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세계 신학을 지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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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9 00:00
1985년 백 목사님의 당부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조직 신학이나 주경 신학이나 성경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진짜를 공부해야 한다.'
공회에서 앞서 길러 세계 신학 속에 이 노선의 교리 교훈을 조직 체계화 하며 외치기를 기대했던 서 영호 송 용조 목사님들이 박사 학위를 받아 오다가 그 박사 학위에 포로가 되어 이 노선을 버리고 일반 신학이 만든 소산물이 되었고 양성원 강의를 통해 쑥물이 대량 유입이 되자 백 목사님은 아주 젊은 사람들을 통해 다시 원래 목적한 바를 시도하게 됩니다.
부모와 자녀의 나이 만큼 차이가 나는 3 명의 서부 교회 반사를 다시 해외로 내 보내어 조직 신학과 성경 및 주경 신학을 공부하고 앞날에 공회 내에서 이 분야를 각각 주력하도록 추진했습니다. 백 목사님은 때로는 각자에게 때로는 함께 불러서 직접 또는 전화를 통해서도 자주 말씀했던 내용이 바로 위에서 설명한 내용입니다. 조직 신학은 이 홈 답변자에게, 그리고 성경은 류 정현 목사님 그리고 주경 신학은 이 진석 목사님께 부탁을 했었는데 한 분은 완전히 다른 노선으로 나가셨고 한 분은 교권 투쟁의 중심에 서서 지도부의 심부름만 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남은 한 사람만 이 홈에서 3 가지 일을 다하고 있습니다.
일반 교단이나 조직에서는 창립의 공로와 확고한 지도권을 가진 백 목사님의 위치에서 누가 무엇을 맡으라고 한다면 그 것은 바로 법이고 제도가 됩니다만 백 목사님은 평생 목회를 통해 사람이나 일 처리를 그렇게 누구 한 사람을 찍어서 고정 시키지 않습니다. 그 말씀은 당시 그들이 당시로서는 적임자이며 그들에게 그렇게 말을 해야 할 이유가 있어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그 말을 듣고 잘 순종하면 그 지도에 따르는 복과 능력을 받게 될 것이고, 만일 그들이 그 말을 듣지 않거나 또 그들이 그런 말을 잘 듣는다 해도 그 옆에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전해 듣거나 또는 그런 말을 전해 듣지 않아도 신앙 본능적으로 또 백 목사님의 목회 방향을 잘 알고 만일 자신이 그들처럼 되고 그들보다 앞서기를 노력하게 된다면 그 말을 직접 듣지 않은 이들의 연구나 노력이라 해서 열등 되거나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결과를 놓고 최종 평가를 하는 것이 이 노선 백 목사님의 지도요 목회입니다.
1974년으로 기억 되는 어느 날 전 성수 당시 조사님께서 교역자 회의를 참석하고 온 직후에 백 목사님이 이 번 교역자 회의에서 '나는 갑니다. 나는 신론 인론 등 조직 신학의 각 부분에 대하여 다 가르쳤습니다. 이 것을 잘 조직해서 전하면 그는 칼빈처럼 될 것입니다.' 라고 발표한 내용을 적어 보여 주셨는데, 당시 답변자는 고교생이었고 이미 공회에는 홍 순철 목사님 같은 후계자 실력이 되는 분들이 즐비했고 답변자에게는 전 성수 조사님도 은사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아, 이 분들이 바로 그런 칼빈 중의 한 사람이 되겠구나!' 라고 생각 되어 부럽기도 하고 이런 좋은 기회를 맞았는데 어린 학생인 답변자는 전혀 거리가 먼 업무였으므로 아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당시 그 말을 들은 분들 중에 그 말 대로 이 노선을 정리할 수 있는 분들은 세상을 다 떠나셨고 서 영호 송 용조 목사님처럼 답변자보다 훨씬 앞서 목회한 이들은 세상 것이 좋다 하여 이 노선 것은 발표조차 하지 않고 오히려 훼방만 하고 있었는데 어느 덧 세월이 10 년이 더 지나고 1984년에 백 목사님은 답변자에게 해외 공부를 명령했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신앙 세계는 하니님께서 붙들고 움직이면 인간의 차이는 순식간에 뒤집어 지기 때문에 이 노선 연구와 공로를 두고는 누구만 한다거나 누가 더 잘한다고 미리 단정할 일이 전혀 아닙니다. 다만 짐작은 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주어 진 여건에서 최대한 서로 연구하고 협조할 수 있는 일이며 어느 순간에라도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할 입장이면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가다가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해 어떻게 사용할지는 하나님만 결정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 분의 단독 판단에 따라 쓰여 지면 쓰여 질 따름입니다. 만일 이 과정에서 내 이름 석 자를 어느 부분에 꼭 올리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다면 그 때부터는 자기가 하나님이 되는 일입니다.
거대한 출간물을 내기 위해 중국 공회나 이 번 대구 공회는 너무 무리를 한 것 같습니다. 급하게 내어 선점하는 경쟁은 세상 물건을 파는 일에 해당이 되고, 교리와 신앙 연구는 그 정확성이 가장 생명입니다. 물론 한 순간에 다를 이루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지 않으시고 자라 가게 하는 면이 있으므로 출간이 거듭 되면서 나아 지는 법이나, 중국 공회처럼 주일 학교 예배당 바닥은 마루라야 한다고 교리를 적어 놓고 대작을 출판했다고 자위한다면 이 것은 아이들 장난 거리로 아는 정도입니다. 대구 공회의 출간물에서도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