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강조와 건설구원은 별개 문제

영의 강조와 건설구원은 별개 문제

yilee 0 2


지방교회라는 표현보다 '워치만 니'라는 이름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역사적으로
삼분설은 늘 소수였으나 그래도 있어 왔습니다.
유력한 신학자는 전부 이분설이었으나 현장 목회자들 중에서는 삼분설이 더러 있었습니다.
삼분설은 이분설이 비판하듯 헬라철학이나 기타 세상에 영향을 받은 경우도 있을 것이나
대부분은 신령한 면에 눈이 밝아 마음 안에 영이 있다는 것을 보고 말한 것입니다.

워치만 니의 경우
그 분의 가장 대표적인 책 3권을 읽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영을 발견하고 영에게 붙들려 사는 생활이 되려고 노력하려고 사력을 다한다고 느꼈으나
여기까지 노력하는 것은 역사를 통해 신앙생활을 깊이 하려는 분들에게는 공통사항입니다.
영에 붙들려 살기 위해 평생 노력한 경건은 특별했으나
교리적으로는 그냥 영과 마음을 확실하게 구별했던 삼분론으로만 특별했다고 기억합니다.

건설구원을 알았다고 말하려면
영이 있고
이 영은 마음이 아니며
이 영은 한번 중생하면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믿은 이후에 노력할 것은 자기 마음과 몸의 성화 뿐이다
이렇게 파악해야 건설구원인데 그런 깨달음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깊이의 차이는 있지만
이분설에서도 성화 교리를 통해 믿은 이후의 신앙발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워치만 니를 확실하게 살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분의 대표적 저서 3권을 통해 건설구원면을 볼 수 없었다면 없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 정도로만 안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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