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천번제 질문에 대한 의견 - 김정수'로 올린 글을 읽고 -

- '일천번제 질문에 대한 의견 - 김정수'로 올린 글을 읽고 -

yilee 0 11


제목분류 : [~성경~주해~]
내용분류 : [-성경-주해-]/[-성경-성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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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천 번제에 대한 의견은 답변자도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천의 짐승을 한 자리에서 드리는 경우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너무 많고 그대신 한 마리의 짐승을 일천 일로 나누어 드렸다고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첫 답변에서 그렇다고 단정하지 않았던 것은 창22:3의 해석 때문이었습니다.

일천일을 계속 드린 제사라고 생각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의 답변에서 그렇게 단정하지 않고 그대신 '일천'의 뜻을 중심으로 설명을 드린 이유는 창22:3해석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으로 이삭을 바치러 갈 때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라고 성경은 명문되어 있는데도 백목사님은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땔감을 준비해서 아침 일찍 출발했다'고 습관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깨닫고 배우는 자세로 백목사님께 몇 차례 질문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성경 기록과는 다른 내용이 된다는 면을 말씀드렸는데 목사님은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땔감을 준비했다는 설교 내용을 번복하지 않았습니다. 혹 실수하시는 것인가 하여 이후 2차례 정도 더 질문을 했으나 역시 대답은 같았습니다.


3. 당시 많은 설명이 있었으나 요약한다면

인간으로는 이해 못할 그런 명령을 받았지만 이미 아브라함은 이전에 순종으로 이런 경험을 해 보았고 또 받아본 증거가 있기 때문에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의 준비는 밤새도록 준비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그 성구를 그렇게 해석해도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고 생각하였을 뿐이지 그 설교를 답변자 입으로 직접 다른 사람에게 외칠 확신은 없었습니다. 그후 15년 이상 세월이 지나가면서 이제는 그 성구를 그대로 읽으면서도 동시에 밤새도록 잠도 자지 못하고 장작을 준비하였다는 내용을 답변자 자신의 깨달음과 확신으로 외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4.일천 번제에 대하여 다시 한번 살펴본다면

일천의 짐승을 드린 것은 대하1:6에서 확실한데 이 성구는 그 일천의 짐승을 한번에 드렸는지 아니면 일천일로 나누어 드렸는지에 대하여는 일단 단정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기록과 날자는 여러 경우에서 햇수 단위가 하루 단위로 축약된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앙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 우리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상상하지 못할 시간과 희생을 드리되 과도하게 드리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종덕목사님이 신학생들에게 우물을 파게 하면서 이왕 한번 파면 되는 우물을 여러번 겹쳐 파게 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는 효율성이 아니라 자신을 바치는 그 면을 즐기고 기뻐해야 함을 가르쳤다는 것을 백목사님이 자주 인용하는데, 사실 백목사님의 평생이 그러했고 성경 인물과 또 모든 탁월한 성도들의 걸음이 그러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앞에 말씀된 성구는, 일반 문맥 문구해석으로는 일천번제를 한번에 드렸다고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겠으나, 혹 그렇지 않을 경우도 동시에 고려해야 할 성구라고 보았습니다.


5.성경해석의 아주 중요하고 절대적인 방법론 하나를 소개합니다.

성경으로 오늘을 보면 다 보이도록 적어놓았습니다. 또한 오늘을 보고 이 오늘을 기록한 성경을 찾는다면 다 찾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백목사님의 특이한 해석법입니다. 이런 해석법이 있기 때문에 신학과 원어를 마음놓고 깔아뭉갤 수 있는 것입니다. 신학에 없는 또 하나의 성경해석법, 최고의 해석법 하나를 더 소개한다면, 성경을 신앙으로 살아보고 체험한 그 실체를 가지고 해석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차원은 그 말씀으로 그렇게까지 살아보지 아니한 사람으로서는 멀리서 그런 차원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을 하는 정도이지 그 곳에 올라서서 그 곳에 펼쳐진 세계를 직접 보며 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곳은 백목사님의 신앙차원을 너무도 높고 귀하게 보고 있으므로 그 차원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세계를 말했는지를 늘 조심스럽게 경청하고 있는 편입니다.

백목사님이 깨닫고 가르친 내용은 이곳에서 늘 확신있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혹 직접 가르친 것이 아니라도 사석에서 또는 업무 처리에서 또는 여러 사람을 지도하며 목회하는 과정에서 확실하게 나타난 면은 비록 설교록에 없더라도 설교록과 같거나 그 이상으로 인정할 가치가 있는 경우가 있어 답변 등을 통해 확신을 가지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성구는 설교 지도 목회 공사석의 다른 기회를 통해서라도 이 성구를 단정하고 해석할 만한 기억이 없습니다. 이런 경우는 가능한 경우를 다 열어둔 상태에서 그동안 받은 말씀으로 비교적 장기간 생각하며 어떤 면으로 깨달아야 할지를 숙제로 두고 있습니다. 적어도 가능성으로는 두 해석이 다 가능하다고 보겠고, 일반적 해석으로는 앞에 의견 주신 분의 말씀에 답변자도 꼭 같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일천'이 가르치는 바에 대하여 앞에 답변한 내용에서 단정한 것은 모든 성경에서 그렇게 단정할 수 있고 또 이 성구에서도 단정할 수 있는 선입니다. 다만 일천 번제를 단번이냐 일천일로 나누었냐는 문제만큼은 앞에서 드린 말씀을 두고 오랫동안 혹 수년 또는 수십년에 이르도록 숙제가 될 듯합니다.

이런 때, 참으로 아쉬운 것은 답변자가 성경을 배웠던 분입니다. 그분에게 이 시간 전화를 들고 질문하면 문의하는 말이 입에서 나오자 말자 바로 답변이 나옵니다. 이 시대를 향해 주셨던 선지자를 그리며 오늘 답변자와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이 그런 신앙에 이르도록 성경에 능하고 성령에 충만하라는 하나의 귀뜸으로 생각합니다.


- 앞에 말씀 주신 분의 글에 대하여 토론이나 지적이 아니라, 그 글을 읽으며 참고될 몇 가지 내용을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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