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독신의 은사를 받은 분은 한 시대에 한 사람이 날까 하는 정도입니다.
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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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06 00:0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결혼~]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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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결혼을 통해 우리를 고치시고 기르십니다. 그것이 필요없을 정도의 신앙은?
독신은 사도바울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입니다. 루터와 칼빈에게도 주지 않은 은혜입니다. 답변자나 질문자 수준에서는 그런 분들도 계셨다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옳을 듯 합니다. 독신의 은사는 그 결심의 초기 열심이 너무 강해서 사도 바울보다 루터 칼빈보다 더 강한 믿음의 열기를 가졌다고들 옆에서 말이 나올 정도라야 가능할 것입니다.
1960년대까지는 우리나라 교회들마다 독신의 여전도사님들이 많았습니다. 그분들은 해방 전후 큰 은혜를 받고 주 앞에 평생을 맹서한 분들인데 그 시대가 전체적으로 오늘에는 비할 바 없는 은혜의 시대였습니다. 오늘에 그런 류의 신앙이 나오기도 어려운데 그 많은 독신 각오의 여전도사님들이 50세 넘는 나이까지 그 결심이 지속된 분은 거의 없었습니다. 독신을 결심한 시작 때는 수도 없는 사람이 그리했으나 중년이 지나면서 전부들 후회했고 나이가 들면서는 아주 덕되지 않을 일들이 많았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연보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바치는 것은 좋으나 훗날의 후회가 문제입니다.
2.혼자는 살지 못하게 설계하고 제작한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피할 일이 아닙니다.
둘이 하나되어 살라고 하나님이 설계 제작한 자신을, 자기가 나서서 하나님이 설계를 잘못 하셨습니다, 제작도 잘못 하셨습니다 하여 구조변경을 한다는 말이 됩니다. 안될 일입니다. 혹시 경제나 생활의 편리 등으로 독신에 나가는 분들이 적지 않으나 이 역시 결혼을 남녀가 함께 사는 것으로 보았지 결혼 속에 담아두신 본질을 잊은 사람들입니다.
경제자립이 가능하고 생활이 편하기 때문에 결혼을 피한다는 말은, 결혼의 이유가 경제와 생활의 편리를 기준으로 보았다는 반증이 되는데 질문자가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오늘 일반인이 그러하다는 생각에서 비판을 하겠습니다. 남자를 돈벌어오는 수입원으로, 여자를 살림꾼으로, 또 서로를 정욕풀이로, 생활공간의 멋있는 장식물로 상대하는 정도이지 그 사람을 상대로 주님 날 위해 다하심같이 내가 나 전부를 다해 그를 위할 사람으로 생각지 않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우리는 성도이니 이런 정신이라면 못났을수록 흠있을수록 좋아야 할 것이니 진정 자신을 한 두 단계 낮추어버리면 서로 오겠다는 분이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김현봉목사님은 선보러 갔다가 들러리로 따라 나온 곰보 아가씨를 보고 나 아니면 시집가기 어렵겠다 하여 그리로 정했습니다.
결혼을 통해 자기를 고치며 결혼을 통해 주님 날 위한 희생을 상대방에게 해보며 서로가 주님을 닮는 일에 필요한 상대입니다. 겉으로는 세상이 말하는 그런 결혼생활이었는데 그 평생을 통해 추수할 자기 인격이 있습니다. 이 추수를 위해서는 수많은 갈등 투쟁 고성을 다 통과해야 합니다. 농부의 고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