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1.2) 하나님 중심이 되어 하나님의 심정과 같은 심정을 가진 다윗의 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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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0 2


제목분류 : [~성경~주해~역대상~]
내용분류 : [-성경-주해-역대상-]/[-설교록-]/[-홈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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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웃사에 대한 다윗의 진노 - 하나님의 법궤 자체를 범한 죄에 대한 진노

①지성소의 법궤

구약 이스라엘이 가장 두렵워하고 가장 조심해야 했던 곳은 바로 성전이었습니다. 솔로문이 성전을 건축하기 전이었던 다윗 때에는 성막이라고 했습니다. 이 성전이나 성막 내부에서도 가장 깊은 곳이 지성소이며 이곳에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궤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법 중에 가장 엄한 법은 바로 성전에 관련된 법이며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궤가 있는 지성소는 대제사장만이 일년 한번 들어가되 피를 가지고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지성소의 법궤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돌판을 담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이것은 손을 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적고 하나님이 주셨으니 모시고 순종할 뿐입니다.

②법궤에 대한 취급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할 때 이 '사랑'이라는 의미는 인간이 스스로 정한 기준으로 인간 마음대로 하는 것을 다 받아주는 방종 또는 응석노름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가는 노력입니다.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만들어가는 법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말씀을 구약에는 돌판에다 기록하고 그 돌판을 넣은 궤를 만들어 가장 조심스럽게 가장 두려워함으로 받들게 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에 잘못된 것은 이 말씀으로 가지고 왜 잘못되었으며 왜 그래서는 안되는지를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 말씀 자체에 대하여 손을 대는 행위는 즉석에서 죽였습니다. 다른 행위는 아무리 틀려도 말씀만 바로 가지고 있으면 고칠 희망이라도 있지만 말씀 자체에 손을 대는 행위는 아예 두고 보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다.

③다윗의 진노

다윗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실 때 그 진노로 진노했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은 미워했으며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은 사랑했습니다. 이 성구에서 배울 것 중에 한 가지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비느하스가 음행하는 남녀를 한 창으로 꿰뚫었을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 당신의 진노로 범죄하는 남녀를 죽인 비느하스에 대하여 대대로 제사장직을 약속했습니다.

다윗은 오벳에돔의 집이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복을 주셨다 하는 말을 듣고 기쁨으로 다윗성으로 메어 들였습니다. 왕비였던 미갈이 보기에도 민망할 만큼 기쁨의 표시가 나타났으니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다고 했으며 그 옷이 엷어 몸이 다 드러나도록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희로애락을 따라 희로애락을 가집니다. 하나님이 복되다면 복된 줄 알고 하나님이 가증스럽다 하면 가증스러워 치를 떨고 하나님이 사랑스럽다 하시면 이뻐 못 견뎌합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신 곳이라 하면 그곳을 사모하고 하나님이 진노하신 소돔과 고모라라 한다면 세세에 잊지 않고 경계를 삼습니다. 웃사가 손 댄 것이 하나님의 궤였고 그 일에 대해 하나님이 진노하시자 다윗도 하나님과 함께 분하여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의 궤에 손을 댄 것을 두고 극히 진노하셨으므로 다윗도 하나님의 극한 진노로 웃사에게 진노한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이 치셔서 매맞는 이에게 사람까지 나서서 거들게 되면 너무 가혹하거나 좀 비겁한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여 기본 시각을 바꾸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이 회개시키려는 이스라엘에게 대하여는 회개시키려는 노력을 하나님과 같이 하되 이스라엘의 강퍅을 진노하시는 하나님께는 그 강퍅에 대하여 함께 진노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출애굽을 가로막던 아말렉 족속을 진멸시키겠다고 복수를 다짐한 하나님께서 훗날 사울에게 그 복수를 명했을 때 사울왕이 그 복수의 강도를 낮추어 한 사람과 짐승 몇 마리를 남겨 두었다가 얼마나 큰 진노를 받았던 것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④웃사가 궤를 손 댄 것을 두고 오늘 성경을 대하는 자세를 배웁니다.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혹시 그 말씀을 어긴 죄를 지어도 언젠가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66권 성경에다 가경 외경이라는 다른 책들을 보태어 성경 자체를 확인하기 어렵게 만드는 일이 교회사에서는 늘 있었습니다. 요즘은 원어 번역상 문제가 있다는 논리로 성경 본문 자체를 수도 없이 손을 대고 있습니다. 아예 성경이 정확무오한 것이 아니라는 신신학은 거의 현대 교회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런 죄는 예를 들면 웃사가 진노받아 즉사한 죄에 해당될 '하나님의 궤'에 손을 대는 죄가 됩니다. 목회자들이 돈을 횡령하는 죄는 8계명에 어긋나는 죄라고 하지만 앞에서 말한 죄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미운 사람을 주먹으로 하나 친 죄와 신신학자들의 성경 자체에 대하여 부정하는 죄와는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을 만화로 만드는 일, 이야기로 꾸미는 일도 웃사의 죄에 해당될 것입니다. 성경을 대할 때는 성경 말씀 한 마디가 없는 가운데 천지를 만드신 창조의 실력을 가진 것임을 알고 성경 자체에 대한 한없는 두려움 떨림을 가지고 이 말씀에 영원한 길이 있고 이 말씀 떠남이 영생을 떠나는 길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백목사님의 설교는 몇 곳에 집중되어 있는 특별한 경우입니다.

①설교가 성구 몇 곳에만 집중된 원인이 3가지 정도입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연구의 차원이 높아지면 성경 전체에 대하여 설교를 하게 됩니다. 모든 신학자와 설교가들이 상당히 염두에 두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의 설교는 몇 곳에 집중되는데 그 정도가 대단히 심한 정도입니다. 이유는 첫째, 그 설교가 깊기 때문입니다. 둘째, 쉬운 성구 잘 아는 성구일지라도 그 성구를 깊이 파고 들어가면 결국 성경 전부가 내적으로 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실제 만들고 교인들로 하여금 그 말씀의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목적으로 설교를 했기 때문에 강의 소개식으로 지나가지 않았고 수없는 반복을 통해 사람 만드는 일을 했던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②참으로 사람을 만드려면 수많은 반복이 필요합니다. 강의진행식이 아니라 말입니다.

수학교사는 수학의 공식과 기초문제 응용문제 등을 한번 쭉 설명하고 지나가야만 그 학년에 배울 과정을 끝낼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 오면 점수가 잘 나올 것이고 못 따라 오는 학생은 꼴찌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수학교사가 자기 가정에서 자기 자식에게 수학을 따로 지도한다면 그때는 자세가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한 과정 한 과정을 완전히 알 때까지 붙들고 있을 것입니다. 함수를 이해 못한다고 학교에서처럼 예정표에 따라 그냥 진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해치 못하는 것은 몇 번이든지 반복할 것입니다. 또 철저히 이해를 했는지 보기 위해 많은 연습 문제를 풀게 할 것입니다.

백목사님은 그 평생 설교를 목회설교로 했지 강의설교로 하지를 않았습니다. 따라서 수도 없는 반복을 통해 학습을 시켰고 그 학습이 행동으로 나오고 생활이 되기까지 반복했으며 결국은 그 말씀의 사람이 되어버리는 여기까지 목표를 하고 노력한 분입니다. 따라서 그분의 설교 세계에서 그 맥을 잡고 은혜를 받은 이들은 배운 성구는 몇 절 되지 않으나 실은 성경 모든 구절을 다 아는 사람이 되었고 또 일반 신앙세계에서는 이해 못할 차원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 성구만 확실히 또 깊이 깨닫게 되면 모든 성경은 한 진리이기 때문에 모든 성경을 배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사에서 가장 성경을 많이 읽은 사람이요 가장 성경을 많이 외운 사람이며 가장 성경을 많이 가르친 사람이었지만 그 설교 본문은 몇 가지 되지 않는 것이 그런 이유입니다.

③백목사님 설교에서 성경의 깊이를 한없이 체험하셨으면 합니다.

현재 한국교계에서 성경중심에 철저한 보수교계에서는 성경 전체를 강해한 분은 박윤선목사님이 처음이었고 또 유일한 분으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물론 자유주의 신학에서야 성경 전체를 그렇게 집중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들은 성경도 틀린 곳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진심으로 그 뜻을 연구키 위해 주석을 할 리가 없습니다. 어느 주석을 보든지 그 주석을 가지고 설교에 참고를 하려면 거의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은 600페이지 설교록 한권에서 해석하고 있는 성구가 불과 성경 몇 장 분량임을 생각해 본다면 역사 이래 가장 성경에 권위있는 분이라는 단정을 하게 됩니다.

2번 질문에 대한 답변을 요약하자면 백목사님은 설교를 몇몇 성구에만 집중하셨는데 그 성구를 해석한 과정을 잘 익혀 따라 가게되면 모든 성경을 다 그와 같은 깊이로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을 기르기 위해서도 그렇게 반복할 수밖에 없었고 또 성경의 깊이가 실제 그렇게 끝이 없기 때문에 이리 저리 구경만 하고 넘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며 자기 자신이 성경 한 말씀으로 자신의 천가지 만가지 면을 연구하고 고치는 신앙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이곳 홈페이지에서는 백목사님 초기 설교 준비를 위해 기록한 노트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목회설교록에서 백목사님의 설교세계를 익히게 된다면 초기 설교준비안의 내용 한 두가지를 가지고 또 다른 목회설교록을 대량으로 출간할 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이곳을 찾는 분들이 백목사님의 설교를 대할 때는 다 같이 그런 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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