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구체적 질문 - 신앙의 신령면

2.구체적 질문 - 신앙의 신령면

yilee 0 4


1. 바울의 낙원 경험

오늘 땅 위에 사는 사람은 육체를 가지고는 낙원을 직접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붙들고 직접 보게 하시면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경우는 입신입니다.



2. 죽기 전 세상에서 천국의 경험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께서 바울처럼 직접 보여주시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앞선 답변에서 설명한 것처럼 우리를 길러가시기 위해 특수 방법은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눅16:26 말씀대로 여기서 그리 갈 수 없고 그곳에서 여기로 올 수 없습니다.

주변에 천국에 갔다 왔다는 간증들이 많은데, 물론 무조건 거짓말이라 할 수는 없으나,
일단 100% 거짓말이거나 아니면 착각이라고 생각한다면 거의 맞을 것입니다.
신앙 있는 사람이 너무 천국 보기를 원하게 되면 주사야몽처럼 신앙의 꿈을 보게 됩니다.
성령이 직접 보여주시는 것과 성화 된 자신의 심령이 그려 본 것과 그냥 꿈으로 보는 것은
각각 차이가 있습니다.



3. 체험에서 아는 것

딸기를 먹어 본 사람이 설명하는 것은 산 경험이고 실제 지식이지만
그림으로만 보고 설명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것을 남에게 소개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속한 것은 하나님께서 오늘 땅 위에 사는 우리에게는
경험 대신에 미리 준비하면서 소망으로만 알 수 있게 해 놓으셨기 때문에
부활 전에 육체로 천국을 갔다 와 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신앙입니다.

경험을 말씀하셨는데
용광로 속에 들어가서 그 뜨거움을 알면 좋겠으나 들어가면 죽기 때문에 불가능합니다만
뜨거운 철판에 손 끝을 살짝 대었다가 혼이 나보면 그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천국은
오늘 세상에서도 주님 주신 구원으로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말씀을 따라 자신을 고쳐 보면 오늘 이 죄악 세상 속에서도 천국을 미리 경험할 수 있으니
오늘 세상은 장차 가야 할 지옥과 천국을 미리 끌어다가 분명하게 경험을 시키고 있습니다.
지옥불 그대로는 아니지만 세상에 여러 고통과 고민을 통해 지옥의 고통을 맛볼 수가 있고
실제 천국은 아니지만 그 천국을 알 수 있도록 오늘 세상에서 그런 순간을 주시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만큼, 그 선까지만 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 이상을 넘어서는 것은 불신이며 하나님 시험이며 그 속에는 악령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4. 바울의 신앙 걸음

바울이 평생 흐트러짐 없이 한 길을 기쁨으로만 갈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 바울을 위해 어떤 고난과 어떤 희생을 당했는지 그 분량을 늘 연구했기 때문입니다.

다메섹 길에서 바울을 직접 부른 것은 사도로 세워 특별히 맡길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란, 일반적으로 인도하는 방법 대신 특별한 방법으로 불러 맡긴 사람들입니다.
신약교회 출발과 성경기록을 위해 초대교회 초기 한 순간에 특별히 필요했던 경우입니다.

마치 일반 상태에서는 형제 가족의 결혼은 하나님께서 금하시지만
아담처럼 노아처럼 아브라함처럼 인류의 형성이나 신앙의 초기 형성 과정에 필요할 때는
가족 결혼을 허락했습니다. 일시 허락한 것과 평소 할 수 있는 일을 구별해야 합니다.



5. 답변자의 신령한 경험

이 노선을 알고 이 노선 말씀대로 실행하는 과정에서 겪은 신령한 경험은 참으로 많습니다.
이 노선이 그러하고 이 노선 교훈이 그런 신령한 생활과 경험을 대량 생산할 노선입니다.
답변자 외에 이 홈을 방문하거나 또는 이 홈과 상관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 중에서도
이 노선에서 이 교훈을 실행하는 분들에게서는 그런 경험담이 참으로 흔합니다.

착각이 아니고 혼동이 아니며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아닌, 명확한 신령한 체험들이 있는데
이런 면들은 외부에 공개하면 내면이 식어지거나 교만해지기 쉽고
어린 교인들이나 그 사람의 세계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겉으로 나타난 결과만 가지고
부러워 하거나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생기다 보면 간증으로 인한 유익은 잠깐이고
그 부작용은 세월을 두고 많은 사람의 볼 수 없는 내면에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 노선은 신령한 경험과 간증이 많은데도 거의 공개나 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열심히 믿고 살다가 한번씩 피곤을 느낄 때, 위로와 소망 차원에서 주실 때가 있고
사람의 실력으로는 준비할 기회나 여지가 없을 때, 객관에서 해결해 주실 때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그런 신령한 세계를 보기 위해 노력하는 이에게는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데 자기도 모르게 방언으로 역사하는 것은 있으나
남이 방언 하니까 나도 스케이트 타보듯이 하는 것처럼 방언하는 것은 방언이 아닌 것처럼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있으니 이대로 자기 현실에서 앞만 보고 힘대로 충성하다 보면
신령한 세계나 체험이나 능력이 필요하면 당신이 정한 때 정한 방법으로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 세계는 다소와 정도의 차이이지 믿는 사람으로서는 없을 리는 없는데
잊었거나 아니면 남들이 거창하게 말하는 것을 듣고 자기 것을 무시해서 그렇습니다.
그런 세계나 체험이 작으면 한 달란트로, 크고 많으면 다섯 달란트로 가지고 살면 됩니다.

그런 세계 때문에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마치 본 것처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체험 때문에 세상에서 본 것보다 보지 못한 신령한 을 더 확신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앞서 걸어간 분들이 그러했고 이제 오늘 이 시대는 우리가 걸어갈 순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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