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애양원이 개척한 교회의 2대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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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6. 애양원이 개척한 교회의 2대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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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09.10.5.
이름 : 박창호 차금아 목사님 부부
관계 : 애양원에서 개척한 성암교회의 2대 목회자



손 목사님의 신앙을 이어 가겠다고 개척한 그 사모님의 개척를 막아 나서기 위해 애양원교회가 마을에 개척한 교회가 성암교회입니다. 그 성암교회에 초대 목회자로 초빙을 받은 분이 1953-1954년 기간 동안 1 년을 목회하면서 오히려 손 목사님 사모님에 의하여 고신 신앙으로 돌아 서자 이 번에는 소속이 흔들리지 않을 분을 찾아 모신 분이 2대 목회자 박창호 당시 조사님이었습니다. 애양원으로서는 초대 목회자가 고신으로 가는 바람에 수습과 향후 안정 발전이 필요하여 실력 있고 확실한 분을 모셨는데 이 분은 손양원 목사님의 사모님이 개척한 교회의 예배를 가정 예배에서 정식 개척 예배로 출발하도록 예배를 인도하게 됩니다. 박창호 조사님도 속으로는 고신 신앙이었고 이를 확인한 애양원은 서둘러 보내게 됩니다. 1954-1955년 기간이었습니다.







* 근황
고신대(칼빈학원) 2회 졸업생 김의환 한철수 차영배 목사님들과 2009년 11월 부부 동반 모임.


1. 신상

- 박창호 목사님
1925년 12월 7일생, 광양시 골약면 중동의 기로 동네 출신으로 초대 목회자 손활인과 동향
고향에서 공부를 하고 싶어 일본까지는 가지 못하고 함경도 아오지로 가서 일하며 공부
종전의 순간 소련군들이 밀고 들어 올 때 걸어서 아오지에서 해령으로 오다가 중간에 해방

- 차금아 사모님
고흥군 금산면이 고향이며 7남매에 오빠 밑으로 딸 6명의 막내이고 3째가 애양원 직원 부부
언니 부부의 애양원 취직은 일본인 원장이 있던 일제 말기였고 물품 수송의 차량 조수 직원



2. 신앙 출발

- 박창호
애양원에서 개척한 교회의 초대 목회자 손활인이 고향 친구인데 친구가 일본에서 돌아 왔고
일본에서 원폭에 부인 죽고 귀향할 때 책을 많이 가져 왔는데 그에게서 책 한 권을 빌려 봄
'그리스도니 도라와래시 새이마스(그리스도에게 붙잡힌 청솔)' - 세이마스(靑率) 목사님 글
이 책을 읽고 믿게 되었으며 여전히 확신과 열심은 아니었으나 믿게 된 동기는 이 때 확실
당시 동네에서 손활인 박창호와 3인이 믿었으나 그 1 인은 후에 좌익이 되어 전쟁 때 떠남
동네에 교회가 없어 30리를 걸어 광양읍교회 선재련 목사님께 참석하고 오후 예배 후 귀가

- 차금아
불신 상태에서 언니 부부가 애양원 직원으로 신풍에 가자 자주 언니 집을 드나 들며 신앙
언니 집이 애양원의 사택 바로 옆에 있고 큰 울타리로는 하나가 되어 신앙 출발에 도움
모친이 보살이고 아버지는 산을 몇 개 넘는 절의 야단에 부처 방석을 겹겹이 두는 정도
친정에서는 신앙 자유가 없어 신풍 언니 집에 도와 주러 간다고 핑계대고 신풍에서 신앙



3. 손양원 고난사 : 차금아 사모님

- 손양원
순천성경학교에 경건회 인도를 오셨는데 그 때 기도를 했고 그 기도에는 능력이 있어 대단
소록도 6천 명을 모아 놓고 가운데 서서 설교할 때 마이크가 없어도 쩌렁쩌렁한 소리 유명
앞 사람이나 제일 뒤 사람들이 꼭 같이 들렸다는 말이 있던 시기

- 정양순 사모님
해방 후에 손 목사님을 뵙게 되었고 목사님은 신앙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매사 철저
사모님은 신앙 하나는 정말 철두철미했으나 일반 생활 면에는 매사 민첩하지 못했던 편
해방 후 사모님에게 연락이 갔는데 남해에서 산 기도 20일을 작정했다고 채우고 내려 온 분
서귀덕 집사님이 목회자를 참 잘 받들었는데 사모님을 평가하며 신앙만은 틀림 없다 한 정도
서귀덕 집사님은 정말 보통 여자가 아니었고 손 목사님 사후 애양원에서 기와집 하나 건립

- 아들들 장례식
동인이가 학생 회장을 했고 훌륭했으나 동생이 형님보다 더 나았음. 장례식만 볼 수 있었음
장례를 치를 때 형과 동생의 형상 2 개를 만들어 줄을 묶고 1,100명 온 교인들이 다 따름
사모님도 울고 나도 옆에서 함께 울었고
손 목사님 돌아 가신 뒤 장로님 한 분이 설교하면서 그 때 모두가 '고생과 수고 다 지나고
광명한 천국에' 그 찬송을 부르는데 장로님이 찬송을 부르려고 해도 울음이 나와서 도저히
못 부르고 있었는데 손 목사님은 무덤 갈 때까지 계속 부르고, 찬송 소리가 나지 않아서
옆에서 딱해서 함께 부르려 하면 또 통곡이 나서 부르지를 못했다는 말을 하면서 예배 인도
하는 장로님도 울고 교인들도 다 울고,

- 손 목사님
손 목사님 돌아 가셨다는 말을 듣고 환자들이 당가를 만들어 모시러 갔다 와서 땅에 10일
묻어 놓고 기다리고 있다가 장례, 고려 신학교 학생들과 부산 목사님들이 다 와야 하니까,

- 손동장
아들은 동장이가 하나 남았는데 목사님 돌아 가신 다음 날 아침에 막내 동길을 낳았으며



4. 환란

- 반란 사건
총 소리가 나고 다급하게 되자 성경학교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도망을 갔는데 우리들은
문간에 있었는데 우리 머리 위로 총탄이 날고 있었으며 인민재판하던 경찰서 끌려 갔었고
반란군이 우리를 모아 두고 총에 꽂는 칼의 옆 부분이 무딘데 그것으로 옆 사람을 때렸고
나는 신앙이 없었으나 김경석 전도사는 1회고 나는 3회인데 그 분이 옥에 갇혔을 때 아침
총소리가 나고 감옥에 연기가 가득 차고 난리가 난 상태에서 3학년이던 그는 믿음이 좋아
내 손을 잡고 우리는 하늘 나라 가니까 걱정 마라 위로. 그 분은 믿음이 좋았는데, 그 날
아침의 난리는 알고 보니까 진압군의 진격이었으며 곧 해방.

- 전쟁
성경 학교 2학 년 때로 기억, 학생 중에 손두환이 황해도 출신인데 6.25 전쟁 때 눈물 기도



5. 신풍 시절

- 성암교회
서현식 목사님이 동청을 빌려서 교회를 좀 하다가 손 목사님 사후에 애양원 후임이 되었고
성암교회 초대 목회자 손활인 전도사님이 고신 신앙이 되어 교회를 떠나니까 그 자리 왔고
손 조사님을 성암교회에 모시기 위해 손 조사님이 계시던 돌산 금천교회를 박창호가 맡다가
손 조사님이 성암교회를 떠나게 되자 금천교회를 거쳐 진상교회에 있던 박창호가 대안 초빙
성경학교에서 공부도 잘했고 충직했으며 무엇보다 동서 부부가 애양원 직원이어서 믿었는데
박 조사님도 이미 속으로는 고신 신앙을 생각하고 있었고 부산의 칼빈학원을 다니던 상태

- 박창호 신앙 노선
성암교회로 부임하기 전인 52년 경 여수읍교회에 김응도 목사님이 목회하실 때 사경회에서
박윤선 목사님이 노회 강사인지 인도하셨는데 목사님들이 계시록에 대하여 질문을 하자
다른 사람 같으면 모르는 질문에는 말을 빙빙 돌리는데 박 목사님은 바로 모른다고 말했고
솔직한 면을 보고 좋다고 생각. 그가 고려 신학교 교수라고 해서 고려 신학교를 지원하게
된 것이며 박윤선 목사님이 좋아서 갔지 고려파 생각은 없었다가, 순천 성경 학교에 문재구
목사님이 강사로 가르치면서 공부 시간에 학생들에게 말하기를 ‘오해 하지 말고 들어....
어.. 어.. 어.. 고려파가 잘려 나갔는데 그 것은 억울하게 잘려 나간 것이지...’ 이렇게
말이 날까 봐서 문제가 될까 봐서 조심해 가면서 말을 했는데 이 말을 듣고 ‘그렇다면
나는 고려파 갈란다.’고 하니까 목사님이 ‘오해하지 마... 어.. 어..’라고 당황한 상황

- 신풍교회 개척
정양순 사모님의 개척을 막으라고 성암교회를 세웠고 초대 교역자가 고신으로 돌아 선 후에
후임으로 수습을 위해 왔는데 박 조사님은 정양순 사모님이 정식으로 개척 예배를 드리는데
첫 예배를 인도하게 됨. 정양순 사모님, 서귀덕 총무과장 부인, 차쌍덕 직원 가족, 백동학
성암교회 사찰이 모였고 성암교회 박창호 전도사 부부가 고신측 교회의 개척 예배를 인도
그 자리에서 사모님은 이제 나는 성암교회에서 고신 개척을 주동했다고 책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서 책벌을 받겠다고 당당하게 말씀

- 보이열 선교사
애양원의 원장으로 애양원교회와 애양원이 개척한 성암교회에 모든 것을 책임 진 선교사는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차종석 과장님과 김윤선 직원을 불러 당장 직장에서 파면을 시킨다며
가족들을 되 돌리라고 했고 서귀덕 차쌍덕 두 분은 곧 바로 성암교회로 되 돌아 가게 됨

- 백동학 집사님
원래 경상도 사람인데 해방 후에 잘 믿겠다고 해서 손 목사님이 계신 신풍으로 온 사람이며
사람이 참 좋았으며 애양원 앞에 와서 사모님 사택에 사환처럼 있었고 사모님이 중매 결혼
순천 여자와 결혼시킨 다음 살림을 내 주고 그 집을 구암리 넘어 가는 꼭대기에 집을 줬고
그 집에서 신풍교회 개척이 시작 된 것. 그 예배 시작을 성암교회 박 조사님이 인도한 것.

- 서귀덕 집사님
교역자 섬김이 특별했고 신앙도 좋고 그렇게 강한 분이었으며 남자 몇을 이기는 사람인데
마을 유지며 애양원 과장이며 성암교회 제일의 중진 교인인 남편 때문에 마음은 신풍교회
몸은 늘 성암교회 계신 분




6. 신학

- 순천고등성경학교
손활인은 순천의 고등성경학교 1회이고 박창호는 3회이며 49년 입학하여 51년 졸업

- 대한신학교
고등성경학교 졸업 후에는 부산의 칼빈학원에 합격했는데 입학까지 1개 학기가 비기 때문에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 와 있던 대한 신학교에서 1953년 1 개 학기를 우선 공부

- 칼빈학원
1953년 10월에 입학하고 대학 4 년 과정을 정식으로 다 밟아서 1957년 3월 2회로 졸업했고
고신이 인가를 받기 전에 신학교가 대학원 과정이었으므로 대학 과정을 칼빈 학원이었는데
당시 칼빈 4년 공부할 처지가 아니었다. 기도하면서 ‘대학 과정 하고 나서 목회하는 것이
나으면 대학 과정 공부하게 하고, 아니면 별과만 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칼빈학원
갈 길이 열렸다. 김응도 목사님이 여수 충무동교회에 있었는데 그 분이 잘 아는 유현철장로
님이 부산에서 버스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그 분이 김 목사님과 약속을 했는지 몰라도 그 분
이 1학기 학비를 도와 주기로 해서 그리로 간 것.

- 고려신학교
1959년 4월에 고려신학교 본과 1학년에 합격하여 1학기를 공부하고
1961년 9월에 박윤선 목사님이 서울에서 시작한 개혁신학교에 2학기 편입으로

- 개혁신학교
김진홍 목사님이 박윤선과 동향에 친구고 평양신학교를 방지일과 3인이 함께 공부한 친구
박윤선 목사님과 함께 개혁신학교 강의 했고 2 명만 교수였고 김 목사님이 오라 해서 간 것
그 때가 고려신학교 본과 1학기나 1학년을 하고 개혁으로 갔다.
교회는 고려파 영동교회에 있었고 노회는 서울노회였다. 그 사이에 승동과 고신이 합동했고
고신이 총회와 합동을 하고 보니까 신앙고백은 같은데 행함이 맞지 않아서 한상동 목사님이
내가 살아 있을 때 환원해야겠다 해서 환원을 했는데, 나도 환원을 잘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윤봉기 목사님이 노회장이고 나는 소속이 고려파였고 목회지는 영동중앙교회였지만
신학교는 개혁신학교를 다니고 있어 그 때에 2주간에 한번씩 주일 예배를 인도하러 오는데
박윤선 목사님 쪽으로 다닌다고 3 개월 보조가 끊어 졌고 그러ㄴ다 보니 이웃에 사모님이
돈을 꾸러 다니고 했는데 그러다 조사님이 오면 해결해 주고 했는데, 그런 와중에 3개월이나
아무 것도 주지 않고 있었는데, 꿈에 이승만 박사가 나타나서 좋은 일이 있을란가 했는데
그 날 3개월 밀린 것이 왔고
개혁신학교를 하던 박윤선 목사님이 합동측 신학교로 들어 가는 바람에 우리도 합동측
사당동에 들어 가서 졸업은 그 곳에서 했고, 소속은 고려파고, 강도사 시취도 고려파에서
그런데 석원태 이런 사람들이 고려파 어른들 눈에 난 사람, 야당 노릇 한 사람, 이런 사람
들을 총회에서 일부러 떨어뜨리려 했는데, 당시 합동했다가 환원을 했기 때문에 그 해만
합동 졸업한 사람도 고신에서 강도사 인허 자격을 줬는데 그분들 때문에 다 떨어뜨려서
나도 떨어졌는데 2회째 합격, 목사고시는 서울노회가 하고 고려파 윤봉기 중앙교회에서 안수
영동교회는 오래 되었고 장로도 세웠고 강도사가 되었으니 이제 가야하겠는데 갈 곳이 없었다
그때 김진홍 목사님이 성문학인가 성경 주로 가르쳤던 관동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었는데
감리교회에서 갈라져 나온 장로교가 있었는데 신앙은 감리교적이고, 그 곳에 가서 목회한 후
서울의 성동교회 거쳐 합동에 들어 갔고 2년 후 서울의 동산중앙교회를 개척하고 은퇴
그 시기는 영동 중앙 교회 전도사로 근무하면서 공부했으며, 개혁 신학교에서 독립파
백영희 목사님의 동생들과 함께 공부했으며, 공부한 장소는 홍근섭 목사님의 내수동교회

- 안수
박윤선 목사님이 사당동 총신신학교로 들어 갈 때 함께 들어 가서 사당동 총신대 졸업
총신대를 졸업할 때는 환원이 있어 과도기였으므로 총신대 졸업생도 고신에서 강도사 허용

- 성적
서철원 목사님이 교수였는데 미국에서 공부하다 나왔을 때 약간 정신 문제가 보인 정도
학적으로는 대단했고, 나는 영어를 못해서 백지를 냈으나 성경 점수가 좋아서 합격.
고려 성경학교에서 성경 점수가 98점이어서 교수가 인정한 정도.



7. 목회

- 금천교회
첫 목회지. 박창호 전도사님은 차종석 장로님 교회의 김윤선이 동서였기 때문에 성암교회
초대 목회자로 부임하게 추진을 하고 있었는데 애양원의 서현식 목사님이 손활인 전도사님과
가깝고 선호하여 손 조사님이 계시던 돌산 금천교회에서 성암교회로 부르기 위해 박창호
전도사님을 손 조사님이 계시던 돌산의 금천교회로 파송.
손 목사님이 개척자로 신풍에 부임하면서 내가 금천교회 부임했고, 교인이 몇 되지 않았는
데다 흉년이 들어 성미 좀 들어오면 보리쌀을 맷돌에 갈아서 소금을 타서 풀처럼 끓인 다음에
설탕이 없으니까 사카린을 조금 넣어 마시고 목회. 큰 딸은 그 곳에서 출산. 1년 근무 당시
흉년. 돌산에 성미는 보리로 들어오고. 푸성귀조차 없던 때, 과일과 채소도 없던 때. 있으면
먹고 없애던 때. 보리를 꽁보리로만 밥을 해 먹으면 반찬이 없어 목에 넘어가지 않는데,
그 보리를 끓여서 풀대죽을 만들어 먹으면 넘어 가니까 그렇게 한 것. 그런데 성미가 모자라니까 그 것조차 없어. 성미가 떨어져서 그것도 없으니까, 교인들 못자리에 못줄도 잡아주고
그랬는데, 보리도 못 먹을 정도가 되어 차남진 순천 목사님께 전화를 하니까
그러면 진목정교회로 가라 해서 갔는데 가니까 꼭 같아.

- 진목정교회
차남진 목사님 소개로 진산중앙교회 정 목사님이 당회장인데 그리로 가서 진목정(진막정)
교회와 망정교회 2 개 교회를 맡음. 오전에 진목정교회를 보고 오후에 망정교회로 인도.
진목정은 큰 부자집 며느리가 대학생 남편이 죽고 혼자 되어 그를 1년에 한번 순천성경학교
에서 사경회가 있는데 그곳에 데려 간 뒤 은혜 받고, 그 분이 다른 교인들은 다 은혜를
크게 받는데 자기만 맹송. 혼자 뭘 가져 가고 싶다고 기도를 했는데 꿈에 하얀 할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려 와서 자기 손목에 금촛대를 새겼는데 아무리 파내려 해도 안 되고 깼는데,
다음 날 순천에서 진목정까지 걸어 와서 자기 아래채를 뜯어 예배당하고 웟채는 반을 자기
살고 반은 우리 사택으로 하고 개척한 곳이 진목정. 4개월 근무, 흉년이 계속 된 것.
광양이나 돌산이나 같은 곳. 배가 고파서 죽을 줄 알았음.

- 성암교회

- 거제유천교회
칼빈신학교를 하면서 거제도에서 유천교회와 평지동교회를 함께 맡아 3 년을 있었고
칼빈신학교 졸업할 때에 유천교회 권사님이 함께 동행,

- 거제칠천도교회
1 년 근무. 교회가 부흥 되니까 붙들었는데 고려신학교 공부를 해야 하니까 섬에서는 학교
다닐 때 배멀미로 주일마다 고생. 그래서 육지로 나옴. 신학교 다니면서 사모님은 생선장수
빵장수 안해 본 것이 없음

- 영동중앙교회
신학교 하려고 배를 탈 수 없어 육지의 영동교회로 갔고, 대구 서문로교회에서 개척을 해서
집 짓고 가마니 깔아 놓고 개인이 했다면서 종만 놔 뒀고, 종은 예배당 마당 바닥에 그냥
뒀고, 교인은 여자 2명, 그래서 부임 후 바로 대구 서문로교회를 가서 송병화장로님이라고
약국하는 장로님이 개척도 많이 하고, 박복달 전도사님 등을 보조를 많이 했던 분에게
가서 얻고 해서 종각을 해서 세우고 마루도 다시 하고, 사택도 짚으로 임시 조처한 정도,
부임하면서 바로 고신에서 연보를 얻어 마루를 깔고 사택 방을 넣음. 장로님을 세웠고
영동에서 환원이 있었고, 10년을 있었고 윤봉기 서울에서 보조금 왔고.

- 강릉교회
김진홍 목사님이 관동 대학으로 교수를 하면서 그 쪽에 교회를 소개, 6년 근무. 큰 교회.
- 성동교회
종로의 큰교회, 부목, 원목이 신학교 동기 동창, 1학년 유학 간다고 대신 부탁해서 있었고
- 동산중앙교회
22년간 있어서 퇴임하고

- 백영희
백 목사님 교회를 간 기억은 나지 않는데, 내게 있는 소요리문답 책을 그 분이 보더니 참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한 적이 있었고, 김현봉 목사님은 설교 가서 들은 적이 있고
김 목사님은 개혁신학교에서 야고보서 강의를 한 적이 있고, 독립파로 굳어 지지 않았을 때

백 목사님 설교는 빨리 하는 것 같지 않고 꼬박꼬박 했던 기억.
교리적으로 그분이 중생된 사람은 범죄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했는데, 중생한 자는 범죄하지
않는다 하니까 박윤선 목사님이 해석을 하면서 그렇지 않다고 했고, 우리 영이 거듭났으나
전부는 아니고 부패성이 남아 있다 그 부패성은 범죄할 수 있다, 고려파에서 나왔을 때였는지
사람은 육신과 영혼이 있는데 중생자는 범죄하지 않으면 영혼에게는 책임이 없고 육신에
책임이 있다고 이론적으로 가기 쉽고 나도 그렇게 생각이 되었고 박 목사님도 그렇게 말했고
육신의 죄는 영이 책임을 져야 하는데 요일 말씀 가지고 백 목사님이 어느 성구인지 몰라도
중생 된 자는 범죄하지 않는다 해서 논란이 된 것은 알고 있었고, 고려파에서 나와 독립파 한
것은 기억 나지 않고, 백 목사님의 동생들은 개혁신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같이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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