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선의 세상 기준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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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0 00:00
한국의 눈 부신 발전이 최근 일본을 거의 다 따라 잡았다고 느낄 만큼 되었습니다. 이제는 한국도 일본처럼 장기 침체기에 접어 들고 있는 조짐들이 있다고 한 편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눈 여겨 볼 정도의 주장이 나왔습니다. 소개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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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 일본, 아홉 가지가 닮았다
국내의 일본전문가 6명은 2000년대 들어 한국과 일본 사회가 닮은 점으로
△저출산 고령화
△비정규직 근로자 증가
△양극화의 심화
△낮아지는 잠재성장률
△회사 중심 사회
△청년들의 좌절
△기존 성장모델 고수
△창의적 제품 부족
△혁신형 창업 부족 등 아홉 가지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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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출산
이 노선은 전쟁 후 베이비붐 시대라는 시대에도 주시는 대로 받아 낳자고 했고, 산업 사회 발전에 따라 3 자녀 시대에도, 2 자녀 시대에도, 1 자녀 시대에도 변치 않고 주시는 대 로 받아 낳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사회 발전이 절정으로 치닫게 되면 그 정상 부근에서 기다리고 있는 복병, 그 정상 부근에서 저 발치로부터 바등 거리며 올라 오던 이들을 지켜 보던 침묵의 적, 그 이름이 저출산입니다. 사람이 배가 부르면 그렇게 됩니다. 그리고 저출산이 나타 나면 나머지 8 개의 침체기를 향한 하산 과정이 시작 됩니다.
공회 신앙은 힘이 없어 더 이상 올라 가지 못하는 상황은 있다 해도 저출산으로 인한 복병에게 당하는 수는 없습니다. 교회의 저출산은 사회의 저출산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 옵니다. 교회의 간판 자체를 내려야 하는 경우로부터 간판은 지켜도 내용은 전혀 달라 지는 경우까지 생깁니다.
교회는 신앙 단체이며, 신앙 단체는 신앙의 노선에서 그 정체성을 갖게 되는데, 교회 내의 저출산은 지금 교파를 막론하고 심각한 위기입니다. 예를 들면 고신이 주일 한 계명을 바로 지키는 데 그 교단의 생사를 건다고 했는데 지금은 교회와 교단 차원에서 그런 개념이 없어 졌습니다. 그렇다면 고신은 간판으로만 남아 있지 실존하지는 않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2. 비정규직 근로자 증가
한 사람의 근로 여건으로만 본다면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탁월하게 좋습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의 행복한 정규직 자리를 제공하는 회사가 생존하려면 비정규직 없이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런 개념을 교회 운영에 적용해 보면 일반 교회는 목사와 장로와 권사와 집사와 반사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교회 직책이 정규직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부 교역자만 유일하게 비정규직 개념입니다.
공회는 담임 목회자로부터 장로 권사 등 모든 직책이 비정규직 개념입니다. 교회 내의 그 어느 자리라도 임기를 보장해서 그의 신앙 변동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보장 되는 일은 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회 성향이 뚜렷한 사람이라면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생성 되는 필연적인 모순인 비정규직 사회화를 살아 가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고 오히려 그런 사회가 자신에게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계속 중)
>> "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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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고대 국가로 내려 온 과거를 청산하고 기독교를 받아 들이는 등의 개혁 조처를 한 것이 1868년 명치유신이고, 우리는 일본에 의해서 1894년 억지로 강오경장을 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개방 개혁의 차이는 약 30 년이지만 일본은 세계의 흐름을 읽었고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우리는 힘에 밀려 강제로 당하는 자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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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과 30 년 차이였지만 이런 자세 때문에 일본은 불과 40 년만에 러일전쟁을 통해 세계적 제국으로 그 모습을 드러 냈고 우리는 일본의 그런 세계적 등장에 디딤돌이나 하고 있었습니다. 1945년 2차대전이 끝나던 시절, 잠수함 전투기 항공모함까지 만들어 미국과 맞서 세계적 전쟁을 수행하던 일본에 비하여 우리는 자전거 하나를 만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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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를 받아 들인 30 년의 차이는 일반 역사에서 300 년 이상이나 낙후 된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일본과 견줄 수 없고 영원히 우르러 볼 대상인 줄 알고 해방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해방 후에는 우리가 마음을 먹고 미국을 통해 기독교를 받아 들였습니다. 물론 기독교라는 표현에는 신앙과 함께 그 신앙이 만든 제반 환경까지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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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들어 서서는 고속 성장을 하게 되었고 뭔가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있다는 막연한 소망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후 수십 년 간 우리가 노력에도 불구하고 늘 일본과 우리 사이에는 2 - 30 년의 격차가 있었습니다. 최근 이 격차는 급격하게 줄어 든다고 하는데 양국의 내면을 제대로 들여다 볼 줄 아는 사람들은 여전히 기독교를 환영한 28 년의 첫 출발의 차이는 줄어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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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지가 쌀밥을 먹게 되었다 해서 부자 집 쌀밥과 밥 그릇 안의 곡식 재료는 같을지 몰라도 그 거지가 짧은 시간에는 극복할 수 없는 수 많은 격차라는 것이 엄연하게 존재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외형을 비슷하게 맞추는 데까지는 비교적 쉬우나 그 속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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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차원 높은 복음의 길을, 원하고 원하는 마음으로 찾아 나선 이들 그리고 그 길을 만났을 때 자원함으로 달려 간 이들, 그 주변에는 원치 않으나 가족 환경 때문에 구레네 시몬 같은 십자가를 지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쨌든 세상의 기술 발전에 한 발 늦은 것이 그 훗날의 각고의 노력으로도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이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최소한 진리의 길, 복음의 길, 신앙의 이 길에서는 조선 말의 조상들이 저질렀던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그토록 미워하는 일본, 그들에게서라도 한 발 앞 서 주어 진 기회를 감사하게 받은 그 결과가 어떠하다는 것은 두 눈으로 똑똑하게 보고 새겨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