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문 28 년의 차이 - 일본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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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0 00:00
일본은 고대 국가로 내려 온 과거를 청산하고 기독교를 받아 들이는 등의 개혁 조처를 한 것이 1868년 명치유신이고, 우리는 일본에 의해서 1894년 억지로 강오경장을 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개방 개혁의 차이는 약 30 년이지만 일본은 세계의 흐름을 읽었고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우리는 힘에 밀려 강제로 당하는 자세였습니다.
불과 30 년 차이였지만 이런 자세 때문에 일본은 불과 40 년만에 러일전쟁을 통해 세계적 제국으로 그 모습을 드러 냈고 우리는 일본의 그런 세계적 등장에 디딤돌이나 하고 있었습니다. 1945년 2차대전이 끝나던 시절, 잠수함 전투기 항공모함까지 만들어 미국과 맞서 세계적 전쟁을 수행하던 일본에 비하여 우리는 자전거 하나를 만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기독교를 받아 들인 30 년의 차이는 일반 역사에서 300 년 이상이나 낙후 된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일본과 견줄 수 없고 영원히 우르러 볼 대상인 줄 알고 해방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해방 후에는 우리가 마음을 먹고 미국을 통해 기독교를 받아 들였습니다. 물론 기독교라는 표현에는 신앙과 함께 그 신앙이 만든 제반 환경까지를 말합니다.
1970년대 들어 서서는 고속 성장을 하게 되었고 뭔가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있다는 막연한 소망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후 수십 년 간 우리가 노력에도 불구하고 늘 일본과 우리 사이에는 2 - 30 년의 격차가 있었습니다. 최근 이 격차는 급격하게 줄어 든다고 하는데 양국의 내면을 제대로 들여다 볼 줄 아는 사람들은 여전히 기독교를 환영한 28 년의 첫 출발의 차이는 줄어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거지가 쌀밥을 먹게 되었다 해서 부자 집 쌀밥과 밥 그릇 안의 곡식 재료는 같을지 몰라도 그 거지가 짧은 시간에는 극복할 수 없는 수 많은 격차라는 것이 엄연하게 존재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외형을 비슷하게 맞추는 데까지는 비교적 쉬우나 그 속이 문제입니다.
한 차원 높은 복음의 길을, 원하고 원하는 마음으로 찾아 나선 이들 그리고 그 길을 만났을 때 자원함으로 달려 간 이들, 그 주변에는 원치 않으나 가족 환경 때문에 구레네 시몬 같은 십자가를 지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쨌든 세상의 기술 발전에 한 발 늦은 것이 그 훗날의 각고의 노력으로도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이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최소한 진리의 길, 복음의 길, 신앙의 이 길에서는 조선 말의 조상들이 저질렀던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그토록 미워하는 일본, 그들에게서라도 한 발 앞 서 주어 진 기회를 감사하게 받은 그 결과가 어떠하다는 것은 두 눈으로 똑똑하게 보고 새겨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