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적으로 가능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특별한 예외라는 것입니다.
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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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08 00:00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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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설구원에 필요한 자아의식의 유무로만 생각한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태아가 하나님의 은혜로 기본구원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의식이 발달됨에 따라 건설구원에까지 나아가겠느냐는 문제가 재론된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은 확실합니다만, 지적하신 분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는 그럴 수 있어도 일반적으로 태아 시절은 인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일 뿐이지 자아의식까지 존재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분명한 것은, 태아가 그 발달 상태면에서는 이제 기본 형태를 잡는 시기이지만 동시에 그 의식도 그 사고의 기본 형태와 요소를 갖추고 있는 시기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태아의 인체가 서서히 분화되면서 인간으로서 가질 기본 구조와 기능을 발달시켜 가듯이 그 인체 내부에서는 그 의식 역시 기억 감정 양심 등 다방면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그 기본 동작을 갖추어가게 됩니다.
따라서 건설구원에 필요한 기본 요건인 자아 의식이 비록 미약하기 그지 없으나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2.문제는, 자아의식이 아니라 신앙인들의 통계상 태아 신앙시절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확인이 어려운 태아를 상대로 하지 말고, 일단 출생하여 오늘까지 성장하고 교회 교인노릇을 하는 사람을 상대로 통계 조사를 해 보면 태아 시절의 신앙상태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일반 우리 교인들과 교역자들이 자신의 과거 예수 믿은 시점과 그 후 신앙이 자라온 과정을 살펴본다면, 태아 시절에 벌써 건설구원에 진행이 많았다고 느낄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아의식이 전혀 없기 때문에 건설구원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봐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다면, 그렇게 봐서는 안된다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출생한 사람들은 이전 태아시절을 가졌던 사람들인데, 오늘 뚜렷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과거 태아시절 신앙의 발전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되짚어 새겨본다면, 아마 그 시절에는 중생도 되지 않았던지 중생은 혹 되었다 해도 신앙의 발전이란 없었다고 할 분들이 거의 전부라고 생각 됩니다.
3.건설구원에 필요한 자의식에 대하여 몇 말씀 더 첨부하겠습니다.
①건설구원의 모습은, 자기 주관 의사가 하나님 뜻을 유기적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알리시고 인간은 그 뜻을 알아듣고, 이해하며 자라는 것이 신앙입니다. 또 비록 여러 어려운 여건이 있어도 옳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자원함으로 실행할 때 신앙은 자라가는 것이며, 이것이 건설구원의 모습입니다.
건설구원으로 자라가는 과정을 이렇게 자세하게 분석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태아의 경우는 자기 스스로의 의식으로 알아듣고 이해하고 실행에까지 나아가는 일은 해당이 되지 않을 듯 보입니다. 따라서 세례요한이나 야곱의 경우는 이방여인으로 예수님 족보에 올려진 사람들과 같이 특별한 경우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②그러나 건설구원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자의사의 역할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건설구원이 이루어지는 공식을 설명하자면, 자의사(자기 생각)를 중심으로 위에서 말씀드린 과정들이 엄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분석을 하게 되면 우선 실행까지 가지 않고 마음의 결정에서 건설구원이 완료되는 사안들이 거의 10에 9가 되고, 실행으로 나타나야 건설구원이 되는 것은 10에 1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실행이라는 의미는, 마음에서 결정하는 마음의 행동까지를 포함한 의미입니다.
또한 마음 내부에서 말씀대로 사는 순종이 완료되는 경우도, 다시 자세하게 분석하면 알아듣고 결정하는 의사 진행 순서를 일일이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밟는 경우도 있지만, 순식간에 이 모든 내면 의식 과정이 진행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일단 태아의 경우, 육체의 활동으로 나타나는 순종도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조건 반사를 분명히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의식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 순종하는 면도, 그 의식의 발달 정도가 너무 미약하고 그 일련의 과정이 외부에서 관찰 할 때는 거의 무의미할 정도일 것입니다만, 분명한 것은 없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의식이 있고 또 활동이 있지만 그 정도는 외부에서 보았을 때 단순히 지렁이 꿈틀거리는 수준이겠으나, 건설구원에 필요한 것은 다 갖추고 있을 것이니, 그렇다면 건설구원은 자의식의 강함과 그 순종의 결과가 커야 큰 것이 아니라 그 내면에 하나님과 연결이 얼마나 순수하게 되어 있느냐는 것이니 이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신앙이란, 일반적인 통계와 기준이라는 것이 너무도 무의미할 경우가 많다는 점을 덧붙여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뱃속에서부터 자라나온 신앙의 분위기를 너무 뼈 속 깊이 되뇌이는 분들을 자주 접합니다. 남다른 깊은 신앙의 세계를 가진 분들을 중심으로. 현재는, 세상이 태아교육 차원에서도 총력을 기울이는 분위기입니다. 자연현상인데, 자연계시로 참고할 문제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