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 지도 3 가지(경제, 결혼, 공부)의 원칙과 현장

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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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교인 지도 3 가지(경제, 결혼, 공부)의 원칙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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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총공회/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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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7, 목회 이야기 부산 2012-07-13
2868, 교인의 생활 지도 yilee 2012-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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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공회들끼리 잘 통하지 않다 보니 서로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서로 친인척이나 친지들이 되어 세월이 지나다 보면 서로 알게 됩니다. 부공3은 여기 홈에서 직접 볼 수 있기 때무에 비교적 공개적이라 하나 그래도 알려지지 않은 것이 훨씬 많은 것같습니다. 부공3에 있다가 지금 타 공회로 다시 나온 교인들을 통해 상세한 것을 듣습니다. 좀 아픈 질문을 드려도 이해를 바랍니다. 평소 그리 사셨으니 이해하리라 생각하고 몇글자 적습니다.

교인들의 세상 돈벌이 사업을 대량으로 지도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마치 하나의 사업장 본부처럼 되어 교회 분위기가 아니고 사업주의 교회들 이상이라고 합니다. 몇 년에 한번씩 사업을 다각화하여 진화되고 있다는 말도 들립니다. 오로지 말씀으로만 살고 세상 사업과 돈문제는 목회자와 교회가 입밖에도 내지 않아야 공회 노선일 것같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한곳에 모아서 사회여론도 좋지 않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런 일에 시험들어서 대부분 나온다는 말도 있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말도 듣고 나쁜 말도 듣는 것이지만 이미 알 사람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같습니다. 어느 정도는 사실로 보입니다. 잠실동에서 교육전도사로 계시던 분은 공회적으로 상당히 알려진 경우입니다. 공회 목회를 하면서 교회 사업은 허용되는 것일까요? 된다면 또는 안 된다면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의심도 들고 또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제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배우고 싶기도 합니다.





답변한 글

교인의 생활 지도 - 경제와 자녀 교육




(답변 안내)

문답 내용은
이 홈의 연구 사명에 대한 의미가 적지 않고 또 질문 내용을 공회의 노선적인 면에서 객관화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 되어, 원리적으로도 적고 또 구체적 사례로 자세히 제시해 보겠습니다. 이미 이 홈은 공회의 대표적인 공론화 장소가 되었기 때문에 제대로 안내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답변 기간은
현재 다른 중요한 자료를 처리하는 도중이어서 이 답변은 좀 늦어 질 수 있으며 우선 간단하게 제목만 안내합니다. 공회 내부를 제대로 아는 분들은 목록만 가지고도 답변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나 구체적 설명이 필요한 분들도 계실 것 같아서 답변은 최대한 성실하게 하겠습니다.




1. 답변자의 사명

⑴ 답변을 위한 배경 설명 - 이 노선 연구와 신앙의 현장

① 1982년에 시작한 일
답변자는 1982년 10월에 연구소를 들어 갈 때부터 백영희 교리 연구가 목적이며 백 목사님의 특별 부탁이었습니다. 1983년 5월에 미국 유학을 준비하게 하여 만 1 년 동안 서부교회 예배당 옆 출입구 바로 앞에 있던 편집실에서 영어공부만 했습니다. 1986년 5월에 공부를 마치고 돌아 왔을 때 당시 중간반 전체를 해체하고 특수반 이름으로 통합을 하려던 계획에 책임자로 정하셨다가 이치영 목사님의 임시 대행 과정에서 만족하시고 이치영 목사님 체제로 굳어 진 것과 그 해 7월부터 1988년까지 부산대학 등에서 토플 강의를 하게 하시고 1988년 3학기부터 양성원 교수를 맡기실 때와 1989년 3월에 신풍교회 담임 교역자로 보내신 것까지 그 모습은 다양했을지라도 답변자는 늘 조직신학을 정리하는 문제가 본업이었고 이 문제로 늘 공사석에서 재촉을 받았습니다.

② 업무는 여러 가지나 내용은 동일
귀국 후 여러 직책을 가진 것은 늘 말씀하시듯이 연구자가 책상에서 연구만 하면 죽은 연구가 된다는 위험 때문에 현장직을 다양하게 맡겼던 것입니다. 답변자는 매주 월요일 5층에서 백 목사님 앞에 모이는 핵심 실무 회의에 행정실장 주교총무 연구소장 중간부장 회의에 별도 참석했던 바 이런 이유였습니다. 역사를 위해 잠깐 소개하면 중간반의 책임자가 5층에 참석한 것은 처음에는 중간부장만 참석했고 1986년부터는 중간부장과 특수부장이 함께 참석했고 중간반의 해체가 실질적으로 이루어 진 후에는 특수부장만 참석했습니다.

1984년 유학을 갈 때도 1985년 잠깐 귀국했을 때도 1986년 돌아 올 때도 1987년 서영준 목사님과 조직신학 연구를 정식 출발 시킬 때도 한결 같이 백 목사님은 일반 신학과 우리 교리를 비교하여 정립할 것을 세세히 부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목회연구소는 처음에 편집실로 출발했으나 '백영희목회연구소'로 바뀌었고 연구부장은 변치 않고 답변자가 맡았으며 그 이유는 백영희 조직신학의 연구는 기초 자료가 그 설교며 그 설교의 요약 정리 성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으로, 25 세에 출발한 일이 오늘 55 세가 되었고 꼭 30 년을 총공회의 '백영희 신앙노선'만을 연구했습니다. 그 방향은 설교 자료를 중심으로 이 노선의 모든 자료 전부의 수집과 그 자료들의 연구 분석이며 그 결과적으로 도출 되는 교리와 역사와 행정 및 이 노선의 실무 현장 운영, 그리고 이어 지는 훗날까지가 다 포함 되는 일입니다. 대학에서 영어를 강의할 때나 신풍교회 목회 24년이나 그 어떤 경우라도 답변자는 이 노선 연구 한 가지에 마음과 행동을 떠나 본 적은 없습니다. 지식적 집중이었다면 현재보다 엄청 난 결과물을 내 놓았겠지만 목회 현장에서 실제 교인들이 먹고 사는 현실을 떠난 연구를 금했기 때문에 아쉬운 점은 늘 많고 지금도 발표할 연구물은 목록도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입니다.


⑵ 공회 교회의 독립과 자립 원칙

① 연구소의 자생력
백 목사님 생전에 백 목사님은 자신의 사후가 되면 총공회가 앞에 서고 서부교회가 뒤를 따르며 이 노선 연구와 전달을 막고 나설 것으로 보셨고, 1988년에 마련한 연구소의 규정에 '가족' '서부교회' '총공회'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을 시켰습니다. 문제는 간섭을 중단 시키면 경제 지원이 함께 끊어 집니다. 이 문제 때문에 백 목사님은 목사님 사후에 모든 외부 간섭을 막기 위해 최소 경제를 마련해 주십니다. 지하 포함 5층 건물과 평생회비였습니다. 그리고 언제 끊어 질지라도 일단 월 180여 만 정도의 서부교회 고정 사례 보조가 있었습니다.

백 목사님 사후 우리가 다 아는 과정을 거칩니다. 우선 1989년 8월의 목사님 사후에 대구공회로 나가는 총공회 3분의 2에서는 연구소가 부산공회의 핵심이라고 지목하여 연구소 거래를 일체 중단합니다. 설교록 출간을 통해 대구공회를 친다며 설교록 출간 일자와 내용을 비교할 줄 모르는 일반 목회자를 오도 시켜 연구소에 대한 전면 불매 운동을 성사 시킵니다. 찬송가까지 불매로 나갑니다. 이 정도라면 대구공회의 성향이 본질이지 연구소 활동 차단이 본질은 아닙니다. 연구소는 생전이나 사후나 공회 분열의 그 어떤 경우에라도 답변자가 위치한 곳에서는 공회 내분에 간여한 적이 없습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부산연구소에서 제명 되는 또 하나의 배경이 됩니다.

목사님을 가까이 모시면서 최소한 공회의 흐름은 사전에 읽을 정도가 되었고, 그래서 목사님 생전에 이미 사후 어느 시점에 답변자는 이 노선의 연구와 활동을 솔직하게 하기 위해 혼자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매사를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평소 연구소의 원래 목적을 위해 조건 없이 답변자를 지원해 줄 분들을 찾았고 지금까지 그 분들에 의해 연구소는 소리 없이 운영 되고 있습니다. 즉, 서부교회와 총공회의 내분이 어떻게 요동을 쳐도 백영희 신앙 노선의 연구와 전파만은 무조건 원래 원칙 그대로 계속 가려면 외부에서 도와 주면 좋고, 외부에서 차단해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자생력이 필요했습니다. 이 홈을 위해 조건 없이 지원하는 분들의 연보가 바로 백 목사님 생전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 지는 자생력입니다.

② 교회의 자생력
연구소의 자생력에 또 하나의 큰 요소는 연구소 운영 비용 문제입니다. 연구소란 출간비용보다 인건비가 지출의 주요 항목입니다. 그래서 연구소 운영은 여기 답변자부터 시작하여 모든 활동 인력 전부가 연구소로부터 월급을 받지 않고 자기 생활은 스스로 해결하고 연구소에는 자원봉사로만 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았습니다. 경제적으로 일시 곤란하거나 특수 환경의 인물이나 학생들의 일시 아르바이트 등의 경우가 아니면 연구소의 경제는 외부에 넘겨 줄 돈만 지출하고 내부적으로 사용할 돈은 답변자부터 모두가 무급으로 충성한다는 원칙입니다.
이 일을 위해 답변자는 연구소에 평생을 충성하고 싶은 분들은 자기 경제의 자립을 먼저 요구했습니다. 연구소 인력은 그 성격상 목회가 여러 면에서 가장 적절했습니다. 연구와 목회를 병행하는 기본 원칙에도 맞고 연구소 근무로 인해 목회에 도움 되는 면이 크며 또한 목회지 교회가 이 노선에 제대로 서려면 연구소 핵심 지원 교회가 된다는 것은 교회가 원만하게 간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우선 1989년 3월에 부임한 신풍교회가 이 노선 그대로 운영을 해도 공회로부터 지원이나 견제를 받지 않고 답변자의 생활비가 해결 되면 연구소 운영의 기본은 확보 되는 것이고, 답변자 외의 인원도 그렇게 된다면 연구소의 발전은 가능합니다. 1991년 이치영 목사님이 서진교회를, 1992년에 장천용 조사님이 조례교회를 그리고 이신영 목사님이 모덕교회를 개척했고, 1998년에 이치영 목사님이 동천교회를 그리고 손돈 목사님이 강동교회를 개척하고 얼마 되지 않은 기간에 각각 자립 교회가 되어 연구소는 핵심 인력 전부가 자기 목회하는 교회의 목회자로서 경제 해결을 하고, 이 홈의 연구소 활동은 전적 무급 수고만 하고 있습니다. 개척 초기에는 주로 앞 서 출발한 교회가 뒤에 출발하는 교회를 지원했으며 그 과정에서 연구소는 약간의 기간에 적은 인건비라도 지출해서 개척에 약간의 도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는 연구소를 위한 교회들 또는 연구소를 운영하는 교회들이 원칙이었고 이런 취지와 방향에 빈 틈이 생기지 않도록 교회들의 신규 개척이나 현재 분교들의 개척과 양성 과정에 지원이 필요하면 부공3의 공회적 교회들의 지원에서 전담하며, 아주 특수한 경우만 연구소가 인건비를 보조하되 총량에 있어서 연구소의 인건비 지출은 공회 교회들로부터 받는 지원금에 비하면 성의 표시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현재 연구소는 매월 공회 교회들로부터 신풍교회 200만원, 조례교회 100만원, 동천교회 80만원, 모덕교회 20만원을 받고 있습니다. 교회들이 총공회 전체의 어떤 풍파나 분파나 견제에도 불구하고 이 노선 원래에 충실하고 연구소를 유지하기 위해 각 교회가 교회로서 경제 면까지 자생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감사할 뿐입니다. 부공3의 교인들은 각 교회들의 목회자와 교회의 위치를 두고 연구소 중심임을 확고하게 알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힘이 됩니다.

③ 개인들의 자생력
연구소의 자생력이 제일 앞 서 가야 하고, 교회들의 자생력이 뒷받침이 되며 따라 가는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답변자와 함께 수고하는 핵심 인력들의 개별 자생력입니다. 이를 위해 연구소에 핵심 인력인 목회자들과 연구소 지원에 전념하는 각 교회의 목회자는 매월 80 ~ 95만 원까지 생활비를 사례 전부로 삼고 교육비 등 일체 추가 비용 없이 교회 경제에 부담 되지 않도록 고정 시켜 함께 맞추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최선을 다해야 교인들도 개인적으로 연보할 힘이 나고 교회들도 교회적 지원을 결정할 때 우러 나오는 진심이 있을 것입니다. 이 것이 아니라면 이 노선을 연구하고 전하는 일에 나선다는 것은 공연히 말뿐이고 그런 명분 하에 생활비를 마련하는 종교 직업인에 그칠 것입니다.
현재 목회자들은 자녀들의 교육을 고등학교까지 시키되 사교육 없이 학습지 정도를 활용하는 정도에 그치는 정도이고 대학부터는 자녀들의 자립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목회자 자녀들의 거의 대부분이 정규 중고교 과정을 포기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진로를 밟고 있습니다. 연구소 핵심 인력이 자기 지출 비용을 최소화할 때 교회도 연구소 지출에 최선을 다할 수 있고 또 교회가 예측 못할 앞 날에 문제가 생긴다 해도 연구소 핵심 인력의 개인 지출이 최소화 되어야 연구소는 자생력을 가진다는 점을 생각합니다.
동시에 연구소는 그 업무를 맡은 분들뿐 아니라 연구소 일을 돕는 여러 종류의 교인 개인들의 자생력이 연구소의 연보나 충성이나 앞 날에 필요할 때 언제든지 연구소 사명을 맡아 다음 세대를 거쳐 주님 오실 때까지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연구소와 관련 되는 교인 개인들의 개인 자생력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답변자 및 답변자와 함께 연구소의 1세대를 맡은 분들이 다 돌아 가신다 해도 그 다음 2세대가 되어 이 노선의 이 연구와 이 전파를 주님 오실 때까지 맡아 갈 분들 또는 그런 분들을 양성할 책임이 있는 분들, 그 분들이 공회나 연구소의 혜택과 지원을 떠나서 스스로 개인적으로 자기를 책임 지고 그런 자생력으로 이 연구소를 돕고 지원하고 스스로 업무를 맡아 나선다면 연구소는 제대로 된 자생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연구소가 가진 자료의 가치성은 이미 객관적으로까지 충분히 입증이 되었습니다. 이제 연구해서 전하면 됩니다. 전하는 이들이 연구소 이름에 직업을 찾고 연구소 이름을 걸고 돈을 모금하고 연구소 이름에 자기 명예나 앉을 자리를 마련하게 되면 연구소는 어느 교단의 신학교들처럼 연구기관들처럼 뱀들의 소굴이 될 것이나 백영희 목회연구소는 그런 어두움이 자리를 잡을 기회조차 주지 않기 위해 첫 방향을 이렇게 잡고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고 죽을 때도 소리 높여 이 하나의 원칙을 세우기 위해 이 글을 적습니다. 그 후에 다시 역사를 따라 슬픈 일이 일어 난다면 그 것은 답변자의 책임 범위를 넘는 것입니다. 적어도 답변자의 지식과 힘이 닿는 데까지는 진실과 충성을 다한다는 자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④ 요약하면
이 노선은 믿는 순간부터, 이 노선은 목회를 시작할 때부터, 이 노선은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늘 동일하게 잊지 않고 철칙으로 삼는 원칙 중에서 '경제' 면을 두고는 자립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피치 못하게 도움을 받을 때도 있으나 어디까지나 최선을 다해 이 노선은 처음 믿을 때부터 내 힘으로 내 것으로 내가 수고하여 출발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하나님께는 받아서만 사는 은혜주의로 살지만 사람을 상대할 때는 돕고 주는 사람으로 살지 받는 사람으로 살지 않는 원칙이 있습니다.
구호니 지원이니 돕는다느니 복지라느니 그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이 노선은 앉은뱅이 구걸로 보며 그 것은 죄의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신앙이란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먼저 일어 서서 자립하고 그 다음 내가 움직이는 순간부터는 주변에 다른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는 일만 주력합니다. 연구소의 연구 내용이 제대로 일어 서고 제대로 돕는 이치와 방법론과 실제 실무입니다.
따라서 답변자가 먼저 일어 서고, 주변 사람들을 그렇게 하게 하고, 답변자 교회가 먼저 외압과 견제에 상관 없이 이 노선에 서서 다음에 일어 서는 교회들을 돕고, 그 교회들은 차례로 스스로 서고 스스로 다음 교회들을 도우며 지금까지 왔습니다. 백 목사님에게서는 우리가 모두 전적 도움을 받아 일어 섰습니다. 우리는 힘대로 다른 사람과 교회들을 일으켜 세울 의무가 있습니다. 이 것이 역사로 옮겨 지면 이 노선이 한 세대가 아니라 세대를 이어 가며 생명 역사가 되는 것이고 이 노선으로 볼 때 필연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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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번 질문의 답변은 이제부터인데, 질문에는 공회 신앙 노선으로서는 대단히 민감한 부분이 있고 향후 같은 질문을 가진 분이나 의문을 가진 분들을 제대로 안내하기 위해 이 번 기회에 종합 안내를 하게 되었고 답변자가 교인들의 '개인 별 신앙 자생력'을 위해 지도해 온 일을 설명하기에 앞서 그 배경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2. 답변자의 교인 지도

⑴ 공회의 일반 원칙

① 세상과 교회의 분리
공회는 세상과 교회를 엄하게 분리합니다. 교회가 세상과 하나 되면 교회는 썩고 세상은 망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악령에 붙들려 자기들 옳은 대로 갑니다. 교회는 그 속에 살면서 천국을 갑니다. 둘의 신은 성령과 악령이며 둘의 기분은 성경과 세상법이며 둘의 가는 곳은 천국과 지옥이니 둘은 합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면 때문에 공회는 교회와 사회, 복음운동과 교회의 세상 사업을 엄하게 분리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교회 일만 전념 하지 세상에 직장이나 정치 운동이나 사회 활동에 나서지 않습니다. 목회자가 교회 목사직을 가지면서 교회 옆에 유치원을 운영한다든지, 다른 직장을 가진다든지, 사회 활동을 하는 일은 금합니다. 교회 이름으로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교인이 직장을 다니거나 사업을 하거나 정치가가 되는 문제는 목회자가 아니며 교회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상관 없습니다.
교회는 세상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교인에게 말씀대로 사는 길을 지도하는 곳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전도를 받아 나오고 믿는 사람들은 말씀을 바로 배워 자기 현실에서 바로 살고 그 결과가 세상과 주변에 빛이 되면 덕스러운 교인이 되어 복음 운동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② 공회가 반대하는 교회의 사회 사업
교회가 병원이나 고아원이나 학교를 설립하여 복음운동을 하겠다는 생각은 반대합니다. 교회는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만 가지고 있고 가진 것만 전하겠다는 말씀 때문입니다. 세상도 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게 맡기고, 교회는 복음 기관인 교회 아니고는 안 되는 것만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교회가 세상도 할 수 있거나 세상이 주업으로 삼는 일을 하게 되면 교회의 중심도 흐트러 질 수 있고 세상이 교회를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교회와 사업 충돌이나 경쟁이나 견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외부에서 보는 오해도 심각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는 하나님께 붙들리는 일이 최우선이고, 하나님께 붙들려 말씀을 전하다 보면 그 다음 사람도 그렇게 변화 되면서 복음 운동이 퍼지는 것을 가장 원만하며 좋다고 봅니다.
일단 단기적인 면만 가지고 본다면 교회의 세상 사업은 복음 운동에 대단히 큰 역할을 합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서툴고 계산이 없는 교회들은 다투어 그 일에 나섭니다. 그러나 세상 사업에 손 댄 교단과 교회들을 그 시기와 규모를 가지고 훗날을 살펴 보면 크게 잘한 곳일수록 교회의 타락과 쇠망은 빨라 지고 크다고 나타 납니다. 가다 보면 나중에는 그 복음 기관 자체가 세상이 되어 버려서 세상을 건지려 시작했다가 세상을 조금 교회 안으로 옮긴 다음 그 세상에게 그 교회는 삼키고 동화가 되는 길입니다.

③ 공회가 반대하는 교회의 사업주의
그렇다면 교회가 세상 사업만 하지 않으면 되는가? 여기까지도 동의하는 교회가 거의 없습니다만, 더 나아가 교회는 비록 전도나 성경읽기나 새벽기도 참석과 같은 신앙의 필수적인 사안에서도 단체 단위로 운동하는 것을 최대한 피합니다. 교회 내의 복음 사업이란 그 내용 자체는 복음입니다만 그 복음을 복음화 하는 방법이 많은 사람이 함께 모이면 인간의 심리에 힘이 나고 서로가 도와 주며 불이 일어 나는데 이 과정에서 각 개인이 자기 속에 성령에 붙들려 불길이 일어 나면 이 불길은 인간을 초월한 것이어서 남들이나 환경의 찬반에 상관 없이 그대로 계속 됩니다. 그런데 그 불길조차 주변에서 함께 모인 사람에게 영향을 받은 불이라면 그 사람들이 흩어 지면 그 불도 흩어 집니다. 그 사람들이 잘못 된 길을 가면 따라 가게 됩니다.
신앙은 애당초 내 속에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붙들고 역사하며 우리는 그 감동에 피동 되어 가는 걸음입니다. 여기에 주변과 환경과 사람이 모인 운동과 사업으로 힘을 가하면 복음 운동은 훨씬 효력이 있는 듯이 보이는데 바로 이 함정에 빠져 귀하게 출발한 복음 운동이 결국 세상에 편입 되거나 복음 운동을 복음 운동답게 만드는 내적 하나님의 능력을 포기하고 유명무실로 전락합니다. 공회는 이런 면을 꿰뚫어 보고 처음부터 하나님 한 분에게 붙들린 각 사람 1 명으로 출발하여 그 연장선에서 모여 지는 것은 환영하며 복으로 생각하나 그런 사람들이 모인다 해도 그 사람들이 선교나 회개나 어떤 형태의 복음 운동이라도 그 복음 운동을 운동과 사업에 치중하거나 그 쪽으로 기울어 지는 것은 극단적으로 조심합니다.

④ 교회와 목회자의 이름
개척 교회거나 목회자가 없어 교인이 교회를 맡거나 아니면 목회 출발의 첫 순간에 하나님의 인도를 몰라서 머뭇거리는 과정이라면, 교회와 세상 직업이 혼동 될 수 있고 목회자와 교인의 신분이 이중으로 유지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장막을 만들어 사업을 하면서 개척과 목회를 했던 것이 사례이며 역사적으로 그런 예는 많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 중심이 교회와 복음 운동의 전업으로 인해 세상 살기가 어려워 그러했던가, 진정 목회에 필요하고 교회 운영에 생각한 것이 있어 그러했던가?
원칙적으로 교회와 목회자의 이름은 복음 운동의 순수한 내용 외에 다른 곳에는 사용하지 못합니다. 서부교회의 차량이 동대신 1동사무소의 사회 운동에 주민 수송용으로 제공 된 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것은 일시였고, 서부교회를 오가는 학생들이 버리는 동네 골목의 쓰레기를 치우는 동사무소와 담을 마주하며 살면서 세상 의무와 책임에 불가피한 협조 정도였습니다. 서부교회가 복음운동의 일환으로 벌인 운동은 아니었고 서부교회의 교회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현재 교회가 유치원을 병설 기관으로 운영한다든지 노인 아동 청소년 장애 여성 환경 단체를 직간접으로 운영하거나 목회자가 그런 곳에 여러 종류의 직함을 가지거나 활동하는 것은 공회는 금지합니다. 목회자는 성경 읽고 기도하고 전도하며 심방하는 것이 전부라야 합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전도하며 심방하는 일의 일환으로 할 때 그 경계가 애매합니다. 심방 간 집에 마침 사고가 있다면 급하게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런 위험이 사전에 보이면 설명하고 막아 줄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를 최종선으로 정할 것인가? 그 것은 각 개인과 교회가 알아서 판단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의도는 알기 어려워도 시간이 가고 그 결과가 나타 나게 되면 그 나무를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⑵ 교회의 교인 지도

① 원칙
공회는 각 교인에게 하나님 한 분으로만 살고 성경만 기준으로 행동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 일은 예배시간에 설교를 중심으로 이루어 집니다. 그런데 배운 말씀으로 각 교인이 자기 가정과 경제와 생활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에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는 천차만별이고 설교 시간에는 한 말씀만 전하며 원리를 가르치고 성령이 각자를 직접 인도하도록 노력하지만, 그렇게 자라는 교인도 있고 그렇지 않고 헤매는 교인이 대부분입니다. 목회자가 설교만 하지 않고 양을 다스리는 이유는 바로 여기 있습니다. 말씀이라는 신령한 양식만 제공한다면 풀만 베어 갖다 주면 되지만 그 양들을 데리고 잘 곳과 위험한 곳을 피하며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목자의 또 한 가지 책임입니다.

- 생활 자립
공회의 복음은 어떤 교인에게든지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이 먹고 사는 문제를 남에게 의존하지 말고 자립하도록 합니다. 인간적으로 게으른 사람은 사고방식과 행동 자체를 고쳐야 하고, 신앙의 지식이 잘못 되면 지식을 바꿔야 합니다. 교회에 신앙 이름 밑에 숨어 목회자나 직원이나 각 직분을 핑계 삼아 게으른 것을 고쳐야 하고 또한 세상 생활에서 정말 말씀을 지켜 살면서 먹고 살아 보려면 이는 엄청 난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교인들에게 당하지 않아도 되는 고난의 길은 피하게 하고, 가질 수 있는 권리는 포기하지 않게 하며, 찾아서라도 해야 하는 일은 기쁨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부모나 형제나 남이 땀 흘려 모은 돈을 내가 사용하면서 믿고 산다는 구조는 근본적으로 인식과 행동을 바꾸지 않으면 복음의 사역자가 아니라 복음의 기생충이 될 수 있습니다. 서부교회에 오기 전에 여전도사들이나 여러 위치에서 교회나 복음 기관의 주요 직책자들로 살았던 교계 유력 여 교인들은 어린 시기에 일제 때 여학교를 다니는 등의 화려한 세상 경력자들이었습니다. 서부교회로 오고 이 노선을 제대로 알고 순종할 자세가 되었을 때, 백 목사님은 그들에게 머리에 무거운 참기름 소금 등을 이고 골목마다 다니며 행상을 하는 제일 어려운 일들을 시켰습니다. 명예, 안면, 체면, 안락, 지도 위치 등 모든 것을 다 팽개 치고 앞으로 그들이 지도할 서부교회 교인들 중에 가장 어려운 교인들의 가장 어려운 생활을 실제 오랜 시기 동안 해 보게 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로서 해야 할 모든 일을 다하면서 세상에 제일 밑 바닥에서 고생할 일을 다하는 일을 함께 하여 땀 흘려 돈을 벌고 세상에서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떤 세계인지 가장 극한을 다 체험하게 하여 타 교회에서 교회 연보로 먹고 살며 권위 있게 지시나 하고 대접이나 받던 과거를 다 씻어 버리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각 집사님들이 어떤 장사를 하며 장사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며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등을 일일이 다 지도를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구역장으로 활동하면서 더 이상 세상 생활을 해 볼 수 없도록 교회 내 자기 할 일이 넘치게 될 때 비로소 최소한의 생활비를 주고 교회 일만 하게 하였습니다. 그 사례는 다른 사람들로서는 생활을 할 수 없는 수준이나 이미 극단의 경우를 겪었으므로 모두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강단에서 목회자가 입으로는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고, 교회의 각급 지도자들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목회자 신학자 지도자들에게 일반 교인들이 힘들게 살아 가는 형편을 주면서 그들이 입으로 말한 대로 살아 보게 하면 말씀을 어기든지 아니면 세상이 힘들어 세상에서 말씀대로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든지 둘 중에 한 가지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자기는 해 보지 않고 남에게만 지시하는 것, 복음의 일대 원수입니다.
남반이면 세상 속으로 가서 먹고 살며 가족을 책임 지는 경제면으로, 여반이면 아이를 낳고 기르고 살림을 사는 일상 생활면으로, 학생이면 공부를 하면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 돕는 생활
이 모든 일을 다 거쳐서 자립의 신앙과 자립의 생활에 성공하고 실력을 갖춘다면, 그 다음에는 자기가 거쳐 온 모든 과정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또 그렇게 만들 수 있어야 복음의 사람입니다. 태어 나면 자라는 것처럼, 자립을 하면 가정을 이루고 책임을 지며 또 다른 생명이 자기를 이어 가게 하는 것은 필연입니다. 자기가 말씀대로 세상에서 자립을 제대로 해 봤을 때만 이어 지는 역사에 설 수가 있습니다.

- 목회자의 역할
기성 교회가 되어 교회 내에 말씀대로 살며 자기 생활을 모범적으로 사는 교인들이 있다면 목회자는 자기가 살아 본 과거이므로 예배를 통해 은혜를 구하고 설교를 통해 가르쳐 놓으면 실제 생활 지도는 교인 중에 앞 선 사람이나 구역장님들이 맡아 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그런 지도 교인들이 없는 시골이나 그런 구조의 교회나 개척 교회인 경우에는 목회자가 교회의 연보까지 관리해야 할 상황도 있습니다.


② 답변자의 경우
이제까지 설명이 공회 노선이며 성경에서 당연하다고 인정한다면 이 번 질문에는 이미 답변을 다한 것과 같습니다. 이 원칙을 잘 알기 때문에 또 이 노선을 확정하고 걷는 이상 답변자가 알면서 죄를 짓는 일은 별로 없을 터이고 실수를 했다면 돌아 서는 데 그렇게 시간 걸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세나 교회 위치나 교인의 지지 정도나 경제나 모든 면에서 답변자는 이미 지난 걸음을 통해 외로움이나 공회의 제명이나 그 어떤 상황도 어려움이 될 수 없음은 증명 되었습니다.
다만 이 홈의 신규 방문인들에 대한 훗날 반복 되는 질문이나 안내를 빠르게 또 간단히 하도록 이 번 기회에 자세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⑶ 답변자의 교인 지도 3 가지 원칙

답변자는 이 노선을 확정한 이상 이 노선 밖에서 의논하고 연구하는 일은 다른 교파나 다른 공회인들이 할 일이며 답변자의 전문 전공 분야는 이 노선을 전제한 사안에만 국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반 신앙 원리는 앞에서도 약간 언급했고 또 평소 이 홈에서 많이 설명했으므로 모두 생략하고 여기서는 교인의 경제나 공부나 세상 일에 깊숙히 간여한 문제로 오해하는 구체적 사안만 설명합니다.

① 경제 지도
- 경제 실패는 신앙 실패
백 목사님 생전부터 여러 입장을 거치면서 유명한 신앙인의 뒷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이 노선의 기본 입장도 그렇지만 답변자 개인 경험으로도 경제 실패하고 신앙 성공한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 나사로 외에는 경제 성공을 했든지 아니면 할 수 있는데 버린 경우였습니다. 물론 경제 성공이 신앙 성공으로 돌려 말해서는 안 됩니다. 경제 성공자는 신앙의 성공자일 가능성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경제 실패자는 신앙 실패자로 보면 될 정도입니다.
아무리 이 노선의 세계를 깊이 깨닫고 아무리 타 교단이라 해도 또 자기대로 초월적 신앙을 가졌다 해도 경제를 초월하거나 장악하지 못한 분들은 언젠가 경제에게 붙들려 자기 입과 자기 손으로 원치 않는 길을 걷고야 맙니다. 그래서 교인을 기를 때 먼저 죽으나 뒤에 죽으나 죽는 것은 매 한가지라고 한다면, 교인이 될 수 있는 교인으로 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즉, 경제를 가르쳐서 땀 흘려 돈을 벌고 아껴 사용하며 말씀대로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공회 교인이 되고 공회 교회의 일꾼이 되고 그 중에 목회자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돈을 우습게 안다거나 남의 돈으로 산다거나 돈을 많이 쓰지 않고는 못 배긴다거나 돈을 벌 줄 아는 건강이나 체질이나 사고방식이나 실력을 갖지 못한 사람은, 말씀은 말씀대로 배우면서 동시에 시급하게 경제 실력을 갖추게 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 목회자들의 경우까지
백 목사님 사후의 공회 교회들의 분열 과정에서 3 분의 2가 수정으로 3 분의 1이 보수로 나뉘었는데 수정으로 나간 목회자 중 적지 않은 분들은 교권 지도부에게 밉 보이게 될 때 자기 목회에 닥칠 어려움을 생각하여 마지 못해 간 경우입니다. 만일 경제 면으로 어떤 극단적 상황이라도 쉽게 넘어 갈 수 있었다면 목회자 자기 한 가정이 방 한 칸에서 새로 시작하면 되는데 애써 노력하여 그래도 있을 만한 교회에 앉아 있다가 만일 인사이동을 당하면 공회 목회자 양심으로 세상 돈을 벌러 갈 수는 없고 또 간다 해도 자신이 없고 그렇게 될 때 가족의 생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현재 이 상황은 공회들을 물론하고 각 교회의 목회자 경제 문제로 이어 지고 있습니다. 경제 문제가 타 교단에 비해서는 아무 것도 아닌 정도라 하나 과거 공회 기준으로 볼 때는 확실하게 도가 넘었습니다. 그런 상황이 타 교단과 같은 수준으로 치닫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답변자는 비록 시골 바닷가 교회를 맡아 있지만 한 교인이라도 답변자가 목회자로서 상대할 수 있는 교인이라면 이 노선과 설교와 말씀 생활만큼 꼭 같은 비중으로 교인들의 경제 면을 상대했습니다. 신앙과 경제는 수평 비교를 할 수 없는 하늘과 땅의 차이지만, 경제가 해결 되지 않으면 신앙의 붕괴는 뻔하기 때문입니다.

- 지식이 실행으로 나가는 첫 걸음
아다시피 공회 교인들은 공회 교회를 제대로 다니기 시작하는 순간, 이미 지식 면에서는 아주 굉장한 수준에 도달했거나 아니면 최소한 비판력만큼은 그렇게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백 목사님에게 평생을 배우고도 그들의 지식이 그들의 신앙 건설과 생활의 회개와는 상관이 없었으므로 백 목사님 사후 공회는 일거에 다 무너 졌습니다. 그리고 타 교단에 중심 교인이 되고 앞 자리에 앉거나 공회를 어떤 형태로든지 버리는 교인이 즐비했습니다. 그리고 더 한탄인 것은 공회 내에 그대로 앉아 있는 분들입니다. 비교 확신을 통해 앉아 있는가? 갈 곳이 없고 원래 새로운 환경에 주저하는 성격이어서 있던 자리에서 현재를 찾아 보려는 단순 안정 심리 때문인가? 공회 내의 교인들의 지난 20여 년 이상의 행적을 볼 때 공회성이 원인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경제라는 것이 신앙 생활 전반을 통해 비교하면 신앙 생활에서 가장 쉬운 부분이며 첫 걸음에 해당 됩니다. 경제 생활조차 익히지 못했고 넘어 서지 못했는데 들은 지식만 높아서 모두들 입으로만 비판하고 잘 믿고 왔던 것이지 신앙의 내용을 실사하게 되니 너무 허무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답변자는 당연히 백 목사님 사후의 공회가 유지 발전 되려면 이 노선의 연구는 물론 이 노선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경제 면을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절감하고 교인들의 경제 지도에 적극 나섰습니다.

- 최소한의 수준
주일을 정말 제대로 다 지키고도 자기 가족의 경제를 책임 질 수 있는가? 그렇게 되어야 이 노선의 첫 교인입니다. 주일은 기본이고 수요 금요 밤예배를 다 지키면서 경제 생활을 할 수 있는가? 이렇게 되면 굉장히 많은 분들이 자격 미달이 될 것입니다. 단순 자영업은 급격하게 몰락하고 있고 신규 진입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이미 수십 년 자리 잡은 가게를 운영하는 분들은 자신을 그런 수준을 통과했다고 생각할 것이나 그 가게를 접고 새로 다른 것을 시작해 보라 하면, 또는 자본 없이 맨 손으로 새로 하라 하면 가능할까요? 대부분이 안 될 것입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공회 교회는 과거 주일 오전과 오후가 비슷하고, 주일 오후와 밤예배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던 상황을 지켜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일만 어떻게 지키고 있으나 밤예배는 이미 편하게 빠지는 상황이 되어 교회 별 출석 통계를 한 번씩 접할 기회에 밤예배의 붕괴가 급속도로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38선이 무너지면 서울이, 서울이 무너지면 낙동강까지는 일사천리로 점령 당하는 원리와 같습니다.
그런데 공회 신앙은 애초부터 새벽예배가 기본입니다. 비록 새벽예배를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해도 최소한 경제 면으로만 본다면 새벽예배를 다 참석하는 데 불편이 없는 경제 실력을 갖추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미 공회의 제대로 된 신앙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새벽 4:30, 평생 계속하는 이 생활이 체질화가 되어야 하되 그 것이 가능할 수 있는 경제인가?
과거는 단순 노동이나 소규모 자영업만 가지고 있어도 이런 생활이 가능했습니다. 지금은 그런 환경이 급격히 없어 집니다. 그런데 청년들의 사고방식은 교회서 공회 노선으로 자라 나오다가 자기들의 직업 환경을 접하는 첫 순간이 되면 사회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졸업장과 자격증과 각종 증명서를 제출하여 어디든 주변 친구들이 가려 하는 조건을 따져 진학과 진로를 밟고 있습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공회 교회들의 급격한 붕괴의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공회가 워낙 폐쇄적으로 내부 결속력이 대단했기 때문에 아직도 50대 교인들은 과거 자기 스스로 좋아서 이 노선에 살았던 분들이 많고 그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신앙 계대를 위해 노력하지만 자기들만 이 노선의 마지막 세대가 되어 새벽기도 생활까지 하고 있을지 몰라도 그들의 자녀 세대는 공회의 기본 예배 생활까지 붕괴 되는 현장을 직접 목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언제부터 노력했어야 했는가? 답변자는 백 목사님 사후인 1989년 8월이후부터 사후의 공회 노선이 제대로 이어 질려면 어디부터 노력해야 하는지를 여러 면으로 생각하면서 경제 면은 당연히 제일 우선 순위에 올렸습니다.
이 홈을 운영하다 보면 저절로 전국의 타 교단이나 총공회의 각 공회 형편과 교회들의 형편을 깊게 들을 기회가 있습니다. 자라 나오는 청년들이 제대로 예전처럼 신앙 모습을 가진다면 공회 교회는 별도로 전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부흥은 하게 되어 있습니다. 많이 낳지, 그들이 자라서 이 노선 기준으로 결혼하지, 그들이 과거 부모 세대처럼 신앙 생활을 하게 된다면 10 년이면 무조건 감이 잡히게 되고 20 년이면 어떤 교회든지 공회 교회는 주변 여건과 상관 없이 부흥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새 교인을 전도한다며 공회의 노선적 최저선을 다 내어 주면서 안에서 커 나오는 사람들은 일반 사회나 타 교단 식으로 공부를 시키고 경제 활동을 하게 하니까 내부에서 자라 나온 식구들이 자기 교회 내부에 남는 비율이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 지고 있습니다. 타 교단 방식의 전도는 타 교단들이 수십 년씩 써 먹고도 이제는 약발도 먹히지 않고 교회를 탈선만 시키고 내부 교인이 세상으로 나가게 되는 방법인데 공회 교회는 이제야 그 방법을 사용하느라고 분주하고, 내부에서 길러 갈 사람은 밖으로 다 보내고 있으니, 공회 교회들의 출석수는 그 수치도 빈약하지만 그 구성 요소는 마치 고사목화 되어 가던 재건교회와 동일합니다.


② 결혼 지도
- 결혼 실패, 신앙 실패
경제와 원리는 꼭 같습니다. 모두 설명 드렸습니다. 항목이 경제 대신에 가정일 뿐입니다. 결혼에 실패하면 그 사람의 신앙은 필패입니다. 어려서 미리 단속하고 20 세 전후가 되면 신앙 중심으로 결혼 시키고 30대가 되면 4 - 5 명의 아동을 거느린 부부가 되어 집회와 새벽예배를 참석하며 교회의 모든 일에 핵심 교인이 되는 것, 우리는 이보다 더 성공하고 아름답고 훌륭한 인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기준으로 결혼하려고 30대를 넘기거나 자신들의 진로 때문에 출산이 늦어 지거나 아이의 숫자가 적은 것 또는 신앙에 불편한 상대와 결혼하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로서는 생각할 리가 없으나 이 노선은 그 모든 평소 신앙 전체가 결혼의 상대를 찾고 이후 가정을 꾸려 나가는 모습을 통해 실행이냐 입에 발린 신앙이냐는 문제로 접근합니다. 좀더 엄하게 말하면 본 교회 신앙 생활을 유지하거나 최소한 공회 교회 내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우리의 기준입니다. 물론 타 교단에게는 그 교단 그 교회 기준으로 그렇게 하라 합니다. 그 것이 소신이며 당연하며 그들의 신앙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일 것입니다.
세상 일정 때문에 또는 세상 기준이나 분위기 때문에 세상 수준에 맞는 결혼을 하게 되면 평소 신앙 전부는 다 포기해야 합니다. 타 교단은 평소 신앙과 세상 수준의 결혼을 함께 유지할 수 있는 여지가 많으나 공회 신앙은 집중력이 강하기 때문에 양자 병립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결혼이 실패면 신앙은 뒤져 볼 것도 없다는 정도로 지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교회는 여반이 많고 아무리 신앙 결혼을 위해 기준을 낮추려 해도 공회 노선에서는 대상이 너무 적기 때문에 신앙에 다 맞출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세상 기준을 최대한 낮추고 그래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상대방을 구하지 못하면 타 교단이나 불신자라도 결혼을 추진합니다. 이 경우 이 노선의 특성을 설명하고 신앙 자유를 약속 받는 조건과 상대방에게 최소한 이 노선 신앙에 방청을 요청하는 선에서 결혼을 하고 이후 문제는 전도나 선교 차원에서 노력합니다.

- 경제 지도 참고
기타 모든 사항은 경제 지도를 참고하면 좋을 듯합니다.


③ 공부 지도
- 공부 실패, 신앙 필패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실패라는 말이 아니라 공부에 팔려 신앙을 손해 보면 공부 실패라고 합니다. 또한 게으르고 싫어서 공부를 포기한다면 경제나 결혼에도 동일한 병폐가 나타 날 수 있어 기회가 주어 지면 열심히 하도록 합니다. 공부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주신 현실이면 그 현실의 선호와 난이를 물론하고 말씀으로 사는 우리에게는 실행의 현장이기 때문에 말씀 실행에 실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공회는 공부에 관한한 기본적으로 초등학교 정도만 한다면 신앙과 세상 생활에 불편이 없고 어디까지든지 출세하는 데도 불편이 없다는 체험적 지도를 합니다. 중고등학교는 가정 형편이 좋고 학습력이 뛰어 나며 신앙도 별 문제가 없다면 시킬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의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목회자들은 자녀 교육을 초등학교 정도만 시켜 세상에 내 놓으면 자기가 알아서 벌어 가며 공부를 하든지 돈을 벌든지 충분할 수 있고, 교회가 어려운데도 무리할 것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공부를 하게 된다 해도 새벽예배와 밤예배와 주일을 잘 지키면서 할 수 있는 공부는 피할 것이 없고 무리가 되면 신앙이 아니라 공부를 포기하는 것이 공회의 원래 길입니다. 그런데 대개 교인들이 학교에 가는 것과 진학의 과정을 너무 세상 분위기와 같게 생각하여 정신 없이 그들과 경쟁하다 보면 어느 날 학생은 남의 사람이 되어 있고 신앙으로는 타 교단처럼 되며 하나님 앞에 남남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를 실무적으로 극복하지 않고는 교회는 학생 교육에 실패하고 교회의 자라 나오는 세대를 교회 밖에 던지게 되고 그 대신 교회 밖의 다른 사람을 전도하러 다니는 우스운 모습이 됩니다.

- 경제 지도 참고
경제 지도처럼 가정 지도처럼 공부 지도 역시 공회는 모든 면으로 신앙 기준을 적용하여 지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스스로 다 잘하면 이상적이나 경험적으로 서부교회의 전성기 때에도 공부 지도가 제대로 되는 가정은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는 그래도 결혼과 경제 면이 바로 된 경우가 많았으나 지금은 사회 분위기의 급변과 공회의 지도력 붕괴로 인해 결혼과 경제 면이 제대로 된 경우를 듣기 어렵습니다.
공부를 위해 또 결혼으로 인해 또 경제 생활로 인해 공회 내에서 확대 재생산 되어야 할 내부 교인은 속속 외부로 나가고 있는데 신앙 기준이 아니라 경제와 공부와 결혼 때문에 공회 노선을 떠나게 되거나 후퇴 한다면 이는 공회 노선의 포기며 해체라고 생각합니다.



⑷ 구체적 지도 사례

① 경제 지도

- 사례1: 개척 교회 목회자의 경우
1989년 부산의 법학과를 지원한 중간반 학생을 목회에 소망을 두고 나가자며 연구소에 채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가정 환경에 굳이 그 공부 다 할 필요가 없겠다는 현실적 판단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겪어 볼 때 천성은 좋으나 생활력과 활동력이 미비하여 연구소 직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식만 높아 가고 교회 직원의 이름에 기대어 실제 현실 생활에 부정적 모습을 보였습니다.
22 세가 되던 1991년에 결혼을 시키고 신풍으로 불러 1 년을 더 살펴 본 후에 바로 개척을 내 보냈습니다. 내 보내면서 10 년 동안을 현장 노동을 시켰습니다. 답변자가 대학 2학년인 21 세 되던 1977년에 그렇게 했고 대학 3학년과 4학년에 노동에 이어 국제시장에서 장사하며 어떤 현실에서든지 말씀으로 살며 경제와 사회에 자립의 실력을 쌓던 방식입니다. 77년 7월 새벽예배를 마치고 걸어 나오시던 목사님은 남반 복도 중간쯤에 서서 한참동안 노동 현장에 주의할 일을 설명하고 계셨습니다. 남들이 보면 마치 목사님은 노무 반장이나 현장 소장 정도로 보였고 답변자는 현장 사무실에 들러 첫 일을 소개 받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경험 그대로 지도했고, 조사님은 10여 년간 개척을 출발한 중소 도시에서 해 보지 않은 일이 없었고 비 오는 날처럼 쉬는 날에는 장사나 사업에 관련 된 일과 교인들의 병원이나 법원 일 등 대소사를 맡아 움직였습니다. 그 10여 년 동안 그 교회는 가정 교회 정도의 모습이었고 저녁 7시 예배를 겨우 맞추고 뛰어 와서 세수만 하고 강단에 서는 기간을 보냈습니다. 10여 년 세월을 그렇게 보낸 다음에야 조사님의 체질은 부지런하고 민첩하며 교인들의 모든 생활을 모르는 것이 없게 되었고 교인들은 어떤 문제든지 조사님의 지도를 받거나 도움을 받아 사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10여 년이 지나고 그 동안 경제 생활은 조사님이 스스로 벌어서 주로 살았으므로 교회 경제는 주로 저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배당을 건축할 때는 설계에서 건축 허가와 토목과 모든 건축 세부 사항을 전부 실무 지도자 역할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교회는 교인들의 진학과 진로와 기술 습득의 구체적인 내용과 향후 사업 진행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조사님이 직접 다 지도하고 있습니다. 10 년 동안 교인들이 사는 현장을 배운 다음 2000년대 초에 예배당을 마련하고 지금은 주일 오전 출석 1백 명에 이르는 교회가 되고 지금은 공회와 연구소에 각각 월 1백 만 원씩을 연보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신앙으로 능력을 받아 사무엘처럼 이 모든 과정을 초월하든지 아니면 다윗처럼 양떼 몇 마리를 맡아 실제 모든 골짝과 들판을 거쳐 본 다음에 점차 자라 가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특수 은혜를 받지 못했다면, 그리고 오늘처럼 모든 것이 다 갖춰 진 세상에 이 노선에 필요한 지식이 넘치는 지금은 목회자든 교인이든 이제 이 노선 지식은 넘치니 실행이 문제고 실행은 세상 속에 들어 가서 이 말씀대로 다 살면서 실제 벌어 보고 그리고 이 노선의 교훈이 옳고 현실 속에 살아 있고 그리고 그 실천 속에서 자신이 제일 먼저 만들어 지고 모든 것이 확인 되고 확정 되었을 때 비로소 목회자도 되고 교인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 사례2: 타 공회 교회 직원 출신들
타 공회 대표 교회 직원들이었고 답변자를 거쳐 원래 위치로 돌아 갔으므로 모르는 분들이 없다고 생각하여 사례에 추가합니다. 목사님 사후 교회 내분을 보며 그 동안 쌓여 진 지식으로 소속 공회와 교회를 비판하다 교회 직원을 그만 둔 경우입니다. 교회 내에서는 공회와 신앙을 잘 알고 지도자로 뛰었던 분들인데 막상 세상으로 나온 뒤에는 한 가족을 책임 질 실력도 상황도 아니라고 보여 졌습니다. 답변자와 신앙과 교회 진로 문제로 문답이 많았는데 답변자는 그 분들께 그 분들 평생에 듣고 배운 지식이 자신을 고치는 실행에는 사용 되지 않고 남을 비판하며 교회 간판 뒤에 안일과 무책임만 쌓았으니 그 곳에 더 있으면 더 큰 죄인들이 되겠고 사회인으로서 한 사람 몫도 감당 못하는 장애자들이 될 터, 차라리 이 곳으로 오면 최소한 경제 문제만은 세상 어디를 가도 남 신세 지지 않고 남을 돕는 사람이 되게 해 드리겠다고 불렀습니다. 겉으로는 타 공회 중요 인물들을 불러 들인 것이나 내용적으로는 그 공회나 교회로서 가장 강한 반대 인물들을 해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분들께 신앙 면에서는 할 말도 없고 해 봐야 듣지도 않는 목회자급들이었습니다.
1998년에 답변자 교회로 왔고, 한 분은 주변의 도움 속에 고급으로만 살아 왔기 때문에 대소변이 막히면 맨손으로 뚫고 해결하는 화장실 변기 수리부터 가르쳤고, 한 분은 스스로 노력은 했으나 길을 찾지 못했던 분이고 세상 큰 것에게 사실상 주눅 들어 산 내면이 있어 대기업이나 대형공공기관을 자유롭게 상대하는 업무를 먼저 가르쳤습니다. 불과 3 개 월 정도가 지나자 자신들의 직업에 방향을 잡았고 1 년 안팎에 그 분들은 평생 경제 면으로 불편함이 없고 어디든 막힐 곳이 없는 실력을 갖췄습니다.
과거와 살아 가는 방법과 기준이 확연하게 달라 지게 되자 최고급 외제 전용차량을 사겠다고 제의를 하는 정도였습니다. 2011년에 이르러 그 분들은 자기 분야에서 답변자가 이제 알아 듣지도 못할 만큼 사업의 활동과 범위가 자유로웠졌고 자신들의 가족들까지 불러 그들은 더 큰 사업가를 만들게 됩니다. 경제 면으로 확고하게 된 이상 답변자는 그들의 과거 신앙 이력 상 신앙 지도란 적용 되기 어렵지만 이제 다른 분들을 위해 제대로 된 신앙 충성자로 돌아 설 것을 부탁했고, 그 시점에 한 분은 답변자 사는 곳에 물이 좋지 않아서 멀리 간다 했고 한 분은 답변자 가족의 병원 입원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아서 섭섭해서 나간다 하고 떠났으며 이후 현재 대구공회 계통에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답변자로서는 그 분들로부터 1 원짜리 하나도 대접 받거나 댓가를 받았다는 말을 듣지 않은 것, 그리고 답변자의 그 어떤 잘못이라도 직접 흠이 될 만한 지적을 받지 않았다는 것만 가지고도 큰 성공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 입에 비판 대상이 되지 않은 인물은 없었던 정도였습니다. 답변자가 이 사례를 소개하는 것은 공회 신앙에 어려서부터 철저하고 공회 지식과 경력에 최고의 최고까지 올라 간 이들이 정작 자기 가족에게는 세 끼 밥을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천국과 신령한 양식은 한량 없이 내려 줄 수 있는데 어떻게 육체의 양식은 한 가족을 책임 지지 못하고 이 말씀 그대로 살면서 취직할 곳과 경제 생활할 곳이 없는가? 이 것이 공회의 거룩한 신앙이며 세상을 초월한 처신일까?
백 목사님 생전에는 매일 쏟아 지는 새로운 말씀을 배우느라고 실력이 있든 없든 일단 배워 놓고 봐야 한다고 쳐도, 사후가 되는 순간 과거 기록은 완벽하게 남아 있고 이제 그 말씀대로 자기를 얼마나 고치며 실행하며 남들에게 현실에서 이 노선으로 살 때 가야 할 길과 내용을 지도해야 하는데 막상 제대로 아는 것도 없었고 자신을 고친 것도 없었고 경제라는 최저며 인생의 출발선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분들이었습니다.
그 분들뿐일까요? 이 노선에서 제대로 알고 자란 분들, 누구에게나 이 노선을 두고 할 말이 많은 분들일수록 이런 현상은 뚜렷합니다. 이 노선이 세상에 나가 이 말씀대로 살면서 하루 세 끼를 해결하지 못하게 한 비경제적 노선인가? 이 노선은 세상 경제를 지배하거나 경제 안에 들어 가면 익사하는 수준일까? 이미 많이 배웠으니 이제 실행하여 어디를 가든 못할 것이 없는 자유인이 되어 이 노선의 범위와 한계를 제대로 넓혀 갈 수는 없는가? 당연히 이 노선을 연구하고 전하는 사람이라면 현실 속에서도 이 노선은 이 노선이라는 점을 안내할 필요가 있고 필요하면 지도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이 분들이 맨손으로 시작하는 분들이었고 그런 정신으로 출발하자 했기 때문에 한 분은 방 얻을 돈이 없어 교인 아랫채 창고를 여러 교인들이 뜯고 작은 방 2 칸 정도를 넣어 살게 했고, 사업상 휴대폰이 있어야 하는데 그 돈조차 없어 답변자가 당시 사용하던 교회 업무용 휴대폰을 몇 달 정도 빌려 준 적이 있었습니다. 이 것을 교회 경제 비리라고 한다든지 교회의 기자재 사용의 오남용 사례라고 한다면 답변자가 개인 월급에서 그 돈들을 갚아서라도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첫 사업에 멋 모르고 손님을 상대하거나 기술 현장에서 막히는 문제가 있을 때나 사업의 중요 방향에 혼선이 있을 때마다 답변자는 구체적으로 안내하며 지도했습니다.
한 사람이 배우자 그 다음 사람이 앞에 배운 사람에게 배워 기술자가 되었고 그 다음에 또 다른 사람이 따라 배우며 교회 내에는 직업다운 직업 없이 살던 분들 여러 가정들과 새로 온 가정들이 같은 사업을 공유하고 배우며 교회의 양 쪽에 있는 2 개 도시의 동종 사업의 흐름을 잡습니다.
지금 그 분들이 다 가셨으나 그 분들과 관련하여 4 가정이 같은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정들의 경제 활동으로 인해 답변자 교회 주변에서는 이 노선에서 직업 환경을 가지기는 어려운데도 집회와 새벽예배와 교회의 모든 일을 도맡는 일꾼들이 생겨 졌으니 답변자는 그 분들께 감사할 일입니다.
소결로, 위의 질문 내용은 이 과정에서 발생한 일들을 부정적으로 들었나 싶습니다. 사업이란 것도 기술이라는 것도 전혀 모르던 이들이 생전 처음으로 모든 것을 배우며 출발했으나 서툴어서 별별 우스운 일들이 다 있었을 것입니다. 실제도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답변자 눈에는 걸음마 처음 배우며 넘어 지고 깨지는 일들이었습니다. 또 주변에서 갑자기 와서 크게 성공하는 분들을 보면서 답변자가 기존 교인들을 내치고 교인을 선별 지원하며 자기 세력을 구축하는 것인지 의심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답변자는 체질적으로 그런 추론과 변론에 매이지 않는 편입니다. 세월이라도 증명할 것입니다. 현재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마 이런저런 일들 중간에 별별 일들이 주변에서 언급 되어 졌나 봅니다. 아는 분들이라면 이 정도 설명이면 충분할 듯합니다. 목회자들로서 솔직히 부러울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답변자는 공부 외에 이런 세상 문제를 두고는 총공회 목회자들 중에 제일 끝 줄에 설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설교록 숨에 숨어 있는 갖가지 교인 지도법과 세상을 대처하는 지혜, 그리고 모든 목회자들이 그 분 생전에 얼마든지 배울 수 있었던 기회에 서로가 함께 배웠던 것을 실제 그대로 해 본 결과일 뿐입니다.
답변자가 괜찮게 한 것이 있었다면 이 노선의 당연한 교인 지도의 사례 중 하나일 것이고, 답변자가 과도히 했거나 잘못한 것이 있다면 답변자의 부족입니다. 그런데 알면서 짓는 죄는 별로 없기 때문에 좀더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잘못 된 것이 있다면 지적하면 좋을 터인데 이렇게 발언의 기회가 제한 없는 게시판에서조차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하지 않아서 이 번 답변도 무슨 논문이나 된 것처럼 적고 있습니다.
답변자의 교회나 연구소나 공회 운영에서 경제나 교인의 경제 지도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답변자의 이런 사고와 처리 방식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지도 이념과 방향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지적해 주시면 검토해 보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구체적 행동에서 발생한 실수라면 너그러이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백 목사님은 놀라운 차원에서 살았으나 답변자나 이 글을 읽는 우리 동역자들은 서로 큰 차이가 없는 다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지적해 주면 고칠 수 있고, 말을 돌려 빼 버리며 흑암 속에서 필살의 무기나 한 번씩 날린다면 구원의 건설을 위한 말이 아니라 상대방이 다치고 망하는 꼴을 보고 싶은 심리의 발로일 수 있으니 옳고 그르고를 떠나 우리의 입과 글은 구원 건설에 방해 될 때 지극히 큰 값을 받게 됩니다.

사례3: 답변자 교인들의 경우
답변자는 교회 교인들에게 공회 일반 목회자 정도로는 기도와 말씀 접하는 시간과 교인을 가르치는 설교 강단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방 역시 답변자는 그 형태와 방법이 조금 다를지라도 교인 가정 거의 전부를 파악하고 또 답변자가 해야 할 일이나 필요한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답변자가 교인들을 위해 평소 신앙 지도 외에도 생활 지도에 나설 때는 사택의 가족들 이상으로 파악이 된 상태입니다. 모르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 바로 경제 지도에 나서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런 경우는 교회 주변 마을 사람들이 교회 옆에 사는 이유로 너무 피해가 많다고 늘 불만이 많기 때문에 그들에게 소음과 많은 사람과 아이들과 차량으로 인해 미안한 마음 때문에 그들이 생활 속에서 억울한 일이 있다고 찾아 오면 아는 대로 안내하여 한 가정에 몇천 만 원씩 정도의 혜택을 받게 해 드린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일 때문에 교회를 나오는 경우도 있으나 전도를 위해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물질 구제는 전도에 대개 역작용이 많습니다. 교회가 마을 가운데서 주민들에게 생활 불편을 야기한 데 대한 성의 표시입니다.
주로 교인들을 지도한 경우는 가장 흔하고 쉬운 것이 건축 설비 쪽이며, 그 다음은 여러 가지 형태의 장애나 극단적 곤란 가정에게 우리 사회의 각종 제도에 따라 신청하는 복지 제도에 대한 안내입니다. 법과 제도로 볼 때 권리 확보를 할 수 있는데도 시청의 훼방과 거짓으로 속수무책 당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남의 것을 훔치거나 침해하는 것은 엄하게 막고 나서야 하지만 마땅히 돌아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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