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본질은 자기 책임 때문에 일어난 고통을 자기 고통으로 가집니다.
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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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12 00:00
제목분류 : [~교리~말세론~심판~사심판~]
내용분류 : [-교리-말세론-심판-사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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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대하여 여러가지를 평가해 주시고 또 말씀하심에 감사합니다. 답변은 다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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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우선 하늘나라의 괴로움을 말한다는 것은 심히 조심스럽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는 괴로움이 없는 곳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 괴로움은 죄의 값으로 오는 괴로움을 말합니다.
소망이 없는 절망의 괴로움, 마귀도 믿고 떠느니라 하신 바로 그 고통입니다.
하늘나라는 괴로움이 있는 곳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 괴로움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느낀 것과 같은 괴로움입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이 죽도록 고민하신 것은 자신의 죄값 때문이 아니며 절망의 고민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의 인성이 감당할 우주적 고난을 실수 없이 감당해야 할 걱정이었습니다.
실은 연구였으며 그 노력의 극단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알지 못하는 인간적 표현일 뿐입니다.
이런 괴로움은 인간이 볼 때 괴로움이라고들 말하는 것인데 실은 기쁨이며 보람입니다. 필생의 낙입니다.
2.음부에 있는 심신의 기능 때문에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심신이 느낄 괴로움을 연구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가진 그 고민 그 번민은 죄악의 세상에 있는 죄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차원의
고민과 괴로움이 아닌 것처럼,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음부에 버리고 온 자기 심신의 기능들이 당하는
고통을 두고 느끼는 감정은 오늘 세상적 표현으로는 괴로움이라고 하나 실은 이 세상적 괴로움과는
차원이 다르며 내용도 전혀 다른 것입니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 그렇게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를 구원하기 이전 죄인 상태로 버려두었을 때 우리를 향해 우리 머리 되신 예수님
신성이 느끼셨던 그 측은함 그 불쌍함 그 동정, 탕자의 고난생활을 생각하며 집에서 가지는 하나님 아버지의 근심과 같은 이런 느낌은 분명히 우리가 가질 사랑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있기 때문에 또 성화되어 세상적 희로애락을 단절한 상태이기 때문에 하늘에 속한 진정한 사랑, 그 사랑의 본질적 작용으로 자기가 버려두고 온 음부의 자기 기능들의 고난에 대하여 가지는 많은 감정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세상적 표현으로 하늘의 괴로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이런 솔직한 심정들로 예를 들어보면 도움이 될까 합니다.
남의 몸이 느끼는 고통에 대하여 느껴지는 내 마음은 이럴 수 있습니다.
물 건너 불난 집 사람들의 고통에 대하여는 말로만 안됐다고 하지 속으로는 무감각입니다.
내 형제가 닥친 일에 대하여는 고통이 있습니다. 내 자식에게 닥친 일의 느낌은 거의 일치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던 자기의 것, 그것에 대하여 무한 책임을 느낄 줄 아는 천국에서의 느낌은 마치
이 땅 위에서 제 살을 직접 찔릴 때 느끼는 느낌과 같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