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곳에 가서, 평생 살다가, 그 곳에 묻히는 것
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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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3 00:00
바로 된 선교는 모두가 귀합니다.
선교가 귀한 것만큼 선교가 아닌 것이 선교 안과 주변에는 가득 찼습니다.
아직 한 번도 선교와 관련하여 직접 관련한 것이 없으므로 선교를 논하기는 곤란합니다.
그러나 소원을 말씀 드린다면 당연히 공회 노선에서 이렇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어디든지 가게 되면 그 곳의 방 한 칸을 얻고 그 방에서 모든 것을 출발하지 그 방이 아니고 그 주변이 아닌 먼 곳의 것은 모두 차단하면 좋겠습니다. 공회 목회자는 4시간이면 국내 어디든지 다 갈 수 있는 오늘 교통 상황과 손에 든 휴대폰으로 전국과 세계의 누구라도 통화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휴대폰을 가지지 않거나 가졌다 해도 교인 심방용 외에는 사용하지 않으며 자기 교인 외에는 동역자는 물론 고향 친척 집안 부모라 해도 '교회 출석의 심방' 목적이 아니면 몇 년이 되도록 찾아 가거나 통화하는 일도 없을 정도입니다.
하물며 딴 세계로 간다는 것이 선교니 한 번 가면 그 것으로 그 사람의 얼굴도 음성도 이 땅 위에서는 다시 보지 않을 정도라야 선교라고 생각합니다. 멀리 가는 것이 좋고, 고향과 친척을 보지 않는 것 자체가 큰 것이 아니라, 그 곳에 자기 주변 사람이 전도 대상이요 한 사람이라도 믿게 되면 그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식구니 그들을 위해 전력하다 보면 인간인지라 다른 일을 할 수가 없고 다른 여가를 구할 수가 없는 것이 자연스러운 듯합니다. 최전선의 군인은 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고향을 올 수 없고 연락조차 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십자가 전투는 죽는 그 날까지입니다.
공회는 순교를 입에 올리기 전에 국내에서 집안들 속에 살면서도 대개 그런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멀리 가서 복음으로 그들을 돕는 것이 선교니, 당연히 선교는 그들 속에서 자기 손으로 할 수 있는 것까지 자기가 하고 그 외에는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이런 점에서 후원자가 먼저 후원을 하는 것은 복이 되는 일이나 선교자가 먼저 후원을 바라는 것은 복음운동의 첫 걸음에 혼선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가게 되는 것도 진정 주의 인도를 따르고, 일단 갔다면 그 곳에서 그들처럼 먹고 입고 살다가 그들 중에서 죽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다만 이 정도의 기준은 100점일 터인데 우리의 실제 견딜 수 있는 수준은 50점이나 60점 정도이므로 각자 자기 능력에 맞추어 자라 가면 됩니다. 따라서 선교의 첫 날부터 그렇게 하지는 못해도 방향을 이렇게 잡고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공회 목회자들은 출신에 상관 없이 완전 노동판과 골목 장사로 시작하기 때문에 비록 타 교단처럼 거대한 일들은 하지 못해도 적어도 이제 설명한 이런 걸음은 한 걸음씩 떼놓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선교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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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에 대한 갈망을 가진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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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 정보는 넘칩니다. 공회가 가진 이상적 선교를 소개해 주십시오. 당장 목사님이 선교를 가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 것 같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