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교회노조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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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교회노조 설립


기독교회노조 설립

이길원 목사 등 40여명 신고


지역교회와 기독교 기관 등에서 일하는 부목사, 계약직원 등이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이길원 목사(인천 경인교회) 등은 4월 14일 인천시 계양구청에 지역노조인 기독교회노동조합(위원장:이명원) 설립을 신고했다. 조합원 수는 현재까지 40여 명.

이 목사 등은 “교회 안 노동자의 권익보호와 한국 교회 갱신을 위해 기독교회노동조합을 설립했다”며 “단체교섭 등 합법적인 노조활동을 통해 교회 갱신 과제를 사안별로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이 목사는 “교회에 고용돼 급료를 받는 목사와 전도사, 사무원과 관리인, 기독교 관련 사업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조합활동도 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 “목회자는 노동자가 아닌 ‘성직’이다”며 노조설립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해 한국기독교인터넷방송(c3tv)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회 내 노동조합이 필요한지’에 대해 74%가 넘는 응답자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응답, 교계 내 이 같은 정서가 드러난 바 있다.

이 목사는 그러나 “노동조합을 통해 보수 일색의 한국 교회에 자정을 촉구하고, 환부를 드러내 개선해 나가는 것은 결국 교회를 건강하게 하고 유익이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배경 기자 등록일 200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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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석영 날짜 : 2004/04/25 조회 : 58

교회에서 해고 당하셨습니까? 도와 드립니다.



드디어 교회에 부교역자(전도사, 교육전도사, 사무원, 기사, 사찰등등..) 노조가 생겼습니다..
이제 부당하게 해고를 당했거나 말할수 없는 아픔을 당한 분들에게 법률적인 실질적인 도움을 드립니다.
특히 여교역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아파하며 실질적인 도움을 드립니다.

교회에서 해고 당하셨습니까? 도와 드립니다.
샬롬!
해고당하였을 경우
사표나 사임서를 내지 마십시요. 자의 사직이 됩니다.
교회의 해고는 대개의 경우 부당해고에 해당됩니다.
부당해고에 대하여 구제 받고 싶으시면 3개월안에 상담을 해야 도와 드릴기 수월합니다.
근무하였으면 받았을 임금과 복직이 되고 복직후 근무요령을 알려드립니다.
조합원에 가입하시면 엄청 힘이 될 것입니다.

기독교교회노동조합
홈페이지 주소
www.gdnojo.org

1. 기독교회노조란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기독교회노조는 기독교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및 교회에 근무하는 노동자(직업의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단결하여 노동조건의 유지/개선/기타 노동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조직된 헌법(국가)이 보장하는 단체입니다.

2. 기독교회노조에는 누구나 가입할 수 있나요?
기독교회 관련 사업 및 사업체에서 근무하는 자 또는 교회에서 근무하며 급료를 받는 사람은 누구나 가입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관련 사업 및 사업체란 기도원의 직원, 총회 및 노회 사무직원, 교회백화점 및 교회서점 직원, 교계언론 종사자(기자 및 직원), 신학대학 및 기독교계통대학 비전임교수(시간강사,겸임교수등) 및 교회 관련하여 종속적 관계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교회에 근무하는 노동자는 부목사, 전도사, 교육전도사, 사찰(관리인), 기사, 사무원, 경비는 물론 교회의 해고자(실직자)와 교회에서 근로하기를 원하는 자 (신학교 졸업자로서 교회 취업을 원하는 자) 등입니다.

3. 기독교회노조는 왜 만들어진 것인가요?
이제까지 교회는 종교의 특수성으로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자각하지 못했으나 교회의 당회장과
노동자간의 관계는 가부장적, 봉건적인 속성과 하나님께 충성이라는 종교적 특성으로 국가가 정한 최소의 근로기준인 근로 기준법 조차 지켜지지 않아 고용의 불안정, 비인간적인 대우, 근무 환경 및 임금 상태 등이 열악하였으나 누구도 관심을 갖고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없어 근로환경의 사각지대에 방치하여 왔다.

이에 기독교회노조 준비위원회는 예수님의 말씀하신 마태복음 20장 13절의 “친구여“ 라고 하신 동등한 노사관계를 확립하여 열악한 근로환경을 개선함은 물론 헌법적 보호단체인 기독노조의 단결된 힘을 바탕으로 요원하기만 했던 한국교회개혁의 기수가 되고자 한다.

4. 기독교회노조에 가입하여 받는 혜택은 무엇인가요?
근로기준법의 준수를 요구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근로자 개인을 보호하는 근로기준법의 준수를 개인도 요구할 수 있지만 사용자(사장)에게 근로자 개인이 근로기준법을 요구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근로자들이 단결하여 단결된 힘을 바탕으로 국가가 정한 최소한의 기준인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도록 요구할 수 있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노동사무소등에 처벌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5. 교회개혁의 희망이며 15만 교회노동자의 희망입니다.
교회노동조합이 단체협상으로 요구할 수 있는 범위는 실로 엄청나게 많습니다.
신학교의 개혁(신학대학 및 신학대학원 정원 축소 및 무인가 신학교 정비 등) 여성지위 향상(여성총대 일정비율 요구 및 양성평등한 대우 요구) 부목사 지위 향상(부목사 총회총대 일정비율 요구 및 정당한 당회원권 보장) 기사, 사무원, 관리집사, 경비 등 의 합리적 처우개선
개척교회보호를 위한 셔틀버스 운행금지 및 불법 전세버스 운행에 대한 사법부 고발 기독교회노조는 민주노총, 기독교여성단체 및 기독교 NGO 및 사회단체와 연대하여 이미 자체정화 능력을 상실한 교회의 개혁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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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기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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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219 등록일 : 2004-05-19
(분석) 다수는 ‘교회노조’ 반대 - 2) 신학적인 관점에서 본 교회

“개혁교회서 노조는 있을 수 없는 일”
교회는 노조 없어도 가장 아름다운 모범보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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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싣는 순서 ■
1. 교회노조 현황과 쟁점
☞ 2. 신학적인 관점에서 본 교회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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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회에서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노조를 인정치 않는다. 예전에 네덜란드에 갔을
때였다. 한 장로님 댁에 묵게 됐는데, 노조 이야기를 했더니 장로님이 깜짝 놀라시면서 반
문하는 것이었다. “노조라니요? 여기서는 노조에 가입하면 세례도 안 줍니다” 개혁교회
에서 노조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호진 총무(고신 총회)는 최근 교회노조 설립으로 촉발된 논쟁과 관련, “개혁주의 관점
에서 볼 때 교회에서 노조는 절대 불가”라는 입장을 천명했다.
개혁주의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교회에서 노조가 절대불가인 이유는 무엇일까?
개혁주의신학자들 역시 사용자격과 목회자의 소명의식에 주목했다. 이는 교회론과 기독교
윤리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부분.

유해무 교수(천안 고려신학대학원)는 “교회에 노조가 있다는 것은 교회되기를 거부한 것
이다”라고 단언했다.

유 교수는 교회노조의 사용자격과 신학적으로 가장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는 교회론에 입
각해서 교회노조를 비판했다.

“교회론적으로 보면,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이고, 관문이고 모범이다. 가령 예를 들
자면, 가정, 신학대학, 병원은 하나님의 나라로서, 그 구성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대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게 문제다. 이것은 질병
과도 같은 문제로, 그렇다고 자꾸 약을 주어서는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이다. 이럴 때는 기
본체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교회의 기본을 배워서 교회가 참다운 하나님의 나라가 돼야 한
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분열이 있어서는 안 되고, 노조가 있어서는 안 된다. 즉, 세상 사
람들에게 교회는 노조가 없더라도 세상의 어떤 기관보다도 더 아름다운 그런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유 교수의 결론은 “예배의 처소인 교회에 노조가 있다면 교회간판을 떼야한다”로 귀결된
다. “참된 예배자만이 사회정의를 부르짖을 수 있는데, 예배의 처소인 교회에 노조가 있
다는 것은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 된다”는 것이 그 이유다.

교회노조와 관련하여 소명의식과 신학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분야는 기독교윤리학.
이상원 교수(총신대)는 “교회의 부르심은 원칙적으로 ‘구속받은 은혜에 감사하는(자원하
는) 마음으로 교회공동체를 섬긴다’는 의미에서 부름을 받은 것으로 일반 기업체의 부르
심과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고 교회의 부르심과 일반 기업체의 부르심을 구분한 후, “교
회 안에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교역자들이다.

교회 안에서 사례비를 지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교역자들이 거기에 대해서 권리를 요구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례비는, 교회를 돌보기 위해 불가피하게 생업을 포기하면서까
지 교회 일에 전념하게 된 교역자에게 성도들이 임금의 차원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의 차원
에서 그들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주게 된 것으로, 이는 기업체의 급료와는 근본적
으로 다른 것이다”라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처우가) 부족하다하더라도 노조를 결
성해서 권리를 주장해서는 안 되고, 감사함으로 받고 채워지지 않는 부분은 기도해서 하나
님의 특별한 은총을 구하는 것이 바른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선교학적인 입장에서도 교회노조는 기댈 언덕이 없었다. 선교학은 소명의식이 유달리 강조
되는 부분.

이병수 교수(고신대 선교학과)도 교회노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선교사들의 경우에 정말 목숨까지 아끼지 않는 고도의 헌신된 소명의식을 갖고 고생하
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고려해볼 때, 부목사들이 부당한 처우를 이유로 교회노조를 생각하
는 것은 지나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교회 자립도가 절반이 채 안되는 상황에서 담임
목사의 복지문제도 거론할 수 없는 상황인데, 일부 큰 교회의 문제를 갖고 교회노조를 만
드는 것은 침소봉대의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를 표명했다.

문제는 또 있다. 교회노조의 탄생으로 달라지게 될 교회를 보는 외부의 시선변화다.
이성구 교수(천안 고려신학대학원)는 “노조의 설립으로 교회가 사용자가 되고, 이윤창출
기관이 됐으며, 사용자가 따로 있고 노동자가 따로 있는 혼란스런 상황이 발생케 됐다”
며 교회노조 설립으로 교회가 ‘교회를 영리목적으로 보는 시각과 교회에서 누구는 힘이
있고 누구는 힘이 없는 것으로 보는 시각’에 직면케 된 제문제를 언급하고, “결코 문제
가 간단치 않다”고 상황의 심각성을 이야기 하며, “기독교회 노조라고 했는데 이는 교회
의 아이덴티티를 건드리는 것이다. 교회는 전부가 주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사역자다.
목사들이, 하나님이 불러서 스스로 나선 사람들이, 이제 노조로 나서면 뭐하자는 이야기
냐? 하나님께 나서자는 이야기냐?”고 반문했다.

개혁주의신학자들이 개혁주의관점에서 교회노조를 반대하고 비판하고 있지만, 그들이 교회
노조 탄생의 원인을 완전히 일축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교회노조가 탄
생케 된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았고, 대안을 제시했다.

“부목사, 교회 관리 등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푸대접을 받았으면 노조를 설립
하려 했겠느냐? 그러나 방법이 틀렸다. 목표가 건강하면 방법도 건강해야 한다. 다른 방법
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성구 교수)

“노조결성 상황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을 것이다. 빌미를 제공한 사람들은 기득권
층이다. 먼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유해무 교수)

“노조결성 보다는 제도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노회나 총회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뤄서 처
우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을 결의하고, 또 교회가 작아서 어려운 경우에는 노회 안의 큰 교
회가 힘을 합해 처우기준에 맞게 해결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이상원 교수)
결국, 개혁주의신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하나님의 교회에 노조설립은 안된다”며 교회노
조를 반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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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름받은 이들에게 교회노조 어울리지 않아”
이병수 교수·고신대 선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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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지도자들과 성도들 교회노조에 어떻게 접근 할 것인가?
첫째,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고 섬겼던 그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정서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들도 교회지도층에 있는 사람들과 동일한 교회봉사의 동역자들이며 모든 성도들과 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믿음의 한 식구라는 정서적 접근이다. 이것이 문제를 해결하
는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둘째, 특히 교회지도층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가하는 반성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 동안 교회지도자들이 은혜 및 종교라는 이름 하에 혹은 교회의 특수성이라는 미명하에
교회 내에 봉사하는 분들에게 지나친 혹사와 인격적 모독을 자행하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어느 종교학자는 “ 교회노조 탄생은 교회 내 고질적 착취구조 반증하는 사건”이라
고 까지 지적했다. 따라서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노조를 무조건 비판 억압하려기보다는
왜 이러한 현상이 생겨나게 됐는지를 근본적으로 반성해야 한다.

셋째, 이러한 정서적 및 반성적 접근 후에 구체적으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접근들이 필요하다. 특히 교회를 섬기는 부목사, 강도사 및 전도사, 그리
고 관리집사, 기사 및 환경 미화원들의 복지와 인권에 대한 해결책들이 되겠다. 이것들을
각 교단의 총회차원에서 연구하여 법제화 및 제도화함으로써 교회노조 없이도 충분히 복지
와 인권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 책들이 나와야 한다. 마지막으로, 신학
적 접근이 필요하다.

교회노조가 성경에 근거해서 가능한 것인지, 혹시 가능하더라도 교회노조에서 주장하는 대
상 가운데 성직으로 부름 받은 부목사, 강도사 및 전도사에게도 노조가입이 가능한지에 대
한 연구가 필요하다. 필자의 생각에는 소명의 관점에서 볼 때 성직의 이름으로 부름 받은
이들에게 교회노조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해서 먼저 교
회지도자들은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동역자들이 노동착취와 인권유린의 고통 속에서 엄청난 아픔과 상
처 가운데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교회노조를 주장하는 자들도 어떤 사안에 대해서 함께 보는 객관성과 유연성
도 필요하다.

첫째, 교회의 부정적인 면 지나친 혹사와 인격모독의 행위도 보아야 하지만, 교회의 긍정
적인 면 교회 봉사자들에게 복지와 인권문제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교회도 많다는 사
실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교회지도자들의 지나친 혹사 및 인격을 모독하는 경우도 비판하지만 교회노조를 주
장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님의 일을 ‘눈가림만하여 사람만 기쁘게 하지는 않았는지’반성
하는 태도도 함께 필요하다. 이러한 쌍방의 노력이 없이는 해결책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먼저 교회지도층에 있는 우리 모두가 깊이 반성해야한다. 이유는 지나친 혹사와 인
격모독의 대상이 우리의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고전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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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441 등록일 : 2004-05-27
교회노조란 단체가 생길 수밖에 없는 한국교회의 포괄적 환경-김용출 목

교회노조란 단체가 생길 수밖에 없는 한국교회의 포괄적 환경

서구 사회가 백년, 백오십년 동안에 겪었던 일을 한국 사회는 이삼십년 안에 거의 다 경험
하고 있는 형편이다. 노조가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제 한국 사회 안에 노조운동
은 거스릴 수 없는 대세이다. 이것은 한국 사회도 무엇엔 가에 눈뜨기 시작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사회의 일은 차치하고라도 지금은 한국교회 안에 노동조합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
필자는 우려와 함께 이 일을 예의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방금 시작된 교회 노조가
중 대형 교회의 부교역자들이 중심이 되었다는 점이다. 교회노조가 과연 성경적이냐 아니
냐의 논의를 하기에 앞서 왜 이러한 환경의 변화가 한국교회 안에 일어나고 있느냐 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교회 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한국교회는 너무 집회가 많다. 집회가 많다 보니 일이 많아진
다. 돌아서면 새벽기도회요 돌아서면 금요철야요 돌아서면 주일예배요 돌아서면 구역모임
이요 돌아서면 또 무슨 세미나요 돌아서면 또 무슨 행사이다.
생각해 보라. 중 대형 교회의 경우 교역자들이 바빠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일 것이다.
교회 버스는 시간에 맞추어 정신없이 돌아가야 되고 모임 준비에, 행사 일정에, 어디 정
신 차릴 시간이나 있겠는가?

주님은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마 11 : 28 )하셨는데 지금 한국 교회는 교역자도 교인도 모두 쉴 수 없는 형편이 되었
다. 다 교회성장이라는 미명 아래서이다. 욕심들이 얼마나 많은지 중 대형교회치고 주일
에 4, 5부 정도의 예배 회수를 두지 아니한 교회가 몇이나 있는가? 그리고 교회를 무슨 사
업하는 사람들이 지점 차리듯이 지 성전, 지 교회해서 소위 문어발식 교회 확장에 혈안이
된 교회가 또 얼마나 많은가? 한국교회는 과연 윤리적인 교회인가? 이것 한 가지만 가지
고 물어도 대답은 전혀 윤리적이지 않다 이다.

그리고 주일은 그야 말로 교역자도 죽고 교인도 죽는 날이다. 물론 교회의 중심 봉사자들
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렇다. 그리고 한국 교회는 너무 경쟁적이고 자기 교회 중심
적이다.

‘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 ’ (히 13 : 3 )고 했다. 알맹이가 빠
진 채 요식 행위 화 되어버린 한국교회의 오늘의 그 수많은 모임들이 교회노조를 할 수 밖
에 없는 형국으로 몰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여유로움과 안식은 어디로 실종되었는가? 교회
에 와서도 쉴 수 없게 되었는데 그러면 이제는 어디에 가서 쉬어야 하는가?

그리고 필자도 총회 은급부의 일에 간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교단 만이 아니겠지만 과
연 한국교회는 교회 공동체 정신아래서 모든 것이 움직여지고 있는가를 반문해 보아야 한
다. 과연 교회는 사랑공동체이고, 그리스도의 한 몸 공동체이고, 사도행전 적 교회공동체
인가 하는 것이다. 대답은 단연 아니다 이다. 지금 우리 정부는 성장과 분배의 적절한 조
화에 아마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이 한국교회가 그 동안 수적으로 성장하면서 과연 성장과 분배의 면에서 어느 정
도 상식에라도 걸 맞는 수준의 처우와 개선이 교역자들에게 골고루 시행되었는가를 물어
보아야 할 것이다. 주님을 위해서 목숨도 버려야 한다든지, 고후 11장에서 보여 주는 사
도 바울의 본을 교회노조의 원리에 연계시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만약에 그렇다면 아예 필자는 이런 이야기를 쓸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필자
는 교회노조에 반대한다. 입장은 분명하다. 그러나 왜 한국교회에 이러한 논의가 시작되었
는가를 지금부터 한국교회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문제에 심도 있게 접근하지 않는다면 언젠
가는 그 쓴 열매를 몇 십 배 몇 백 배로 먹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 제도의 경직화와 교역자들의 사고(思考)의 경직화가 불러온 현실이 또한 교회노
조 탄생에 일조를 했을 것이다. 제도의 경직화와 교회지도자들의 사고의 경직화는 무관하
지 않다. 교회는 어쩌면 행정적인 면에서 어떤 것들은 사회보다 수 십 년 뒤져있다. 신학
생 한 사람이 노회를 옮기는데 서울 부산을 두 번씩 오가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 교회행정
의 현 주소이다. 사회는 행정규제가 많아서 기업 못해 먹겠다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노회
나 총회에 가보면 법과 규칙만 있지 사람을 헤아리는 배려는 많이 부족하다.

하찮은 일에 목에 힘주는 일이 너무 많다. 정작 다루어야 될 문제는 항상 뒷전에 밀려 있
고 전혀 중요하지도 않고 비본질적인 것에는 시간을 낭비한다. 다 존중히 여겨할 지체이
고 돌봄이 필요한 형제이다. 이러한 형제의식, 공동체의식의 결여가 교회노조라는 기형아
를 만들어내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서울남부교회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