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는 장소를 달리한, 완전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 교리입니다.

태아는 장소를 달리한, 완전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 교리입니다.

yilee 0 20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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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질문을 '우문'이라 하셨으나 '연구'일 것이고, 답변을 '정답'같이 내놓지만 실은 '연구'입니다.

항상 질문 위치에 글을 적는 분들께 죄송한 마음입니다. 보다 나은 표현을 찾지 못하여, 그냥 일반 통용 표현인 '문답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질문을 '우문'이라 하셨으나 '연구'일 것이고, 답변을 '정답'같이 내놓지만 실은 '연구'일 뿐입니다.

이곳의 답변은 백목사님 설교에서 배운 기억이 많고, 20년 이상 그 설교를 직업으로 상대하고 있으며,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그 분 생전에 직접 문의한 내용이 많았기 때문에, 그 분이 없는 지금 그 분의 설교 세계에서 도출할 수 있는 답변을 안내하는 입장으로 이 자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인사말을 생략하는 편이어서 글마다 표시는 하지 않으나, 이 곳의 모든 글은 자주 다녀본 길을 소개하는 정도입니다. 따라서 낯선 길을 문의할 때는 이곳도 이전에 그냥 지나쳤던 그 곳을 한번 더 가서 살펴보는 때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 길에 대하여는 모르는 바가 없도록 꾸준하게 '연구'에 매진한다는 것이 이곳의 기본 입장입니다.


2.태아의 자의식을 갖추는 시점을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추론은 가능합니다.

자동차를 조립할 때는 2만여 부품이 저마다 따로 따로 준비가 되었다가, 한 자리에 모여져 조립되고, 완성차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엔진은 2개월 전에 완성된 상태로 때를 기다리게 되고, 바퀴는 어제 아침에 재료가 들어가고 어제 저녁에 완성되어 오늘 아침에 조립공장으로 배달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구성 부품에 따라 달리 진행되는 제작되고 조립되는 기계가 아니라 유기적인 존재입니다.

몸의 눈은 온 몸의 인체 장기 전부와 연결이 되어 있고 나아가 몸과 마음은 어느 부분으로 도려내어 분리할 수 없는 단일 인격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아픔이 몸의 고장으로 나타나고 육체의 고통이 마음의 스트레스로 밀고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그 일체된 관계는 완벽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몸과 마음이 한 인간으로 만들어지고 자라가는 것은 외부에 관찰되기는 따로 되는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내적으로는 각개 진행이 아니라 한 인격 존재로 진행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 몸을 사람의 몸으로 단정할 수 있는 시기라면 그 마음도 사람의 마음으로 단정할 수 있는 시기로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뱃속의 태아가 성인 인체를 기준 삼고 생물학적으로 말한다면 사람이 되기 이전 준비단계 정도밖에 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태아로 존재하는 그 순간 완전한 사람으로서 존재하는 것이고, 그 이후 뱃속의 10개월은 뱃속 밖을 나올 수 있는 준비 단계일 뿐입니다.


3.태아를 완전한 사람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는, 영과 결합되는 시기입니다.

영과 육은 동시에 만들어지고 결합 되어 인간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시점은 뱃속 태아로 존재하는 시점입니다. 육이 먼저 만들어지고 영이 뒤에 투입되거나, 영이 먼저 선재하고 있다가 육이 준비 될 때 투입되는 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육이 뱃속에서 발달 과정을 겪고 있는 그 어떤 시점, 또는 출생되는 그 어느 시점에 비로소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뱃속에 존재하는 그 시점이 이미 사람으로 완성된 단계이기 때문에 영이 동시에 투입되어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태아란, 그 인체의 발달 정도와 수준 등이 어릴 뿐이지 사람으로서는 완전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몸과 영 사이에 있는 마음만 누락시켰다가, 태아가 출생할 때 만들어진다거나 아니면 그때부터 이제 활동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많을 것 같습니다.

인체가 처음에는 점 하나로 출발하지만, 사실 그 점 하나 시절부터가 사람이며 그때 이미 영은 그 점 하나로 모여 있는 인체 속에 투입된 것입니다. 의식 역시 그 인체가 점 하나로 출발하듯 말하자면 그렇게 어리고 초보적인 수준이어서 역시 그 의식도 점 하나로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영과 육이 하나되어 완전한 사람으로 출발하는 순간입니다.

아무리 작아도 아무리 보잘 것이 없어도, 심지어 현미경으로 관찰이 되지 않고 어떤 고성능 기계로 감지할 수 없는 수준의 의식이라도, 중요한 것은 영과 육이 하나로 결합된 그 순간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영은 단일성이기 때문에 분화되어 가는 성장과정이 없고 대신 그 기능 실력이 장성하는 것이고, 의식과 인체는 육이므로 외형상 여러 부분으로 모습을 갖추어가는 변화 과정이 많을 것입니다.


4.혹 실익이 없는 순수 이론 전개라고 보실 분이 계신다면

바늘 끝에 천사가 몇이나 올라 갈 수 있느냐는 문답으로 시간을 보낸 신학계가 있었습니다. 혹 그런 이론을 위한 이론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지금 살펴보는 이 문제는, 한 사람의 구원 현장을 두고 적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다.

만일 태아가 뱃속에 생기는 순간부터 영과 육이 결합되고 그 육은 비록 아주 초기 형태라 해도 몸은 몸으로 마음은 마음으로 존재하는데 필요한 필수요소를 갖추고 그 때부터 내부와 외부의 조화 속에서 만들어져 가는 모습이 시작된다면, 우리는 그 아이가 접하는 현실의 유일한 창구라고 할 수 있는 산모의 중요성을 너무도 중요하게 다시 봐야 하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그 아이의 출발 시점을 모르기 때문에 결혼하는 부부를 비롯하여 아이를 가지게 될 부부들이 어느 시점부터 조심하고 살펴야 할지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마치 도가니 속에 넣고 찌는 요리와 같이 그 모체는 그 출발하는 아이에게 그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삼손은 날 때부터 조심을 시켰지만, 삼손의 어머니에게는 삼손이 뱃속에 생기기도 전에 조심하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삼손은 그 뱃속의 태아로 출발하는 순간부터 특별한 신앙지원이 있었습니다. 천주교의 생명 중시는 개를 먹지 말자는 불신자의 자연 사랑 사상이지만, 우리는 건설구원면을 두고 조심할 차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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