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기도는, 모습은 다르나 내용은 같습니다.
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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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9 00:00
공회가 주로 사용하는 찬송가들은 보통 1 - 2백여 년이 되었습니다. 은혜 받은 성도들이 찬송이라는 그릇에 말씀의 은혜를 감사했으니 찬송은 설교의 다른 모습입니다. 1백 년 된 찬송이라면 그 찬송은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설교의 높낮이 강약 하나 바꾸지 않고 1백 년을 반복하고 있으며, 2백 년 된 찬송은 2백 년간 세계 모든 교회가 그렇게 반복하고 있습니다. 정통교회의 은혜 방편에서 말씀의 표현 방법과 반복이라는 방법은 은혜의 선택 사항이지 필수 사항이거나 배제 사항은 아닙니다.
기도 역시 마찬 가지입니다. 주기도문은 마태복음 6장에 직접 나오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으나 사도신경은 성경 기록이 아니라 성경으로 깨달은 요약입니다. 짧기는 하나 설교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사도신경은 1천 년 이상 정통교회들이 예배 때마다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의 요약성은 탁월하지만 분명히 설교입니다. 좋은 설교는 그렇게 오래 동안 반복 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상당히 긴 설교입니다. 그런데도 수백 년 동안 정통 교회들은 어린 학생들에게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우도록 경쟁을 시켜 왔습니다.
공회는 타 교단들의 개별 전통과 교훈과 요약 된 내용을 존중합니다. 무조건 정죄하지는 않습니다. 개별 교단의 개별 교훈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 원칙 바로 그대로 이 노선은 이 노선이 은혜롭다고 기억하며 체험하며 중요하게 반복해야 할 설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설교들은 때로는 주일학교 공과 형태로, 때로는 시적 어귀로 전해 지며, 어떤 내용은 교리 표현으로, 어떤 것은 기도문으로 남겨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기도문으로 남겨 진 것은 없을 정도이고 기도의 내용이 너무 좋아 다시 한 번 들어 보며 그 기도문에 담긴 성경의 해석과 외침을 가지고 오늘의 우리 모습을 살펴 보는 수가 있습니다.
오해의 소지로 말한다면 쳐다 보면 째려 본다 하고, 그렇게 비판할까 해서 눈을 밑으로 향하면 무시한다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눈을 감고 다닐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조심하되 무조건 시비조로 접근하는 분들에게는 그들의 눈을 열어 주시고 마음을 넓혀 주시도록 기도하며 그들이 때가 되어 신앙의 성숙도가 좀 많아 질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 반사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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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집회 기간입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 음성 자료를 교재로 삼아 집회를 하는데 설교 내용뿐 아니라 기도까지 그대로 녹음대로 합니다. 오해 소지가 많다고 지적들을 합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목사님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