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애양원이 개척한 교회의 초대 목회자
"
0
2009.11.21 00:00

일시 : 09.9.7.
이름 : 손활인 목사님의 사모님
관계 : 애양원에서 개척한 성암교회의 1대 목회자
손 목사님의 신앙을 이어 가겠다고 개척한 그 사모님의 개척를 막아 나서기 위해 애양원교회가 마을에 개척한 교회가 성암교회입니다. 그 성암교회에 초대 목회자로 초빙을 받은 분은 애양원에서 최선의 선택으로 모신 분입니다. 그런데 애양원이 개척한 이 교회를 1 년 근무하는 도중에 사모님의 노력으로 소속을 고신으로 바꾸게 됩니다.
1. 신상
손활인, 1922년생이며 28년 전 돌아 가셨고 사모님은 1928년생
현재 광양제철이 있는 중동 마을 출신이며 둘째 아들이 부산삼일교회 손성은 목사님
2. 학업
초등학교 졸업 후 14세 정도 일본 유학, 부친이 왜정 말기 시국 상황에서 모든 소망을 포기
학업열을 가진 손활인은 스스로 살 길을 찾기 위해 부산에서 배를 타고 도일, 일본 고학
3. 첫 신앙
일본의 약방에서 배달 종사 중 구세군 선교사에게 전도 받고, 그가 목회자로 양육할 계획
미국 유학 기회도 있었으나 1944년 23세에 결혼 출산. 이후 원폭 피해 가운데 생존 귀환
해방 후 광양으로 나와서 아내는 광양 시댁살이를 하고 순천 매산고등성경학교에서 공부
4. 성경 학교
1946년 25세에 순천의 매산성경학교 1회 입학 후 3년 과정 중에 학구 교회에 순회 경험
성경학교 시기 반란사건 발생하고 옹기 가마실에 숨었다가 쌓여 있던 시체 속에서 생존
5. 군내리교회
현재 돌산읍 제일교회라고 하는 군내리교회를 개척했고 전쟁이 나자 가족은 숨게 되고
반란 때 경험 때문에 즉각 입대 후 거제도 20일 훈련 받고 전투에 투입 되었다가 부상
망미동의 동래통합병원에서 전상으로 귀환했고, 사모님은 전쟁 기간 중에 인민군 후퇴시
교인 1 명이 미평에서 손 목사님과 함께 처형 되어 같은 자리에서 교인 시체를 회수함
6. 금천교회
전후 여수의 돌산 금천교회를 개척했고 먹을 것이 없어 사모님이 바다에서 일하여 팔러 다님
7. 신풍 - 성암교회
- 부임 과정
손양원 목사님 후임인 애양원 서현식 목사님이 광양 출신으로 손 조사님과 동향이었고
서 목사님의 사모님이 이북 출신으로 순천의 성경학교 교장으로 계셨던 장로님이었는데
학교 다닐 때 성적과 실력과 신앙이 좋아서 눈여겨 보았다가 애양원교회의 개척에 초빙
성경학교 교장의 권세는 당시 굉장했고 배경이 좋아서 손 조사님의 신풍 성암교회 초빙
- 신풍교회
성암교회에 부임해서 알게 되었는데 정양순 사모님은 성암교회와 별도 예배 문제로 분쟁 중
애양원에서 개척한 성암교회는 고려파 신앙과 다르다 해서 사모님은 가정에서 예배를 드림
따로 예배를 드리는 신풍교회 대장은 사모님이고 서귀덕 집사님에게 소식을 많이 들었는데
서귀덕 집사님은 애양원의 총무과장이며 성암교회 제일 중심인 차종석 장로님 부인이었으며
부자고 유지며 교회 내에서도 목회자를 극진히 모시기 때문에 조사님 사모님과도 가까운데
손 조사님은 처음 부임해 왔을 때는 신앙노선에 대한 개념은 없었고 양 쪽을 다 다독거림.
이미 고등 공부는 했으므로 신학을 해야 했고 서울로 가서 한 학기 공부까지 마친 상태에서
애양원이 속한 총회파 노선과 손 목사님 사모님이 주장하는 고신 중에 선택을 해야 했는데
교회 목회자로서는 일단 정양순 사모님을 달래려고 조사님이 따로 심방을 다니며 많은 고생
옆에서 듣는 조사님 사모님으로서는 교회 이야기에 머리가 아플 정도.
- 노선 정리
고려파 신앙 문제로 교회가 시끄럽던 중 한상동 목사님이 애양원 집회를 했고 참석한 후
조사님은 집회에서 은혜를 크게 받자 집회 후 남해 금산으로 40일 기도. 노선 확정 지움
서울의 총신에서 한 학기를 공부했는데 더 이상 갈 것이 없다 해서 고신을 선택하고 선회
처음 신풍에 갔을 때는 정양순 사모님 관계가 불편했으나 나올 때는 사모님과 좋아 지게 됨
한 번은 사모님이 전도사가 담배를 핀다고 큰 일이라며 직원들에게 알려서 문제가 되었는데
담배 농사 짓는 사람들 때문에 냄새가 난 것인데 오해한 것. 그렇게 철저하던 때
손 조사님의 사모님이 직접 정양순 사모님에게 항의를 해서 사과를 받음
정양순 사모님은 환자들이 돕기는 해도 전체적으로는 경제가 좋지 않았음
8. 쌍봉교회 (현. 여천교회)
애양원에서 제일 신뢰할 만한 실력자를 모셔다가 정양순 사모님의 개척을 막으려고 했는데
오히려 사모님 때문에 고신 소속으로 소속을 바꾸고 고신 교역자가 되어 나오게 되었으며
소속이 달라 졌고 또 고신으로 공부하기 위해 여수의 쌍봉교회 개척
9. 충무동교회
여수 충무동교회 김응도 목사님의 부목으로 갔고, 부산으로 신학 가기 위해 배가 편리한 이유.
10. 신생원교회
1958년 밀양 신생원으로 부임. 3년 근무. 이동 후에 신생원교회에 백 목사님 집회 소식 기억
신생원에서는 이미 신풍에서 애양원 환자들을 겪어 봐서 목회에 도움
11. 일동교회
창원에서 2 년 근무
12. 장천교회
순천에 장천교회(현. 팔복교회)를 개척. 교회가 지낼 만하게 되었는데 총회와 고려파 합동
대대 교회를 맡았던 조 장로님에게 일이 있어 교회를 임시 교환 시무했는데
13. 대대교회
9 개 월만에 환원이 되자 대대는 잔류를 간곡히 부탁하는데 조사님은 나는 고신이라며 환원
장천교회로 가려 했으나, 장천의 목사님이 순천성경학교 학생 70 명을 동원하여 막고 나섬
14. 남부교회
갈 곳 없어 무임으로 2년 지낸 후 광양남부교회 부임
15. 중부교회
진주로 갔고 호남 사람이라고 어려움을 겪었으며 사직동교회 정판술 목사님과 인연. 1964-5년 경.
16. 반송교회
부산
* 사모님의 회상은 묘사가 세밀했고 평생 연락이 없었던 분들의 회상과 일치하였으며
다른 자료와도 일치하고 특히 신풍 체류가 1년이어서 신풍교회 개척 시점 확인에 도움
* 손활인 목사님의 고신 11회 졸업생 명단과 함께 공부했던 분들
- 고신 7회
서완선 - 백 목사님 제명 시 노회 서기
이병규 - 계신측 총회장, 창광교회, 공회 노선 경력
- 고신 8회
장영실 - 진해 한일고교 교장, 노년에 서부교회를 자주 찾았던 분
정봉조 - 백 목사님 초등학교 동창, 합동측 총무 경력 10년
홍근섭 - 백 목사님이 개척한 내수동교회 담임
- 고신 9회
최훈 - 김창인 이병규 목사님과 3인 동지, 고신의 반고소 중심의 경기노회 목회자
추국원 - 추순덕 집사님 삼촌, 합동측 최대 실세인 경북노회의 60년대 정치 중심자
박복달 - 고신의 최고 여걸, 부흥사
- 고신 10회
박희천 - 총신대 성경교수와 내수동교회 담임으로 평생 지냈고 신학과 신앙의 유명인
- 고신 11회 : 1957.3.15.
박창환 한삼석 장희근 김원희 김주오 김재병
박장실 박현진 손활인 이재근 곽순주 우태숙 서옥련
김창인 - 부산서부교회 서울충현교회 담임, 합동측 최대 원로
추교경 - 추순덕 집사님 부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