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에서는 남의 생명을 손댈 수 없는 시기. 하나님 앞에는 다 쓸 곳이 있음.
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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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22 00:0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사회~]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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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약 우리에게는, 다른 생명을 없앨 권리를 주지 않았습니다.
구약은 외부적인 면으로 가르쳤고 신약은 내면을 중심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약의 이방인은 눈으로 볼 때 아브라함의 혈통이 아니면 죽이거나 노예로 부려먹을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은 자기 속에 신앙을 반대하는 자기의 옛사람이 바로 죽일 원수입니다. 그리고 부려먹을 노예들입니다.
기본적으로 신약에서는 우리에게 사람을 죽일 권리를 주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자기 생명도 죽일 권리는 없고 남의 생명은 더욱 더 죽일 권리가 없습니다. 자기 뱃속의 아이를 흔히 제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본디 배운 바가 전혀 없는 무식의 소치입니다. 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다만 자기 뱃속으로 낳는 아이에게는 양육의 책임을 맡겼는데, 양육하기에 귀찮다고 없애는 경우, 아니면 자기 시각으로 볼 때 그렇게 살아서 무엇하겠냐고 병신으로 사니 차라리 죽어라고 하는 경우입니다.
2.살아가는 방식, 행복을 느끼는 차원은 서로가 다릅니다.
자식에게 줌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할머니도 있고, 그것을 받아먹느라고 즐거운 아들도 있습니다. 추운 겨울 지리산 꼭대기에 눈 속에도 꼼짝 않고 버티는 소나무의 생존전략도 있고, 그 조금 밑에 굴을 파고 땅 속에서 웅크리고 생존을 지키는 곰의 스타일도 있습니다.
병신으로 태어나서 그 병신 된 환경을 남들은 동정하는데 자신은 그 세계가 행복해서 즐거운 아이도 있고 반대로 돈많은 부자집에 태어난 것 때문에 고층 건물에서 다이빙을 해야 하는 부자의 고통도 있습니다. 또 성장과정에 불치병으로 고통을 느꼈으나 그 불치병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 완전히 새인생을 맞은 나면서 소경된 자도 있었습니다.
모든 인생의 살아갈 방향과 그 겪어야 할 단계, 그 변화무쌍한 모든 앞날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단독으로 결정하고 알아서 하겠다는데, 감히 어느 인간이 불쑥 개입을 해서 이런 것은 쓰지 못할 것이라고 휙 집어던지는 꼴입니다.
3.실력있는 목수는, 버릴 재료가 없습니다.
꼭 같은 양과 종류의 목재를 주고 일을 시키면, 못난 목수는 그 중에서 3분의 1정도는 사용하고 나머지는 전부 내버립니다. 좋은 목수는 내버릴 것이라고 생각한 조각이나 토막 하나도 나중에 기막힌 장소에 딱 갖다 써버립니다. 이런 것을 적재적소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목수집안에 오셔서 목수로 사셨습니다. 만유주 하나님은 능숙한 목수신데, 나중에 집이 완공되고 나면 어느 목재 한 토막도 삐져내버린 쓰레기같은 부분도, 모가 나서 못쓸 토막도, 그 어느 하나도 없으면 안 될 곳이 있어 계산을 해놓으시되 다만 그것이 나타나야 할 단계가 아니라서 옆에 두고 보는데, 이 따위 쓰레기를 귀찮게 여기 두느냐고 누가 와서 휙 집어던지는 것이 아이를 없애버리는 짓입니다. 성질 급한 목사라면 들고 있던 망치가 날라갈 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