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목표 - 말씀으로 바뀌는 사람을 (준비 중)

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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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선교의 목표 - 말씀으로 바뀌는 사람을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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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는 여느 남미 국가들처럼 수백 년 전에 천주교 계통의 스페인 계통의 백인들이 들어 와서 무자비하게 원주민들을 도륙하고 점령한 식민지 국가입니다. 지금도 10% 정도의 백인들이 지배 또는 지도 계급을 형성하고, 30% 정도의 혼혈인들과 5-60%의 원주민들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원주민 구성의 비율은 타 남미 국가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합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백인으로 된 주인에게 생사여탈을 맡기고 산 노예 같은 종들이었으므로, 이들에게 예수님이 주님이심과 그들의 직장이나 농장이나 사회적으로 주인이 되는 분들의 주님과 구별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원주민 선교, 그 원주민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적, 심지어 종교적 배경이 그들은 주인 앞에 늘 죽어 살아야 하는 신세이니 그들에게는 그들의 그런 신세에 대하여 억울함이나 이렇게 살아서 되겠느냐는 등의 기본 인식 변화나 그런 변화의 가능성이 없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 천주교는 남미에서 국교 위치의 권위를 가지고 주민에 대한 횡포가 현 문명시대에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합니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도, 아직도 신부가 결혼하게 되는 신부를 깨끗하게 해 준다며 먼저 취하는 일이 있고 이런 일을 두고 피해 의식이 분출 되지 않는 정도며, 또한 아버지가 딸을 버려 놓는 일을 포함한 근친 폭행이 70% 정도의 여성에게서 발견 될 정도라고 합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그 어떤 교회의 그 어떤 설교자의 그 어떤 설교나 목회라 해도 그들을 말씀으로 변화를 받아 생각이 바뀌고 생활이 바뀌어 말씀대로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합니다. 불가능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남편들이 아내들을 너무 차별하고 학대하는 정도여서 설교 시간에 남편들에게 집에 돌아 가서 아내에게 꽃 한 송이만 선물하시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모두가 다 그러겠다고 했답니다. 다음 주일에 확인하자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또 부탁했고, 또 확인했으나 아니했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주민들은 아내가 죽을 때 남편이 꽃 한 송이를 바치는 것이 평생에 딱 한 번 꽃을 아내에게 주는 것이랍니다. 그런데도 강단에서 설교자가 말씀을 전하는데 전부 너무 당연하고 그렇게 할 듯이 '예'라고 약속을 하는 것이 그들이라고 합니다.

말씀이 바꾸어 놓지 못하면 헛일인데, 이 말을 들으면 저는 우리를 봅니다. 이 노선 이 교훈으로 이 만큼 배웠는데 그리고 목회자들은 그렇게 소리 높혀 증거했는데 빗물에 씻겨 내려 간 섬돌의 흙 먼지처럼 우리 공회에 이 노선 이 교훈에 남아 있는 것이 있습니까?




(계속 중)




















>> "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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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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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리비아에서 선교하는 고광문 목사님을 어제 11.10.5. 오전에 만났습니다. 안산 캠퍼스 김정수 장로님의 연구실에서 10시에서 12시까지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들었습니다. 그 분은 간단한 경험담이었으나 제게는 이 노선 공회의 크나 큰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다시 살펴 저와 공회의 더욱 바른 길로 가야 할 수 많은 과제를 받았습니다. 시간 나는 대로 남단1 이 곳에서 글을 나누어 싣겠습니다. 선교사의 간단한 경험담, 흔하게 들을 수 있을 듯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설교록 내용을 파악하는 공회인들이 듣는다면 생각하고 돌아 보며 과제로 삼을 분량이 엄청 난 줄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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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고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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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의 배경을 알 필요가 있을 듯하여 개인 소개를 간단하게 합니다. 본인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았으나 본인이 이해해 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 1984년에 군 복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갔고 공학을 전공한 후 General Electric 직장과 개인 사업까지 잘 진행하여 재미 한국인들이 모두가 갖고 싶은 좋은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니던 교회에 많은 직책을 맡고 충성도 했습니다. 아내는 분당 만나교회를 일군 김우영 목사님입니다. 교계에도 유명한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만족해야 될 시점에 항상 그 무언가 약간 빈 곳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목회로 부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는 순종했고 전도사로 목회하면서 미주 한인교회의 아주 전망 좋은 목표를 이룰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목사님을 부목으로 두고 전도사로 목회했고 신학교를 졸업한 후 안수를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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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가정 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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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목사님의 가정은 평안도 출신으로 일제 때부터 일찍 믿었고 독립 운동을 하다 고초를 겪었으며 해방 후에는 식구 중에는 신의주 기독학생 의거 사건의 주범으로 쫓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전쟁 기간을 통해 남하했고 부친은 국군 장교로 참전했으며 훗날 감리교 목사님이 되었고 은퇴하여 LA에 거주하고 계십니다. 조카들을 통해 백 목사님과 설교 세계를 접하였으며 지금은 노년을 설교록에 빠져 사시고 계십니다.
: 작은 아들은 이미 미국의 목회자로 성공하여 유명한 부흥강사고, 큰 아들 고광문 목사님도 목회를 출발했습니다. 이런 신앙의 가정 분위기에서 조상 적부터 계속 되는 신앙과 기도의 은혜로 고 목사님은 우리 사회가 모두 부러워 할 그런 길과 우리들까지도 좋게 봐 줄 수 있는 신앙에 열심을 가진 분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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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의 오른 쪽이 고필균 목사님이고 왼 쪽이 고광문 목사님의 부친이신 고호균 목사님입니다. 장소는 고필균 목사님의 아들이며 고광문 목사님의 형이 되시는 고광철 조사님 댁이며, 2009.3.30.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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