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미국 ‘국기에 대한 맹세’ 보수-진보 또다른 ‘전선’
미국 ‘국기에 대한 맹세’ 보수-진보 또다른 ‘전선’
“나는 미국 국기와 그 국기가 상징하는, 하느님의 보호 아래 나뉘어질 수 없으며, 모든 사람에게 자유와 정의를 베푸는 공화국에 충성을 맹세합니다.”
미국 공립학교에서 110년 동안 암송돼 온 이 ‘충성맹세’가 3년째 미국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충성맹세란 우리의 ‘국기에 대한 맹세’(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에 해당하는 것으로 모든 공립학교 학생들은 매일 이 맹세를 암송하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한다.
항소법원 위헌판결 계기로 논란 격화
진보쪽 “종교자유 침해·국가주의”반대
의회·보수쪽 “국가의무 표현일뿐”옹호
문제의 발단은 2000년 3월 캘리포니아주에 살고 있는 무신론자 마이클 뉴다우가 자신의 초등학교 2학년 딸이 학교에서 충성맹세를 암송하도록 강요당함으로써 “종교의 자유를 침해받았다”고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구체적으로 ‘하느님의 보호 아래’라는 구절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제9 연방순회항소법원은 2002년 6월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규정하고 있는 수정헌법 1조에 위배된다’며 뉴다우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은 ‘하느님의 보호 아래’라는 문구는 ‘제우스의 보호 아래’ 또는 ‘예수의 보호 아래’ ‘아무 신도 보호하지 않는’ 등과 같이 종교편향성을 드러내는 문구라고 결론내렸다.
위헌 결정을 예상치 못했던 미국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제9 연방순회항소법원 판결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정부는 곧바로 이 결정을 기각해달라고 연방항소법원에 이의를 제기했다. 미 상원은 충성맹세에 대한 지지와 상원 법률고문단이 이 문제에 개입해 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찬성 99표, 반대 0표의 압도적인 지지로 채택했다. 하원의원 150여명은 의사당 앞에서 충성맹세를 암송하면서 ‘가드 블레스 아메리카’(미국에게 하느님의 은총을)를 합창하는 방식으로 항의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어리석은 판결”이라며 “법무부가 이번 판결을 어떻게 바로잡을지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연방대법원으로 넘겨진 이 소송은 뉴다우가 보수주의자로 평가받는 한 대법원 판사에 대해 재판기피 신청을 내는 등 순조롭지 않은 과정을 거치고 있는 상태다.
충성맹세를 만든 침례교 목사 프란시스 벨라미가 1892년에 처음으로 한 잡지에 이를 발표했을 때만 해도 ‘하느님의 보호 아래’라는 구절이 없었다. 문제의 이 구절은 매카시 광풍이 몰아치던 1954년 당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이 구절을 삽입하는 법안에 서명하면서 비롯됐다. 소련과의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 ‘무신론적 공산주의’을 표방하는 소련을 겨냥해 ‘하느님의 보호를 받는 미국’을 내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충성맹세를 지지하는 쪽은 이것이 기도와 같은 종교의식이라기 보다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의무에 대한 표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또 종교적 전통이 강한 미국에서 ‘하느님’이 포함된 표현은 특정 종교성의 표현이라기 보다 관용어로 통용되는 현실과도 배치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미국 동전에 새겨진 ‘우리는 믿는 하느님 안에서’라든지 대통령 등 대부분의 공식연설이 ‘하느님이 미국에 은총을 내리길 바란다’로 끝나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하고 있다.
반면, 진보진영쪽에서는 ‘하느님의 보호 아래’라는 구절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미국만이 하느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 양 ‘공격적 민족주의’를 상징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또 ‘공화국에 충성을 맹세한다’는 구절 역시 국가주의적인 냄새가 풍긴다며 비판한다.
이에 따라, 충성맹세를 둘러싼 논쟁은 낙태나 동성애 문제에 이어 보수-진보를 가르는 쟁점이 되고 있다.
연방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오는 6월께 내려질 예정이다.
강김아리 기자 a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