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알의 밀알은 땅에 떨어졌고...

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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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1. 한 알의 밀알은 땅에 떨어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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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이라는 한국 교회사의 귀한 종 한 분이 가고 나면 그 분의 신앙과 충성은 후 세대에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더 크고 강하며 풍성한 은혜로 역사하게 되는 것이 성경인데, 오늘 손양원의 신앙의 씨앗은 어디로 가서 어떻게 맺어 져 있을까? 우선 손양원의 신앙을 살펴야 그 뒤를 추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그의 신앙 본질들

1) 말씀을 지킨 생활

손양원 신앙의 첫째 본질은 말씀이면 무조건 그대로 지킨 것입니다. 신사 찹배를 거부하려면 가족을 버려 두어야 하는데 실제 그렇게 했고, 자녀를 잃었을 때 말씀이 시키는 대로 감사했고, 그리고 자기 목숨도 실제 바쳤습니다. 말씀 그대로 살았고 그대로 다 바쳤습니다. 실제 목숨을 바칠 사람이면 나환자의 고름을 빨아 내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고, 목숨을 바치되 즐거이 바칠 수 있는 사람이면 자식의 순교를 기쁘게 받을 수 있는 것이고,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세상의 정치가들이나 도덕가들에게도 가끔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 원수를 사랑했다는 것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손 목사님이 말씀대로 살고자 한 신앙 본질은 없어 지고 불교인도 흉내 낼 수 있는 박애 주의 이단이 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 중심 생활

손 목사님의 신앙 본질은 오로지 하나님만 위하여 산 생활이었습니다. 손 목사님은 애국자인가? 그는 신앙가였지 애국자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애국자였다면 주일을 어기고라도 총을 들고 독립 운동에 나섰어야 했습니다. 손 목사님이 도덕가였던가? 그는 신앙가였지 도덕가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도덕가였다면 자기 부친과 처자식을 그렇게 오랜 세월 처참하게 버려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손 목사님은 원수를 사랑했는가? 그는 하나님을 사랑했지 원수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원수를 사랑하는 것만을 지상 목표로 삼았다면 아들을 죽인 공산 사상을 품어 주고 감싸 주며 점령 기간에 그들을 환영했을 것입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위해 살았고 그 분을 위해 살다 보니 이런 저런 행동이 나왔고 그 행동 중에 몇 가지 행동이 세상에게 좋아 보였을 뿐입니다.


3) 말씀을 전한 생활

성경 말씀 하나면 인간에게는 전부의 전부이므로 그는 평생 말씀을 전했습니다. 세상 상식이나 소식이나 철학이나 인간의 경험이나 사상을 전하지 않았고 오직 성경 진리만 전했습니다. 말씀이 복이며 구원이며 영생이므로 말씀만 읽었고 묵상했고 실행했고 자기가 산 그대로 전했습니다. 신학자의 학설을 전달하는 강의가 아니었고 자기 소신을 전하는 연설이 아니었고 오직 말씀만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을 기록하시고 그 말씀 속에 계신 성령이 전하는 손 목사님과 듣는 교인들을 붙들고 인간의 지식과 체험과 수준을 넘어서는 은혜를 쏟아 부었습니다. 말씀을 지키기 위해 생사를 넘어 섰고 하나님 중심 하나밖에 없는 종이 그 말씀을 그대로 전하기 때문에 그의 설교에는 하나님의 감화와 감동의 영감 역사로 충만했습니다. 이 면이 남 달랐기 때문에 그의 설교는 그 자신보다 더 많은 교인을 앉혀 놓고 설교하는 다른 설교자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4) 목회를 했던 생활

그는 목회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긴 사람에게 말씀을 가르쳤고 그 말씀대로 지켜 살게 하였고 그 모든 생활은 오로지 하나님 중심만으로 나가게 했습니다. 그는 목사 안수라는 유리한 자격증도, 대우와 전망이 좋은 교회도, 그리고 교계의 지도자로 나갈 수 있는 교단 정치에도 철저히 자신을 멀리 했습니다. 오로지 말씀이 필요한 교인들을 찾아 그들을 신앙으로 기르는 목회만이 그의 전부였습니다.




2. 그의 신앙 행위들

첫째는 말씀대로 살고, 둘째는 하나님 중심이었고, 세째는 말씀만 전했으며, 네째는 교인을 기르는 일에만 전념했으니, 그 외의 다른 것은 행여나 섞일까 봐 극구 두려워 했고 피했고 막았고 대항을 했습니다. 인민 해방군을 환영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해방 된 조국의 국기 배례도 거부하고 다녔습니다. 신사 참배를 거부하여 당한 고초가 많았으나 그는 독립 운동을 지원하거나 자금을 마련하거나 배후로 활동한 적이 없습니다.

그가 살았던 생전에 그가 말씀을 지켜 살려면, 일제가 2 계명을 어기고 신사 참배를 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죽음으로 거부해야 했습니다. 오늘 단군 신사나 평양의 김일성 동상에게 절하라고 한다면 원수를 사랑하거나 이웃 종교를 사랑하는 행동이 나오지 않고 철천지 원수를 대하듯 맞서 목숨을 걸고 대항할 분입니다. 손 목사님의 모든 신앙 생애는 다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바뀌면서 손 목사님의 언행에 일부만 떼다가 불교가 불도인을 만드는데도 써 먹고 공산 주의자들이 의식화 교육하는 데도 써 먹고 제각각 모두들 활용을 하려 하는데 이 것은 상표 도용이며 오용 남용입니다. 손 목사님은 세상 사람이 볼 때 아는 성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말씀대로만 산 골수 교인입니다.




3. 오늘 그의 신앙은 어디 있는가?

전남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1번지가 애양원이며 그 경내에 손 목사님의 묘소와 유품과 기념관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함안의 생가 복원이 현안이라고 합니다. 물론 국고 400 억, 700 억이라는 말이 나오는 기념 사업도 잘 추진 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업과 이런 주소지에 손 목사님의 신앙도 담겨 있는가, 스며 있는가, 전해 지고 있는가?

하나님 중심의 신앙가였으므로 세상이 손 목사님을 기린다고 하면 펄쩍 뛰고 반대했을 분입니다. 손 목사님은 말씀대로 살다 보면 국가와 맞서야 할 때도 있고 시정을 거부해야 할 때도 있는데 그들의 돈을 받아 사용하게 되면 그 다음에 그들의 부탁이 올 때에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신앙을 지키려면 돈을 돌려 줘야 옳고 돈을 받았으면 받은 대가로 뭔가 나도 주는 것이 있어야 하니, 세상과 신앙이란 애당초 물물 교환이나 품앗이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관계입니다.

오늘의 손양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오늘 말씀대로 살기 위해 정말 직장도 결혼도 부모도 자녀 교육도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주일에 시험을 치지 않기 위해 아직도 교단적으로 고초를 받는 곳이 있는가? 바로 그 교단이 손양원의 신앙이 살아 있는 곳입니다. 모든 종류의 국가 고시, 중요 시험들, 교사 시험, 자격 시험이 과거 40여 년 이상 전부 주일이었고 최근에는 조금 달라 졌으나 여전히 주일 시험이 대세입니다. 교단적으로 교회적으로 세상 어떤 출세와 취직과 진로에 불편이 있다 해도 이 모든 시험을 아낌 없이 포기하고 나가는 교파가 있는가? 교회가 있는가?

이렇게 따지다 보면 부처 앞에 삼겹살 굽고 염불 하는 중이 있다면 그런 중은 중이 아니듯이 손양원 기념 사업을 하면서 주일 지키기를 포기하고 국기 배례가 뭔지를 잊어 버리고 예사로 하고 술 담배를 왜 금하는지도 모르고 있다면 이들이 말하고 추진하는 사업이란 세상의 그 허다한 사업들이 돈과 명예와 다른 이해 관계가 얽혀 하는 것이듯이 그 사업도 역시 마찬 가지일 것입니다.


오늘 정치를 비롯하여 세상 어떤 것이라도 다 단절하고 교회를 순수하게 교회로만 운영하고 있는 교단은 이 홈이 알기로 공회뿐입니다. 오늘 주일을 제대로 지키며 교단의 교인 전체가 그 흐름을 상식적으로 유지하는 곳은 공회뿐입니다. 설교 시간에 오직 성경 말씀만 전하지 그 외의 철학 신학 학설 별별 내용을 다 제거하는 곳은 공회뿐입니다.

물론 공회 내에서도 백 목사님 사후에는 급격하게 이런 현상이 일반화 되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 타 교단 중에서도 철저한 보수측 교단들은 여전히 이런 문제를 공회처럼 유지하려 하는 곳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가장 대표적으로 외부에 표시가 난 곳은 공회입니다. 있다면 공회 주변의 공회적 교단들이므로 이 홈에서는 약간 넓은 의미요 실질적 의미로 공회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손양원 기념 사업회에 왜 불신자가 자리에 앉습니까? 왜 세상 나라의 기관장들이 축사를 합니까? 그 사업회에 불신 사회의 공금이 들어 오게 되면 그 돈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따라 세상의 종교와 정치와 도덕과 세상의 온갖 것이 줄줄이 스며 들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것을 반대한 것이 손양원이고 이런 것이 좋다고 설쳤던 이들이 신사 참배를 앞장 서서 했던 이들입니다. 그리고 해방 후에는 신사 참배를 거부했던 고신이나 그 반대 쪽의 총회파나 나중에 갈라 지게 되는 통합측이 모두들 세상 나라 돈을 얼마나 끌어 대느냐에 교세 경쟁을 벌였고 이로 인해 고신이 교육부라는 세상 나라에게 신학교 운영권과 복음 운동을 위해 설립한 병원의 운영권을 다 내줬으니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우뚝 선 표본이 되었습니다. 고신이 그 정도면 합동이나 통합은 수에 칠 가치조차 없습니다.

오늘 이런 일에 초연하여 마치 손양원 목사님이 계셨다면 그가 처신하고 그가 걸어 갔을 길을 걸어 가는 곳이 어디인가? 바로 총공회뿐입니다. 석원태 목사님이나 계신 측이나 순장로교와 같은 몇몇 소수 교단들이 이런 면에서는 비교적 한국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려 애쓰는 것은 잘 알고 있으나 어떤 면은 그렇지만 어떤 면에서는 너무 반대의 행동을 보이고 있어 아찔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적어도 노선적으로 본다면, 손양원의 원래 신앙 취지와 본질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 유지하고 지키고 오히려 발전 시켜 나간 곳이 있다면 바로 이 노선입니다.



여기까지는 추상적인 이야기가 많습니다. 다음 이야기부터는 손양원의 순교 이후 그의 걸음을 걸었던 정양순 사모님의 생애를 통해,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전기가 손 목사님 순교 장면에서 중단했던 이야기를 이어 보겠습니다. 이야기는 전남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1번지 애양원의 대문 밖 2칸 짜리 사택에서 시작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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