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해석에 대한 연구결과`
......
0
2010.08.08 00:00
무명2님의 계시사상을 깨닫는게 중요하다는 말씀에 동의하며 설교록 올립니다.
17장 1절 ~ 8절:
1절부터 3절: 저번 주에는 음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고 오늘은 붉은 빛 짐승을 탄 두 여자가 지금 보입니다.
3절 하반 절에 ‘일곱 머리와 뿔이 열이다’ - 글자 그대로 보면 이것은 괴물입니다. 세상에 그런 짐승은 없지요? 그런데 세상을 가만 보면 머리가 많고 뿔이 많은 것을 좋아합니다. 이 성경 본문에 보니까 여자도 머리가 많고 뿔 많은 것이 그렇게 매력 있게 보이고 좋아 보였기 때문에 그만 거기에 홀딱 반한 겁니다. 가만 보면 세상 사람들이, 여자들이 그런 것에 잘 반해요. 장(長) 자리가 많은 거, 권세가 많은 거 이것을 그림으로 싹 그려보면 머리 일곱 개, 뿔이 열 개 달린 괴물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림으로 그리면 그렇게 나타나요.
또 세상을 쳐다보면 장 자리가 많은 걸 우리가 볼 수가 있지요? 무슨 명함에 보면 장 자리가 많은 명함을 새겨가지고 자기를 소개할 때에 아주 자랑스럽게 척 내 놓지요.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아 네, 그렇습니까?’ 하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굽신굽신하고 잘 봐 달라고 그러지요.
‘짐승의 머리가 일곱이라’ - 이 머리는 어떤 곳이냐 하면 명령하는 곳, 머리는 지도를 하는 곳, 머리는 살피는 곳, 머리는 상황 보고를 듣는 곳, 머리는 생각하는 곳, 머리는 어른이다 하는 곳, 장이다 하는 곳.
머리가 일곱이니 전문적인 직책을 가지고 있는 두목들입니다. 짐승의 머리가 일곱이라고 그랬으니 짐승의 한 몸에 장이라고 하는 전문적인 직책을 한꺼번에 가졌다고도 볼 수 있고 또 하나는 사람 개개인마다의 전문적인 직책을 하나하나씩 일곱 사람이 가지고 있다는 말도 되는 것입니다. 머리가 일곱이니 전문적인 직책을 가지고 조직이 잘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두목들의 조직이 주축이 돼서, 기둥이 돼서 짐승을 타고 운전을 해 가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은 두목들이 조직이 되어 가지고, 주축이 되어 가지고 여자를 인도해 나가는 꼴이다.
우리가 싸움이 나는 교회를 가만 보면 주축이 진리가 아니고 그 교회의 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들이 주축이 돼 교회살림을 맡아 교회를 끌고 나가고 있고 목사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며 목사님을 내쫓고 싶으면 내쫓고 마음대로 다른 목사님을 맞아들이기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그런 것도 이 장면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자는 겉으로 나타난 모양새입니다. 명예적인 어떤 모양새. 여자의 치마 밑에 숨어 가지고 여자를 업고 가는 것은 짐승입니다. 이 짐승이 여자를 업어 가지고 운영해 나갑니다. 참 주님의 교회는 오직 진리와 성령으로 인도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뿔이 열이다’ 그랬지요? 뿔은 힘의 상징입니다. 권세라 그 말이요. 상대를 정복하고 이길 수 있는 힘. 권세가 있어요, 조직이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힘입니다. 세상적인 권세와 조직에 의해서 되어 나가는 것은 진리가 아니고 세상적인 힘이라고 생각을 하십시오.
이 짐승은 모든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그런 힘을 갖고 있습니다. 다 끌어 모았다 그 말이요. 세상이 알아주는 머리에다가 세상이 알아주는 힘입니다.
여자가 이런 짐승을 타고 앉았으니까 여자는 이 짐승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고, 여자는 짐승의 소원을 들어주고. 그러니까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하는 식으로 서로 공생이 되어 있다. 교회의 힘은 오직 진리 능력입니다. 진리밖에 없어요.
4절에 보면 여자의 의상이 나오지요?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 이 자주 빛과 붉은 옷은 왕들과 왕족들이 입는 옷입니다. 그리고 옷을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몸을 보호하는 옷이고 또 약속된 옷을 입음으로 해서 권세를 나타내기도 하고 생활정도를 나타내기도 하고 신분을 나타내기도 하고 직책을 나타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게 옷입니다.
그러나 그건 사람이 약속적으로 옷을 입음으로 직책 권세 어떤 신분을 나타내는 의미로서의 옷이지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지는 못하는 겁니다. 옷을 잘 입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이 내적인 면으로 성장이 잘 되었다, 고상한 인격을 가졌다 꼭 그렇게는 볼 수가 없는 거지요. 옷을 허름하게 입었어도 내적으로 인격이 고상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가만 보면 겉의 옷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요?
짐승을 탄 여자는 옷으로 외모로 외형으로 자기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그러지 않나요? 특히 여자의 경우에 모피코트 하나 걸치면 뭐 굉장하게 봅니까? 그게 뭔지 이 IMF 시대에 정신을 차린 여자들은 허리끈을 조르고 있는데 정신없는 반국가적인 여자들은 그런 헛된 생각을 하고 그런 옷을 사고 그런다 그 말이요. 그거 어디 돼 먹겠어요? 그게 옷을 가지고 자기를 과시하는 거.
‘나는 이렇게 훌륭하다’ 하는 것을 외모 외형적으로 과시를 하는 사람의 속은 텅 비었다. 빈 깡통이다. 그 머리통 속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이렇게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게 없으니까 겉모양 새로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는 거 거든. 그건 아주 잘못된 거지요.
짐승들이 그러지요? 뿔을 가지고 ‘내 뿔 크지?’ 하며 싸워서 장 자리 차지하지. 뿔이 얼마나 크냐, 몸뚱이가 얼마나 크냐, 입이 얼마나 크냐 하는 이런 것 가지고 장 자리 차지하지요. 그거 짐승의 세계에서 하는 것이지요.
이 여자는 왕들의 생활 곧, 누림의 생활로 호화로이 누리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몸에 금과 보석으로 엄청난 치장을 하고. 왕들의 생활이 그렇잖아요? 가슴이 탁 타진 옷을 입고 하반신이 거의 나올 정도로 짧은치마를 입고 거기다가 한쪽 어깨의 옷을 이렇게 다 내린 채 풍악을 울리고 손에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도 하고 연극도 하고 분장도 하고 잔치도 하고. 이게 귀족의 생활이라, 누림의 생활이라.
그런 생활 다 좋아하지요? 사람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날마다 그렇게 살면 아마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안 그럴까요? 굉장히 허무할 것 같아요.
혹시 여러분들, 일하는 것을 고생으로 여긴다면 아침 점심 저녁 세끼 다 줄 테니까 우리 집에 한 달간만 있으면서 계속 한 번 놀아봐요. 사람이 피곤하고 허무하고 죽고 싶은 마음이 날 거야.
사람이 일할 수 있다는 거 참 행복입니다. 일한다는 건 건강하다는 상징이지요. 육체적으로 불구인 사람은 신체상 그렇기 때문에 일을 잘 못 하지요. 조건이 그렇기 때문에. 그런데 신체가 건강한데도 일을 못하는 사람이 있어. 그건 정신적인 불구지요. 육신은 건강한데 정신적인 면에서 불구인 사람이 일을 못 해요. 일을 피해서 도망을 가고, 안 하려고 그러고. 그러나 육신이 건강하고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일을 보면 달려들지요. 일하는 사람을 보면 ‘아, 내가 뭐 도와줄게 없습니까?’ 하지요. 그런 사람은 어떻지요? 사랑을 받지요. 사랑 받고 먹는 것이 절로 생기고. 일 시켜 놓고 일 시킨 그 사람이 자기 혼자 먹습니까? ‘아, 이리 와서 같이 먹읍시다’ 하지요. 그런 사람은 자동적으로 사랑을 받게 되는 거지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놨어요.
호화로운 잔치를 하는 이 여자가 요즘 말로 하자면 땅의 역마차(자동차), 하늘의 역마차(비행기) 타고 하와이나 괌도에 가고 그러지요? 그거 많이 볼 수 있거든. 하와이에서 훌라훌라 하고 괌도에 가서 ‘꽝!’ 하고. 그거 참 재미있지요? ‘나도 한 번 돈을 펑펑 쓰는 이 누림의 생활을 살다 갔으면’ 하고 모두들 부러워합니다.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 세상을 보면 그렇지만 예배당도 보면 건물에 엄청난 치장을 하는 것을 봅니다. 요새 많이 나오지요? 안팎으로 거룩하게 성스럽게 보이게 하려고 예배당 안을 외국제로 치장을 하고 엄청난 투자를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왜 그렇게 하느냐? 하나님이 이곳에만 계신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말이요.
교인들 옷 입은 거 하며 찬양대 옷 입은 거 하며 또 무슨 행사 때에 일률적으로 옷을 맞춰서 입고 돋보이게 하고, 교역자도 진짜 하나님의 종이 그런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종처럼 무슨 가운을 싹 입고 말이요. 거기에다 하나님의 진짜 종은 보디가드에다 값비싼 자가용을 타고 다닌다면서? 가짜 종은 그런 걸 안 타고 다니지? 그렇지? 그리고 또 명예, 명칭도 많습니다. 분명히 그런 사람은 그래요. 무슨 총장에다가 무슨 연맹의 총장에다가 무슨 지도부장에다가 무슨 사회부장에다가. 이게 다 자기를 돋보이게 하는 하나의 치장술입니다. 사단도 자기를 영광의 천사처럼 꾸민다고 했지요.
주님께서는 외모나 외부적으로 볼 것이 없다고 그랬지요. 뭐 볼게 있습니까? 주님에게 뭐 돈이 많이 있습니까, 무슨 큰 아파트를 가지고 있습니까? 능력 많으신 분이 집도 절도 아무 것도 없다고 그랬어요. 여우는 굴이 있지만, 새도 자기가 깃들 집이 있지만 주님은 아무 것도 없다고 그랬어요. 이사야서엔가 보면 외모로 볼게 없다고 그랬지요. 확실히 그런 것 같아요. 세상이 바라고 원하는 물질적 누림의 조건, 의식주의 조건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있다면 오직 진리능력밖에 없습니다. 창조의 능력, 온전케 하는 능력밖에 없어요. 참 종들은 세상 것 내세우지 아니했고 오직 진리만 좋아서 따라 갔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손에 뭘 가졌다고 그랬지요? 손에 금잔을 가졌습니다. 왜 금잔을 가졌을까요? 자랑시키려고? 마시려고! 자기도 마시고 남도 마시게 하려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그 속에 무엇이 들었습니까?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 아, 소주라든지 우유라든지 들어 있지 않고 ‘가증한 물건과’ 했으니까 물건이 들어 있대요.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 하는 이것도 물건이야. 이 물건들이 가득하더라!
손의 금잔은 겉으로 보기에는 금잔입니다. 호화찬란해요. 금잔을 턱 들고 있으면 그 속에는 아주 귀한 것이 들어 있을 거라, 먹음직스러운 것이 들이 있을 거라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이것을 다른 각도로 보면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영광스러운 사역입니다. 사역적인 것이 가득 들어 있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만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눈으로 먹는 것, 귀로 먹는 것, 코로 먹는 것, 느낌으로 먹는 것, 이런 것도 알아야 합니다. 생각이 쏙 들어가서 어떤 욕심이 생기면 그것을 먹은 거다 그 말이요. 탐하는 걸 사상적으로 말하면 먹는 거라.
가증한 물건이 무엇이냐? 하나님 앞에 자랑을 시키려고 하는 물건, 물질이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것이라면 이게 가증한 겁니다. 그러나 인간 보기에는 그것이 좋기 때문에 거기다가 몸 바치고 시간 바치고 물질 바치고 합니다. 또 그렇게 하기 위한 사역적 목표가 순서적으로 가득 들이 있는 겁니다. 사역을 하려고, 그 사역을 이뤄보려고 계획적으로 짰다 그 말이요. 그걸 이제 마신다고 하는 것이라 그 말이요. ‘그것을 이루어야만이 신앙이다, 믿음이다, 하나님께 영광이다’ 라고 하는 것이라 그 말입니다.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 음행은 마음을 뺏어 가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우상 숭배적인 행위입니다. 우상 숭배적인 행위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부처 앞이나 어떤 돌이나 나무 앞에서 절을 한다거나 별을 보고 절을 한다는 그것보다도 신앙의 즐거움과 쾌락을 종교적인 어떤 놀이에서 찾게 한다 그 말이요. ‘그렇게 해야만이 신앙이다, 믿음이다, 은혜 받았다, 하나님께 영광이다’ 하는 것으로 돼 나간다 그 말이요. 곧 예수님의 정신 사상을, 믿음을, 세상에다 파는 행위입니다. 물질에다 붙인다 그 말이요. 진리를 더 깨닫고 진리의 사람이 되는 그 목적이 아니고 사역에다 시간과 몸과 계획과 모든 것을 들인다 그 말이요. 그렇게 이루어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이다, 받아 주시옵소서’ 하는 것이 가증스럽다 그 말이요. 하나님은 그걸 받으려는게 아니지요.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 손은 사역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 사역이 가득 들어 있다. 쉽게 말씀드리면 봄엔 야외예배로 가고 여름에는 수영예배로 가고 가을은 단풍예배로 가고 겨울은 썰매예배로 가고 기타 사회 봉사하는 이런 프로그램입니다.
여러분들은 안 해 봐서 모르지만 나는 이 진리를 몰랐을 때 그걸 많이 했으니까 그걸 잘 알아. 그거 재미는 있어요. 참 재미있어. 전도한다 하고 동네 청년들 다 끌어 모아다가 학교 운동장에 가서 축구대회하고 하면 참 재미있어. 그렇게 하면 전도가 되기는커녕 싸움판이 벌어져요. 전도 안 되요. 그렇게 해서 예수 믿은 사람 없어. 믿음이 들어가는 사람도 없고. 그런 식으로 하려면 계속해서 맨 프로그램만 짜야 하니까.
봄이면 솥단지 둘러메고 청년들 데리고 산으로 들로 나가고 여름에는 반사들 데리고 바닷가에 데리고 나가고 하면 뭐 얼마나 재미있어. 추수감사절 때, 크리스마스 때 되면 얼마나 또 바쁜지. 맨날 청춘 남녀들 모여서 연극도 하고 분장도 시키며 낄낄거리고. 그게 진리 배우는 거지? 그런 것이 가득하더라!
그렇게 10년을 해 봐도 진리 깨닫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그 면에 대한 레크레이션 전문가들이 있지요? 그리로 나가려면 또 몰라. 그러나 진리는 없어. 진리를 못 깨달아. 성경은 못 깨달아. 성경에서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성경구절에서 하나의 종교생활을 찾는 것뿐입니다. 하나의 종교인밖에 안 되요.
그러니까 이 교회를 일반적인 눈으로 보는 것과 성령의 눈으로 보는 것과는 천지 차이로 달라지는 겁니다. 일반적인 눈은 겉만 보이고 성령으로 보는 눈은 속에 들어 있는 그 정신의 방향, 그 신앙 정신의 방향, 사상 이런 걸 본다 그 말이요.
이 여자를 하나 하나 뜯어 생각해 보면 그렇게 재미가 있어요. 그러나 그림으로 싹 그려 놓으면 이거는 아주 사치스러워. 그게 보이는 거지요. 이 요한계시록을 가만 보면 사상을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겁니다. 모아 가지고 그림을 그려 놓으면 괴물도 되고 용도 되고 마귀도 되고. 하나를 뜯어서 분해를 시키면 어떤 사상, 목적이 돼 나와요. 재미가 있어.
여자의 이마가 나오지요? 5절에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 여자의 이마에 이름이 있다. 무슨 이름이냐? 비밀이라! 비밀이라고 안 써 놨으면 괜찮을 텐데 비밀이라 써 놨어. 그리고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여자의 이마는 그 여자의 정신 사상을 말합니다.
비밀이라고 그랬지요?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숨겨져 있어서 깊게 알지 못한다는 거, 일부러 숨겨 놓은 거. 그리고 또 하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게 아니다. 안 가르쳐 준다는 의미로서 비밀이라는 말이 아니고 숨은 목적이 있다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알겠지요?
그런고로 교회를 겉만, 모양만, 행동만 보지 말고, 성경구절만 듣지 말고, 예수 이름으로 한다고 하는 간증이나 기도만 듣지 말고, 설교를 재미있게 하는구나 그렇게만 듣지 말고 말을 가지고 상대가 나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 그리고 끌고 가는 목적이 무엇이냐?
‘너 이리 좀 와 봐라’ 할 때 나를 왜 끌고 가는지? 수박을 주려고 그러나, 과자를 주려고 그러나, 사탕을 주려고 그러나, 일 시켜 먹으려고 그러나 하는 그게 들어 있다 그 말이요. 그렇지 않습니까? 어린애들이 떠들었을 때 엄마가 ‘너 이리 좀 와 봐라’ 그런다면 왜 오라고 그러지요? 사탕 주려고. 두들겨 패려고? 그런게 들어 있다 그 말이요.
끌고 가는 목적이 무엇이냐? 일이냐, 사건이냐, 사역이냐, 육이냐? 아니면 인격이냐, 영적이냐, 하나님의 성품이냐, 자타의 구원이냐? 보통 보면 종교적인 업적이 많습니다. 우리가 그 말씀 속에서 목적하는 바를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일반 인격은 일반적 도덕성적 개념인고로 하나의 도덕생활이 되어 버립니다. 여러분들 빨리 알아차려야 되겠어요.
‘믿음을 잘 지켜라, 신앙생활을 잘 하라’ 할 때 ‘어떤 것이 믿음이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겁니까?’ 하면 ‘주일성수 잘 하고 헌금 잘 하고 전도 잘 하고 새벽기도 잘 나오는 거다’ 라고 하며 거기다 강조가 되면 무엇이 됩니까? 예? 하나의 일반적인 종교인밖에 안 되는 겁니다. 그걸 잘 알아야 합니다. 그거 주의를 해야 되겠지요.
누구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그 물 먹고 그 밥 먹으면 그 살이 찌기 마련입니다. 이런 이치를 무시하게 되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요.
‘큰 바벨론이라’ - 여자가 큰 이상을 가졌습니다. ‘큰 바벨론이라’ 하는 것은 큰 꿈을 가졌다 그 말이요. 여자가 큰 꿈을 가졌어.
‘세계 만방에 우리 이름을 날리자, 세계 제 1의 강대국을 만들자, 세계 제 1의 부국을 만들자!’ 처음에 누가 그랬지요? 여자? 여자의 조상이 누구지요? 니므롯! 니므롯이 그런 사상을 가졌습니다. 이 니므롯이 바벨탑을 건설했거든요. 그러니까 큰 바벨론이라고 하는 이런 큰 꿈, 큰 이상을 가졌지만 여기에는 사상적 혼합성이 들이 있어요. 단일성이 아닙니다. 이종교적 사상도 들어 있고 비종교적 일반적 사상도 들이 있고 또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의 종교적 사상도 들어 있습니다. 신앙사상이 아니고 종교적 사상. 그러니까 혼합이다 그 말이요. 혼합적 사상이다.
우리가 알기로는 눈에 보이는 가견적 건설에는 영적 신앙사상이 필요가 없습니다. 신앙이 없어도 세상은 건설할 수가 있으니까 세상과 세상적인 종교는 신앙사상이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 사상이 필요가 없어. 바벨의 시조 니므롯의 사상이 그랬다고 그랬지요? 큰 바벨론의 꿈을 갖고 있어.
그리고 또 이 여자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다’ 그랬지요? ‘땅의 음녀들의 어미다’ - 그러니까 땅의 음녀들을 생산하고 양육하는 어미가 되는 거지요. 생산하는 곳, 교육하는 곳, 음녀들을 배출하는 곳, 바벨론 정신 사상으로 길리움을 받는 곳. 이거 땅의 음녀들의 어미다. 모체란 말이요. 그런 사상이 나오는 모체.
‘가증한 것들의 어미다’ - 그러니까 그 정신 사상을 가지고 실천적 활동을 하게 하는 양육자입니다. 하나님 앞에 미운 짓만 하게 하는 여자입니다. 그러나 인간들 보기에는 좋고 아름다워서 부러워하는 것이지요.
음녀를 왜 배출시키느냐? 음녀를 배출시켜서 돈을 긁어모아서, 음녀 짓을 해야 돈이 긁어모아지지 않습니까? 돈을 긁어모아서 일을 만들고 또 음녀를 배출시켜서 또 돈을 긁어모으고 해서 큰 바벨론을 건설하는 거. 우리가 교회적으로 본다면 간판은 기독교요 명칭은 교회요 호칭은 성도인데 하지만 음녀의 짓을 하는 교회가 많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6절에 보면 어떻게 하고 있지요? 취한 것은 많이 먹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먹으면 어디 취하겠습니까? 어떤 한 면에 정신을 팔고 있으면 그거 취한 겁니다. 세상으로 정신없이 나가는 사람을 보고 취했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성도들의 피에 취해 있다고 하는 걸 글자 그대로 액면적으로 보면 성도들을 많이 죽였다는 거지요. 성도들의 피에 취했다고 했으니까 성도들을 많이 잡아먹었다 그 말이지요. 참 이상하지요? 일곱 교회 중에 안디바가 어디서 죽었지요? 교회 밖에서 죽었어요, 교회 안에서 죽었어요? 교회 안에서 죽었어요. 그런 것처럼 성도들을 죽였다는 것.
교회가 성도들을 죽여? 그거 참 이상하지요? 그거 참 기이하다. 교회가 성도들을 죽여 놓고 우리 교회는 믿음이 좋은 순교의 교회라고 할 수가 있다 그 말이요. 이스라엘 백성이 선지자들을 죽여 놓고 선지자들의 이름을 또 팔아먹는 거. 그런 것도 있을 수가 있거든요.
두 번째는 뭔고 하니 성도들의 피를 먹는다, 성도들을 죽인다 하는 그 면을 성화구원적인 면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지요. 성도들의 노력 착취를 많이 했다는 겁니다. 회사도 보면 직원들을 많이 착취하면 피를 빨아먹는다고 그러지. 큰 바벨론을 건설시키느라고. 그러니까 종교적으로 말한다면 종교적 바벨론이 되겠습니다. 성도들에게 충성 봉사를 많이 하면, 하나님 앞에 물질 많이 바치면 큰 상급을 받는다는 식으로 몰아가지고 충성 봉사심을 다 받아먹은 겁니다. 빨아먹는 거. 성도들의 노력을 다 빨아먹는 거.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성도들의 영인의 성장성은 자라지를 못하고 다 죽습니다. 자라지 못하는 건 죽는다 그 말이요. 죽으면 못 자란다 그 말이지요. 주님의 뜻과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그런 성경 깨달음은 없고 죽도록 일 충성 봉사하는 그 경력밖에는 없습니다. 성도들의 영적 기능면과 지능면을 다 죽여 놓습니다. 그 면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애굽이 이스라엘을 착취했지요. 애굽을 건설시키느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시간과 노력과 피와 땀을 착취한 것인 줄 압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내보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영적 기능면과 지능면이 자라나는 건데 그 면을 못하게 하고, 하지 말라 그러며 애굽만 건설시키는 거지요. 그게 착취라 그 말이요. 그거 죽이는 거다.
그 애굽과 같은 세상적인 교회는 성도들을 충성 봉사심으로 내모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영적 기능과 지능면은 다 죽습니다. 틀림이 없습니다. 성경의 이치는 하나도 못 깨달아요. 그런 곳에서는 깨달을 수가 없어요.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 기이하다고 하는 것은 참 이상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참람된 이름이 몸에 가득한 이 짐승을 여자가 타고 금과 보석으로 옷을 꾸미고 손에 금잔을 들고 마신다는 거, 그 잔 속에 가증하고 더러운 것이 가득 들어 있다는 거, 땅의 음녀의 어미요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는 이거 참 이상하다 그 말이요. 참 기이하다.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종교적 바벨론을 건설시키느라 그 노력 그 봉사를 다 빨아먹은 겁니다.
교회로 보면 교회가 그렇다면 참 이상한 일이다 그 말이요. 참 희한한 일이다. 교회라면 교인들의 믿음이, 신앙이 죽어 가는 것을 살려 놓아야 될 일인데, 살리는 것이 교회의 일인데 교회가 성도들을 잡아먹다니 그거 참 기이한 일이 아니냐 그 말이요. 영적으로 다 죽여 놓는 이건 참 기이한 일입니다. 교회가 그렇다면 기이한 일입니다.
7절: 짐승의 비밀, 여자가 탄 일곱 머리, 열 뿔. 이게 여자가 타고 있는 짐승이지요. 이 짐승이 8절에 보니까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디가 시방은 없으나’ 그랬지요 그리고 뒤에 보면 ‘장차 나올 것이다’ 그랬지요.
‘전에 있었다’ - 전에 있었대요. 네가 본 짐승이 전에 있었다.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여자가 탄 이 짐승이 전에 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는 큰 바벨론이라고 하는 이상을 가지고 있었어.
전에 있었다면 언제 있었느냐? 전에라면 언제를 보고 전에라는 것이냐? 에덴동산에 있었던 것을 보고 말하는 것이냐, 기독교를 핍박한 어느 나라를 말하는 것이냐, 기독교를 핍박한 어느 인간을 말하는 것이냐, 바벨론의 시조 니므롯이냐?
많은 사람들은 ‘전에 있었다’ 하는 그 짐승을 바벨론이나 앗수르 같은 나라들을 말합니다. 보통 보면 그래요. 어떤 사람들은 또 적그리스도국이라고 합니다. 사실 보면 이 짐승은 어느 국가던 개인이던 어떻건 사람이란 말이요. 사람이고 사람들인데 이 짐승의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어느 국가만이겠느냐? 우리가 보면 수없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많고요.
그런데 짐승이라고 말하면서 전에 있었다고 그랬으니까 계시록 13장 1절을 보면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있지요? 바다에서 나온 이 짐승이 머리가 일곱이고 그 머리 일곱에 참람된 이름들이 많다. 지도자급들이 분수에 넘친 이름이 많다고 그랬지요?
또 뿔이 열 갠데 열 면류관이다. 면류관은 자랑이고 권세를 가지고 싸워서 이긴 건데 또 보면 짐승뿐만이 아니고 용을 보면 일곱 머리에다 열 면류관이 있고 열 뿔이 있어요. 닮았지요? 통하는 겁니다.
이 짐승이 용의 권세를 받았어요. 받고 머리에 참람된 이름과 열 뿔을 가지고 싸워서 열 면류관을 썼는데, 그래서 짐승은 경배를 받고 마흔 두 달 동안을 하나님을 훼방하고 성도와 싸우고 이깁니다. 용도 보면 성도를 박해하고 그래요. 해를 입은 여자를 박해를 하고 13장에서 나오는 짐승도 박해를 해요.
전에 있었던 이 짐승이 시방은 없다고 했는데 잘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13장에서 나온 이 짐승을 지금 본문으로 와서는 여자가 타고 앉았거든요. 그렇지요? 본문에서는 여자가 타고 있는데 13장에서는 여자가 안 타고 있지? 그렇잖아요? 이 짐승이 성도를 박해하고 성도와 싸워서 이겨. 그러면 그걸 보고 전에 있었던 짐승이라고 말을 하는 건지?
시방은 없다고 한다면 뭐가 없다는 거냐? 그리고 또 ‘시방은 없다’ 하는게 ‘요한 지금 네 당대에는 없다’ 하는 것으로 보게 되면 참 이상하다. 왜? 율법주의, 이 유대주의자들에 의해서, 로마에 의해서 지금 환난 핍박을 받고 있다 그 말이지요. 이제 그 면으로 보면 ‘시방은 없다’ 하는 말이 ‘요한 네 때는 없다, 그런데 요한 네가 오기 전에는 있었다’ 하는 말이라면 이상하게 들리거든요. 그러니까 국가적으로 보는게 맞는 말로도 보여진다 그 말이요. 그리고 개인적인 것으로 봐서 기독교를 핍박한 왕들이라고 한다면 기독교를 핍박한 왕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 요한 당시 때의 그 사람을 말을 해도 잘 맞아 들어가지를 않고.
여자가 또 그 짐승을 타고 앉았는데 시방은 없다는 말을 왜 했을까? ‘시방은 없다’는 이게 무슨 말이냐? 그러면 여자의 입장에서 한 번 보자 그 말이요. 요한의 입장에서 말고 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13장 1절에서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이 대립과 마찰과 충돌적으로 나온 것을 볼 수 있고, 그 때는 이제 본 17장 8절에서는 박해를 주는 그 상황이 바뀌어 가지요. 여자에게 상당히 호응적으로 나온 것을 볼 수가 있다 그 말이요. 여자를 태우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이제 이 여자가 뭐로구나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은 안 해도 어느 정도 감이 잡히지요? 그러니까 방편을 살짝 달리 쓴 것을 볼 수가 있다 그 말이지요. ‘전에는 환난 핍박을 주는 짐승이었지만 지금은 없다’ 하는 것은 지금은 그 방법을 쓰지 않는다 하는 것을 볼 수가 있겠더라 그 말이요. 왜냐? 여자가 짐승을 타고 앉았으니까!
그런데 이 여자가 이제사 타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13장에서 짐승이 성도를 이겼으니까, 교회로 말한다면 교회를 잡아먹었으니까 짐승의 수법이, 용의 수법이, 마귀의 수법이 여자를 대우해 주는 것처럼 하면서 여자를 태우고 조직적으로 여자를 운전해 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 말이요.
그리고 전에 있었다고 했으니까 우리가 니므롯의 사상을 또 한 번 볼 필요가 있어요. 왜? 이 여자의 큰 이상이, 희망이 지금 큰 바벨론을 꿈을 꾸고 있으니까! 니므롯의 사상도 그랬었습니다. 대를 꼭대기까지 쌓아 우리 이름을 날리자, 그리고 우리가 흩어짐을 면하자. 달리 말하면 그 때는 벌써 노아 홍수 이후거든요. 막 끝난 이후입니다. 그러니까 홍수가 나더라도, 하나님의 심판이 오더라도 우리는 흩어짐을 면하자 그 말이요. 하나님의 심판에서 이기자 그 말이요. 그걸 그렇게 보면 사상적으로 어딘지 모르게 그 사상이 들어맞는 것 같아요.
이 짐승은 전에 있었지요? 니므롯도 전에 있었고. 그리고 니므롯의 사상은 요한의 때는 없었습니다. 사도 요한 때는 ‘큰 바벨론을 만들자’ 하는 거는 없었다 그 말이요. 그러나 마지막 때에 교회가 니므롯의 사상을 가진 것을 볼 수 있겠다. 그런 것이 나타나는 걸 볼 수가 있으니까!
그런데 그 사상은 지옥에서 나온 사상이다. 그 사상은 멸망으로 들어간다고 했어요. 나중에 그 짐승이 무저갱에서 나온다. 무저갱은 한도 끝도 밑도 없어요. 그러니까 욕심으로 말한다면 그 성취하고자 하는게 한도 끝도 밑도 없어. 잠깐 있다가 멸망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보면 이 짐승이 42달 동안 일하는게 있었지요? 그게 또 그렇게 부합되는 것이 아닌지?
어쨌든 하나님의 심판이지만 그 이전에 성화구원이 전혀 없는 사역이 되는 겁니다. 그 짐승이 나중에 나와서 일을 하더라도, 큰 바벨론을 꾸미더라도 그 사상은 성화구원이 없는 이방 종교적 사상이고 완전히 사망운동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짐승을 누가 따르느냐 하면 땅에 거하는 자들이 따른다고 그랬어요.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겨 따른다.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고 따른다고 그랬지요.
그러면 ‘창세 이후로’ 라고 하는 것은 ‘세상이 만들어진 이후로, 자기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그런 뜻도 들어 있고, 예수를 믿는 자가 예수를 믿는다면서 자기의 소원 목적을 땅에다 뿌리를 박아 놓은 자는 모두 짐승을 보고 따라 간다는 말입니다. 그것 따라가면 자기의 일생이 전부 다 낭비가 되고 멸망이 된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 윤영삼 님이 쓰신 내용 <<
:
: 이영인 목사님 숙제에 대한 개인적이 답변입니다.
: 저희교회(동천교회) 홈페이지에 먼저 글을 올린 내용입니다.
:
: (연구결과)
:
: 번역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 번역자의 사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
: 쉽게 예를 들면, 성경번역에서 `예정론과 한번구원은 영원구원`을 믿는 칼빈주의자가
: 성경을 번역하는 것과, `예지예정론과 구원상실`을 믿는 알미니안주의자가 성경을 번역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결정적인 부분에서 단어를 선별하는 것이 차이가 많이 날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개역성경은 철저한 칼빈주의자가 성경을
: 번역한 것이고, 개역개정이나 표준새번역 같은 현대의 번역본들은 알미니안이나 중도교리를
: 가진 신학자들이 번역을 많이 하지 않았나 생각이 되어 집니다.
:
: 이 부분은 일반서적 번역에도 적용이 되어진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떤 사상, 철학을 가졌느냐에따라 전체적인 내용이나, 단어선별이 달라질것 같습니다. 핵심 단어를 번역할때, 번역자의 사상에 따라 번역은 어쩌면 `하늘과 땅`이 될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한국인이 한글로 된 글을 읽을때도 그 사람이 가진 사상과 경험에 따라 해석이 다르게 되는것과도 비슷한것 같습니다.
:
:
:
: 현재 원본성경이 없는 상태에서, 사본성경을 가지고 영어성경으로 이마가 `음녀의 이마`로 번역되었다면, 제 판단으로는 사본에서 영어성경으로 번역하는 신학자들의 해석이 많이 반영되었지 않았나 생각되어집니다. 영어성경을 번역한 신학자들이, 이마를 금잔의 이마보다 음녀의 이마로 해석을 했기 때문에 `음녀의 이마`로 번역되었지 않았나 생각되어집니다.
:
: 2000년 기독교의 정통성과 역사성과 사회성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 백목사님 이번집회 설교록에서처럼, 그 정통성과 역사성과 사회성에서 잘못된 부분이
: 있다면 수정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
: 천주교는 1500년 역사성을 믿고 나아가다가, 현재는 완전히 이단이 되었고
: 정통개혁주의는 300~400년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만 믿고 나아가다가
: 삼분론 , 건설/기능구원이라는 지금 시대에 너무 필요한 교리로 못들어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
: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삼분론 기본-건설-기능구원론등을
: 깨달은 분이라면,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백목사님 해석이 옳지않나 생각되어집니다.
>> 윤영삼 님이 쓰신 내용 <<
:
: 이영인 목사님 숙제에 대한 개인적이 답변입니다.
: 저희교회(동천교회) 홈페이지에 먼저 글을 올린 내용입니다.
:
: (연구결과)
:
: 번역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 번역자의 사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
: 쉽게 예를 들면, 성경번역에서 `예정론과 한번구원은 영원구원`을 믿는 칼빈주의자가
: 성경을 번역하는 것과, `예지예정론과 구원상실`을 믿는 알미니안주의자가 성경을 번역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결정적인 부분에서 단어를 선별하는 것이 차이가 많이 날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개역성경은 철저한 칼빈주의자가 성경을
: 번역한 것이고, 개역개정이나 표준새번역 같은 현대의 번역본들은 알미니안이나 중도교리를
: 가진 신학자들이 번역을 많이 하지 않았나 생각이 되어 집니다.
:
: 이 부분은 일반서적 번역에도 적용이 되어진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떤 사상, 철학을 가졌느냐에따라 전체적인 내용이나, 단어선별이 달라질것 같습니다. 핵심 단어를 번역할때, 번역자의 사상에 따라 번역은 어쩌면 `하늘과 땅`이 될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한국인이 한글로 된 글을 읽을때도 그 사람이 가진 사상과 경험에 따라 해석이 다르게 되는것과도 비슷한것 같습니다.
:
:
:
: 현재 원본성경이 없는 상태에서, 사본성경을 가지고 영어성경으로 이마가 `음녀의 이마`로 번역되었다면, 제 판단으로는 사본에서 영어성경으로 번역하는 신학자들의 해석이 많이 반영되었지 않았나 생각되어집니다. 영어성경을 번역한 신학자들이, 이마를 금잔의 이마보다 음녀의 이마로 해석을 했기 때문에 `음녀의 이마`로 번역되었지 않았나 생각되어집니다.
:
: 2000년 기독교의 정통성과 역사성과 사회성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 백목사님 이번집회 설교록에서처럼, 그 정통성과 역사성과 사회성에서 잘못된 부분이
: 있다면 수정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
: 천주교는 1500년 역사성을 믿고 나아가다가, 현재는 완전히 이단이 되었고
: 정통개혁주의는 300~400년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만 믿고 나아가다가
: 삼분론 , 건설/기능구원이라는 지금 시대에 너무 필요한 교리로 못들어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
: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삼분론 기본-건설-기능구원론등을
: 깨달은 분이라면,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백목사님 해석이 옳지않나 생각되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