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명, 술공장, 개명초교, 개명교회 - [사진] 추가 설명
부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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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4 00:00
1. 수유마을 밑 개명국민학교( 극동두뇌연구소)앞 에는 예전 백목사님이 지어시고 사셨든 가옥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자녀들에게 방한칸씩을 마련해 주시기 위하여 한사람이 눕고, 조그만 경대정도를 놓을 수 있을 만큼의 공간으로 실용적이면서도 현실감 있게 지으셨고 사방에는 출입문을 만들어 통풍이 잘 되도록 했든 것을 기억 합니다.
당시에는 보기 더물게 화장실( 변소 )도 두개로 만들었고 부엌에는 목욕탕을 만들어서 목욕을 할 수 있도록 했든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는데 보존 차원에서 개명교회에서 매입 하였다가 장남이신 백도광 장로님께서 재 매입하셔서 혹여 미혹에 들수 있는 분들의 신앙 저하를 막기 위아여 헐어 버리셔서 그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2. 옛 개명교회 내부의 바닥은 그때의 나무 바닥이 아니고 개인에게 매도 되었다가 다시 재 매입하여 수리한 모습입니다.
전면에 보이는 긴 의자가 기존의 강단뒤에 놓고 사용한 강사 목사님들이 앉았든 의자이며
백목사님을 부롯하여 우리 교단의 원로 목사님들은 한번씩은 다들 앉아 보신 의자라 생각하시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외부에 보이는 큰 전나무 안쪽 바로 옆에는 나무 기둥으로 만든 큰 종탑이 차지 하고 서 있든 자리입니다.
3. 현재의 개명교회 내부 모습에서 강단 아래의 작은 아랫 강단이 원래의 강단으로 사용하든 강단으로 옛 개명교회 사진의 전면에 보이는 긴 의자와 함께 백목사님을 비롯하여 개명교회를 거쳐가신 교역자들이 모두 사용하였든 강단으로 보존의 가치는 그 어떤 물건보다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강단 자리는 교회를 새로 신축할때 원래 출입구였는데 중간에 출입구를 현재와 바꾸는 바람에 바뀐 모습이며, 처음 지었을때에는 좌우의 사무실은 없든 지금의 교회들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현재의 출입문 쪽이 이선희 권사님께서 사시든 가옥이었는데 출입구를 바꾸게 된 계기는 1990년때쯤 전재수 목사님, 전성수 목사님의 모친이신 이선희 권사님께서 돌아 가시면서 그 집을 매입하여 헐고 대로변쪽 출입이 용이 하도록 바뀌게 된 것입니다.
새 건물은 1983년 신옥범목사님 ( 대구공회 ) 께서 교역자로 계실때에 새로 지으셨습니다.
>> "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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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유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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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미 마을입니다. 물을 넘어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수유(水,물/踰,넘다) 마을은 개명으로 들어 가는 도로의 왼 쪽에 작은 개울이 있고 그 개울 위 마을을 말합니다. 마을의 첫 집, 사진의 제일 오른 쪽이 백 목사님이 19세 12월에 결혼한 다음 20세 술공장 허가를 받아 처가 동네에서 술 사업을 시작한 곳입니다. 지붕이 보이는 곳은 본체였고 오른 쪽에 자세히 보면 90도로 꺾여 나온 바깥채가 있는데 이 곳이 술공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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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술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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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의 오른 쪽이 입구며, 푸른 지붕이 있는 쪽이 살림을 살던 본체고, 노란 벽이 보이는 오른 쪽이 본체와 90 도 꺾인 바같채인데, 이 바깥채가 술공장이었고 원래는 술공장이 컸고 몸체는 작았는데 지금은 집의 규모가 반대입니다. 술공장을 시작하던 1929년부터 신앙 출발을 하던 1936년까지 살던 집입니다. 술공장 처마 밑에는 당시 술을 만들 때 사용한 샘물이 아직까지 있습니다. 술 맛이 좋고 장사 수완이 좋아서 먼 곳까지 술 주문이 들어 왔고 큰 돈을 벌었습니다. 이 마당에서 저녁이면 동네 씨름판을 벌여 주인을 이기면 마을 사람 전부에게 공짜 술을 준다고 해 놓고 목사님은 힘 자랑을 했습니다. 돈이 많이 돌자 도둑이나 강도를 막는 지혜였습니다. 나중에는 벽을 파고 돈을 감추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1936년 신앙 출발을 하게 될 때 윤봉기 전도인에게 전도 강연을 부탁해서 믿게 된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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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현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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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집의 현재 주인은 조정원 집사님의 동생입니다. 조정원 집사님은 술공장에 심부름하고 살던 꼬마 머슴이었습니다. 지금 반석동교회 이은수 목사님의 장인입니다. 옛날 술공장 가옥과 바뀐 구조를 설명하고 계십니다. 제가 방문할 때마다 반갑게 맞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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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개명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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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때는 개명 마을 아동들이 20리 떨어 진 고제초등학교로 다녔는데 해방 후 개명 마을의 물 건너 수유에 개명초등학교가 세워 졌습니다. 초등학교 설립시 학교 부지가 좁아서 백 목사님은 토지를 희사하였고 학교에도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아동의 감소로 오래 전에 폐교가 되었고 백 목사님의 큰 아들이신 백도광 장로님께서 극동두뇌과학연구소를 설립하여, 2000년 1월 1일에 KBS가 한국의 새로운 세기를 열 청년 과학자로 선정한 MIT 출신 백은실 따님의 고향 연구 환경을 제공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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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두뇌과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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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 과학을 연구하면 마음의 세계를 깊이 살피게 됩니다. 마음은 물질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까지 자세히 밝혀 질 수밖에 없습니다. 할아버지가 되는 백 목사님의 삼분설을 설명할 때 일반 교계의 무식한 반론을 잠 재울 자연계시의 유익한 논리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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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옛 개명교회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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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예배당은 이 건물의 바로 위 쪽에 있습니다. 신사참배와 6.25를 거친 옛 예배당을 새 예배당으로 이전하면서 이 옛 예배당은 일반 가옥으로 버려 졌는데 백 목사님이 환란과 고난의 초기 신앙을 담은 예배당을 기억하지 않았다고 질책을 받고 새로 단장한 것입니다. 이 노선은 우상화가 되거나 회고 신앙이 무엇인지를 배웠고 아는 곳입니다. 형체 자체를 무조건 죄라고 하면 그 주장이 죄입니다. 일반 교계는 기념물이 우상화로 가고 과거 기억이 회고 신앙으로 고착 되지만 현재 공회는 최소한의 필요한 것조차 지나 치게 무시하고 있는데 이런 점을 백 목사님은 간간히 지적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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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옛 개명교회 예배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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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옛 개명교회 예배당은 마루였습니다. 현재 옆에 보이는 의자나 밥상이나 책상 등은 신규 비치 된 것입니다. 전체 넓이와 마루는 옛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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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현 개명교회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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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새 예배당이지만 전체 분위기는 과거 예배당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강단 위가 아치 형태를 띄면서 강단 자체가 안으로 들어 간 형태, 그 좌우에는 목회자 예배 준비실이나 교회 사무실이 있는 형태가 70년대까지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과거 예배당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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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개명교회 옆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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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명교회 봉산교회의 주변 마을은 다 극단적으로 가난했던 곳입니다. 2010년인 오늘까지도 과거 고대사회에 내려 오던 가옥의 건축 형태 내면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큰 나무를 베어 기둥과 서까래 들보 등으로 사용하고 그 사이는 나뭇가지를 가로 지르고 새끼로 묶고 진흙에 짚을 썰어 넣어 견집력을 높인 상태에서 벽돌을 대신하여 벽을 채웠습니다. 언젠가 갑자기 없어 질 것이어서 안내를 할 때마다 과거 신앙의 생활 환경으로 꼭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붕이 양철이나 과거는 초가나 기와였고 벽의 일부는 세멘으로 살짝 덮었으나 아직도 과거 회가루를 세멘 대신 바른 상태가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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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옛 가옥 벽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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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의 벽을 자세히 살펴 보았습니다. 이 지방에 가장 흔한 진흙 벽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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