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죄도 하나님의 주권 역사 2.믿는 사람의 고통은 훈련 과정 3.욥의 봉변은 '횡재'

1.죄도 하나님의 주권 역사 2.믿는 사람의 고통은 훈련 과정 3.욥의 봉변은 '횡재'

yilee 0 3


제목분류 : [~교리~죄론~죄기원~일원론~]
내용분류 : [-교리-죄론-죄기원-일원론-]/[-교리-교회론-신앙생활-신앙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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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끔찍한 범죄들이 생기는 것이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역사인지?

①죄와 의가 우리에게는 죄와 의지만, 하나님 앞에는 전부 하나님이 필요하여 만든 행동들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죄를 짓도록 해서 그런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현재 정통 신학이 모든 것은 하나님 한 분에게서 나왔다고 하여 '일원론'을 말하기는 말하지만, 죄나 악령도 하나님께서 만들어 그렇게 활동하도록 창조하고 섭리하는 것이냐고 따져 물으면 어물거리고 빠져버립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에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모세를 통해 앞으로 끌고 가지만, 한편으로는 바로를 앞세워 그를 강퍅하게 만든 악령의 모든 역사 뒤에도 꼭 같이 하나님이 계십니다. 천국을 만든 분도 하나님이시만 없는 가운데서 지옥을 만든 분도 하나님입니다.

작은 것은 예정하지 않고 큰 것만 예정을 했다고들 하는데, 큰 것이 예정되려면 그 큰 것을 구성하는 작은 것들이 예정되지 않고는 예정이 되어질 수 없고, 악령을 상대하여 싸우는 천사와 의인들의 의로운 행동을 하나님께서 예정하고 주권으로 움직여 나가신다면, 천사와 맞선 악령과 악인들의 악한 행동도 전부 예정되어 있고 주권으로 움직여 나가는 것입니다.


②중요한 것은, 궁극적인 내면은 이렇지만, 믿는 우리의 행동은 한쪽만을 봐야 합니다.

자존주 완전자 하나님 앞에서 악도 선도, 천사도 악령도, 지옥도 천국도 전부가 필요하며 만들었고 그 모든 것이 다 합하여 하나님을 닮은 온전한 우리를 만들고 있씁니다. 그러나 이것은 궁극적인 하나님 차원의 세계이므로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되 그것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며 하나님의 절대 위치라는 면으로만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행동에 대하여는 이 거대한 구도 속에서 오로지 말씀대로 순종하여 악령과 싸워 이기는 것까지만 우리 할 일이고 노력할 부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죄도 의도 꼭 같은 것이라는 말을 해서도 안되고 만일 그렇게 알고 행동한다면 죄에게 삼킨 사람입니다. 너무 범위가 넓은 내용이므로 많은 면으로 생각을 해 보셨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우리를 만든 '목적'에까지 이어져 있는 질문입니다.


2.끔찍한 범죄를 당했을 때, 우리와 안 믿는 사람들의 차이는?

불택자들이 살아가며 마주치는 것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쉽게 말하면 숲속의 짐승이 웃고 우는 것과 같은 차원입니다. 그날은 재수가 좋아 좋은 먹이감을 입에 무는 날도 있고, 어떤 날은 억센 짐승을 만나 죽도록 물어 뜯기는 때도 있습니다. 짐승의 살아가는 것과 그들의 살아가는 것이 본질적으로 꼭 같습니다. 물론 그들은 짐승들과 그들을 구별하고 있지만, 우리가 볼 때는 짐승들과 그들을 따로 구별할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습니다. 토끼와 사자를 구별할 필요가 없듯이.

그러나 택자들이 마주치는 현실은 그것이 비록 천인공로할 범죄든지, 지구적인 대재앙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우리 구원에 없어서는 안 될 선물입니다. 공부하는 학생에게 시험이라는 것은 최악의 악몽이지만 선생님이 볼 때는 공부에는 그것이 직효입니다. 그 이상 좋은 방법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생이 학생 수준에서 학생의 시각에서 본 것은, 선생님이 보는 것과 정반대가 많습니다. 택자가 겪는 과정은 그 어떤 하나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이를 길러가는 과정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3.아무리 진실되게 믿어도, 욥에게 일어났던 것처럼 그런 봉변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

욥이 재산이 일거에 없어지고 자식들이 한 자리에서 떼죽음을 당하고 마침내 자신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당했으니, 누구든지 그런 일은 끔찍한 일이고 봉변이기 때문에 피하고 싶은 것이 본능일 것입니다. 욥도 그런 일을 당하기 전에는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지나가고 알고보니까, 그 모든 일 하나 하나가 조금도 손해된 것은 없고, 잠시 수고한 그 수고의 댓가는 너무도 컸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라고 하는 우리 걸음의 속성입니다. 먼저 죽고 뒤에 살아나는 입니다. 그러나 하나 죽고 하나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죽고 100이 사는 것입니다. 일시 죽고 영생을 가지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하나 죽은 그것도 알고 보면 죽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왕 죽고 없어질 것을 하나님 주시는 현실에서 그 말씀대로 사는 과정에서 없어지고 죽게 된다면, 십자가 부활이라는 이름으로 한없이 영원히 영광스러운 것으로 교환해 주는 이 시스템!

이것을 세상사람들은 봉변이라 하고, 믿는 우리는 바라고 바라던 '십자가의 영광'이라고 표현합니다. 예를 들면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는 남한에게는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이룩한 남북통일의 '위업'이 되고, 중국이나 일본에게는 속으로 '최악의 악몽'이 됩니다.

다만, 우리의 신앙 수준과 세상 두려움을 아시기 때문에 욥과 같은 정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그렇게 감당 못할 큰 선물은 주지 않습니다. 본인이 조금 수고하고 또 조금 뒤에 보면 이해가 될 정도로 그렇게 살살 길러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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