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사님의 목회 중 심방 전도에 헌신하는 사역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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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02 00:00
제목분류 : [~교회사~서부교회~]
내용분류 : [-교회사-서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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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께 대한 양해문)
질문자께서 들으신 내용은 우연히 그렇게 듣고 또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질문자처럼 단순히 그렇게 생각해 보신 분들만을 상대할 것 같으면 답변을 간단하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질문하신 내용은 공회 노선을 반대하는 분들이 공회 노선을 반대하기 위해 과거에 뒷말로 자주 악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질문은 질문자께서 하셨으나 이번 답변은 질문자를 놓고답변을 드리는 대신 과거 공회 노선을 훼방하던 분들을 가상의 상대방으로 놓고 답변자가 반론적 토론을 했으면 합니다.
혹 질문자를 반론의 상대로 삼았다고 오해할까 하여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과거 서부교회가 돈으로 사람을 전도하게 했다며 공회 신앙노선을 떠나자고 했던 분들의 논리가 있었는데 이를 염두에 두는 동시에 서부교회의 전도 방법에 대한 근본 자세와 기술적인 면을 한번 요약할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번 질문은 읽는 분들에게 오해의 소지도 있고 또 그 면을 요약할 기회로 삼아 그 일부라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번 질문을 이곳 답변의 반론이라고 가정한 상태에서 답변자가 그 부당함을 발언하는 형식을 취하겠다는 것이니, 질문자께서는 이번 답변의 상대방이 아니라 관람인으로 양측의 논리를 객관적으로 보시도록 양해를 구한다는 뜻을 다시 한번 양해 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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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답변)
우선 질문 내용에 대한 개괄적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서부교회는 중.고.대학생을 지도하는 중간반 반사제도를 주일학교와 별개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한 해 주일학교를 졸업하고 올라오는 학생이 재적으로 1,200여명, 출석으로 4-600여명이 되었는데 일단 중학교로 진학하게 되면 학교 방과시간이 늦어지고 토요일에도 만나기가 어려워 주일학교 선생님 대신에 중학생 이상을 밤늦게까지 그리고 일주일 내내 심방하는 유급직원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중간반 학생들을 위해 30여명 이상의 남녀 반사를 부부 단위로 선발하되 몇 년 정도 훈련을 거친 다음 목회로 출발할 수 있는 분들을 우선해서 임명했습니다. 교회로서는 주일학교가 주체할 수 없는 중.고.대학생 관리를 맡게 되었고 일면으로는 신학교 목회자 양성 실무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들의 업무는 새벽기도가 마쳐지는 5시 30분부터 밤 11시까지 쉴틈없이 심방 전도 단체 기도 등으로 일과가 계속되었고 이 심방 전도 업무는 일주 계속 일년 계속되는 연중 무휴였습니다. 구정 신정 추석과 같은 명절도 전부 생략되었기 때문에 병석에 눕거나 여반선생님의 경우 해산 조리 1개월이 유일한 휴가기간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월급은 부부가 꼭 같은 조건으로 활동한 뒤 두 사람의 월급을 합했을 때 일반 사회의 기초생활비에 훨씬 모자라는 서부교회 사례 원칙으로 지출했기 때문에 백영희신앙노선의 가장 엄격한 기준에서 목회로 출발할 사람이 아니면 지원할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중간반 반사 선발은 교회에서 가장 어려운 인선 작업이 되었습니다.
이런 중간반 제도는 1979년부터 1989년까지 약 10여년 계속되는데 전기 4년은 고정 사례로 운영되었고 후기 6년은 출석 학생수에 따라 심방 경비가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는 어려움이 있어 반사별 심방 수당이 출석수에 따라 따로 지급되었습니다. 이 제도를 두고 1983년 중간반 반사 중 초기 사명감에서 출발했다가 근무 여건이 감당 못할 정도로 격무가 되자 반사로 지원한 것을 후회하는 분들이 1-2명 있었고 그분들이 교회 내에서 인간 구원을 수당으로 몰아가느냐는 불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 발언을 했던 분들은 지금은 회개하고 백목사님 목회노선에 누구보다 더 충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당시 백목사님 신앙노선 자체를 반대하고 일반 교회식으로 교회를 운영하자는 분들에 의하여 이 신앙노선을 뒤로 헐고 다닐 때 단골로 사용됩니다. 물론 그런 주장은 서부교회 내에서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서부교회 사정을 잘 모르는 어린 신앙이나 공회 밖에다 이 신앙노선을 비판하고 일반 교회의 교회 운영이 좋다는 발언을 할 때 늘 사용됩니다.
중간반 반사는 물론 서부교회 모든 직원들의 사례는 사회 기준으로 최소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출석 학생수가 많은 반사와 적은 반사는 그 활동경비에 많은 차이가 나게 되고 활동경비가 많은 반사들은 그 최저생계비조차 심방경비에 대폭 들어가기 때문에 인간으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가 있어 출석수에 따른 심방비 계산이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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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답변)
1.질문에서 지적하신 것은 충분히 말씀하실 수 있는 내용입니다.
①남한 사회에 점심을 굶는 중 고등학생이 2만명이라는 교육부 발표를 기억하시는지요?
전국 중.고교생 중 매일 점심밥을 굶는 학생이 2만명으로 파악되어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북한쪽에서 이런 남한의 보도를 선전할 때, 만일 남조선에서 수만명의 학생이 기아로 허덕이고 있다고 한다면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만일 수십만명의 학생들이 굶주리고 있다면 그들이 늘 하는 대로 약간 과장했다고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당시 뉴스에는 점심을 먹지 못하고 운동장 한쪽에 숨어서 기가 죽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시민운동가와 교수들의 의견도 담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 뉴스를 듣던 답변자는 지역차별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낙후되었다는 시골 어촌마을의 목회자여서 교인들의 일상생활을 많이 알던 때였습니다. 당시 그 시골에는 집집마다 부업으로 개 몇 마리씩을 기르고 있었는데 그 개들이 쌀밥만 주면 입을 잘 대지 않기 때문에 생선 뼈다귀라도 섞어 주어야 식사를 하는 정도였습니다. 바로 이런 시골에는 도시에서 살던 부부가 사망 이혼 등으로 문제가 생기면 시골 할머니집으로 아이들을 보내기 때문에 결손가정으로 분류되는 아이들이 대단히 많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농가 부업으로 기르는 개들도 쌀밥만 먹을 수 없다는 시대에 2만여명이 굶고 있다면 그 보도는 분명히 목적을 가지고 여론을 움직이려 했든지 아니면 기자가 현장의 객관적 판단을 전혀 하지 못했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정말 먹고 싶어도 못 먹는 아이들이 있겠지만, 답변자는 당시 보도를 보며 이런 문제점을 짚었습니다. 우선 보고 계통이 담임 - 교장 - 교육청 - 교육부로 이어졌습니다. 담임이 명단에 올리면 재검정이나 사실조사 없이 전국 통계로 잡히는 것입니다. 전국 중고교생이 4-5백만명 정도입니다. 4-5백명 중에 2명이 굶는다면 시골 기준으로는 2-3개 면에 1명이 굶는다는 말입니다.
이미 우리나라의 가정 경제 상황에서 먹을 것이 없어 굶을 사람은 아무리 저소득가정이라 해도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빠가 홧김에 술로 몇 달을 보내게 되는 경우처럼 경제 외적 문제입니다. 실제 경제면으로 가장 어려움을 가지게 되는 경우는 고아원 아이들이나 저소득가정의 아이들인데 이런 가정의 아이들에게도 이미 식사문제는 문제가 되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②한 가지 일을 두고도, 그 속에 무엇을 보고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것은 다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
4-500명 학생 중에 점심을 굶는 학생이 1명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전국에 2만여명 학생이 오늘 점심 때도 밥을 먹지 못해 운동장 한 쪽에서 한숨을 짓고 있습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둘 다 맞는 말일 것입니다. 한 가지 일을 두고도 그 속에 무엇을 보고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전쟁 뉴스를 보면서도 미군측의 사상자가 엄청나게 많습니다라는 말이 많습니다. 현대전과 같이 탁월한 무기로 전쟁을 한다면 하루에 수십만명이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군들의 사망 소식은 오늘 2명, 어제 1명, 3일 전에는 교통사고로 10명 죽는 식입니다. 현재 평화시 남한 내 교통사고 등 일반 사고로 죽는 사망자의 수가 수만명에 이른다는 점을 생각을 한다면, 이 정도의 사망숫자는 '전쟁역사' 상식으로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싸우는 전쟁이라고 해도 맞는 말일 것입니다.
물론 반전론을 주장하는 분들은, 인간 1명의 생명이 우주보다 귀하다고 볼 것인데 매일 2-3명씩 죽었다면 매일 우주가 몇 번씩 없어지는 천재지변과 학살이 자행되고 있다 해도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고 또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③질문 내용에서 지적된 것처럼, 서부교회의 전도수당제를 그 반대 시각에서 비판하려 한다면.
질문자처럼 단순히 한번 생각한 것으로 의문을 가질 수도 있고 어떤 분들처럼 마음먹고 비판을 하려면 대단한 기독교 비리로 폭로될 수도 있을 사안입니다만 이곳은 백영희신앙노선을 연구하는 원칙 중 하나는 어떤 반론이나 지적도 적극적으로 환영하기 때문에 그 내용 자체를 두고는 어떤 사안이든 피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비판도 욕설도 인신공격도 전부 환영하고 오히려 기다리고 있는 편입니다. 따져보고 사실이면 고치면 될 것이고, 고친다면 고친 자기에게 큰 복일 것이니, 이곳이 걷는 신앙노선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분이 있다면 그분은 이 분의 병을 수술해 준 의료진일 것입니다. 만일 살펴본 결과 사실이 아니면 과연 이 길은 바른 길이니 더욱 확신을 가지고 더 힘있게 걸어면 복이 될 것입니다.
조심하는 것은, 혹시 이 노선의 잘못을 합리화하는 면이 있을까 두렵고 더 조심스러운 것은 비방이란 한번 들어도 기억에 잘 남는 것이고 바른 말은 평생 듣고 배워도 쉽게 잊어버리는 우리 인간의 습성이 있어, 결국 옳은 것으로 증명을 한다 해도 방문하는 분들 중에 자기 신앙에 손해보는 면만 챙겨서 기억하실 분이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제한없이 외부의 비판이나 지적을 요청하는 것은, 이곳에서 제기될 수 있는 모든 반론들은 여기서 접하지 않아도 언젠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다른 환경 다른 곳에서라도 그 사람에게 시험이 될 수 있는데 혼자 마음 속에 잘못 알고 시험에 빠져 가는 것보다, 이곳에서 제공하는 신앙관을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즉 이번 질문을 악의적으로 이용한다 해도 이런 말을 듣고 스스로 살피고 파악하여 판단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고간 내용 외에 어떤 다른 비판이 있다 해도 믿는 사람은 들은 말을 자세하게 분석할 수 있어야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원래 문답의 주제가 되는 서부교회 전도방법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서부교회의 전도 수당제는 그 폐단이 심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서부교회 가장 내부에서 이렇게 나오는 반론이 만일 잘못된 것이라면 이 신앙노선은 그야말로 오늘 말세에 소개할 최고의 노선이 될 수 있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어느 교단이든 어느 교회든 가장 내부에서 나오는 반론과 자료들을 넘어서는 경우는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백목사님의 목회원칙을 면밀하게 한번 살펴 보신다면, 이런 반론들은 존재할 수가 없게 됩니다.
감상적 비판보다 냉정한 분석으로 보셨으면 합니다. 돈으로 사람을 전도하게 하는 전도수당제는 잘못이라는 지적에 대하여 주로 경제면과 전도면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 소개하는 원칙이나 표현들은 경제와 전도면에 집중되어 있음을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①백목사님의 목회에서, 복음의 일군에게 첫째 요구한 것은 경제 초월입니다.
백목사님 목회노선에서 경제적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일반 교인의 위치에는 있을 수 있어도 그 이상으로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예배만 참석하고 가는 교인들을 일반 교인들이라고 분류하고 예배 시간 외에도 교회에서 여러 일을 맡아 봉사하는 분들을 교회의 활동 교인이라고 분류한다면 서부교회에는 여반 구역장들이 그 첫째 경우이고, 둘째는 장로님들이나 남반 심방 권찰님들이 있고, 그리고 세번째로는 교회로 출근하는 유급 직원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목회에 있어 경제를 어떻게 상대하느냐는 것은 그 교회 장로님들을 보면 가장 빨리 파악이 됩니다. 경제력 위주로 장로님들을 세우는지 신앙위주로 세우는지를 보면 안다는 말입니다. 이런 면에서 서부교회의 장로님 구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초등학교 청소 관리를 하는 노무직에 있는 분, 연탄배달하는 분, 차량조수로 따라다니던 무직에 있는 분들이 총 16명 장로님들 중 최선임에 있었습니다. 다른 교회로 말하면 1백 이상 장로님을 선출할 수 있는 규모인데 장로님 숫자가 다 합해서 16명이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첫 손에 꼽던 분들의 직업 환경이 이러했다면, 백목사님의 목회에서 경제에 대한 문제점은 아예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16명 중 제일 부자 장로님이 수백억원 대의 재산가였고 회사를 여러개 가지고 있었지만 목회연구소 설교록 출간을 위한 지원금 연보를 할 때 50만원 낸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 50만원은 매달 출간되는 5천원에서 1만원 가격하는 설교록을 200여권 무료로 증정하는 조건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선금이었습니다. 일반 주일학교 반사들이 노동하면서도 같은 조건의 연보를 50만원씩 하였고 이것이 목회연구소 운영 기금이었습니다.
백목사님이 목회하는 교회에서, 백목사님 설교록 출간을 위한 연구소이며 그 설교록을 선금 50만원에 받아보는 조건의 연보였는데도, 제일 부자 장로님이 그렇게 연보하면서도 교회 내 여러 직책을 맡고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실제 존재한다면, 과연 교회 다운 교회이며 적어도 경제 문제는 모든 면에서 전혀 상관치 않고 초월되어 있는 목회라고 할 만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면이 이렇게 진행된다면 교회의 모든 부서는 같은 흐름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②돈으로 사람을 전도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은 도저히 제기될 수 없는 분위기 중 예를 하나 더 든다면
교장이 들어오는 교문에서 교장실까지 매일 쓰레기를 줍고 들어온다면 일단 그 학교 교사들은 싫든 좋든 학생들만 청소를 시키는 일은 못할 것입니다. 수당을 받기 위해 전도를 했다는 주장을 반증하기 위해 당시 유급 직원 전부를 그때 상황으로 돌아가서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주장해도 틀렸다고 증거를 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시골 부업으로 기르는 개가 쌀밥을 먹으며 밥투정을 하고 있다면, 그리고 전국민을 상대로 4인가족 생계비가 75만원이 되지 않으면 국가에서 모자라는 부분을 법으로 지불하도록 보장하고 있다면 적어도 굶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은 존재할 자리가 없게 됩니다.
서부교회를 전도라는 기준에서 본다면 아마 어떤 교단 어떤 이단들도 흉내내지 못할 정도였을 것입니다. 백목사님 38년 목회기간 전체를 통해 그러했고 그 열심은 갈수록 더 강했습니다. 그 모든 전도의 힘은 예배 시간 설교 말씀의 은혜가 전부였고 혹 어린 신앙에 있는 사람들은 목사님이 직접 지켜보고 챙겨주는 인간적 관리가 크게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교회적으로 단정할 수 있는 것은, 교회의 전도 심방에 대한 충성과 열심은 구원에 대한 기쁨과 감격에 넘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전도하는 방편은 선물 행사 잔치 월급을 배제하고 오로지 발로 뛰어 땀으로 전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서부교회에서, 전도하면 수당을 올려주어 돈 때문에 열심을 내게 했다고 말한다면 그렇게 활동했던 사람들 중에 가장 성공한 사람들 아주 또렷하게 표시가 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가장 쉽게 알 것입니다. 보험사 영업사원 중에 제일 실적이 좋은 사람에게 회사에서 어떤 대우와 보수와 직책을 주는지를 보면 그 밑에 일하는 사람 그 밑에 일하는 사람의 조수들의 환경을 알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제일 밑에 사람이 100만원을 받는다면 이 돈으로 제일 윗사람의 보수를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몇 억을 줄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최 상급자 월급과 대우를 안다면 그 아랫 사람들은 적어도 그 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③본인들은 쑥스럽겠으나, 정확성을 위해 최대한 실명에 가깝게 공개하겠습니다.
서부교회에서 월급을 받는 직원 중에 가장 최고위 3직책이 편집실장(후에 목회연구소 소장), 주일학교 총무, 행정실장입니다. 중간반 부장의 경우는 원래 직원 서열 1위지만 중간반 제도 자체가 수차례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고 또 부장에 따라 서열이 아주 차이가 많았기 때문에 여기서는 1980년대 10여년 계속하여 변동이 없었던 서부교회 직원 전체의 3대 최고위직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선 편집실장은 설교록 출간 등을 위해 유급직원을 보통 10-15명을 관리하였고 많을 때는 20여명의 유급 직원을 책임졌습니다. 다음으로 주일학교 총무 조사님 부부는 1천명 반사와 6백개 반을 총괄하였고 편제는 달랐으나 30명 이상의 유급 중간반 선생님들도 그 밑에 서열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행정실장은 장년반 200여개 구역장을 총괄 지원하며 교회 전체 행정업무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백목사님은 편제로 분류할 때 이 3명의 책임자를 통해 서부교회 전체를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주일학교 중간반 장년반은 전도 체제였고 편집실은 설교록 출간을 통한 신앙교육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이 3명 직원은 서부교회라는 초대형 교회 운영을 삼분하고 있는 실무 최고위직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일반 직원들이 승진할 수 있는 최고 위치에 도달했고 그들의 손을 거치는 경제규모나 인원이나 사업은 일반 중소형 교회는 물론 어느 규모의 대형교회에서도 생각하기 어려운 정도로 막강했습니다. 그들의 대우와 월급 역시 일반 직원들에 비해서는 파격적이었습니다. 이분들의 수고와 활동상에 대하여는 언제 한번 따로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고 이번에는 그들이 누렸던 경제적 여건이 얼마나 좋았기 때문에 서부교회 최고가 되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또 그 자리에 올라갔을까? 그래서 그 뒤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도 그들을 보고 부러워 그 경제 여건을 가져보려고 자극이 되었을까? 라는 의문이 있다고 보고 소개합니다.
우선 편집실장은 주일학교 최고 성적을 올리던 반사면서 동시에 직원이었습니다. 결혼을 하고도 7년간 방 한 칸에 살면서 집 안에 화장실이 없어 온 가족들이 부근에 있는 교회 화장실을 사용하였습니다. 그 편집실장 바로 밑에 1982년에 교회 직원으로 들어갔던 연구소 직원 한 사람은 일반 대기업에 입사하여 초봉 28만원 받게 되던 상황에서 직원으로 방향을 돌렸는데 그에게 주어진 월급이 8만원이었고 그후 5년이 지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8만원으로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교회 전체 직원 중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2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1982년 고무공장 여공들의 월급이 12만원 하던 때였는데 그 12만원은 요즘 경제 기준으로 최소생계비가 아니라 당시 기준으로 최소생계비였다는 것을 참고 하셨으면 합니다.
주일학교 총무 조사님 부부는 편집실장과 같은 기간 7년동안 모친과 부부 그리고 남녀 3자녀 등 6식구 3대가 방 한 칸에 살았습니다. 그래도 그 분은 같은 층에 공동화장실이 있어 다행으로 알고 지냈습니다. 그 총무가 8천명 출석 주일학교와 1천명 주교 반사 전체를 책임진 유급직원이었습니다. 1989년, 백목사님이 자신의 생존기간이 그해로 끝나는 줄 미리 알고 후임 담임목회자용으로 고급 주택 하나를 구입하면서 그 주택에 후임 담임목회자가 올 때까지 임시로 관리할 사람을 구할 때, 백목사님께 7년간 화장실도 몇 집 건너 예배당 공동화장실로 다닌 편집실장에게 임시 살 수 있는 기회라도 주어야 하지 않겠냐는 건의가 다른 사람을 통해 들어갔고 그래서 집문제가 해결되었던 정도입니다.
편집실장 이사 문제가 확정된 후 다른 회의를 하다가 백목사님이 우연히 주일학교 총무 조사님 부부가 사는 방 형편을 물어보게 됩니다. 7년이 지난 그때에야 방 한 칸에 3대 6식구가 살면서 그 방안에 이불장은 가운데 놓고 양쪽으로 잠을 잤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후임 목회자용 사택구입이 없었다면 그들이 그렇게 살았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주변 몇몇 사람들은 알고 있었으나 이런 생활이 주님을 위해 고난을 당한다거나 복음 전도를 위해 희생한다는 차원에서 감당하는 것이 아니고 서부교회 직원으로서는 이만해도 오히려 감사할 정도라는 기본 자세가 있었기 때문에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었습니다.
④당시 경제적으로 충성한 면을 두고 말한다면, 오로지 복음 때문에 충성할 뿐이었습니다.
서부교회에서 백목사님 목회하는 동안 교회로부터 돈을 받아야 하는 직책에 있거나 직원으로 근무하던 이들에게는 이런 감추어진 이야기를 지금 회고하라고 한다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다른 교단들과 비교한다면 적어도 1960년대 이전에 있었던 경험일 것입니다. 더구나 개척교회처럼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어 어려움을 겪은 것이 아니고 경제가 넘치는 초대형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면 아마 몇 세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도 이런 경우는 들어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본인들에게 지금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극단적 복음희생의 역사가 될 것이나 당시 백목사님 자신의 경제가 얼마나 철저했음을 직원들일수록 더 자세히 알기 때문에 직원들 자신들의 경제난에 대하여는 오히려 부족감을 느끼지 조금이라도 자랑스럽게 내놓을 심리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이렇게 설명을 드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있게 되면 서부교회 내부 전체면을 두고 일괄적으로 설명을 해야 하는 이곳에서는 맡은 업무 때문에 이런 내용을 한번씩 전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혹 명예나 경력관리 또는 다른 부수입을 노리고 어려움을 찾는다면, 이런 고생이 언제 끝난다는 예정이 없는 가운데 이렇게 장기간을 아무 미래 보장이 없는 상태로, 초인적인 충성을 계속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혹시 서부교회 직원들은 하루 3끼 밥도 먹지 못할 수준의 저능인들 출신이어서 그 정도 경제 대우를 자기들로서는 큰 출세로 생각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을 한다면 그 면은 가능할 것입니다. 서부교회 직원 선발은 특수 기술직 외에는 그 출신이나 수준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그런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말씀드린 분들은 기술자로 또는 개인 장사를 하면서 경제면으로는 탁월하게 실력을 입증받고 또한 세상에서 확실하게 경제적으로 잘 살 수 있는 상황에서 직원으로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세상에서도 자기 방면에서는 가장 먼저 성공할 수 밖에 없는 확실한 과거가 있었음은 이곳 답변자가 소상하게 파악하며 소개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서부교회에서 학생을 전도하여 교회로 데려오는 면으로 가장 힘든 과정을 통과하고 그래서 가장 성공한 과정을 통과하고 직원이 되고 결국 서부교회 최고의 직원이 된 몇 분들의 형편이 그러하다면 그 분들 밑에서 지도받고 그 분들을 뒤 따르는 다른 교회 직원들의 경우, 그들은 이미 경제문제에 관하여서만큼은 세상 다른 교회나 일반 사회의 인식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하는 상황을 통과했던 이들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차라리 완전히 세뇌교육이 된 사상범들이라고 욕을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지 않겠습니까?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은 명예와 경제와 가족과 자기 몸을 돌아보지 않고 공산주의 사상이 목표하는 노동자 천국을 위해 자기 하나를 이름없이 산화시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무신론 물질주의인 공산주의에 감염이 되어도 경제적 수입 때문에 활동하는 수준은 초월하는데, 하물며 복음이 무엇이며 구원이 무엇인지를 진정 조금이라도 느꼈다면 믿는 우리가 공산주의 사상범들에게 비교가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들보다야 한없이 높은 수준으로 시작하고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가야 한다는 것은 초보적 상식으로 보고 싶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곳은 돈이나 명예나 교권 등에 탐을 내고 교회 이름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거의 모든 일반 교회를 너무 희망없이 보고 있으며, 적어도 이런 면에서는 확실하게 초월하고 살았고 또 그 따르는 이들에게 초월하고 살도록 했던 백영희목사님과 그 신앙노선을 이곳에 이렇게 공개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잘 믿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이 정도라면 믿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수준은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보다 더 잘 믿으면 더 좋고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이 정도로는 믿어가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는 차원에서 백영희신앙노선을 연구하고 발표하며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이 신앙노선 외에는 믿는다는 이름만을 붙이는 것도 주저한다는 정도입니다.
⑤물론, 가룟유다가 전도 활동 뒤에 경제 수입을 노리고 있었다고 반론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하나였으니 산술적 계산으로 비교한다면 서부교회에서 전도 심방에 관련된 분들 중에 직원이든 일반 구역장이든 12분의 1 정도는 돈을 보고 복음을 이용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 정도의 숫자도 없었다고 주장하게 되면 혹 백목사님이 예수님보다 나은 목회를 하고 제자들을 더 잘 길렀냐는 반론이 있을 때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서부교회와 백목사님에 관련된 사항은 전체면을 두고 말할 때 이곳이 현재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어느 한 면에 대하여는 전혀 모르는 수도 많기 때문에 경제면에 집착했던 이들이 12분의 1이하였다는 말은 함부로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가마니가 쌀 가마니인지 돌 가마니인지 보리 가마니인지 정도는 확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쌀 가마니라 하고 진열대에 올려 놓았다면 적어도 그 속에 돌이 몇개는 있어도 눈에 쉽게 보일 만큼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질문 내용에서 시작된 것은 서부교회 전도방법이 수당제였기 때문에 복음을 돈으로 산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반론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답변자는 일관되게 2가지 면을 함께 보며 답변하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일반적으로 전체적으로 말한다면 이런 비판은 단호하게 틀렸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글을 감정적으로 적었다면 당시 돈을 보고 전도를 하는 분들의 명단을 제시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교회로 말하면 전도부인 정도로 활동하는 구역장과 교육전도사나 부목으로 활동할 직원들에게 다른 교회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최소 비용만 지출한 것을, 돈 욕심으로 좋아할 정도의 직원이나 구역장이 있었다면, 그들의 가정 경제 수준과 교회에 대하여 평소 불평하는 두 가지면으로 명단을 확인하면 짐작하는 분들은 몇 분 계시지만
실은 이런 반론들은 정말 그렇게 서부교회 사례가 돈욕심을 촉발하여 움직이게 했기 때문에 복음을 아끼는 입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이 너무 성경적이고 비타협적이기 때문에 보다 자유롭고 넓게 믿고 싶은 분들이 서부교회 내에서 도저히 견딜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면 등 다른 문제가 있어 교회를 떠날 수도 없는데 이런 건을 공개하고 지적한다면 말로써 성립조차 되지도 않으니 평소 입만 열면 이 신앙노선을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욕하는 것 중에 하나 그냥 입에 올려졌던 내용이 전달되어 오늘까지 내려 온 면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런 비판은 어린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면 평할 가치조차 없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곳에 공개된 것은 훗날 어떤 사람이라도 이 문제나 비슷한 문제로 질문이 있을 때를 생각하고 지금 미리 답변을 통해 이 신앙노선을 소개하는 업무로 보고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⑥장년반 구역장들에게 지출되는 심방 경비도 위에서 설명한 내용들과 내용입니다.
일반 교단이나 교회를 조금이라도 아는 분이 서부교회 내부를 좀 들여다 보면 첫 마디가 '바로 이것이 초대교회의 재생'이라고 감탄을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할 때는 우리들보다 더 자세하게 실감있게 합니다. 그러나 서부교회나 총공회 내부에서만 자라서 외부를 모르는 사람들의 비판은 백목사님에게 3끼 식사를 하지 말고 배가 불러야 하는 수준을 요구하는 수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이번 지적은 이곳 운답방에 올려진 내용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총공회 내부를 아는 사람과 이곳을 그냥 방문해 보는 일반 교계 분들을 함께 놓고 설명을 드리고 있습니다. 두 종류의 방문객들을 놓고 그 중간 정도에서 답변의 방향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어렵고 말이 길어지고 있음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일반 구역장들에게 심방 경비를 지출하는데 그 액수가 생활비 등으로 크게 신경이 쓰일 정도였다고 표현을 하게 되면 이곳을 방문하는 일반 교회 교인들은 자신들의 교회에 있는 '구역장'과 '생활비'라는 선입관으로 보게 됩니다. 서부교회 구역장 중에서 큰 구역에 속하는 분들에게는 심방경비가 지출되는데 그런 구역은 구역장이 일반 교회로 말하면 교회 심방 전도만 담당하는 전도부인 또는 여전도사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는 분들입니다.
서부교회의 교인 분포는 부산 전역에 걸쳐 있고 일반 교회들과 달라 구역제도가 지역 책임제로 되어 있지 않고 구역장 계통으로 전도 되는 식구들은 부산시내 어디에 살든지 구역장의 평생 책임으로 맡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작은 구역이나 큰 구역이나 그 활동은 시내 전체를 맡게 되기 때문에 시간과 경비가 적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자기 경제로 자기 개인적 차원에서만 구역을 맡는데 그 구역이 점점 많아지고 그 구역 활동이 점점 크지게 되면 자기 경제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선을 정하여 바로 그 선을 넘어가는 구역에게는 구역 심방 활동비가 지출되는 것을 두고 질문자는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경비 지출이 되는 그 선을 넘어가기 이전에도 이미 일반 교회로 말하면 전도부인보다 더 하는 일이 많았지만 이 선을 넘어가는 정도라는 것은 항상 백목사님의 목회방침과 그 경제운용이 일반 다른 교회는 근접을 할 수 없을 만큼 높다는 것은 서부교회를 비판하는 분들이 더 잘 알 것 같습니다. 집사가 되는 조건이 13가지입니다. 일반 교회로 말하면 목회자나 장로님 자격으로 제시해도 너무 높다 할 기준들인데.
중간반 반사들의 경우도 새벽기도 5시 30분에 끝나면 그때부터 밤 11시까지, 때로는 그 이후까지 심방을 하고, 그 심방 기록을 전부 작성하여 제출하고 검사를 받을 만큼 충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도대체 얼마를 받기에 그런 활동을 할까 하고 뒷말들은 있겠지만, 예수에 미치고 복음에 미치지 않고는 흉내도 낼 수 없는 길들을 걸었습니다.
학생 출석수에 심방 수당이 오르내리는 것은 최저 생계비 이하에서 일주일 내내 부산 전 지역을 상대로 심방하고 전도하는 중간반 유급 반사들에게 경비를 계산해 주어야 하는데 그 기준을 어떻게 정하는 것이 가장 좋겠느냐는 것은 회계 지출 원칙에 관한 것입니다. 일반 교회 같으면 대충의 선을 그어 넉넉하게 주겠지요. 그러면 심방을 덜 해서 남은 경비는 생활비 수입이 될 것이고, 만일 심방 경비에 모자라는 정도가 된다면, 대형교회라면 당장에 노사데모날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데모가 나도록 경비를 그렇게 초긴축으로 줄이는 대형교회도 없고 또 목회자부터 넉넉하게 쓰는데 밑에도 그런 문제로 문제 되도록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서부교회는 백목사님이 제일 아끼고, 그다음 밑에 사람들에게도 심방경비에 실제 필요한 최소한을 지출하게 되는데 심방을 많이 하든 적게 하든 일괄적으로 지출하게 될 때 복음에 몸과 생명을 바쳤다는 사람들에게 경비를 아껴 생활비로 넘기는 그런 작은 유혹까지도 막기 위해 나온 조처입니다. 따라서 이 심방 경비의 출석 비율 지출과 그 액수의 정확한 액수에 대하여는 '목회직의 생활비와 경비'라는 제목으로 세계 실천신학계에 신임투표제도와 함께 소개할 모범적 제도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 일반 구역장님들 중에서 그 활동이 교회에서 경비를 지출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면 그 분들이 보조받는 경비는 그분들의 가정 경제에 사용이 되어도 전혀 문제가 없는 돈입니다. 분명한 것은 교회에서 받는 돈과 자기가 맡은 구역식구에게 자기가 지출하고 있는 자기 가정경제 지출의 차이는 너무도 많이 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심방경비는 실제 차비 등으로만 사용하라고 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회에서 어려운 가정살림에도 불구하고 너무 지나치게 지출이 많고 활동이 많으니 알아서 조금 보태 쓰라는 성의 표시였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3.현재, 이 모든 토론이 발생하게 되었던 1983년 당사자들은 그때를 회개하고 있습니다.
누구라 말씀드리기는 죄송하고, 1983년에 이 심방경비가 반별로 출석학생에 따라 필요한 만큼 지출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나온 이유는 당시 중간반에 몇 가지 실무적인 문제점이 크게 발생하였고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 제도에 대하여 불평했고 또 그 일로 사퇴했던 분이 오랫동안 공회를 떠나 있었습니다. 이번 질문자께서 내신 그 반론도 그때 그분이 발언하기 시작하여 여러 경로로 퍼져나갔던 내용과 같습니다. 20년 전에 그 발언의 첫 진원지였던 분이 지금은 죽자 살자 이 복음의 자랑을 위해 일반인은 상상도 못할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이 신앙노선을 전하고 있습니다. 당시 그분이 잠깐 철없는 시각으로 한 마디 뱉었들 때 신앙과 지금의 신앙은 전혀 달리 변해졌습니다. 사회생활도 하고 타교회 생활도 하고 또 목회 일선에서 여러모로 경험하며 이제는 그때 이상으로 더 충성하면서도 더 고난을 사모하는 신앙이 되었습니다.
마치 재독은 죄라고 첫 불을 지핀 분은 그때 그런 형편이 있어 그렇게 했지 그것이 죄라는 의도까지는 아니었다고 해명하고 지금은 그분 스스로 재독을 제일 크게 주장하고 있는데 그분의 당시 논리를 가지고 지금도 녹음기 반복하듯 하고 계신 분들이 있을까 하여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결론을 맺자면,
그냥 학생 시절이고 당시 앞뒤 사정을 잘 모르는 분들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정도에서 이런 저런 말을 한 것은 항상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현재까지는 그냥 심정적으로 그렇게들 말씀할 만 했다고 이해할 정도의 말만 들었지 실제로 문제가 된다는 면을 가지고 지적하는 분은 기억이 없습니다.
첫 질문을 하신 분은 남의 말을 들어서 하신 분이니 허물이 없겠고, 두번째 질문하신 분은 자기가 직접 알고 체험하신 면을 위주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일반 분들이 보면 완전히 반론자의 입장에서 말씀한 것 같으나 답변자는 교회를 비판적으로 보시는 분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하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 중에 고의적으로 단어나 표현을 조절하여 복음운동을 허는 분들이 계셨는데 그분들의 표현과 같은 내용이 있어 질문자의 원 뜻에 상관없이 주로 반론의 글로 질문을 상대했습니다.
두번째 질문자께서 혹시 혼자 생각해 본 느낌을 말한 정도라고 한다면 질문 내용을 주 반론으로 상대한 이 글에 대하여 크게 양해 하셨으면 합니다. 이곳의 문답은 일대 일로 주고 받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일반인들을 고려하여 이런 논리와 저런 논리를 비교하고 비판하는 하나의 모범을 삼고 그대신 질문자 개인을 직접 상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