀리듯 하던 부산 공회 전체 분위기가 그 이후
부공2가 대세를 잡고 부공1을 내려다 보며 희죽거리고 조롱하며 지금까지 오고 있습니다.
그런 전환기에 안수라는 살코기를 던진 분들 그리고 그 살코기를 향해 달려 가던 분들
그 분들을 많이 만나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그 분들의 언행은 그렇게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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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간이 운동하여 모인 그런 모임이 아니다. 모두들 모이면 같은 의견이었다.'
'우리들이 회의를 하면 사회자가 필요 없다. 모두 짜 맞춘 듯이 한 목소리였다.'
'우리는 안수가 결단코 목표가 아니다. 우리는 공회가 정상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어떤 말을 해도 전부가 의견이 같고, 한 뜻이고, 보이지 않는 역사로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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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런 말을 하는 분들 대부분에게 이 글에서 소개한 내용으로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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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라는 욕심 귀신이 안수에 눈 먼 조사들 속에 꼭 같이 들어 갔으니 같은 소리가 나오지.'
'안수라는 목표를 인간이 세워 놓고 노선도 제도도 운동도 조직도 맞추니까 인간 놀음이지.'
'부공1과 2가 노선으로 육탄전을 벌이고 싸웠는데 안수로 하나가 된 사실이 귀신 놀음이지.'
'성령으로면 저절로 하나가 되었는지, 귀신으로 하나가 되었는지, 열매를 보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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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안수를 받고 난 뒤 부공1 핵심 지지 세력 목회자들이 부공2로 다 가버렸습니다.
부공2로 가려면 일단 과거 부공1 시절을 회개하고 사과하고 새 출발을 해야 하는데
하룻밤 사이에 소속을 바꾼 다음 이 번에는 저 쪽을 향해 무작정 짖어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역자 회의를 참석하던 시절에 교역자 회 전체를 향해 '개떼들'이라고 한 것은
그들을 향해 세상 욕을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설명했던 것입니다.
(신앙의 흔한 착각)
외부로는
'진리'를, '은혜'를, '성령의 인도'를, '목표 없이 시작했는데'를 내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속으로 이 것이 꼭 같은 인간들이 같은 욕심이나 같은 판단 착오에 휩싸인 것인지.
남들과 토론을 해서 이기려 하거나 자기의 순수함을 보이려고 노력하기 이전에
우선 스스로 철저히 그리고 반대편 입장에 서서 자기들이 자기들을 빗고 깎아 봐야 합니다.
사정 없이 비판하고 정죄하고 마구 헐뜯고 짓밟아 보면 그 정체를 어느 정도 알게 됩니다.
이럴 때 자기들끼리 모여 그렇게 하면 본능적으로 짜고 봐주며 대충하게 되기 쉽습니다.
이럴 때 자기들이 아니라 반대편에 있는 이들에게 전권을 내주어 조사시키면 됩니다.
그 원수들이 대들어 자기들을 죽이고 매장하기 위해 온갖 일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하면
자기들 속에 있는 실상이 비교적 잘 드러나게 됩니다.
시무 투표의 원리가 바로 이런 자세 이런 사고 방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목회자를 향해 교인들은 기본적으로 불만을 가지고 뭔가 탓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마음껏 짓밟고 헐뜯어 볼 기회를 주어 마음껏 유린하게 해 보면 실체가 나옵니다.
그렇게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는다면 대단한 목회자이고, 그는 하늘에서 복이 많을 것이고.
그렇게 털어서 먼지만 나오면 그래도 그 정도면 굉장한 것입니다. 성자 정도일 것입니다.
그렇게 털고 흔들어 매장을 해서 매장이 되어진다면 교회를 위해 묻어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목회자를 인정 사정 보지 않고 오직 교회 유익을 위해 모든 일을 다하고 나면
교인들은 보통 그 것으로 끝이 난 줄 아는데 공의와 공평과 길러 가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이 번에는 교인들이 스스로 자기들을 그렇게 자진해서 살펴봐야 합니다.
신임으로 통과된 목회자나 후임이 다음 2 년 간은 교인들을 전권으로 살피게 되어집니다.
이 때 교인들은 죄 되지 않는다면 목회자에게 조사를 받고 따르고 참을 의무가 있습니다.
시무 투표라는 제도를 전혀 모르는데 마치 아주 잘 아는 것처럼 떠드는 교인들은
교인만 목회자에게 시무 투표를 통해 원하는 대로 다 해 볼 수 있다고 알고
그 후에 2 년 임기 동안에는 죄 되지 않으면 전적 순종할 의무가 있는 줄 모르는 경우이니
왜 이렇게 간단하며 이렇게 오래 되고 이렇게 설교록을 통해 수 없는 세월을 배운 것을
그렇게까지 모르고 있을까? 그리고 상대방을 향한 칼로 사용하는 데만 익숙할까?
현재 각 공회 별로 시무 투표 이후의 상황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은혜롭게 다음 단계를 잘 진행하여 듣는 이들까지 축복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교회는 노선을 잘 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면에 온갖 노선 이탈 행위가 있습니다.
안다고 말하는데 실은 모르는 이들의 공통점은 유리할 때는 노선을 기치로 내세우다가
상황이 바뀌어 불리하게 되면 갑자기 '백 목사님' 이름을 내동댕이 치며 분을 풉니다.
서부 교회가 1992년 시무 투표 후 그 날 저녁부터 한 행동이
중학생까지 투표권을 준 것은 백 목사님이 아주 잘못한 것이다...
요런 못되고 망령된 말이었고 고 주장을 담아 연명 날인을 받고 다닌 것입니다.
현재 서부 교회 2층을 공회로 취급하지 않는 이유는 그런 패륜에 비겁한 짓도 원인입니다.
집단 최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같은 욕심에 물이 들면 그 욕심을 달성하는 목표를 위해 그 욕심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은
따로 회의를 할 것도 없고 눈 맞출 것도 없습니다. 한 귀신이 들어 갔으니 귀신 같습니다.
성령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자기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자꾸 살펴야 합니다.
그런데 영의 분변은 마음이 어두워 실패하기 쉬우므로 이럴 때 진리와 현실이 필요합니다.
말씀은 모든 믿는 사람 전체에게 꼭 같이 주신 이치이며
현실이란 바로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현재 인도입니다.
가장 정미하게 고도의 어려운 길을 찾아 갈 때는 영감이 아니고는 안 되지만
노선과 소속처럼 또렷한 문제나 현실의 좌우 판단 문제를 두고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이 노선은 이 노선의 이치로 들이대면 금방 결판이 나버립니다.
그리고 각자 주신 현실을 둘러 보면 너무 환해서 보통 더듬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 노선의 길이 아니면 아닌 것입니다.
주신 현실이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밀고 나간다면 이는 하나님과 맞서는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