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저서 출판사인 영음사 개편을 환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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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8 00:00
- 한국교회에서 박윤선의 위상
한국교회는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힘 있는 교회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세계적인 거대교회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으며, 단기간에 선교 대상국에서 선교 대국으로까지 발전한 것이 크게 부각 되고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보면 특이하게도 한국교회는 보수교계가 주도권을 쥐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교계가 박윤선 목사님을 유일의 스승으로 받드는 모습이 되자 박윤선 목사님의 위상과 의미는 실제보다 더 크게 부각 될 정도입니다. 한국교회를 위해서는 너무 복 되고 다행스럽습니다. 성경 그대로 믿기를 노력하고 평생 진실로 살아 간 그 분의 이름이 높을수록 이 나라 교회의 앞 날은 죄와 좀 더 멀어 지고 의와 더 가까와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박윤선 위상의 배경
한국교회가 해방 전에는 선교사들에 의하여 길러 졌다면 해방 후에는 자립의 길로 나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 보수교계에는 박형룡 김치선과 같은 분들이 스승 급으로 앞 서 나갔고 박윤선 목사님은 당시 소장파였습니다. 그런데 김치선 목사님은 주류 논쟁에서 조금 벗어 나 있었고, 박형룡 목사님은 자유주의 신학인 통합에 몸을 담았으나, 박윤선 목사님은 한국교회 보수 투쟁에서 늘 더 보수적인 노선을 전전했기 때문에 그 분은 평생에 보수교계 지도자 대부분을 가르 치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더 훌륭하고 더 앞 선 학자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중심을 잡고 있는 보수교계에 마치 박윤선 목사님은 유일의 스승처럼 대우를 받습니다. 해방 후 고신이 총회와 대치할 때는 끝까지 고신의 중심에 있었고, 고신이 총회와 합하면서는 총신에 몸을 두게 되자 한 물 간 고신을 벗고 덩치도 크면서 보수의 본부가 된 합동 교단의 총신의 스승이 되었으며, 총신이 너무 탈선의 길을 걷게 되자 개혁을 외치며 합동신학교를 출발 시켜 그 설립자가 됩니다.
학자로서 박윤선을 평가한다면 그는 학자에게 필요한 자질을 두루 갖추었으니 흔치 않는 인물입니다. 굳이 찾는다면 그 정도 학자는 당시에도 있었고 오늘 그 정도 학자 찾는 것은 더 쉽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와 한국교회 교세가 미개했던 해방 후에는 학자다운 학자 하나를 갖는 것이 어려웠는데 박윤선은 학자적 소질을 잘 갖추고 있으면서도 당시에 힘도 없고 이름도 없는 보수교계를 끝까지 지켰으며 바로 그 보수교계가 한국교회를 주도하며 세계적 위상을 갖게 되자 박윤선 목사님은 갈수록 그 이름이 높아 지게 되었습니다.
박윤선의 이름을 여기까지 연구한다면 고평가 과평가라 하겠는데 박 목사님의 진면목은 그의 신앙에 있습니다. 학자란 신앙을 갖기 어려운 법인데 그 분은 학자가 희귀하던 시절 학자였고, 학자 중에서도 타고 난 자질을 가진 분인 동시에 학자들이 가질 수 없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보수교계의 진정한 스승이었고 스승 중에서도 한 분의 스승이라는 정도가 된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 이 노선과 박윤선
지금 한국교회의 어른 노릇을 하는 분들은 다 박윤선 목사님과 특별한 인연을 강조하는 일화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노선이 박 목사님과 인연을 설명하면 남의 집 잔치에 수저 들고 끼어 든다 할까 싶어 이 노선은 표를 낸 적이 없습니다. 실제로도 이 노선은 박 목사님이 신학 상식의 소개자 또는 이 노선의 초기 어려운 시절에 전폭 지원했던 분으로 과거를 가지고 있는 정도이지 다른 보수교계처럼 스승으로 관계를 갖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노선의 특별한 점이 성경 유일이며 이로 인해 신학을 무시하고 성경만 읽는 정도인데 박윤선 목사님은 이 노선에게 그가 아는 세계와 역사의 신학을 아주 간단하게 잘 소개를 했으므로 그 분 때문에 복잡하게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이 노선은 제대로 된 신학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면 때문에 백 목사님은 박윤선 목사님을 깎듯하게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이 노선은 원래 무식하며 한 편으로는 스스로 무식하려 노력하는 곳입니다. 다른 분들은 할 수가 없어 못하지 가능하다면 신학을 더하고 싶어 하는데 이 노선은 가능한 한 신학을 모르고 멀리하고 무시하려 노력합니다. 그런데 신학에 대하여 초보적 상식도 없게 된다면 공회 내 최근 어느 분처럼 세계 신학계의 상식적 교리를 잘못 파악하여 그가 가진 신앙과 그가 전하는 복음 전부를 그런 수준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이런 면을 막아 주시기 위해 이 노선은 초기에 박 목사님을 통해 세계와 역사의 신학을 소개 받기도 했고 또 성경과 다른 문제를 두고는 그 분을 통해 세계와 역사 신학을 상대로 토론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이 노선이 성경으로 바르게 좋게 께달은 것이 세계와 역사 신학에서 어느 위치에 들어 가게 되며 어떤 연관성이 있고 어떤 장단점을 가졌는지 너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노선은 형성 되는 과정에서부터 세계 신학을 기본 상식으로 깔고 바로 이 노선의 발전 된 깨달음을 세울 수 있었고 이후 토론 변론 반론에서도 별 다른 번역이나 통역 절차를 밟지 않게 되었으니 얼마나 효율적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 박윤선 출간물의 영음사
이 홈은 이 노선에 집중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박윤선 목사님을 언급한 백 목사님의 설교나 자료를 박 목사님 자료로부터 직접 확인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백 목사님의 자료는 10만 페이지라도 몇 초면 순간적으로 다 확인이 가능하나 박윤선 목사님의 출간물들은 인세 수입 때문에 자료 활용이 극도로 어렵게 되어 있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박 목사님이 1940년대부터 주석 출간을 시작했을 때는 잘 전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도서 출간 방법을 선택하였을 것이므로 오늘처럼 인터넷을 통해 전산 자료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었다면 당연히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활용하게 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문제를 두고 몇 년 전에 영음사 책임자는 박 목사님의 주석의 깊이가 너무 깊어 인터넷으로 쉽게 사용하는 것을 염려한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1940년대 박 목사님은 신학교에서 불러 주고 필기하는 식으로 주석을 가르 치다가 도서로 출간한 면을 생각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전산자료화를 하려 했으나 히브리어 헬라어의 원어 처리가 실무 난제라 했고 제가 그 부분은 맡겨만 주면 제가 해결해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이미 당시 일반 출간에서 히브리어는 자유롭게 인용이 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 부탁을 하다가 2009년에는 박윤선 목사님의 가족 중에서 영음사 운영에 직접 관련 있는 분과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분께 허락만 해 준다면 시골 교회 하나가 움직여서 몇 달 정도면 박 목사님 저서 일체를 전산화 하여 누구든지 제한 없이 사용하게 해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가능한 사례와 경험을 전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자유주의 신학만 넘쳐 나는데 몇 없는 보수신학의 자료집, 그 것도 한국교회의 외형이 아니라 내면을 만든 이 귀한 자료가 잘 제공이 되어야 좋겠고, 저 개인으로는 제가 필요해서라도 그리 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가족으로서는 대환영이나 박윤선 목사님 생전부터 일하신 원로들의 입장과 영음사 경제 운용 등을 두고 공개 못할 어려움이 있었으며 곧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하여 기다렸습니다.
- 오늘 또 확인을 했습니다.
제 안타까운 마음을 이해하신다며 저와 대화했던 영음사에 원로 직원 권사님은 2008년에 이미 돌아 가셨고, 최근에 영음사의 개편이 이루어 져 합동신학교 편집실장으로 일하시던 조주석 목사님이 영음사 편집국장이 되셨으며, 서울에 있던 영음사를 2011년 2월 7일에 합동신학교가 있는 수원으로 옮기고 이제 자료화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홈 개편도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 노선에 중요한 자료를 살피다 보면 박 목사님에 대한 언급 또는 박 목사님의 자료를 통해 백 목사님이 1950년대에 접한 신학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 노선 연구에 보다 효율적이 될 것으로 생각하여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이 노선을 제외한다면 아직도 박윤선 목사님의 자료가 한국교회의 보수 중심이 되어야 한국교회에 앞 날이 희망이 있을 것이므로 한국교회를 위해서도 반가운 소식입니다.
복음은 항상 그 복음이 소중하고 필요할 때는 몸과 가정과 생명을 바쳐야 하기 때문에 가시 밭의 좁은 길이 되어 찾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 복음이 영광스럽게 드러 나는 날에는 항상 그 복음을 가지고 장사나 명예나 교권에 활용하려는 이들이 달라 들어 그 안을 구경하지 못하게 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이 노선 백영희 신앙자료도 마찬가지여서 박 목사님 쪽을 비판하는 말이 아니라 당연한 상식이며 공동의 어려움이라는 차원입니다.
이 글을 적는 이유는, 이 노선 관련 자료를 두고 혼자 숨겨 두고 낄낄 대며 귀신 씻나락 까먹는 분들처럼 그런 심리가 없기를 바람입니다. 복음은 듣고 깨닫고 가지는 순간 즉각적으로 전해야 할 책임과 빚이 생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