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 앞에 입을 다문 예수
글쓴이 : 정용균 날짜 : 2004/06/21 조회 : 284
거침없이 질문하여 답을 얻어내고자 하는 최기자님의 모습이 한편으론 좋게 보입니다. 그런 거침없음은 진리를 찾고자 하는 열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그 도를 넘어 교만하고 무례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최기자는 한교수님의 침묵을 두고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듯 몰아붙입니다. 더 나아가 마치 겁쟁이나 비겁자인 듯 질타를 합니다.
최기자의 글을 읽다가, 문득, 여러 말로 묻는 헤롯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던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누가복음 23장). 물론, 최기자가 헤롯과 같다는 말은 아닙니다.
전에 예수님은 헤롯을 두고 "여우"라고 불렀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헤롯 앞에 서서는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헤롯이 여러 가지 질문을 하나,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왜 그렇게 입을 다문 것일까요? 어차피 죽을 목숨이 아닙니까? 무슨 대답을 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굳게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가끔 침묵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꼬투리가 되거나 입을 연 자체가 오히려 그 말이 담은 진실까지 훼손하게 될 때, 침묵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는 법입니다.
왜 교수님이 최기자의 질문에, 또 어떤 학우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어쩌면 보이지 않는 수많은 헤롯 같은 존재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은 아닌가 생각할 따름입니다. 그래요, 그 존재들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것 또한 비겁이라고 말을 하면 할 수 없지만.
최기자님, 가끔은 대답을 요구하는 그 자체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인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대답하는 것 자체가 문제 해결을 위한 능사가 아닐 때도 있다는 것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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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변종길 교수님의 성의있는 답변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매우 긴 시간의 기다림이 있었지만 그래도 교수님들 중 한분이 반응하셨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동시에 다른 분들은 교회의 교사란 역할에 대한 이해나 의미를 한번 더 새겨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제가 일기로도 몇차례나 지목되어 질문을 받으시고도 일관되게 침묵해 오신 한진환 원장께서는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원장께서는 제가 게시판에 글을 올린 후 보낸 개인메일에 대해서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만약 <신대원장>이란 타이틀이 그리도 교수로서 정당하고 적절한 처신을 못하도록 직간접적인 제약과 영향을 미친다면 그 타이틀을 벗어버리는 것도 유익할 것입니다.
다시한번 이번 <경건회>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주신 변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에 대한 변 교수님의 답변 중 경건회의 의미에 대해 명확히 했으면 하는 필요성을 느낍니다. 즉 신대원에서 시행하는 경건회가 어떤 때는 간증이 되고 다른 경우엔 예배가 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어떤 학자는 엄밀한 의미에서 공예배란 주일예배만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그런 맥락에서 신대원의 경건회는 예배라고 하기 힘들지 않느냐는 견해를 가집니다.
예전에 이곳 게시판에서 성찬식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올라왔던 것으로 기억되며 경건회 말미에 축도(축복선언)도 행해지는 것으로 볼때 신대원에서는 경건회를 예배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다른 곳도 아닌 신대원에서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할 대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즉 이런 질문이 나오는 상황에 대해 교회앞에 교수회가 해석하고 가르쳐 주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봅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설교자가 축복선언을 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설교자 따로, 축복선언자(축도자) 따로 있는 것도, 원리를 생각하고 바로잡아야 할 문제임에도 신대원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문제라고 들었습니다.
우리 신대원이 교회를 바로 세우는 보루로서 그 역할을 다해 가기를 바라는 저는 교회의 현상에 대해서 교수님들이 그때그때 해석하고 가르치는 일들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고신교단이 이 지경까지 온 배경에는 신대원 교수님들(과거~현재)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거나 침묵,외면, 타협해온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보기에 이런 고언을 드리게 됩니다.
과거의 잘못이 현재의 위기를 초래했다면 지금의 잘못은 더 큰 미래의 재앙의 단초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교회사를 통해 많이 보게 됩니다. 아랫글에서 이세령 목사님의 글 중 "합동,환원 과정의 핵심에 고려학원이 있었다"는 문제도 그 예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그때 해석했더라면 이런 문제가 교회의 발목을 잡는 일까지 왔을까요? 이런 역사의 교훈을 잡으며 이러한 교회의 위기를 막아야 할 책임은 교권이 아닌 신학자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교수님들께 합당한 역할을 주문하는 것입니다.
평안하시고 다들 교단과 교회에 대해 살아있는 교수님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