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의인들의 연약했던 모습들
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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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1 00:00
1.의인과 오늘 못난 우리를 비교한다면
의인이 의인 된 것은
그들의 타고난 자질이 좋거나 그들이 평생 노력을 특별히 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진흙 한줌, 우리도 진흙 한줌입니다.
그들도 죄지은 사형수, 우리도 같은 처지였습니다.
의인이 의인 된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때 의인들은
받은 은혜를 가지고 자기 힘대로 그 은혜를 붙들고 살려고 했으니
그 은혜가 그들을 붙들고 의인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모양 이 꼴 밖에 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같은 은혜를 주실 때
우리들은 받은 은혜를 그 자리에서 대접 물 붓듯이 땅에다 다 쏟아버렸기 때문에
그 은혜가 우리를 붙들고 어떻게 해 볼 여지가 없었습니다.
2.그 의인들의 연약했던 모습들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는
창12:10 이하에서
배 좀 고프다고 세상으로 타락해서 내려간 모습이 나옵니다.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하다가 흔히 하는 그런 모습니다.
그런데 애굽에 갔다가 우리보다 못나고 비겁한 일을 하게 됩니다.
아내의 미모를 팔아 바로에게 얻어 먹고 살며 자기가 남편이란 사실도 감춰버립니다.
더 급하면 아내를 어디에 팔아서라도 배를 채울 심리였습니다.
그래도 우리 대부분은 이 정도까지 심하게 무책임하게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삭의 경우는
창27장 이하에서
판이하게 다른 제 자식 둘을 구별하지 못해서
죽을 때가 가까운 늙은이 노망으로 그 자식 둘 사이에 유산 문제로 칼부림이 나도록 합니다.
모세의 경우는
출4:13에서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며 여러 증거를 그렇게 보여주시는데도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하나님 청을 일언지하에 딱 거절해 버립니다.
옆집 거지 부탁이라 해도 그만큼 알아듣도록 사정하고 설명했으면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수준의 불순종 강퍅 그대로입니다.
민12장에서는
모세가 이방여인을 취하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모세나 오늘 사회 물의를 일으키는 무슨 목회자들 그런 소식이나 달리 보이지 않습니다.
노아의 경우는
창9:21에서
실컷 마시고 정신없이 취하여 훌떡 벗은 줄도 모르고 쓰러져 자고 있었습니다.
그 실수 때문에 3아들 중 하나는 인류 중 가장 비극적인 인종을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몰래 한 잔 먹고 양치질 하는 정도의 양심은 있을 것 같습니다. 노아만큼 심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3.성경은 최소한의 기록이므로
의인들의 약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부 일지 기록하듯이 다 기록하지 않습니다.
몇 의인들의 몇 가지 연약한 점을 간단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때와 오늘이 같으니 그 약간의 기록을 가지고 살펴보면
그들이 의인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들 때 무슨 특수 재료를 사용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그들은 우리와 꼭 같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면은 우리보다 더 낫고 또 어떤 면은 우리보다 못난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받은 은혜를 잘 관리를 했고
우리는 받은 은혜를 받는 대로 땅바닥에 다 쏟은 차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가 지은 죄의 값을 해결하셨고
우리가 해야 할 의무를 대신 행하는 칭의의 수고도 하셨으며
우리가 하나님과 항상 연결이 되도록 십자가에서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과 연결을 붙들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가장 마지막으로 챙겨주신 대속의 은혜는
바로 '소망'입니다.
스스로 못난 점을 발견하는 것은 좋으나
그 발견한 못난 점을 가지고 겸손에 사용하고
그 발견한 못난 점 때문에 더 노력하려고 자기를 채찍질하게 된다면, 못난 점 발견은 굉장한 장점입니다.
그러나 자기 못난 점을 발견한 다음
그 못난 점 앞에 쓰러져 뻗어버리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이라는 은혜를 쏟는 행동입니다.
귀신이 가장 반갑고 좋아할 일입니다.
겸손은 충성으로 이어질 때 진정한 겸손이 되고
겸손이 자포자기로 이어지면 마귀가 준 절망이니 이는 죄 중에 가장 큰 죄요 마지막 죄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