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길을 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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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30 00:00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로만 살아야 하는지 독립을 해야 하는지 그 앞날을 결정한 서명자들!
오늘 미국과 세계는 그 몇 명의 서명자들의 서명을 현대사에 가장 큰 순간이라고 봅니다.
한 번 서명한 것이 무슨 큰 수고인가! 총공회 교인들과 목회자들은 수 없이 서명했는데?
미국 독립 선언문에 서명한 이들은 본인과 가족과 전체의 생사흥망을 걸어야 했습니다.
대영제국을 상대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꼴이라던 시점에 분연히 일어 났습니다.
미국의 독립 선언과 함께 헌법에까지 서명한 인물들, 미국은 여기에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진의 안내판에는 '몇 걸음 앞의 건물'에서 있었던 서명의 역사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 서명자들은 20세기 1백 년과 오늘도 이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을 건설한 자들입니다.
The Signer
Certain rare moments change the course of history.
Yet within a mere elveven years two such moments,
the signing of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and
the signing of the Constitution of the United States,
occurred in Independence Hall, just a few steps from
where you are standing. The sculpture you see before
you commemorates the courage of those who altered
their lives, and ours, by suffixing their names to
these documents.
Independence National Historical Park
National Park Service
신약 첫 돌을 놓았던 12 사도들, 신약 신앙의 교리와 신조를 이었던 여러 초대 공회 수고자들,
1천 년 곁 길의 천주교에서 분연히 일어 나서 갈 길을 외친 루터와 칼빈과 연이은 수고자들.
이 홈은 이 시대의 갈 길이 이 노선임을 서명할 수 있는 기회를 이 홈에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서명의 여부와 그 서명에 대한 책임과 그 훗날에 대한 평가는 오늘 가늠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만사를 서명자 각자가 전적 자기 의사로 자기가 좋아서 자기 선택으로 서명합니다.
1998년, 이 홈의 첫 모습을 공개하자 총공회 내부에서 일제히 비판과 위협이 잇따랐습니다.
그 비판과 위협을 감수해야 할 바로 그 때의 서명이 서명의 가치와 필요가 있는 때입니다.
지금 미국 시민 누구라도 독립 선언문과 헌법에 서명하겠다면? 정신 병원에 보낼 것입니다.
이 작은 안내판을 읽으며 우리 노선과 지난 시기를 두고 많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필라델피아에 사셨던 이 인재 목사님은 신사 참배 시기에 '반대가 길'임을 서명했었습니다.
1989년 백 목사님이 갑자기 돌아 가셨고 남겨진 공회인들의 앞 길은 어느 길이라야 하는가?
89년 8월 이후 이 노선은 백 목사님 사후 노선을 두고 참으로 서명들도 많이 했고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수 많은 서명들은 놀이터 모래 바닥에 이름을 쓰다 지운 것처럼 그렇게 허무했으니
자신들의 이름 석 자를 적은 서명판과 그 서명한 사실조차 까마득히 잊고 살고 있습니다.
당시 어떤 내용에 서명했는지는 그 서명 순간조차 알지 못했으니 읽지도 않고 서명한 분들,
또는 그 내용을 자기가 적거나 읽었으면서도 그 의미가 뭔지도 모르고 서명한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몇 년이 지나고 이제 백 영희와 총공회 이름이 한국 교회에서 크게 손해 볼 것이 없자
지금은 총공회 간판들이 새로 걸리기도 하고 각 공회들도 공회 홈까지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신과 관련 모든 것을 다 걸고라도 가야 할 그 형편이라야 본심이 드러나게 됩니다.
누구의 본심이 어떤지 남이 알기는 어려우나 본인이 알려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총공회 이 길에 자신과 모든 것을 걸고 걸어 가야 할 길인지 연구할 때입니다.
또 과거처럼 자신과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가야 할 때가 되면 평소 시끄러운 소리는 잦아지고
내 속에 이 노선을 어떻게 깨닫고 어떤 자세를 가졌는지 그 속의 것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홈을 방문하는 분들께 현 소속에 상관 없이 이 노선에 대한 서명을 요청합니다.
자기와 관련 모든 이들의 모든 위험과 불이익을 걸고라도 서명하실 분들이 계십니까?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백파(Pkist 혹은 Paikian)이라는 이름을 명예롭게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앞서 당대를 감당한 계약 신앙가(Covenanter)들이 있었습니다.
그 앞 세대를 감당한 개혁 신앙가(Reformer)들도 있었습니다.
앞 서 간 그들을 따라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이 노선이니 이 시대를 기쁘게 걸어 갈 사람들!
이 홈은 그들을 찾고 있습니다. 역사를 볼 때 몇백이 될 리는 없을 것이고 몇십은 가능할지!
이 안내판의 서명자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오늘의 이 노선 서명을 두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려울 때는 어디 갔는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출옥 성도의 이름은 그래서 위대한 것입니다.
지금은 기독교 전성기입니다. 고난 당할 일이 없으니까, 사방에서 고난과 순교를 외칩니다.
지금은 너무 많이 먹고 배가 부른 때니까 세상 사람들이 복에 겨워 모헙을 즐기는 것처럼
선교사 이름으로 위험한 지역에 가는 것도 그런 세상 배부른 모습처럼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세상이 오기 전, 아무 소망도 없이 주님 사랑에 그냥 한 목숨 바치는 바로 그 당시에
홀로 무언의 용사가 되어 걸어 갔던 분들, 적어도 그런 분들의 걸음이라야 신앙이라 합니다.
오늘 장난 삼아 입북한 기자 하나 때문에 세계 뉴스가 그 일거수 일거족을 지켜 보는 때이니
튀어야 사는 세상이 되어 튀기 위해 목숨 거는 사람처럼 신앙의 모험가들이 넘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 날 위해 다 바쳤으나 나 어떻게 해야 다 바쳐 주님을 사랑할까, 이 길뿐입니다.
이 길을 걸을 사람은 주변 유행 분위기 동지를 따라 서명하지 않습니다. 주님만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