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진상파악에 대한 답변(글1)과 여전한 우려(글2) [기타]
분류: 교단-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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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1: 진상파악을 적은 교수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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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03/11/14 조회 : 145
그리스도 예수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기원합니다.
먼저 000 교수님의 답변에 대하여 감사를 표합니다. 우리 신학의 요람인 신대원의 게시판을 통해 형제들 간에 소통이 이루어짐에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저희의 부족을 지적하시며, [말씀 전하는 일]에 진력하라는 권면을 후배들에 대한 사랑으로 받으며 중심에 새기겠습니다. 다만, 저희도 신대원을 졸업하였고, 교단의 목사로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의 학교인 신대원을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헤아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또한,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도 모교에 대한 작은 관심과 교회에 대한 사랑으로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저희가 [진상파악]에 관한 글을 올리면서 저희 역시 말씀의 가르침대로 [헤아림]에 관해 숙고하고 또 숙고하였습니다. 혹 이 글이 사람을 [헤아리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약하여진 교회]를 치료해보기도 전에 [배교한 교회]라 정죄하려는 일에 경계를 두기 위하여 어려운 글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지적하신 데로 [소문을 듣고 정확하게 사실을 확인하고 작업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겸허히 받겠습니다. 절차상에 있어서 미숙한 점 용서를 구합니다.
하지만, 최근 저희에게 일단의 신대원생들이 신대원에서 행해진 세미나에 참석하고 난 후,“우리 교회가 배교한 교회가 아닌가?”라는 의혹을 갖게 되었음을 이야기 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저희들은 굉장한 충격을 받았으며, 어떤 분들이 강사로 섭외 되었는지 자세히 묻게 되었습니다.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두 분의 강사는 저희가 이미 알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저희가 더욱 염려가 되는 것은 그 분들이 우리 교회에 대하여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가를 알고 있기 때문이며, 이 행사를 준비한 윤석준 형제도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두 분 강사의 시각에 대해 저희가 소문을 듣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한 분의 강의안에서 발제한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과연 이 글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요?
“따라서 신앙고백서를 받지 않고, 가르치고 배우지 않는 장로교회는 과연 한 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장로교회를 보라. 장로교회라는 간판은 달고 있으면서 정작 그 신앙고백서를 가르치고 배우지 않음으로, 교회 안에 얼마나 다양한 신앙과 생활로 나뉘어져 있는가? 그런 교회가 과연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기야 우리 한국장로교회는 처음부터 신앙고백서를 받지 않는, 이름만 장로교회로 시작되었으니 더 무엇을 말하리요!”
교수님의 [배교]에 대한 적절한 예(3번)는 지난 세월동안 [우리교회의 정체성 회복]을 위하여 힘쓰기 보다는, 선진들의 [진리파수]와 [순교적 신앙]을 자기 이(利)를 위하여 이용했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듯하여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이제 우리교회가 남을 정죄하기 전에 자신의 중심을 살피면서 본질, 곧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회복하는 길로 나아가야 될 것이라는 교훈으로 삼겠습니다.
무엇을 염두에 두시고 [교단이 사람을 아끼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시는지 그저 짐작으로 그치려 합니다. 다만 이전에 신대원 시절 존경하는 교수님 중 한 분이 울면서 [교회가 정말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설교하셨던 일을 떠올립니다. 교회가 사람을 사랑한다고 할 때 여기에는 [참된 권징]이 포함되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회가 신대원에 위탁한 목사후보생들이 신대원 교수님들의 바른 가르침을 통해 우리교회가 고백하고 있는 신앙고백과 법질서를 좇아 잘 양육되어지기를 항상 기도하고 있으며, 또한 계속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경동노회 00교회 000 / 중부산 노회 동래00교회 000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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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2: 여전한 우려(000 형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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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03/11/14 조회 : 105
주의 보내신 성령께서 모두의 심령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형제의 지적처럼 이번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우선 이 강의를 개최한 [형제]에게 문의하지 않고 글을 올린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미안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 세미나의 주최자가 누구였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고(학회가 개최했다고 여겼습니다), 더욱 이것을 개인이 개최한 것이라는 것도 이 글을 올린 연후에 모 교수님을 통하여서 알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 모임을 주도한 사람의 이름을 후배들에게 들었을 뿐입니다.(형제는 저희에 대해 일면식을 말씀하시지만 죄송하게도 저희는 형제를 잘 모릅니다)
1. 000 형제의 답변에 우선 감사를 표합니다. 그리고 두 강사분의 강의내용이 수록된 자료를 제공하여 준 것에 대해서도 고마움을 표시합니다. 형제의 노력을 통하여 우리교회와 자매관계에 있는 화란개혁교회가 잘 소개되어져 [교회의 온전한 연합]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2. 그리고 이번에 강의에 임하신 강사분(들)이 [화란개혁교회]의 좋은 신앙과 신학의 유산들에 관심을 가지고 또 쉽지 않은 번역작업을 하고 계시는 것에서 함께 [화란개혁교회]와 교제의 관계를 가진 교회의 목회자로서 중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3. 저희 역시 형제가 고신 교회를 [배교집단]으로 규정하기 위해 계획한 집회가 아니라고 여깁니다. 만약 형제가 고신교회가 [배교한 집단]으로 여긴다면 마땅히 형제의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고려신학대학원에 수학하지 않는 것이 옳으니까요.
4. 그러면서 형제가 제시한 세미나 진행내용과 강사들의 강의내용들을 보면서 몇 가지 우려를 감출 수 없었습니다.
1) 우선 000 형제는 이 세미나를 개최한 장본인으로서 저희가 신대원에 이 질의를 했을 때 가장 중요한 잇슈가 될 수 있는 [세미나에 초빙된 강사의 교회를 보는 신학적 입장],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분들의 교회관을 전혀 밝히지 않았습니다. 곧 이 세미나를 두고 제가 문제를 제의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인 이 세미나의 강사들이 [고신교회를 어떻게 보느냐?]에 대해서 윤석준 형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윤석준 형제가 이 강사분들이 고신교회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 입장을 충분히 알고 초빙하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려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2) 올려진 강의서를 읽으면서 더욱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1회분 강의안에서 강사는 웨신 3장과 7장, 그리고 대교리문답 31문답을 통해 웨신이 [언약과 선택을 같이 보고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교리문답 32문답을 제외시켰습니다.
이 의도적인 실수는 결국 장로교회안에서 언약의 말씀(아마도 언약의 축복과 저주에 관한 지적으로 여겨지는데...) 이 선포되지 않는다는 지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청함(언약)을 받은 자보다 택함(선택)을 받은 자가 항상 적다"는 것을 오직 개혁교회만 설교하고 장로교회는 설교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은 상당히 편파적인 시각인 듯합니다.
교회론에서, 교회질서로서의 교회정치를 보는 시각들이 그야말로 천편일률적으로 개혁교회의 좀 더 나은 원리를 내세워 장로교회의 보다 못한 부분을 비판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는 두 교회의 차이를 논한 것이 아니라 개혁교회 입장에서 장로교회는 보편 공교회로서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을 논증하려는 어리석은 시도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장로교회(와 신앙고백)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어쩌면 개인의 취향으로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당한 근거를 전혀 갖추지 못한 편파적인 글이라 여겨집니다.
들을 때는 차치하고라도 이 강의안을 읽고도 전혀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스럽습니다.
3) 두 번째 강사의 강의는 신앙고백의 중요성과 활용성을 역설하였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는 거의 일방적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문제가 있는 신앙고백서라는 것을 논증하려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물론 개혁교회의 신앙고백문서와 장로교회의 신앙고백문서는 그 배열과 작성되어진 역사적인 배경으로 인해 관점의 차이들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강사의 표현처럼 아주 심각한 신학적인 견해차이로 나타나는가는 깊이 상고해볼 문제입니다. 우리교회(고신)는 이미 화란 및 많은 자유개혁교회와 교제를 나누고 있는데 이 교제가 가능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소위 [개혁교회의 3대 신앙 표준문서]와 [장로교회의 3대 신앙표준문서]의 신앙고백이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두분 강사의 표현대로라면 현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서를 고백하는 장로교회와 개혁교회는 서로 교제할 수 없는 서로 다른 교회라 취급되어질 것입니다.
4) 2번째 강사는 토랜스 교수의 이름을 빌어서 [웨신 소교리문답]이 사도신경의 질서를 따르지 않은 것은 납득할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과는 달리 웨신, 교리문답이 소위 [구원의 서정]의 구도를 가졌다고 하며 비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개혁주의자들의 구원관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폄론한 것에 불과합니다.
기억할 것은 마틴루터의 소교리문답서는 사도신경의 구도를 완전히 쫓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칼빈의 제네바 신앙문답서의 순서는 웨신 교리문답의 표본이 되어졌습니다.
몇 개되지 않는 개혁주의 교리문답의 표준을 정하는데 사도신경의 구도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주장한다하더라도 그 구도를 따르지 않았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는지.....(이것이 구원사역중심이 되지 못한 구도인가요? 소위 서술방식이 구원의 서정(논리적인 설명방식)을 따른 것이 구원의 서정(시간상의 순서)을 인정하는 것인가요? 오히려 여기서(이 설명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강조되고 있지 않는가요)
칼빈이 구원의 서정의 관점에서 예정론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과 어거스틴, 루터, 베자와 페켄스 역시 구원론을 다룸에 있어서 구원의 서정을 따라 설명하고 있다는 것은 눈여겨 볼만합니다. 이는 이들이 구원의 서정을 도식화했다는 말이라기 보다는 이 순서를 따라 가르치는 것에 익숙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5) 더 많은 것을 말하는 것은 무익한 줄 압니다. 저희는 이 강의안을 평하기위해 답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들의 강의안에 대한 보다 정확한 평가는 이 세미나를 개최한 학생을 위임받아 양육하고 있는 신대원 교수회에 맡기는 것이 합당한 줄 여겨지네요.
5. 000 형제! 저희는 이분들이 개혁교회의 장점과 장로교회와의 차이점을 이야기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개혁주의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는 개혁파교회, 곧 이들 강사들이 개혁교회라고 국한하여 칭하는 화란과 캐나다, 남아프리카, 그리고 호주의 개혁교회들을 살피고 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살핀 것처럼 개혁교회와 장로교회를 비교하여 소개함에 있어 이들과 같은 소개는 다분히 편파적인 시각으로 여겨질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두 번째 강사의 표현대로 든든한 "신앙고백의 기반"을 가지지 못한 한국교회 상황아래서 자신들(강사와 이 세미나를 주최한 무리)이 이들보다 신앙고백의 중요성등을 조금 먼저 깨달았다는 사실 하나로 한국장로교회가 신앙고백의 기초를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비판을 한다면 이는 종교적 오만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6. 저희도 한국교회의 연약성을 늘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전에 어떤 분의 지적처럼 "우리 한국교회가 선교당시에 장로교회의 전통을 가졌지만, 장로교회의 가장 중요한 신앙유산인 신앙고백문서을 제대로 전수받지 못함으로서 이렇게 기초가 연약한 교회가 되었다"는 지적을 통감합니다,
7. 한국사람들은 대체로 역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너무 현재에 집착을 합니다. 두분 강사들도 그런 인상을 짙겨 남깁니다. 과거에 자신들이 그렇지 못했을 때는 생각하지 아니하고(물론 개인적으로 아! 내가 너무 늦게 깨달았구나"하는 마음은 있겠지요) 현재 내가 여기에 대한 확신을 가졌으니 그렇지 못한 사람은 "다 잘못된 생각을 가졌다"라고 비난하는 듯 여겨집니다.
8. 000 형제는 저희가 적은 글을 읽고 사람들이 오해할 것을 염려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글을 읽고 사람들이 가지게 될 오해를 염려하시기 이전에" 형제가 왜 이 세미나를 개최하게 되었는지 그 정확한 의도를 밝히는 것"이 "이번 일의 오해를 줄일 수 있는 요건"이라 생각합니다. 무슨 의미인지 아실 줄 압니다.(순수성의 결여를 지적한 것입니다)
9. 마무리하면서...
저희는 두 강사분이 다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고신에서 목회자로 사역하셨고, 또 사역하시는 분이시면서 왜 지금까지 한번도 공 교회앞에서 장로교회의 이 많은 문제점과 신앙고백문서의 취약성을 말하지 않은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두 분이 그렇게 따르고자 하시는 개혁교회가 무엇을 근거로 한국장로교회, 더욱 고신교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을 수 있는지 이에 대한 두분 강사의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고신)교회가 신학교를 통하여 더욱 귀한 말씀사역자들이 양육되어 참된 개혁주의 교회로서 정통성을 갖추고, 더욱 신앙의 순결을 잘 보존하는 교회로 세워져 가기를 기원합니다.
00교회 000 / 동래00교회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