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 후 자기 심신의 성화 과정에 개입되는 인간 노력의 자세와 성격

중생 후 자기 심신의 성화 과정에 개입되는 인간 노력의 자세와 성격

yilee 0 2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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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답변하는 이곳보다 '문의답변방'에 질문하셨으면 더 좋을 뻔 했습니다. 답변을 최대한 짧게 해 보겠으나, 다른 답변보다는 좀 길어지겠습니다.



1.믿는 사람은,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이 겪는 고통과 같은 고통을 평생 겪고 살게 됩니다.

안 믿는 사람은 자기 속에 무조건 단 하나의 자기만 있습니다. 악령의 것이 되어 죄만 짓는 사람 한 가지만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이 마음에 갈등을 하는 것은 이 죄를 짓나 저 죄를 짓나, 큰 죄를 짓나 작은 죄를 짓나 하는 갈등 뿐입니다. 마치 북한에는 정권을 위한 단 하나의 토론만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중생이 되고 나면 성령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과 이전처럼 죄로 살자는 사람으로 나뉘어집니다. 마치 남한 내에는 친북과 반북을 두고 마음껏 자유롭게 실력껏 투쟁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믿는 사람 속에는 새생명을 받고 살아난 영이 몸과 마음에게 성령으로 살자고 있는 힘껏 설득을 하고 나섭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은 과거 악령에 붙들려 살던 악성 악습이 있어 줄기차게 저항을 합니다.

믿는 사람의 고통은 바로 이 고통입니다.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이 겪은 고통 역시 바로 이 고통입니다. 구원받은 기쁨, 천국가게 된 감사만을 가지고 생각하면 한이 없이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게 되는데, 자기 심신 속에 아직도 저항하는 옛사람의 요소들을 보고 있노라면 불쌍하고 가련하고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마치 6.25전쟁 때 남한이 다시 수복되었지만 지리산 지역은 계속해서 패잔병이 장악하고 그들의 소왕국을 유지하던 것과 같습니다.

국가 전체적으로 본다면, 서울을 되찾아 기쁘기 한량없고 다행스럽고 온 국민이 환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리산 종횡 100리 지역만을 가지고 본다면, 그 지역은 분명 우리나라 땅인데도 그 곳에서만은 공산당이 주도권을 쥐고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인민군에게 눈치보고 협력을 해야 하는 모습을 중앙정부에서 볼 때는 참으로 안타깝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생된 사람의 남은 평생 해결 과제요, 이 해결 과제 때문에 그 지역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연약한 중앙정부의 무능력을 스스로 탓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2.따라서 로마서 7장의 곤고한 사람은 바로 바울 자신입니다.

바울 자신의 심신 속에 성령에 붙들려 성화가 되어져야 할 요소들이 옛사람 자기에게 붙들려 죄 아래 신음하고 있으니 그 모습을 보는 바울이 자기 부족을 느끼고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의 평생 모습입니다.

처음 중생되었을 때는 몸과 마음은 100% 악령의 지배 안에 있고 다만 마음 속에 있는 영만 중생이 되어 성령에 붙들린 형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영이 신앙양심을 통해 마음과 몸에게 자꾸 복음을 전하여 조금씩 성령에 붙들려 성화되는 부분들이 늘어나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성령에 붙들려 진리와 성령의 심신으로 변화되는 부분이 있다면 이 부분은 전적 예수님의 대속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이 아니라면 어떤 성자가 어떻게 희생하고 죽기를 각오하고 노력한다 해도 자기 속에 단 하나의 요소도 바른 길로 돌아서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전적 예수님의 대속 때문에 우리 심신의 요소가 한 개씩이라도 거룩하게 변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의 심신에 성화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예수님의 전적 은혜일 뿐입니다.


3.전적 은혜라고 한다면, 우리가 우리 심신을 거룩하게 만드려고 탄식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인간이 탄식한다고 해서 자기 심신이 거룩하게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이 말씀대로 노력한다고 믿는 사람 자기 힘으로 자기 심신의 요소를 의롭게 바꾸어가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사람의 심신이 성화되는 것은 전적 신적요소에 의하여 변화되는 것이지 인간이 노력해서 인간이 만들 수는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할 일은 전혀 없다고 하겠습니다.

자기 심신을 깨끗하게 만들어가는 일에, 비록 믿는 사람이라도 스스로 노력해서 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 순종하면 순종하는 그 순종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것입니다. 주일을 내가 지켰으니 그 주일을 지킨 만큼 내 심신이 깨끗해진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면 심신의 성화 과정의 본질을 잘못 짚었습니다. 주일을 지키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할 일은 하나님 명령에 순종할 뿐입니다. 순종을 하니까 그 순종이 바로 되었다며 그 순종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 순종하는 우리의 심신을 하나님께서 직접 깨끗하게 만들어서 성화가 되는 것입니다.


4.바울은, 성령의 요구에 완전 순종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기 연약을 탄식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탄식은 오늘 로마서 7장을 읽는 우리에게 로마서 7장을 우리 자신의 문제로 보고 우리가 탄식해야 한다는 것을 보이고 있습니다. 바울이 교회돈을 훔쳐먹는 버릇 때문에 그런 탄식을 한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비록 오늘 우리가 짓는 이런 저급의 죄가 아니라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할 고차원 수준에서 하나님이 보실 때 부족한 면을 두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돈을 통째로 해먹는 우리 수준에서 바울이 그런 죄를 끊지 못해 자기 손버릇을 두고 탄식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바울도 사람이고 바울도 아직 하나님 앞에 서지 않고 이 세상에 있는 이상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는 자기 높은 신앙 차원에서 볼 때 또 자기대로 부족한 면을 두고 그렇게 탄식하고 있습니다.

신앙이 어리든지 장성했든지, 어쨌든 이 땅 위에 숨을 쉬고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은 자기 심신에 성령에 붙들리지 않고 저항하는 지리산 패잔병 세력처럼 그런 옛사람의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그 면을 두고 그런 곳만 기준으로 생각하고 본다면, 악령이 자기 속에서 아직도 주도권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며 탄식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 나머지 잔당을 완전 토벌하는 것도 전적 대속의 피공로를 힘입고 성령에 붙들려 '순종'하는 그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 직접 해결해 주셔야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성구를 통해 우리들은 우리 남은 평생 어떤 면을 힘써야 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성구는 건설구원의 여정 전체를 어떤 자세와 심정으로 계속해야 할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은 순간부터는 바로 이 성구를 붙들고 살아야 그 남은 평생이 대속 받은 사람답게 됩니다.


5.마태복음 5장 이후의 산상수훈은 전부가 우리에게 행위로 구원을 이루라고 가르칩니다.

소금으로 녹아지고 빛을 발하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십자가를 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12제자도 도망가고 피했던 십자가를 오늘 우리처럼 이렇게 더럽게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어찌 그 십자가를 질 수 있겠습니까?

이미 대속으로 우리를 살렸으나 중생된 우리는 소금이 되라 하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순종으로만 소금도 되고 빛도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동이 의로워서가 아니고 순종하는 순종을 보고 하나님께서 전적 은혜로 우리를 소금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따라서 평생 노력해야 할 건설구원에서는 외부에서 보면 우리 믿는 사람이 직접 불철주야 노력을 해서 자기를 하나씩 깨끗하게 만들어가는 것처럼 꼭 그렇게 보입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하나님께서 전적 혼자 우리를 만들어 가십니다. 이 과정에서 믿는 우리가 하는 일은 성화를 만드는 제작 작업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시도록 청구하는 청구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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