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이 길인지?

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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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무엇이 이 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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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선과 개별 신앙

신앙의 노선은 바꿀 수 없습니다. 개별 신앙은 각자의 자기 현실에 따라 달라 질 수 있습니다. 노선은 이 노선 전체 교인이 공동으로 가야 할 객관적인 것이고 개별 신앙은 각자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목사님 생전에 늘 마음 속에 두고 있었던 저만의 숙제 하나는 노선과 개별 신앙을 구별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생전에는 질문하면 되고 지도하는 대로 따라만 가면 안심이나 목사님 사후가 되어 과거와 다른 현실이나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판단해야 하겠는가? 노선을 두고 생각해 볼 때 모르는 것은 너무 많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너무 적어서 고통이었습니다.

그 분의 모든 조처를 보며 설교를 들을 때 항상 노선 문제를 마음에 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모르는 것은 계속 질문을 드렸습니다. 어느 정도 개념을 잡았을 때 목사님은 가셨습니다. 일부는 알겠고 일부는 몰랐습니다. 잘 모르는 것은 서둘러 결정하지 않고 숙제로 두며 지켜 보았습니다. 그리고 확신이 설 때까지의 모든 조처는 항상 임시 조처이며 숙제를 풀어 보는 과정이라는 자세를 가졌습니다.



2. 목사님 사후의 집회

생전의 집회 설교가 10 년치였습니다. 집회 자료 전체를 한 번 돌려 듣는데 10 년이 걸립니다. 그런데 10 년이면 10 년 전에 들은 내용은 다 잊게 되거나 다시 듣는다 해도 아주 새롭습니다. 그렇다면 사실상 백 목사님을 대신 할 정도의 집회 강사가 나올 때까지는 편안하게 순서를 따라 재독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항상 들어도 새로운데 10 년에 한 번씩 돌아 오는 정도이니 재림 때까지 집회를 계속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이 다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는 줄을 알게 되었는데 그런 인물을 주신다면 우리가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런 인물을 주시지 않으면 이미 가진 설교 자료를 복습해도 현존 어느 인물의 어느 설교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하게 은혜를 입게 되고 모든 필요한 양식을 얻게 되니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21 년째 집회를 해 오면서 백 목사님 생전의 집회 설교를 재독하는 문제를 두고는 더듬을 것이 없었는데 문제는 어느 말씀을 어떤 방법으로 재독하느냐는 것을 두고는 아직도 확정을 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도를 해 보지 않고 어린 신앙을 길러 보지 않은 분들은 서슴치 않고 과거 꼭 그대로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주장하는 분치고 그들이 현실에서 어려움을 닥치게 될 때는 과거 그대로 하는 수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습니다.


제가 집회의 재독 대상과 방법론으로 고민을 하는 것이 여러 가지입니다.

강사가 직접 설교를 할 때는 하루 3 회 이상의 설교는 건강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당시 설교를 재독하는 입장이며 강사의 피곤은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과거에는 강사가 있고 이제는 강사가 없는 상황이 새로 생겼는데 이런 경우의 집회 노선이란 1 일 3 회가 과거 그대로인가 아니면 강사 문제가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 과거 1 일 3 회가 왜 생겨 졌는지를 고려하여 그렇게 결정하게 된 배경과 그 내용을 살리는 것이 집회 노선을 그대로 지키는 것인가?

이 문제는 같은 이유로 몇 박 몇 일의 집회로 진행해야 하는지 또 하루 중 예배 시간의 횟수와 시각 결정에도 같은 고민을 하게 합니다. 삼봉산과 도평집회의 월요일 저녁 7시 시작이란 당시의 교통상황 때문에 주일 지난 후 전국에서 올 수 있는 최종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자가용 시대요 집회 장소까지 거의 고속도로가 연결 되어 오후 2시면 과거 7시보다 더 빠르고 편리한 시기입니다. 이런 교통 상황에서도 저녁 7시라야 하는가, 이제는 오후 2-3시로 당겨야 과거 첫 시간이 포함했던 의미를 담을 수 있는가?


또 한 가지 문제는 재독하는 말씀의 범위입니다. 무조건 당시 집회 설교의 첫 시간 첫 말씀부터 끝 시간 끝 말씀까지를 들어야 하는가? 아니면 한 집회에서 어느 한 주제를 집중해서 들으며 그 내용을 여러 차례 중복해서 듣는 것은 어떠하겠는가?

이 문제를 두고 저는 과거 집회 설교를 순서에 따라 전량 무조건 재독하던 지금까지 방법을 바꾸어 집회 전체 내용 중에서 매 집회 당시 현실에 필요한 말씀을 중심으로 일부 내용은 재독에서 제외하고 일부 내용은 한 차례만 아니라 여러 차례 반복해서 재독할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우선 지난 5월 집회 때 처음으로 그렇게 해 보았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사회를 보던 제가 누구보다 크게 확신을 가졌고 또 참석자 거의 전부가 크게 은혜를 받았다며 적극적으로 환영을 했습니다. 세상과 달리 이런 문제는 다수결이나 여론조사의 표시 방법으로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지 숫자는 하나의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 정말 크게 확신이 되는 것은 신앙 체험에서 나오는 내증입니다.

이렇게 일부 내용은 배제하고 일부 내용은 여러 번 반복하여 재독하게 되는 이유는
- 집회 설교가 당시 현실에 필요한 말씀의 전량인데 오늘 현실은 그대로 재현 되지 않고
- 집회 설교가 담은 내용은 너무 많고 넓고 높아 한 번에 듣고 지나 갈 말씀이 아니며
- 백 목사님의 당시 설교는 훗날의 많은 현실을 포함한 대량의 증거라는 점이 있습니다.
- 가장 주목하는 것은 그렇게 듣고도 변화가 없어 말씀을 담고 나온 교인들이 없었으니
- 이제 오늘 필요한 말씀으로 재독 범위를 좁히고 그 말씀에 집중하고 반복을 많이 하며
- 재독한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고 또 새김질할 기회도 가질 필요를 강하게 느꼈습니다.


큰 방향은 잡았으나 세부 내용은 몇 번의 집회를 거치며 방향이 잡힐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켜야 할 노선은 꼭 지켜야 하나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말은 쉬워도 매사 결정할 때마다 최종 확정에 이르기 전에 많은 면으로 살피고 있습니다.
과거 말씀의 단순 관람에 그치지 않고 오늘을 살게 하는 능력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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