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기도와 영 기도 - 고전14장 방언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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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8 00:00
1. 참고자료 - 87.12.31.목새
(1.입 기도)
...
...
그리고 난 다음
이제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간절히 기도하면
기도의 문이 트입니다.
기도의 마음 문이 열려 가지고 기도할 때에 기도가 살살 나오다가
나중에 어떻게 되면
(2.마음 기도)
기도할 것은 많은데 언제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없고 자꾸 기도를 하려고 하니까
입은 따라가지 못하고 부득이 입으로
엉엉엉엉- - - 어어 - - -
이렇게 속으로
자꾸 마음으로 기도해 나가게 됩니다.
마음으로 기도해 나가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으로 더불어 교제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3.영 기도)
이렇게 나가다 나중에 가서는 그것도 또 심해지면
그렇게 하는 것도 기운이 없어서 못합니다.
기운이 없으니까 입은 따라갈 힘이 없으니까
그때가 되면 입은 그렇게 두고 마음으로 환하게 보고 있으니
마음으로 보고 있다가 나중에는 성령님이 일하시는 것을 자기가 보게 됩니다.
성령이 대신 기도해 주는 것을 자기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는 참석만 해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령이 우리 대신 기도해 주신다” 하신
로마서 8장에 있는 말씀은
자꾸 그렇게 해 나가면 이제 거게 도달하게 됩니다.
2. 기타 참고 자료
① 88.6.3.금새 - 언어의 한계와 성령의 역사
(인간 표현)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아무리 설교를 그사람이 잘한다 할지라도 인간의 말 이상은 못 합니다. 인간의 말 이상을 못 합니다. 인간의 말밖에는 못 하요. 인간이 말해 놓은 그 방언으로 발표하고 또 그 방언으로 발표하는 것을 그 방언을 아는 사람이 방언을 알아 듣는 그것이지 그 이상은 뭘 말을 해 봤자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도 못하고 또 저도 지어 가지고서 말을 해서 그렇게 발표할 수도 없고 인간의 방언을 가지고서 발표를 하는데 인간의 방언을 가지고 발표하는 그 발표에 뭣이 있느냐?
(성령 역사)
인간의 방언이 발표할 수 없는 성령의 발표가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의 발표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가르치는 사람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장에 말하기를 내가 가르치는 것이 사람의 지식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의 감동' 있기를 원한다고 그래 말했씁니다.
(바울의 경우)
그러면, 바울이 가르칠 때에 인간의 방언 이상을 가르켰느냐? 인간의 방언 이상으로는 말을 못 합니다. 인간의 방언 이상으로는 말을 못하는데 그가 소원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목적하는 바는 인간의 방언으로 가르치는 여게서 끊어지지 말고 인간의 방언으로 가르치는 요것을 통하여 성령이 가르쳐 주시는 요것이 너희들에게 있어서 성령의 가르침이 내 입술로 유한한 인간의 방언으로 가르치는 요 가르침을 통하여서 무한한 성령의 가르침이 너거들에게 같이 가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또 배우는 것도 인간의 가르침의 여게서 멈추지 말고 인간의 말로 가르침을 받는 거기에서 인간의 말로 표시할 수 없는 성령의 가르침을 받도록 너희들이 노력을 해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설교와 성령의 역사)
이러기 때문에, 자꾸 아는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하는 것은 그것은 성령의 가르침을 그 사람이 받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층하는 다르지마는, 도수도 다르고 층하는 다르지마는 다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자기가 그 어린 교인들에게가서 말을 할 때에 어떤 그 교인은 상대해서 말을 하면은 예수 믿는 도리가 입에서 솰솰솰 나옵니다. 솰솰 나오고 어떤 사람에게는 도리를 가르칠라 할 때에 입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나오지 않고 하는 그 차이는 뭐이냐? 그것은 그 받는 듣는 사람이 자기가 그걸 받아 들이지 안하기 때문에 내게서 그저 인간의 말로만 할 수 있는 것뿐이지 그 속에 뭐 열려지지를 안합니다.
또, 잘 열리는 사람은 가르치는 가운데에 자기가 과거에 알던 것만 가르치는 게 아니고 모르던 것을 가르치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자기는 가르치는 가운데에 과거에 모르던 것을 그 사람에게 말할 때에 내가 말을 해서 가르칠 수 있습니다.
가르칠 때 그것은 자기 속에 성령이 오셔 가지고서 그와 같이 하기 때문에 가르치는 사람에게도 처음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을 가지게 되고 또 듣는 사람도 잘 듣게 되고 이렇게 됩니다.
②87.12.31.목새 - 기도의 단계와 방언
(방언에 대한 오해)
그러기 때문에 예수를 처음부터 잘못 믿은 그거는, 어제도 내가 어떤 사람 만났는데 그뭐 방언을, 항상 예수 믿어도 ‘다른 사람은 방언, 성신 받으면 방언하는데 나는 방언을 못하니 이거 내가 지금 중생됐나 안 됐나, 내가 성령 받았나 안 받았나?’ 이렇게 자꾸 생각이 난다 하니 그 사람 잘못 관념이 들어 그렇다 말이오. 방언은 데데데데데 하는 그것도 그래 말하는 것도 종류에 방언이 있지마는 외나 방언의 본종은 그게 아닙니다.
(행2장 방언-원래 방언)
방언의 본종은 뭐이 방언의 본종인고 하니 사도행전 2장에 성령이 오시니까 방언의 다 은혜를 받았다 그말은 베드로가 한 베드로가 유대인 말로 설교하니까 온 세계 각국에서 십여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그 설교를 유대인 말로 설교하는데 그 사람들이 다 저거 말로 알아들었습니다.
이러니까 말을 할 때에 상대방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들을 수 있게 전하는 그 권능이 방언의 권능입니다. 방언의 권능. 알겠어요? 또 이제 그 방언의 권능이 듣는 사람에게는, 듣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 말씀을 들을 때 잘 들어 깨닫게 하는 그것이 방언의 은혜입니다.
방언이라 말은 모 방자 말씀 언자, 그러면 유대 지방의 말로 했는데 로마 지방의 사람도 그 말을 듣고 또 다른 지방에 마게도냐 사람들도 그 말을 들었고, 이러니까 한 말로 말하는데 각국 방언으로 말을 듣게 하는 그 권능이라, 또 이 사람은 아주 쉬운 말로 했는데 아주 대지식가 그 사람들도 알아듣게 되고 또 어려운 지식의 말을 했는데 무식한 사람도 알아듣게 되고, 말을 들을 수 있는, 방언의 은혜라 그말은, 방언이라 무슨 방언이냐 하면은 중국 방언, 또 뭐 미국 방언, 또 뭐 로마 방언, 그게 방언 아닙니까? 사람을 말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권위 있게 말하는 것 또 들을 때에 그 말을 알아듣고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이 방언의 은혜입니다.
(고전 방언-방언의 외모 중 하나)
그게 사도행전 2장에 있는 첫째 방언의 은혜고, 그후에 방언의 은혜 또 있는 것은 사람들이 자꾸 이와같이 간절히 기도하다 보면은 나중에 가서 자기 입이 따라가지를 못합니다. 기도 할라 하면 입은 이 둔하기 때문에 마음은 벌써 한 열 가지나 구했는데 이 입은 찍해야 한 가지도 못 따라간다, 못 따라 한다 말이오.
이러니까 나중에 이라다 보면은 자꾸 말과, 고기덩어리로 하는 이 말과 자기 마음의 간구, 이 마음의 간구를 고기덩어리가 따라갈라고 애를 쓰다가 따라가지 못합니다. 따라가지 못할 때에는 어찌 되느냐? 그때는 그만 방언이 되는데, 이러니까 그뭐 뭐라고 말할 수 없고 자꾸 이래 자기가 말을 자기가, 속에 마음으로서는 지금 열 가지 백 가지를 자꾸 이래 해 나가고 있는데 입은 따라오지 못하니까 부득이 그때 넬넬넬넬넬 러러러러 이렇게 들린다 말이오.
이거 사람 보기에는 그만 이래 되나마 실은 그 속에 자기가 마음으로 영감 받아 가지고 마음으로 자꾸 하나님에게 이렇게 향해서 말하는 것인데, 이러기 때문에 이거는 하나님으로 더불어나 교제되는 것이고 사람으로 더불어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과 교제되는 그것입니다.그러면 이제 거기 해석하는 건 자기가 인제 자꾸 그래 하면 그걸 들으면 알 수가 있는 것은 ‘저 사람 지금 무슨 지금 기도를 하로 있다’ 그걸, 사람이 자꾸, 모르는 사람은 거석하지만 능한 사람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저 사람은 무슨 지금 간구를 하고 있다’ 하는 그것을 아는 것을 가리켜서 이제 통역의 또 은혜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래서 “일만 마디 방언 보다도 한 댓 마디 깨닫는 것이 낫다” 그렇게 말씀했읍니다. 똑똑히 알아보면 “너희들이 방언하기를 힘쓰는 것보다도 예언하기를 구하라” 방언은 여기 지금 방언은 뭐 잡탱이 방언이요, 그것은. 잡탱이 방언인데 방언은 외나 진짜 방언은 이제 말한 대로 사도행전 2장 방언이 진짜 방언이고
(입기도에서 마음기도)
그다음에 방언은 어떤 게 방언이냐 하면 자기가 간절한 마음으로 자꾸 이래 기도하면, 기도의 문이 열리면, 기도의 문이 열리면 처음에는 기도할라 해도 할 말이 없지만 자꾸 기도하다 기도에 마음이 열려 가지고 영계, 영감을 받아 가지고 기도하게 될 때는 자꾸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까? 자꾸 기도가 나오는데 기도가 나오다가 보면 자기 마음으로는 기도할 게 많아서 이것 저것 자꾸 기도해야 되겠는데 입은 따라가지를 못해요. 입은 이거 둔해요.
입은 마음이 백 마디 할 때에 입은 한 마디도 옳게 못 합니다.
이라다 보니까 자꾸 그렇게 나가니 부득이 입으로는 나중에 가서는 그만 말 어운이, 어운, 어간 어미가 다 안 되니까, 어음이 똑똑이 안 되니까 에레레레레레레 - - - 이럴 수 밖에 없어요. 그거 자꾸 주여 저저저저저저저 - - - 마음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마음으로 기도하는 거라. 마음으로 기도하는데 이 고기덩어리는 그저 형용만 하고 있지 이건 작용을 바로 못 해요.
(마음기도에서 영기도)
이러다가 나중에 그 기도가 또 자꾸 이렇게 심하게 되어지면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도 그거 피곤해서 기도를 못 해요. 마음으로 요거 생각하고 조거 생각하고 그래 못 해요. 못 하고 마음이 확 열리면은 이제 자기 마음으로 열 번 말할 것을 한목 다 볼 수가 있습니다. 다 보니까 마음으로 쫙 다 보고 자기 마음에 생각은 다 그것은 그뭐 천리만리고 환하게 다 열립니다. 환하게 다 열리고, 이리 되면 그때 가서는 자기는 기진해지면 가만히 있고 이제 구경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자기 대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성령님이 대신 기도해 주는 것을 자기가 볼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