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스데반은 목사가 아니라도 설교를 했지 않는가? ( - 반론)
글쓴이 : 장동관 날짜 : 2004/05/15 조회 :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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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권은 목사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인가?
윤석준님께서 올려주신 글을 읽고 질문을 드립니다.
"이것이 신대원에서 그냥 가능한 일이라면 우리는 주일예배 시간에 목사님이 설교를 하지 않고 교회에 의사이신 장로님이 계시면 그분을 그냥 세워서 설교를 시켜도 된다는 말입니까? 도대체 예배는 무엇입니까? 그냥 말씀 선포자로는 목사 아닌 사람이 아무나 나와서 설교시간에 말씀을 갖고 말만 하면 그냥 예배시간이 되는 것입니까?"
라는 글에서 윤석준님께서는 설교권은 목사만이 가지는 고유권한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 어디에 목사 이외의 직분자는 설교하면 안 된다고 한 적이 있었나요?
그 근거를 제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7장에 언급된 스데반의 설교에서 스데반은 목사의 고유권한인 설교권을 침해한 사람이었던가요?
(집사가 감히 설교를 하다니...)
스데반 집사는 특별한 경우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예배는 반드시 목사의 설교가 있어야 예배라고 할 수 있는지요?
목사의 설교가 없으면 그것은 예배가 아닌지요?
성경에 예배에 대해 특별하게 형식을 정해 준 적이 있었나요?
좀 충격적인 책이라고 생각하실 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여러분들에게 "교회가 없다"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윤석준님께서는 "교회가 없다" 42페이지
"개신교 예배순서는 어디에서 유래했는가?"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없다" 45페이지에 있는 내용을 인용합니다.
"루터는 교황의 주교들과 수족들을 상대로 유카리스트에 관한 가르침에 대해 저주를 퍼부었다(때로는 아주 거칠게). 루터는 미사의 원천적인 오류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잘 못 이해한 것에서 비롯된 인간의 "행위"라고 주장했다.
결국 1523년에 루터는 카톨릭 미사의 개정에 들어갔고, 이 개정판이 개신교 예배의 기초가 된 것이다. 그 개정판의 핵심이 바로 루터가 유카리스트가 아닌 설교를 모임의 중심이 되게 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나르이 개신교 예배에는 제단 테이블이 아니라 강대상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제단은 카톨릭 교회에서 유카리스트를 집전하는 자리임).
설교를 개신교 예배의 절정이 되게 한 장본인이 바로 루터이다. 다음의 루터가 한 말을 읽어보라.
"크리스천 회중은 하나님 말씀의 선포와 기도 없이는 절대로 함께 모이면 안 된다. 아무리 짧은 모임일지라도."
(루터는 주일 아침에 3개의 예배를 만들었는데, 세 예배 모두에 설교를 포함시켰다. Ronald Bainton이 루터가 평생 설교한 것을 세어 보았더니 현존하는 루터의 설교가 2,300개나 되었다.)
"하나님 말씀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이 신성한 예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설교가 예배의 간판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던 루터의 확신은 오늘까지 요지부동 흔들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성경적 전례는 전무하다. 한 역사가는 "강단은 개신교 목사의 보좌이다"라고 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개신교에서는 안수 받은 목사들을 흔히 "설교자"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상 "교회는 없다"라는 책에서 인용했습니다.
도서명 : 교회가 없다
출판 : 도서출판 대장간
프랭크 바이올라 지음
이영목 옮김
값 10,000원
1. 장로가 설교하면 안 된다는 성경구절을 제시하여 주십시오.
2. 목사가 장로직분이 아니라는 성경적인 근거를 제시하여 주십시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2배의 존경(또는 "보상" 또는 "보수")을 받아야 합니다. 특히 말씀을 전파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는 장로들은 더욱 그러하여야 합니다(딤전 5:17-18)."
3. 현재 한국교회 직분 체계에 따라 목사가 아닌 장로가 가르치는 은사가 있어서 예배시간에 설교를 하지 않고 성경을 가르친다면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까?
4. 목사만이 설교의 특권을 가진다는 성경적인 근거가 있습니까?
있다면 그 근거를 제시하여 주십시오.
집사였던 스데반은 목사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설교를 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