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회들의 기준은 성경이 아니고 서양식 양심과 양식입니다.
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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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2.16 00:0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신앙자세~]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신앙자세-]/[-교리-교회론-신앙생활-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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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문답방의 원칙은 '짧게' 그리고 '쉽게'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최대한 답변을 줄이려 했으나 몇 번 반복되는 문답이 있어 이번
글은 좀 길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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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국교회는 한국교회보다 그 탈선과 타락이 앞서 있습니다.
숨은 의인은 항상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할 때는 일반적으로 나타난 면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국교회는 성경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교회가 거의 없다고 할 것입니다. 미국교회보다 아직까지 더 건전한 한국교회를 놓고 볼 때 성경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곳은 한 곳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보다 그 탈선과 타락이 앞서 진행되고 있는 미국교회가 복권에 대하여 엄중하게 선을 그었다고 한다면 이는 말씀과 신앙에서 그렇게 했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미국교회가 복권으로 돈을 번 사람들의 십일조는 받지 않는다고 방침을 정한 곳이 많다는 소식은 분명히 성경에 옳고 맞는 방향입니다. 그러나 미국교회가 낙태, 전쟁, 사형 등에 대하여 교회의 입장을 발표할 때 성경은 들러리가 되는 정도이고 대부분 그 근본 기준은 그들의 미국식 사고방식, 미국인의 문화 체질이 개입되고 있습니다. 복권에 대한 미국교회의 기준 역시 성경이 아니라 미국인의 건전한 의식 수준을 반영하는 정도입니다.
2.복권에 의한 연보를 거부하는 동기를 알아보려면, 그 교회를 굶겨보면 압니다.
배가 부를 때는 예절이 있고 배려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진국 교회의 베푸는 사랑의 본질입니다. 얼어붙는 추위가 몰아쳐 봐야 그것이 말씀에 의한 신앙인지 아니면 상류사회의 넉넉함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미국교회의 조상에 해당되는 청교도들은 혀를 깨물고 죽더라도 옳은 것 하나를 찾아 미국을 세웠습니다. 분명히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그 청교도의 신앙이 시퍼렇게 오늘까지 살아 있는 곳을 듣지 못했습니다. 물론 흔적은 남아 있고 또 유적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복권에 의한 연보를 거부하는 미국교회가 교회의 존폐 문제를 걸고도 그렇게 거부할 수 있다면 말씀에 의한 것입니다. 신사참배 초기에 신사참배를 찬성한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문제는 고문 고형과 장기간의 추위와 살을 에는 고통이 계속되면서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는 점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연구실을 운영하는 최종 목표는 바로 이런 날을 두고 미리 스스로를 단속하자는 외침입니다.
지금 목회자가 세금을 내는 분이 희귀하지만 없는 것은 아니고, 은퇴를 몇 년 앞두고 대형교회를 선뜻 남에게 넘기는 양심가들이 있다고 해서 세상언론에까지 떠들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그 돈 말고, 그 교회 담임직 말고도 갈 데가 많고 앉을 자리가 수도 없는 분들입니다. 더구나 그분들이 자기 가진 권리 100가지 중에 하나를 내놓은 대신 그들에게는 존경과 인기가 집중되면서 한국교회 어르신이 되는 승부수일 수 있습니다. 이곳이 아는 대로는 아직까지 그렇지 않다는 분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3.연보하는 사람이 복권 당첨으로 벌었다고 명시를 하는 경우
①받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달리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설명도 한 줄 뿐입니다.
②그러나, 다른 교회나 목회자들에게 기준으로 제시할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옳지 않은 것은 반드시 탈이 납니다. 받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컨닝을 일삼는 학생이 남의 숙제를 배끼지 말아야 한다고 외친다면 코메디겠지요? 복권 연보에 교회가 흔들리는 것은 숙제 배끼기 정도입니다. 컨닝의 유형이 광범위하고 그 정도가 대단히 심한 것은 오늘의 형편입니다. 그러니 복권 연보를 받지 말아야 한다고 말을 해 줄 교회나 목회자가 거의 없는 편입니다. 총공회 소속 교회들도 거의 다 그런 정도입니다.
현재 한국교회로 말하면 복권으로 번 돈보다 더 더러운 돈을 챙겼다는 비판을 받지 않을 교회나 목회자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고신과 합동교단, 합동과 통합교단이 거금이 걸리게 되면 교회와 교단의 이름으로 불신 판사에게 재판을 통해 돈을 확보해 온 것이 그들의 교단 공식 입장입니다. 그곳에 소속된 교회와 목회자들은 그 노선을 옳다고 인정한 분들입니다. 크게 말하면 이런 문제들이고, 작은 범위에서도 따져보면 한이 없습니다.
4.단순히 거부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할 수는 있습니다.
①성경에는 '불의의 재물에 대한 처리법'이 있습니다.
복권으로 번 돈이니, 훔친 돈을 연보하겠다고 가져온 것입니다. 교회가 연보로 받는 것은 거절하는 것이 옳을 것이지만, 연보하는 사람에게 그 돈의 사용법을 지도해 주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도둑놈이 도둑질을 했는데, 복권으로 도둑질 한 것은 돌려 줄 수가 없고 돌려 줄 필요도 없고 돌려 줘서도 안되는 돈입니다. 그렇다고 그 돈으로 연보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버리는 것도 또 다른 도둑을 만드는 일입니다. 복권으로 돈을 번 그 도둑놈에게 '불의의 재물 처리법'을 소개해서 그렇게 하도록 하면 됩니다.
눅19:1-10에서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세무서장이었습니다. 당시 세리장은 오늘 국가에서 허가 내고 복권사업하는 사람과 같았습니다. 국법으로 말하면 준법으로 번 돈이었으나 예수님 앞에 서고 보니까 불의의 재물이었습니다. 8절에서, 자기 번 돈 중에서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했으니 자기가 양심으로 계산할 때 잘못된 돈의 액수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확실하게 아는 것은 4배로 갚겠다고 하였습니다.
복권으로 번 돈은, 그 누구에게서 토색한 것이라고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돈은 전부가 불의의 재물입니다. 그 전부를 다 가난한 사람에게 흩어주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그가 복권으로 번 돈 전부를 목회자에게 문의한다면 그렇게 알려주겠지만, 십일조라 하여 10분의 1만을 가져왔다면, 교회가 직접 받지는 않을지라도, 가지고 온 사람에게 삭개오의 처리법을 알려주어 그 사람에게 인간구원에 필요한 사용처를 본인이 스스로 생각해서 그리로 처분하도록 안내할 수 있습니다.
②이렇게 지도할 때는 2가지를 조심해야, 묻어온 전염병에 감염되지 않을 것입니다.
첫째는, 떡고물을 손에 묻히지 말아야 합니다.
연보하는 사람이 직접 그런 거금을 연보할 곳을 잘 모르는 것이 보통이니까 소개해 준다고 하면서 결국 목회자 자신이 간접으로 덕볼 곳에 안내를 하는 것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경우 대단히 많은 교역자들이 앉은뱅이를 메다 놓고 그 수입금을 나누는 식으로 처신하기 때문입니다. 병신의 불편한 형편을 상품 진열대에 올려놓고 성한 사람이 갈라먹기를 하는 심보가 깔리기 때문입니다. 복음 전도인의 이름에 이런 날도둑의 심보가 없는 곳을 거의 볼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셔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연보가 아니고 회개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합니다.
연보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연보가 아니기 때문에 연보로 인하여 씨와 심을 양식을 받는 고후9:10의 복은 기대하지 말라는 것을 주의시켜야 합니다. 이렇든 저렇든 그 본인은 자기 마음에 연보라는 생각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연보라는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니고 회개라는 차원에서 그 사람이 처리하고 있는 문제임을 단단히 인식시켜야 할 것입니다.
③불의의 재물을 처분할 '가난'의 의미도 잘 생각해야 합니다.
참고로, 여기 삭개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사오며'한 8절 말씀의 가난한 자는 세상이 흔히 말하는 '사회적' 약자나 없는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고 보는 사람들을 기독교 사회주의자라고 합니다. 천국으로 가난한 사람들, 천국 복음에 부요해야 하지 못한 이들을 말합니다. 따라서 인간구원에 필요한 곳에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복권이라는 도둑질로 돈을 가진 사람의 돈은 받지 않겠다는 교회나 사람이 있다면, 그런데 그 교회나 그 사람이 성경 원칙 때문에 거절한다면 신앙있는 복받을 경우입니다. 혹 주겠다고 할 때, 그들의 신앙이 어려서 그것을 받겠다고 한다면 그들에게는 그런 수준에서도 복음은 전해질 것입니다. 그 돈을 받는 이들을 함부로 비판하지 말 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그렇게 비판하는 분들이 자기들은 따로 넉넉한 돈주머니가 있어 비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비판하는 사람의 의도가 순수하다면, 그들이 또 하나 추가로 알 것은, 복음이란 사도바울에 의하여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고 오늘 흠과 점으로 가득찬 도둑놈같은 우리에 의하여도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