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어지럽게 만든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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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00:00
1. 새로운 것을 지어 내려 하지 말라.
1986년 5월 5일, 월요일 저녁 설교 내용 중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 '구원이면 구원이지 뭐 구원을 쪼개서 기본구원이니 건설구원이니 그렇게 구원을 나누는가?’ 해서 많은 사람들의 시비와 훼방이 있지만 그거는 부득이 진리를 바로 구별하는 그 구별상 그렇게 나누어서 말하지 않을 수 없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필요 없는 새 말을 만들어 내는 사람은 어지럽게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진노를 받습니다. 필요가 있는데 없어서 사람들의 구원에 손해가 되는 그런 말은 새로 지어내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2. 집회 사회를 준비하며
이 홈이 주도하는 집회는 이 홈에서 제공하는 설교 자료 중에서 오늘 이 시대에 긴요한 말씀을 선택하여 복습 위주로 진행합니다. 사회는 집회 기간에 보이지 않을수록 좋은 상태이나 신앙을 새 출발하는 분들이 항상 생기는 법이어서 최소한의 역할은 하고 있습니다. 또한 80년대의 말씀을 오늘에 새기는 과정에서 오늘 현실과 연결을 시키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그 의미를 설명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재독의 대상이 되는 설교는 그 내용이 깊어 사회든 누구든 설명을 섣불리 붙이다 보면 잘한다는 것이 원작에서 멀어 지게 하거나 변조가 되어 원래 담겨 있던 내용의 소실이 우려 됩니다. 이래도 어렵고 저래도 어려워 지혜로운 이들은 사회의 기회를 피하고, 누군가 짐을 질 수밖에 없다면 공회의 자연스런 상황에서 한 사람이 맡고 나섭니다. 사회를 맡는 이상 미리 그 내용을 살펴 보게 됩니다. 그런 중에 이 번에는 '새 것을 지어 내려 하지 말라'는 말씀이 눈에 특별하게 들어 옵니다.
3. 다른 사람을 어지럽게 만든 죄
이런 죄는 죄인 줄 아는 이들도 사실 거의 없습니다. 자기 속에 것을 밖으로 내 놓지를 못해서 안달인 세상에. 해 아래 새 것이 없다 하신 말씀을 실제 말씀으로 알고 읽기 때문에 공회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과거에 없던 무슨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것은 정말 대단히 조심하고 또 조심합니다. 교단들이 경쟁적으로 새로운 사업을 내 놓는 일을 우리는 철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들이 예배당 건축을 새롭게 다양하게 이리저리 짓고 있는 것을 두고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당 건축을 통해 신령한 성전을 파괴한다고 생각합니다.
천 번을 생각하고 만 번을 생각해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라면, 단어 하나를 새로 내지 않고는 너무 혼동스럽고 불편해서 뒷 감당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 떠 밀려서 할 수 없이 단어 하나를 새로 보충하고 사용하게 됩니다. 제도도 그렇고,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이런 신앙의 노선 때문에 타 교단은 50여 년 전에 내 버려서 지금은 아무도 알아 듣지도 못하는 '조사'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여전히 모두가 어색하게 생각하는 '연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꾸지 않아도 될 것은 다 바꾸고 있는 타 교단이,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설구원의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는데도, 듣지 못한 단어를 사용한다면서 성경에 건설구원이라는 4 글자가 없기 때문에 이단이라는 이런 무식하고 무작스런 언행을 합니다만 조금 살펴 보면 그들이 하늘처럼 떠 바치고 본 받을 그들의 이상향은 아무래도 이 노선에 있지 싶습니다.
4. 못 난 사람들은 무조건 따라 가다 탈이 나고
잘 난 사람은 남보다 앞 서 어떤 것이나 내 놓으려고 경쟁입니다. 발언, 발표, 학설, 출간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흐리고 어지럽게 만들며 흑암 천지를 만든 것이 전기가 없어 그런 것이 아니라 전기불 아래 책을 읽고 그 책을 읽은 이들이 제 3의 자기 책을 또 한 권 출간하거나 이런저런 말들을 발표하여 세상에 무엇이 옳은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종잡을 수도 없게 해 놓은 책들이 세상을 어둡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우선 당장에만 보면 책과 지식과 새 이론과 새로운 발표들이 세상을 밝히는 것 같은데 좀 넓게 보면 그런 수 많은 것이 쏟아져 나와 세상의 어두움을 더 짙게 만들었습니다.
믿는 사람도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발언할 수 있고, 학위를 받고, 저서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먹고 사는 직업의 하나라는 것. 불신자야 남 다르게 발표하고 내 놓고 먼저 말하는 모든 것이 자기 이름을 내고 세상을 밝히는 줄 압니다. 믿는 사람은 자기를 내 놓는 것이 죽는 길이며 자기가 내 놓은 말과 주장과 책과 활동은 세상을 어둡게 만든 책임이 있고 남들을 끌어
입이 있다고 모두들 말을 합니다. 눈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모두가 봅니다. 생각이 있다고 머리 속에 떠 오르는 것은 남보다 앞 서 책으로 인터넷으로 어디에라도 내 놓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어지럽게 만든 죄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할 수 없어 밀려서 밀린 끝에 적으면 적고 내면 내지 앞 서 내 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5. 배우지 않았으면 남보다 더 했을 사람이
지금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어서 남보다 앞 설 것도 별로 없지만 만일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힘 있는 대로는 참으로 난장판이 되도록 설치고 돌아 다녔을 것입니다. 하나를 미리 배운 적이 있어 늘 새로운 표현을 해야 할 때는 이 한 마디가 더해 짐으로 복잡한 이 세상에 또 하나의 길을 추가해서 선택하는 이들에게 얼마나 고통을 주며 혼란을 주며 실제 별 것도 아닌데 공연히 어지러움만 더하는 것이 아닐까?
현재 출간 예정 된 책들은 적지 않습니다. 분량도 그렇고 종류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돌아 보고 또 돌아 보면 이 홈으로서는 '활용자료' 게시판의 설교록 내용 하나만 제공하면 더 이상이 필요가 없다는 결론으로 돌아 가기 때문에 망설이고 또 망설입니다.
남의 것을 배껴서라도,
우선 내 놓는 말이 뒤에 어찌 될지도 모르고 생각 나는 대로 적어 대는 것이 본능인데,
한 말씀을 배워 머리에 박아 둔 은혜 때문에 출간할 분량과 종류가 많은데도 버티고 있습니다. 어지럽게 한 죄, 죄 같지 않은데 사실 그 죄나 도둑질한 죄나 다 같은 죄입니다. 사실 절도죄보다 남을 어지럽게 한 죄가 더 큽니다. 조직신학의 정본도 백 목사님의 전기도, 공회의 여러 연구 과제들도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것은 한 없이 많은데 '어지럽게 만든 죄'라는 하나가 쐐기처럼 출간의 앞을 막고 있습니다. 이 한 지혜를 알지 못했더라면, 제 실력으로는 평생 가도 깨닫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아마 알았을 때는 이미 쏟을 대로 멋 모르고 수 없이 쏟아 놓고 이미 줏어 담지 못하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집회를 재독 집회로 복습의 기회로 삼는 것은, 이런 지혜와 은혜와 진리의 인도의 길이 무수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