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와 건축의 관계입니다.

터와 건축의 관계입니다.

yilee 0 4


우선

고전3장 11절에서, 우리 구원의 터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셨습니다.
12절에서, 터 위에 건축의 질에 대하여 금 은 보석 또는 나무 풀 짚으로 비유했습니다.
지옥 갈 우리를 천국으로 보내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이며 이는 무조건입니다.
이 무조건의 구원을 기본적으로 받은 사람이라야 그 다음 건설이 문제됩니다.



>질문1. 기본구원의 가치가 커나요? 건설구원의 가치가 커나요?

정상적인 가정이면 낳아 준 은혜가 제일 크고 길러 준 은혜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그런데 자살할 지경의 사람에게는 책임을 못지면 낳지를 말지라고 원망도 합니다.
또 기른 정이 낳은 정을 능가하는 경우도 있고 낳은 정 못지 않은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구원은 그 정도로 비교해서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기본구원이 없으면 모조리 영원히 지옥 한 길 뿐입니다.
기본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게 된 사람이라야 이제 자기 신앙건설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질문2. 백목사님은 기본구원을 사람이 이룰려면 너무 커서 도저히 못이룬다 하셨습니다.

기본구원은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셔서 사활의 대속을 완성해야 가능한 구원입니다.
이것은 세상 것 가지고도 영계의 것을 가지고도 비교도 비유도 측량도 할 수 없습니다.

건설구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둘의 관계는 비교라도 가능하지만
기본구원이든 건설구원이든 구원에 속한 것은 그 어떤 부스러기 하나라도
이 세상 것으로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외동 아들을 집에 기르는 개나 쥐나 고양이나 감나무와 비교를 하겠습니까?

신앙세계에 있어 무한히 큰 것이 많은데
이것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몇 가지 주신 것들이 있습니다.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십시오. 그것이라도 보고 무한의 일부를 느끼라는 것입니다.
우주를 주신 것도 그것이라도 보고 무한의 입문에 서서 조금 느껴 보라는 것입니다.
바다와 우주가 무한과 비교할 때 몇 분의 일.... 이렇게 비교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알아가고 닮아가도 영원히 더 알고 닮아야 합니다.
천국 입성으로 우리 구원의 완료라고 선언하는 신학이 거의 전부입니다만 잘못 알았습니다.
천국 입성의 그 날이 이제 무한을 향한 진정한 첫 날입니다.
건설구원의 지향점은 완전하신 하나님입니다. 표현은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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