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많이 읽어두신 분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인도
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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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14 00:00
제목분류 : [~성경~주해~예레미야~]
내용분류 : [-성경-주해-예레미야-]/[-교리-교회론-신앙생활-고민-신앙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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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성령의 역사는 성경을 통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속에 오셔서 나 개인을 고치고 인도하실 때의 이름을 '성령'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마치 전기선을 통해 전력이 공급되듯 말씀 안에서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평소 말씀을 읽고 새긴 것만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 많고 또 요긴한 때에 결정적인 귀뜸을 해 주십니다. 평소 말씀을 가까이 하셨기 때문에 질문자 걸어가는 길에는 성령께서 바로 옆에 붙어 다니시며 속삭이시는 듯 합니다.
2.눅24:13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 둘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라는 마을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①'십자가 사활'에 대하여 ②'말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걸어가는 길에 처음에는 주님은 없고 그들 둘만 걸어가고 있었는데 중간에 주님이 동행하셨고 또 그들이 주님을 알아보는 순간 주님은 다시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오늘 신약 우리가 걸어가는 신앙걸음의 한 단면을 보이고 계십니다. 그들이 주님 없이 걸어갈 때도 주님은 함께 계셨고, 그들이 주님을 알아 볼 때 주님이 사라졌는데 실은 그들 눈으로 볼 수 없도록 되셨지 여전히 주님은 그들과 세상 끝날까지 동행하십니다. 그들이 보았을 때만 주님이 계시고 그들이 보지 못할 때는 주님이 안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항상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는 하시는데 우리를 길러가시는 주님으로 함께 하시느냐, 매를 들고 징계하는 주님으로 계시느냐는 것만 문제입니다. 혹 질문자께서는 알고 계셨다 해도 이곳을 찾는 다른 분들을 위해 몇 말씀 덧붙였습니다.
3.말씀을 가까이 하시는 질문자께는, 주님이 늘 바로 옆에 서계셨습니다.
토라져도 주님은 질문자 바로 옆에 붙어서서 질문자 가는 길을 질문자와 함께 그대로 가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항상 그대로인데 우리가 우리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가 다시 주님께로 돌리면서 변덕을 부리고 있습니다. 다섯살 꼬마가 '엄마 미워!' 하면서 제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가놓고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을 때, 그때도 그 방과 그 이불은 엄마가 마련해 준 엄마의 또 다른 품이며 확장 된 엄마의 손끝 안입니다.
말씀하신 시편 13장, 잠언 1장, 예레미야 29장은 참 은혜롭게 따라가며 읽었습니다. 그 순서는 주님의 사랑이 변하여 '갈등 - 낙망 - 위로'로 단계를 밟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못나서, 이 질문에서는 질문자가 못나서 그렇게 되도록 주님께서 넉넉히 보고 계셨습니다. 다만, 예레미야 29장의 기간을 두고 주님의 위로의 기간이 늦어진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오해같습니다.
신약은 신약기간 전체를 통해 그 한 순간 순간이 말세입니다. 그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시기이고, 이미 주님의 대속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성령이 내재적 역사로 움직이므로 구약처럼 수십년 때로는 수백년의 세월이 걸려야 하는 경우는 주로 교단이나 교계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한 개인을 두고는 대개 돌아서면 바로 주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다음에 또 토라지지 않도록 우리 속마음을 훑고 계신다는 것은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돌아설 때 주님도 바로 손을 잡아 주시지만 그 토라지는 것이 습관이 될까 해서 한번 토라지고 나면 너 자신에게 많은 손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려고 냉담한 척 하는 기간을 두시는 경우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