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의 산중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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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7 00:00
공회는 자연 속에서 기도하는 생활이 늘 습관화 되어 있습니다. 목회자는 원칙적으로 늘 산 속에 있어야 하고, 교인들도 한 주간에 두어 차례씩 그렇게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조금 신앙 생활을 하는 이들은 산에서 자고 기도하다 일상 생활이 필요하면 그 때만 내려 오는 정도입니다.
산 생활을 많이 하다 보면 '해충'이나 '맹수'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공회의 자연을 접하는 생활 모습 하나를 소개합니다. 다음 글은 제가 근무하는 교회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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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의 기도실이나 내계의 집회 장소를 이용할 때 가질 상식입니다.
설교록(85.10.11.금새)을 읽기 좋도록 일부 교정했습니다.
(해충, 맹수에 대한 마음 자세)
양산동 기도원의 기도산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모기 그 놈도 죽여 주십시오! 내가 그렇게 할 권리가 없습니다. 내가 죽일 수는 있습니다. 모기나 지네 같은 독충이나 독사나 뭐 그런 것도 그렇습니다. 나는 그 산에 그렇게 돌아다녀도 뱀을 한 번도 못 봤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올라가면 뱀이야. 아, 여기 뱀이 있습니다. 하도 그래요.
내 천막 앞에 뱀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도 눈에 안 보였습니다. 집사님 한 분이
' 아, 여기 뱀이 있어요'.
'어디 뱀이 있어요?' 그러니까
'여기 와 보시소.' 보니까 딱 오그려 가지고 있습니다.
'이거 죽여 버리고 가요.'
'왜 죽여? 그거는 제대로 다 자유가 있는데'
죽여서 필요할 때는 죽이지만 필요 없을 때도 죽이는가?
기도할 때에 주님이여, 이것이 여기 성도들이 기도하는데 믿음 적은 사람들이 와서 기도하면 이거 구원 이루는 데에 손해를 보이니까 구원 이루는데 도움 주시기 위해서 모든 만물을 짓지 안했습니까? 아, 이런 것 좀 처소를 딴 데로 옮길 수 없습니까? 딴 데로 옮겨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했다 말이오. 그렇게는 기도하지만 월권은 못해. 조금이라도 월권할 수는 없어요.
우리가 거기 풀이 있으면 내게 방해가 되고 없애는 것이 필요하면, 싹 베서 없앨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실 때 그것을 내버려 두면 지장 있겠다 요런 거는 나무도 꺾을 수 있지만 아무 소용 없이 꺾는다는 것은 주인공에 대해서 아무 관심이 없는 그런 일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나뭇가지 하나에도)
어떤 사람이 오르막에 똥장군을 지고 올라가는데 땀을 쭐쭐 흘리며 올라가는데 그 옆에 나무가지가 드려졌다가 그만 눈을 쿡 찔러 버리니까 그 땀 흘리고 올라오는데 부애가 나 가지고 그걸 꺾을라고 꽉 거머졌으나 손을 얼른 떼면서 '아, 이거, 이것은 내가 잘못해 놓고 이렇게 하는 것은 내게 대항하는 것을 복수하는 행위다. 요거는 복수 행위지 요거는 정당하게 나무를 꺾는 것은 아니다. 복수행위다. 요 복수행위로 요것 하나 꺾어 버리면, 사람은 자기 중심으로 사니까 자기 중심에 거리끼는 것을 다 복수하게 되면 복수 행위는 자기 중심 요놈이 밥을 먹고 자랄 터이니까 요걸 안 꺾어야 되겠다' 하면서 도로 손을 놓으면서 '주님이여, 이걸 용서해 주시고 요런 걸 다 속에 악을 다 꺾어 제해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면서 그 똥 장군을 지고 올라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신앙의 근본 세계를)
자기 몸 밖에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이 주님이시요. 하나님이 소유권자라는 것을 무시하고 버렸으니까 소유권 도적질을 제가 한 것 아닙니까? 소유권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그거 제 맘대로 제가 할 수 있는 것으로 했기 때문에 그거 소유권 도적질한 거라 말이다.
어떻게 지극히 천한 자라도 그 천한 자를 제 맘대로 할 수가 있느냐? 그거는 주님의 것인데 제 맘대로 하니까 제가 소유권자가 됐다 말이오. 그러니까 소유권 도적질한 것. 이게 쉬운 것 같지만 이 진리의 뜻이 많은 성경을 상고해 가지고 거기서 깊은 데서 나온 것인데 이 설교를 늘 껍데기로 듣기 때문에 원청 거리가 멀어 놓으니까 말해 봐야 몰라.
(깨닫는 사람에게는)
그런데 나는 주일 학교 학생들은 참 재미가 있어. 학생들은 다 알고 있어요. 이거 물으면 학생들은 다 외우고 있는데 이거 뭐 장년반들은 물어 봐야 몰라. 학생들은 물으면 딱 다 안다 그말이오. 학생들 열 학생들 묻는데 아홉 학생은 모르고 한 학생은 안다 말이오. 한 학생 아는 학생은 어떻게 예쁜지 말이지.
그 참 바울이 '피를 내가 뿌려 주겠다' 이렇게 한 거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하나님의 도를 기억하고 하는 그렇게 사는 그 학생은 사랑스러워서 참 살을 깎아 먹여도 아깝지 않다 그말이오. 내게 있는 걸 다 대서 도와줘도 좋아 왜? 그게 주님 대접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 소유권 도적질 하나는 자기라 말이오. 내 거는 내 거라고 내 맘대로 할 것이 아니라 이것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이 내 손도 내 맘대로 못 하겠고, 입도 내 맘대로 못 하겠고, 눈도 내 맘대로 못 하겠고, 귀도 내 맘대로, 내 듣고 싶다고
(세상 TV조차도)
아, 이 테레비를 보다가 물론 이 세상 소식을 듣기 위해서 문화 테레비나 이런 것은 이 세상이 어떤가 하기 위해서 자기가 기도하면서 이게 필요하다, '네가 세상을 모르면 안 된다.' 알라고 이래서 하지만 그만 그라다가 그게 그만 취미로 보는 취미가 퍼뜩 생겨지면 큰일 났다 말이오. 취미가 생겨지면 나는, 내라는 이 나는 그런데 취미 붙일 자는 못 돼. 취미 붙일 자가 못 되지요. 그런 취미 붙이는 자는 그거는 죽어야 돼.
이제 주님을 위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이런 것 저런 것 할 일이지 내 취미라는, 내라는, 죽었는데, 내가 죽었는데 내가 살아있는 그거는 내가 주인이라 말이오. 그게 소유권 도적질이라. 그러기 때문에 내가 나로 살지 못하고 주의 것으로서 이렇게 살아야 되는데 주님의 것으로 살지 않는 것이 다 소유권 도적질이라 그거요. 소유권 도적질하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