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저주론은 교리적으로 잘못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느껴야 할 이유는 있습니다.
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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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002.06.02 00:00
제목분류 : [~성경~주해~]
내용분류 : [-성경-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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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요약)
함의 행동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은혜를 주실 때 '노아'라는 계통을 통하여 주고 있었는데 그 계통을 무시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둥치를 거부한 가지는 뿌리로부터 오는 영양분을 받아가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함의 행동은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가 끊어지게 되고 자연히 도태될 수밖에 없는 죄였습니다. 그런 죄를 보고 노아가 그 죄악성 때문에 닥친 함의 앞날을 말한 것 뿐입니다. 노아가 섭섭하다고 해서 감정으로 저주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함에게 있는 죄악성을 바로 보았고 그 죄악성으로 당할 미래를 미리 말해 준 것이니 곧 예언이 되었습니다.
가계저주론이란 교리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죄와 의는 개인적으로 개별적으로 해당됩니다. 그러나 가계저주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는 것은, 한 사람의 죄로 여러 사람이 영향을 받게 되면서 여러 죄인을 만들어 나가다 보니까 그 한 가정에 속한 전 가족들이 결국 죄인들이 되어 함께 다 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가정을 일반 사람들이 볼 때, 죄없는 몇몇 의인들도 다른 죄인들과 섞여서 함께 멸망받는 것처럼 보이게 되고 따라서 가계저주론에 걸려 죄없는 사람까지 비참하게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실상은 의인처럼 보이는 그분들도 그 가정에 범람하는 죄인들에게 결국 영향을 받고 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즉, 가계저주론은 교리적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으나 목회적으로는 실제 가계저주론이라고 보일 수 있는 면이 있으니 죄의 분위기나 내력을 삼가 주의하라는 주의 말씀으로 경청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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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답변)
1.'가계저주론'은 교리적으로 정확하게 말한다면, 성경적이 아닙니다.
①구원은 개별 개인적입니다. 휩쓸려 함께 취급되는 수는 없습니다.
겔14:12-20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찌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겔18:4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남이 지은 죄 때문에 자기가 당하는 경우가 없고, 내가 잘 한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상급을 앗아가는 경우도 없습니다. 죄와 의는 증여가 되지 않고 유전도 되지 않으며 매매가 되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자기가 행한 그대로 하나님이 갚으시는 한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구원'이란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개인별로 일일이 따로 계산하시는 개별적 개인적 구원입니다.
②그러나 분명히 아실 것은, '가계저주론' '단체저주론'을 입에 담을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롯이 택한 소돔의 생활 여건은 여호와의 동산같이 좋았으나 창13:13 말씀대로, 소돔사람은 악하여 큰 죄인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소돔은 말하자면, 저주의 땅입니다. 그것은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행위가 저주를 받아 마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롯이 그곳에서 패가망신한 것은, 소돔이 저주의 땅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그곳에서 그 악한 죄인들과 어울려 살면서 그 죄에 물들어 그도 그 죄인들 중에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롯과 그 가정으로 하여금 죄인을 만들도록 영향을 미친 것은 소돔지역이지만, 결국 죄를 배우고 죄를 지은 것은 롯과 그 가족들이기 때문에 소돔에서 패가망신한 것은 롯과 가족들의 자기 책임이지, 땅을 원망하고 주변환경을 탓할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자세하게 분석한다면 죄지은 죄인만 멸망받는 것이 성경이지만, 일반 사람의 시야로 얼른 본다면, 어느 지역이나 어느 단체나 어느 가정이 소돔처럼 롯의 집안처럼 집단적으로 저주의 대상이 되어 망한다고 보여지는 현상은 뚜렷하게 보입니다. 따라서 그 내용을 자세하게 분석한다면 개인이 개별적으로 범죄하여 마땅히 멸망받을 일을 했고 그 결과로 닥쳐진 불행인데, 그것이 그 지역과 그 가정 전부에게 임하니까 마치 '가계저주론'과 같이 보이는 것입니다.
③예를들면, 룻은 '가계저주론'에 해당되는 모압여인입니다.
신23:3, '암몬사람과 모압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대 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룻은 모압여인이었으나 다윗의 조상이 되고 예수님의 출생 계보에 오르게 됩니다. 모압과 암몬족속은 롯이 죄지어 만든 족속이고 또 출애굽을 막은 죄로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할 '가계저주론'에 포함되었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모압과 암몬족속의 발생과 그 행위는 영원한 멸망에 해당되지만 그 속에서 개별적으로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그 구원계통을 사모하여 회개한 사람은 그 모든 해를 벗고 오히려 이스라엘 족속 중에서도 가장 복된 구원을 이루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가계저주론이나 단체저주론은, 교리적 입장이 아니라 목회적 입장에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교리적 입장에서 원칙적으로만 말한다면, 모압족속과 결혼을 하던 소돔고모라로 가서 살던 자기만 신앙에 바로 서면, 그들 민족과 지방 전체를 휩쓸고 있는 죄악의 풍조와 그 결과에 자기는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환경에 결국 피동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연약함을 본다면 분명히 가장 조심할 것 중에 하나는, 그 가족이나 그 교회나 그 사회 전체의 분위기입니다. 솔로몬이 결국 이방여인을 데려왔다가 그들의 이방신을 섬기고야 말았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 10지파가 지상에서 없어지고 남은 2개 지파도 그런 고난 속에 살고 말았음을 기억하신다면, 교리가 아니라 목회적 입장에서 어린 사람을 길러가야 하는 직책이라면, 가계저주론을 아주 쉽게 예로 들며 조심을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가계저주론을 들고 나올 때는, 구원의 결국은 개인 개별적인 것임을 말해야 오해가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를 닮지 않는 딸이 없고 아버지를 닮지 않는 아들이 없으며 섬나라 사람들의 기질을 벗어나는 섬나라 사람이 없고 노예근성을 벗는 노예출신이 없습니다. 물론 이런 말은 일반적이고 통계적으로 말할 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 젖을 먹고 자라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닮게 되는 것까지를 부인하고 절대로 어머니를 닮는 딸은 없다고까지 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상식을 마음 속에 담아두고 그 사람에게 특별히 주의시키고 또 특별히 격려할 일이 있으며 그렇게 할 때 그 사람을 바르게 기르는 면이 크게 도움될 것입니다.
3.함에게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한다고 한 것은, 함의 인간성을 그대로 본 것입니다.
노아가 저주한다고 저주가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에 저주가 임할 요소가 함에게 있어야 그리 됩니다. 함의 후손은 과연 그 이후 오늘까지 구원역사에서 아주 참 비참한 민족이 되어 있습니다.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한다면 '가계저주론'으로 명칭을 붙인다면 꼭 적당할 정도입니다.
함의 죄는 하나님이 자기 위에 계통으로 세운 것을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운 은혜의 계통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 무시가 되는 동시에 하나님이 그 은혜의 계통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보급품이 그 은혜의 계통을 무시하는 자기의 행동 때문에 자기에게 전달이 되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를 스스로 거부하는 행위가 된 것입니다. 함에게는 이런 면이 있었으니 그 이후 그 함으로부터 교육받고 양육받는 자손들은 함의 이 죄악성에 영향을 받아 그들도 함과 같이 될 것이고 자연히 함과 함의 자손은 마치 가계 자체가 저주를 받아 영육간에 비참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결과가 있을 것임을 미리 예언한 것입니다.
앞에서 드린 설명대로 말한다면, 함에게 내린 저주는 하나님의 은혜 기관을 무시하는 죄악성으로 함이 당할 앞날을 말씀한 것이기 때문에, 만일 함의 자손 중에서도 이 면을 조심하고 룻과 같이 회개하고 돌이킨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함과 함의 자손이 마치 가계적으로 무조건 당하는 듯 보이는 오늘까지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8장의 에디오피아 여왕 겐다게의 큰 권세 가진 내시는 그 먼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은혜 계통을 사모하여 예루살렘 성전으로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예수님의 구원'을 예언한 이사야서를 풀지 못하다가 빌립에게 배우고 세례를 받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가 이를 이루었으니 그는 함의 자손이나 함으로 통해 내려가는 저주를 피하고 오히려 그 행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