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가 되기 위해 개설한 곳이어서 대단히 조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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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0 4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교리-교회론-신앙생활-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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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에 담아 두고 계신 것보다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니 다시 한번 답변을 되돌아 보게 하였습니다.
이곳의 기본 자세는 무엇이 옳으며 무엇이 우리가 갈 길인지를 '연구'하고 싶은 곳입니다. 따라서
부족한 것을 지적하는 글에 대하여는 자칫 변명이나 공허한 논쟁이 될까 늘 조심하지만 아무래도 지적
하신 글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가지게 됩니다.

1.구체적으로 잘못된 것이 있다면 구체적인 대안을 가지고 발언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렇게 지적하신 분의 말씀을 가지고 다시 한번 위에 있는 글을 살펴보았으나 본 답변자의 글은 구체적으로 잘못된 것을 지적했고 또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 답변이 옳다면 제가 안내하는 바에 따라 행동할 것이 무엇인지는 너무도 뚜렷하다고 생각을 하며 반대로 제 답변이 잘못되었다면 어떻게 비판을 받아야 할지도 미리 말씀을 드린 것 같습니다.

이곳은 '이곳의 주관'이라는 전제를 명백히 한다음 '이곳의 주장'에 대하여는 대단히 구체적으로 또 거침없이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많은 반대 의견에 의하여 공개적으로 또 극단적으로 비판을 받은 기록이 많고 그 기록을 그대로 공개하고 있는 곳입니다. 단,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하여 단순히 '훼방'만 하는 결과가 되지 않고 대신 구원의 '안내'가 되도록 조심하다 보면 어떤 글에서는 답변자의 주장을 앞쪽에 진열할 때도 있고 또 조심스런 분들에게 대하여는 답변자의 주장을 여러 곳에 흩어두며 비교적 촉감이 거칠지 않도록 '조절' 하게 됨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2.웨슬레의 예를 드셨습니다만, 웨슬레의 경우가 바로 청년회를 말리는 이유입니다.

예로 드신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레 역시 시작 때 순수했음은 분명하나 자기 훗날의 위험성을 몰랐던 순진함이 있었고 그런 점에서 본 답변자가 '청년의 모임'을 걱정하는 대표적인 예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웨슬레와 같은 위대한 신앙가도 결국은 감리교의 창시자가 되는 참으로 안타깝고 참으로 두려운 결과가 있었음을 지적하신 분은 다시 한번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웨슬레와 같은 순수한 성령 운동을 오늘은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웨슬레의 경우를 좀 찬찬히 분석한다면 오늘 공회들의 청년들 모임과는 그 시작부터가 달랐음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참으로 순수했던 성령의 사람도 뱀의 지혜를 알지 못해 감리교단이 창시자가 되는 슬픈 경력을 갖게 되었음을 다시 한번 새겨 보셨으면 합니다.

3.엘닷과 메닷의 예언을 모세가 말리지 않았음을 기억하기 때문에 답변을 조심한 것입니다.

민수기 11장을 처음부터 살펴 읽게 되면 엘닷과 메닷이 속했던 70인에게 성령이 임하고 그래서 그들이 예언을 하게 된 것은 그들에게 임할 33절의 진노로 나가는 단계였습니다. 그리고 민수기 16장과 히브리서 3장으로 진행한 것이 그들의 신앙노선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성령으로 행동한 것과 그것을 막지 말라한 모세의 경우는 후대에 반복 인용될 때 자칫 성경이 반대로 사용되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이 본문에 충실하게 된다면 우리는 본 대로 말하고 마음먹은 대로 행할 수 없는 사람들이며, 우리의 언행심사는 오늘 복잡하기 그지없는 과학의 세계보다 더 세밀하고 철저한 계산이 있어야 할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4.모임을 지지하는 측의 말씀이 계셨으니 이곳에서도 한번 더 말씀을 드립니다.

청년모임 뿐 아니라 현재 그 청년모임과 같은 모임들은 종류나 회원의 구성에 상관없이 최소한 총공회 신앙노선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리고 백목사님의 교훈 입장에서만 본다면 엄금사항입니다. 이곳은 연구실이기 때문에 '엄금'이라 할 때는 단순히 과거집착적으로 모든 종류의 변화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엄금'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고 '엄금'하지 않으면 교회가 단체 속화로 끝장난다는 이치가 있기 때문에 절규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모임은 신앙의 목자된 자들이 자신들이 책임진 양들을 상대로 '인도'하는 성격이라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또래 집단형으로 모이게 되면 시작부터 주관신앙을 떠날 수 없다고 봅니다. 건전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웨슬레의 경우도 수평적 사교모임의 성격이 아니라 수직적 인도의 모임이었습니다. 자신을 인도하는 성령에게 붙들린 웨슬레가 다른 사람을 성령으로 인도하는 운동이었을 때까지가 초기 건전했던 잠깐이었습니다.

더구나 두 곳의 공회 모임들은 총공회라는 이름과 총공회라는 성격을 외부에 뚜렷히 밝히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이 문답과 이 문답에 대한 지적이란 일반 신학적 시각이 아니라 총공회와 백영희 신앙노선이라는 시각을 더욱 강조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본 답변자의 주장은 한번 경청하셔야 할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참고로, 이 문제에 대하여 좀더 자세한 의논을 원하거나 또는 추가 말씀이 계신다면 '주제연구방'으로 자리를 옮겼으면 합니다. 물론 이곳에는 이동되었음을 안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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