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평신도를 깨운다 요약
제2장 귀중한 각성
평신도 재발견은 하나님의 뜻이다.
종교개혁이 하나님을 위한 참 교회상을 회복 하는데 그 의의가 있었다고 한다면 평신도 운동은 세상을 위한 참 교회상을 회복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평신도 의 건전한 소명과 역활은 시대적 요구에 앞서 성경적 인 요구라 보아야겠다. 평신도 가 호응적 이고 능동적 이며, 건설적 인 교회의 일원이 되어 지기를 기대하는 바른 이유는 성경적 이기 때문이다. 평신도 중심의 활동은 교회 역사의 맥박이다. 평신도를 재발견하는 일은 목회자들 이 짊어져야할 시대적 소명이다.
제3장 평신도 가 누구인가?
본래의 의미가 라이코스 곧 주님을 모신 선택받은자 , 성도, 제자 혹 믿는자 의 공동체인 전 교회를 가리킨다. 교회 안에서 교역자 와 하나님의 자녀를 구별하는 조건은 아무것도 없다. 칼타고 감독 키프리안이 비로서 평신도 라는 말을 쓰기 시작 하였다. 이후 교회 안에 두 계급이 존재하는 것 같은 인상을 던지는 변질된 이름으로 양성화 되어 버렸다. 교회 안에는 99% 이상의 평신도 가 있다. 가견적 교회는 교직을 가진 소수의 교회가 아니라 생활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자신의 삶을 통해 구현하는 평신도 교회다. 평신도는 교회의 객체가 될수 없다. 교역자와 동등하게 그리스도 의 몸에 속한 지체들이다. 평신도 가 바라는바는 ? 정말 중요한 일에 평신도를 참여 시켜달라는 것이다. 개신 교회가 평신도 의 주체성을 확립하지 못한것은 종교 개혁시 부터 본의 아니게 키워온 암과 같은 숙명처럼 보인다. 겉으로는 만인 제사장 직을 공인하고 고백 하면서 안으로는 구약 시대의 제사장 개념을 고수하는 현실교회의 흐름을 보아도 충분히 공감할수 있다. 우리는 잃어버린 초대 교회의 평신도 상을 다시 찾는 용기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시대에 살고있다.
제 4장 교역자 와 평신도의 관계
* 소명 받은자 로서의 교역자 - 교역자와 평신도 이들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상처를 주기 쉬운 관계였다. 질서는 교리 만큼 권위를 가질수 없다. 또 교직을 도전하는 것이나 교직을 교권으로 절대화 하는 것이나 잘못된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교역자 에게는 평신도 에게 없는 사역상의 권위가 있다. 목사는 단순히 교회에 고용된 종처럼 취급을 당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사람들 의 변덕에 이리저리 끌려다니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종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교회는 교역자의 권위를 안수라는 의식을 통해서 공인해왔다. 하지만 안수식은 단지 교직을 임직함에만 사용된 것 아니요, 그 자체는 절대적인 권위는 없으나 하나님께서 명령한 신적 기원을 가지고 있고, 이는 사적으로 하지 못하고 공적으로 하였으며, 안수받을 사람을 지명한 자가 하나님 자신이었다. 안수의 권위는 그리스도 께서 교회의 양무리를 치기 위해 선택 하시고 보내신 자를 공적으로 인정하는 방법에 있다. 이 안수는 믿음의 행위의 하나이다. 안수받은 교역자 의 권위는 지배함이 아니라 전 교회에 종속된 권위로 섬김과 모범에 있다. 하나님의 소유로 택함받은 성도 의 공동체인 교회보다 한 단계 아래 속하기에 교역자 가 전 교회 위에 군림할수 있는 비유가 된다. 교역자는 곧 평신도 에게 속한 예수님을 위한 평신도 의 종 이라 교역자의 권위를 가장 높여주는 말씀의 사역 역시 평신도를 섬기는 봉사의 일에 지난지 않는다. 종의 섬김은 가르치고 , 전파하고 치료하는 그의 사역 전체를 통해 나타났고, 최후에 생명다함 에서 완성을 보았다. 가난을 봉사를 위한 방편으로 보았지만 봉사 그 자체로 보지 않았다. 교역자 의 참 봉사는 평신도를 바른 자리에 세우고 그 역활을 다하게 함에 우선을 두어야 한다. 또 항상 자기를 섬기는 자의 위치에 두고 봉사 하였다. 교역자는 평신도 가 소유하고 있는 제사장 직을 이행하되 나란히 서서 그 일하는 모범을 보여주는 위치이다. 교역자와 평신도 의 관계를 바로 유지 코자 하면 평신도는 교회요, 교역자는 그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들을 온전히 하는일에 전력을 다하기 위해 임명된 종이라 는 사실을 확신해야 한다. 또 평신도는 섬기는 교역자 가 지닌 종의 권위에 겸손하게 복종하면서 자기의 본연의 역활을 다시 회복해야 마땅하다.
제 2부 증거와 봉사의 공동체
제 5장 교회는 왜 존재 하는가 ?
교회는 신약의 기본 정의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 하신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 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시작 되었다. 흑암의 권세에서 건짐받아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새로운 백성의 무리들 이요, 택하신 족속이요, 거룩한 나라가 된다. 교회를 하나님 나라가 부를 때는 구속사 적 견지에서 보아야 하며 동일시 될수는 없다.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 나라 라 정의할때 이 교회는 그 교역자 의 교회 아니요, 평신도의 교회 아닌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 모두의 교회이다. 교회는 하나님을 위해서 , 세상을 위해서, 교회 자체를 위해서 존재한다. 교회는 전 인격적 제사라는 성격의 예배로 하나님을 예배할 의무를 지닌다. 이는 하나님의 인격에 근거를 둔다. 교회는 그리스도 의 증인으로 부름받아 세상에 보냄받은 공동체 이기에 선교는 교회의 본질 부분이기 보다 교회의 본질 자체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영광스러운 예배와 잃은 양들이 돌아오는 축제와 그의 자녀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까지 자라는 성장등을 통해 영광 받으시기 원하고, 한 가지라도 잃어짐은 그의 뜻이 아니다.
제 6장 도전 받는 전통적인 교회론
종교 개혁자들의 교회의 정의는 나름대로 잘된 것이나 오늘의 신자들에게 적합치 못한 면도 있으니, 성경적 교회론은 선교의 콘택스트에서 나왔으나 종교 개혁자 의 교회론은 사회 안에서 주어진 상황 안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선교적 사명을 교회의 본질적 차원에서 선명하게 파헤치지 못하였다. 교회의 사도성은 주후 325년 니케아 신조에서 교회의 4가지 속성 가운데 하나로 확장되었으나, 그후 타락으로 사도성이 사도적 계승 이라는 미명으로 로마교회에서 거짓된 것을 위장하여 자신들 의 수장을 사도 베드로의 법적 계승자로 정당화 함에 악용되었다. 하지만 개혁자의 후예들은 사도들의 교리를 계승하는 정도로 받아들일 뿐이다.
칼빈과 루터 당시 큰 관건은 교회의 순결로 거짓 교회에서 참 교회를 구별해내는 것으로 참 교회의 3대 표지가 결과적으로 중요 위치를 가지게 되었다. 말씀 선포, 성례 전의 집전, 권징의 집행에서 그 순결성을 유지하는 곳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선언하였다. 하여 모임 에다 큰 강조점을 두어 정적 개념에 치우친 자기 중심의 편협과 예배 경건만 중시하는 태도를 벗을수 없었다. 역사적 형태를 벗어버린 교회 이미지는 존재할수 없기에 결국 종교 개혁자 들의 교회론은 중세기 적 옷을 입고 있었다. 어느 시대나 교회는 성경 말씀이 허용하는 한계 조건 안에서 성령의 인도따라 시대 요구에 대처할 자유를 가진다. 오늘날 교회는 선교를 위한 가장 큰 잠재적인 평신도를 복음의 증인과 사랑의 봉사자로 무장하는 일이 시급하게 되었다. 또 교회의 사도적 본질이 갖는 신학적 바른 의미를 재 발견함이 현대 교회가 안고있는 평신도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요, 발전의 기틀이다.
제 7장 교회의 사도적 본질
교회는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사도들의 증거와 사역 위에 세워졌고, 사도는 교회의 시작이며 영구한 기초석이 되었기에 이런 근거에서 교회는 사도 적이라. 곧 교회가 사도적 이라는 것은 사도성을 그 본질로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교회가 사도 적 일때는 그 교회는 정말 하나되고 거룩하며 보편적 일수있다. 사도적인 교회는 성경에 일치하는 교회 인데 성경을 떠나 사도적 인가를 확인할수 있는 다른 권위란 존재하지 않기에 이다. 로마교회가 사도직을 개인이나 제도상 의 교회가 계승할수 있다함은 오류요 다만 사도의 교훈 과 사역만이 있을뿐이기에 사도들 의 계승자 는 소수의 개인이 아닌 전 교회가 그 계승자요, 전 교회는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진 성령의 전이다. 역사 의미상 의 본질 적 의미로 이해 되야 한다. 사도적 계승 이라는 참된 내적 연속성 의 존재는 성령의 것이요, 사도성 역시 은사며 동시에 필수 요건이다. 사도 들의 교훈을 계승하는 것, 사도의 사역을 계승하는 것이다. 사도성은 단순히 이런것 으로 진술하고 입증 할수있는 어떤것이 아니라 현 역사 가운데서 복음을 나누어야 한다. 곧 성경을 가지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세상에 남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의 일치점 과 그 핵심적 내용을 살펴 보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구원 목적과 일치되는 뚜렸한 통일성을 가지고 있기에 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 하려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완성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 이라는 주제가 선교적 인 것에서 고립되어 버리면 하나님의 구원 목적을 세계적으로 확장하는 일과 교회에 성령을 주신 의의가 정당하게 다루어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교회는 구원받기 위해 존재함 이기보다 ,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김 받고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신분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신이 무었이 되느냐 함 보다 무었을 하느냐에 그 목적을 설정해야 한다.
복음 증거의 영향력을 상실함의 이유는 하나님의 가장 큰 뜻에 대한 복종과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바라보는 소망을 잃어 버렸기에 이다. 교회의 사도적 본질과 성령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예수님 에게 임하셨던 그 성령께서 교회 안에 계시는 이상 침묵은 반드시 끝나야 한다. 성령이 오신 가장 큰 목적은 제자들을 그리스도 의 증으로 준비시키기 위해서이다. 성령은 오셔서 교회의 본질을 예수 그리스도 와 그의 십자가 를 자랑하는 일에 알맞는 도구로 바꾸어 주셨다. 그 결과 신약 교회는 고백하는 , 전파하는 , 찬양하는 교회가 된 것이다. 제자들 의 방언과 베드로 의 설교의 관계에서 다른 방언은 증거하는 교회 로서의 성격을 극적으로 나타내었고, 베드로 의 첫 설교는 이 증거의 성격을 정상적 이며 지속성 있게 표현할수 있는 패턴을 설정해 주었다. 목양 사역은 교회 안에서 성령이 감독자 삼아 그의 교회를 치게 하신 소수의 지도자 들에게 계승 되엇다. 교회를 지도하는 직책은 특정 계급을 의미하지 않는다. 목양 사역은 교회 안에서 성령이 감독자 삼아 그의 교회를 치게하신 소수의 지도자들에게 계승 되엇다. 교회를 지도하는 직책은 특정 계급을 의미하지 아니한다. 목양 사역은 몸의 지체가 지키는 원리에 일치하여 지체들은 상호복종과 봉사라는 이치에 근거하여 몸을 도와야 한다. 교회는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유일한 뜻에 의해 세상에서 부름을 받은 그의 백성이자 그의 동일한 뜻에 의해 세상으로 다시 보내심을 받은 증인의 공동체이다. 교역자와 평신도 가 하나를 이룬 전 교회가 세상을 위해 복음을 증거하고 사랑으로 봉사하는 사역까지 계승하지 않으면 교회의 사도성을 바로 계승함 으로 볼수 없다.
제8장 평신도 의 위치와 역활
하나님의 백성, 성령의 전, 그리스도 의 몸 인 교회에서 평신도 의 위치와 역활은 만민 제사장으로 사는 삶이다.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는 특정 계급과 신분을 용납할 여지가 없다. 교회는 항상 그리고 어떤 경우 에도 하나님의 전 백성이며, 전 교회요, 전 신자의 교제이다. 성령의 전 으로서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는자 는 모두 죄로 부터 놓임을 받은 자유인이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 벧전 2장4- 5절) 의 제사는 물질 이상의 기도와 찬양 감사 회개의 열매를 가진 영적 제사요 , 유일한 중보자 요, 대 제사장 이신 예수 그리스도 의 이름으로 모든 신자들 이 드리는 제사이다. 성령으로 충만한 신자는 누구나 마지막 날에 하나님과 함께 왕권을 누리며 그를 봉사할 제사장 이된다. 교회를 그리스도 의 몸 이라 하는 것은 모든 신자가 지체로서 다 중요하며 각자가 상호 의존적 관계 라는 유기적 특성 이라는 믿음은 혼자 존재하지 못하고 믿는 사람 안에 존재한다. 믿음의 공동체 로서 메시지를 전하면 , 믿음으로 응답하는 공동체를 통해 자신들의 믿음을 가진다. 믿음이 전적으로 각자 개인적 책임에 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 그 믿음이 교회의 믿음의 공동체에 속한 것 못지 않게 위로가 된다. 이같은 의존은 상호 사역의 필연성을 전제함 이다. 은사에는 모두 평등하다. 은사간 의 차별도 없다. 은사는 개인의 영적 향유를 목적으로 받은 것이 아니다. 지체의 건덕을 위해 섬기기 위해 받은 것이다. 은사는 소명의 성격을 지닌다. 은사를 주신 목적이 신자가 서로 봉사하고 복종하는 유기적 관계를 이루어 그리스도 의 몸을 세움에 있음을 이해할때 평신도 의 위치와 역활을 바로 발견하는 열쇄가 될 것이다.
만민제사장 직은
*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것이다.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인간 중보자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영적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제물로 자신을 드린다는데 있다. 신령과 진정으로 어디서나 예배할수 있는 은혜의 새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다. 구체적 근거까지,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고자 함이요, 자신의 인격과 삶 전체를 가지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찬양함에 바쳐야 한다. * 세상을 자신의 증언자 로 삼아 하나님과 화목 시킬 직책을 가진다. 넓은 의미에서 신자 누구나 말씀 증거자 로 부름 받았다. * 중보하는 기능 이다. 제사장 직은 하나님 과 신자 사이에서 형성되는 수직적 관계 만이 아니라 영적 제사를 통해 다른 형제들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고 기도해 주는 기능까지 포함함 이다. * 만민 제사장 직은 신자들이 세상 앞에서 하나님 과 그의 뜻을 증거하고 세상을 봉사하기 위해 생명을 바치게 하려고 부르신 소명으로 이루어졌다. 자신을 위해 살지않고 하나님 앞에서 다른 지체를 위해 살며 자신은 더불어 도움을 받아 가며 사는 성도의 교제를 말한다.
제3부 제자도
제9장 평신도 훈련의 전략적 가치
제자를 만들라고 명하신 이는 예수님 이다. 제자도 의 기본 원리는 첫째 . 사람을 만드는 것 그 다음이 일이다. 인격 형성과 실천적 행동 이라는 순서로 전도되어 버리면 성경적 전략이라 할수 없다. 평신도 가 해야 할 일에 있어서 제자도는 사랑의 봉사를 복음 증거 보다 앞세우고 있지 않다. 평신도 가 세상에서 사랑의 봉사를 함은 증인 으로서의 삶을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 되기 때문이지 봉사 그 자체가 긍극적 목적이 되어서가 아닌 것이다. 제자화 전략은 평신도를 정예화 하자는 운동이다.
제10장 예수님 과 그의 제자
예수님 공생애 시작 후 처음 한 일은 제자를 부르시는 일이었다. 신중히 가려 선택된 12제자, 이들이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하기 전에 먼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의 사람이 되어야 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공적으로 숨기시던 예수님의 메시아 직을 제자들 에게는 드러내시고 제자들 의 신앙 고백을 요구 하셨다. 평범한 그들을 가지고 공적으로 숨기시던 예수님의 메시아 직을 제자들 에게는 드러내시고 제자들 의 신앙 고백을 요구 하셨다. 평범한 그들을 가지고 하늘 나라의 찬란한 꿈을 키우기 를 주저하지 아니 하였다. 예수님의 남겨 놓은 유산은 예수님을 배운 평범한 제자들 이었다.
제 11장 사 복음서 와 사도 행전에 나타난 제자 라는 개념
모든 신자는 교역자나 평신도를 막론하고 , 항상 한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의 제자로 남아 있어야 한다. 마가는 12제자 외에 다른이를 따라 제자라 부르지 않는 협의적 의미를 가지나, 요한 과 마태는 누구든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하면 제자가 된다는 광의적 의미도 담았다. ( 요 8장31절) 누가에 의하면 안디옥에서 제자들이 세상으로 부터 그리스도 인 이라는 아름다운 별명을 얻게 되었는데 ( 행 11장 26절) 이는 제자라는 이름 속에 살아있는 능력을 그들 의 인격과 삶을 통해 구현한 사람들 에게만 돌려질 수 있었던 명예로운 호칭이었다. 사복음 서 저자들 은 마가를 제외하면 모두 제자라는 이름을 구주 로 고백하고 교회의 품으로 돌아오는 모든 신자들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사용한다. 진정한 그리스도 인의 자격은 제자 가 되는 것, 제자도 에 있었다. 예수님 의 승천 하시면서 제자들 에게 모든 족속을 예수 믿는 사람들 이 되게 하려고 하지 않고 제자로 삼으라고 하심은 다스리시고 자 한 새 왕국의 모든 백성은 예외없이 에수님을 닮은 사람들이 되기를 소원 하셨기에 이다. 제자라는 개념 안에는 예수님 의 지상 사역 안에서의 인격적 위탁, 증인 , 종 이라는 3 가지 요소가 있다. 제자도 는 바로 이를 하나로 표현하는 말이다. 제자도는 하나의 정의 라기 보다는 실 생활 에서 구현되는 산 진리라 하겠다. 제자 로서의 3 요소는 예수님 의 인격과 절대적 인 관계를 가진다. 인격적 위탁없이 제자도가 존재할 수 없고, 증인의 요소 없이 긍극적 비젼을 상실하며, 종의 요소가 따름 없으면 제자도 의 맛을 잃어 버릴 것이다.
제 12장 인격적 위탁 요소
예수님의 인격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르지 못하는 사람은 예
수님 에게 합당치 않다. 모든 것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전적 위탁이야 말로 예수님 의 제자가 되는 가장 기본적 인 요소 이다. 예수님을 따라가기 원하는 제자는 단번에 결단하고 행동에 옳겨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 께 오는 일은 계속적 반복이 아닌 단 한 번의 결단 으로 일어나는 사건 이어야 한다. 예수님 의 제자가 치루어야 할 댓가는 선한 싸움이요, 선택의 희생이요,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또 생명을 바치는 모험 또한 요구된다. 위탁이란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우선권을 그의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에 항상 절대적으로 복종하신 것 같이 예수님 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위탁자들 이었다. 복종의 형태는 각자의 형편에 따라 서로 달랐다. 성령이 인도 하심에 따라 결정 되어야 했기에 또 단순 하였다. 모세와 선지자는 자기 자신의 인격적 권위에 근거해서 전할수 없었다. 누구를 향해 자기를 따르라고 부를 만한 인격적 적격자 가 아니었기에 이다. 예수님 만이 자기 의 인격에 모든 것을 맡기고 따르라 명할수 있는 참 선생이 될수 있다. 제자를 부른자도 예수님 이었고, 자기와 제자의 관계를 완성할 형식과 내용을 제공한 자도 예수님 자신 이엇다. 하지만 수난 주간 동안 제자들의 인격적 위탁 관계가 위기에 빠져 있엇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잉다. 평신도를 제자화 한다 함은 예수님 자신에게 인격적으로 그의 전부를 내맡기고 복종하는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자들 에게 부분적 위탁이란 불 가능 하다.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 자아를 내버리는 댓가는 예수님을 배척하고 치루어야할 댓가에 비교하면 하챦은 것이다.
제 13장 증인 의 요소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위임한 긍극적 일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활을 직접 목격한 사도들이 전하는 경우와 , 사도들 의 증거를 들고 믿는 자들이 전하는 경우 초대 교회 제자들은 성령이 임하여 된 예수 복음의 증인이다. 스데반 당시 예수님의 증인 되는 자는 자기 생명을 잃을 각오를 해야 했다. 스데반 순교가 스데반을 증인되게 함이 아니라 스데반의 증거가 스데반을 순교자로 만들었다. 누가는 제자 가운데 12명을 사도라는 특수 명칭을 사용하는데 이것 역시 " 제자" 는 " 예수님 의 증인 " 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시사한다 . 제자는 어디 까지나 보냄을 받은자이지 보내는 자가 아니다.
* 초대 교회에서 열렬하고 담대 하였던 증인의 행동은 그들 의 내적 충동에 의함 이었고 이는 성령이 주심 이었다. 성령 의 사람은 자신이 속한 교회의 사도적 본질에 일치하는 내적 증거를 그들안에 가지고 있다.
* 사도드리 부활 의 증인으로 위기를 맞으면 그때 마다 성령 중만 의 현상이 반복적 으로 나타난 것은 성령 의 존재를 공개적 으로 분명히 확인 시켜준 하나님의 비상 수단 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누구나 권능을 받고 예수님 증인이 될 것 ( 행 1:8) 이라는 사실은 증인 이란 성령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사람이 자작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시 성령 의 임재는 은사 이상 의 큰 의미가 있었다. 우리가 전도를 은사라 주장하면 성령 이 교회에 오신 기본 목적과 그가 결정한 교회의 사도적 인 본질을 부분적 으로 제한 하는 과오를 범하고 말 것이다. 사도나 선지자 가 소명인 동시에 은사였듯 복음을 전하는 자 역시 은사를 수반한 소명 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일을 말하는 것은 성령 이 교회에 주신 사도적 본질을 우리 안에서 수시로 체험 하는 내적 충동 이지 소명받은 어떤 직분 과 관련된 은사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증거 와 모임( 행 2:42-47) 은 교회의 사활이 걸린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성령 께서 말세 교회를 본질상 증거하는 증인 의 공동체 로 만들기 위해 오셨고, 이일이 ㅣㄹ시적 아닌 연속족 사건 이 되도록 하기 위해 세상 끝날까지 교회를 떠나지 않는 다 는 사실을 믿는 이상 전도의 자증성, 자연성, 내적 충동, 새로운 본능 이라는 표현을 어색해 할 이유없다. 사도적 본질을 가진 교회인 평신도 에게 자발 적인 역사가 잇음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 행동이 선하고 아름 다워도 구체적 인 예수의 복음이 빠져있기에 선향은 엄밀한 의미에서 증거가 될 수 없고 위가 행위의 전도 만을 계속 강조하면 그것은 " 와보라 "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몰라내고 그 자리에 경건한 자기 자신을 우상 으로 앉힐수 있는 자기 교만 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교회에서 평신도를 예수님 의 제자로 훈련한다 함은 예수님 을 자기 전 생활 영역에서 고백하고 증거하는 증인이 되게 함을 의미한다. 마음 속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가 충만 하도록 도와 준다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는 능력을 재현하게 될 것이다.
제 14장 종의 요소
종이 섬기다 라는 말은 한쌍이 되어 자주 나타난다 ( 마 20:27-28, 막 10:44-45,눅12:37) 종이라는 신분은 제자가 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 가를 이야기 한다. 섬긴다 는 기능은 그리스도를 자기의 절대 주인 으로 모신 제자의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예수님 의 제자 는 종으로 섬기는 자 됨은 우연이 아니요, 예외 없는 필연이요, 본질 적인 것이다. 예수님 의 제자 는 종으로 섬기는 자됨은 우연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 로 주려함 이니라 ( 막 10:45) 예수님 의 인격적 위탁을 받은 제자는 선생이 보여준 본을 본받아야 한다, 제자의 복은 자신이 종이며 주인 보다 높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실천 함이요, 희생적 봉사를 해도 자랑 할데 없는 종임을 잊지 아니함 에서 제자 의 ㅕㅇ광 이 따라 온다. "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 " ( 눅 17장 10절) 이처럼 겸손한 종에게 주인은 칭찬과 영광을 안겨 주신다. "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 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찌어다 ( 마25:21) 제자 의 사명은 생명을 잃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완수할수 없다. 그리스도 께서 사람을 제자로 부르신 것은 죽으라고 부르신 것이 한 것은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예수님 과 그의 제자들 의 목적은 이 세상 나라를 세움 에 있지 않고 관심은 하나님의 나라 와 그 영광 의 시대에 있다. 목적을 달성 하려고 하면 고난 과 죽음을 통과 해야 한다. 고난 의 의미는 봉사에서 찾는 것이어야 한다. 제자에게 종직은 예수님 이 주 가 되신다 는 것 때문에 피할수 없다. 제자들 의 전하는 복음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 요 예수님 께 하나님의 사랑이 집중되어있고 예수님 희생적 죽음으로 그 사랑이 전파되고 역사한다. 예수님 에게 사랑은 의지와 행동 의 문제였다. 그 사랑은 항상 종의 헌신을 통해 사람의 눈에 보여지고 마음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이다. 예수님 의 제자는 증인되기 전에 먼저 종이 되어 사랑으로 희생하신 에수 그리스도 자신을 자기 의 언행 심사와 생활 로 보여주어야 한다. 예수님 의 사랑에는 목적이 잇다. 그 목적은 잃은 양을 찾는 것이다.
* 제자도 의 종직은 자원하는 일이다. 자기의 입의 말로 자신을 스스로 사랑의 법에 얽매어 놓은 사람이다. 교회에서 제자 훈현 시킴은 그리스도 를 닮은 사랑의 종된 인격과 삶에서 온전하게 갖출수 만 있다면 세상은 그에게서 예수님 을 볼수있게 될 것이다. 예수가되는 변화와 성숙을 세상 앞에 숨길수 없는 새로운 피조물 이 된다.
제 15장 교회의 체질 개선 가능성 - 교회의 체질이 바뀐다.
교회를 예배 와 양육과 증거를 위해 하나님 으로 부터 부름을 받은 택자들 의 공동체 라고 했다. 모이는 교회는 흩어지는 교회의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 부름을 받은 것과 보냄을 받은 것은 둘이 아니다. 한 가지 사실의 양면에 지나지 않는다. 교회의 체질은 평신도 가진 자아상에 따라 크게 개선될 수 있다. 평신도 의 자의식을 제자도 에 입각하여 바꾸어 주라 그리하면 교회 체질 이 바뀔 것이다. 가르쳐 지키게 한다는 것은 양을 친다는 것으로 , 지키게 한다는 말에는 믿는자 가 그리스도를 닮는 인격의 변화를 통해 생활 현장 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에 옮길수 있기 까지 계속 이끌어 주는 적극적 인 목회의 실제가 담겨있다. 가장 최선의 목회는 훈련으로 양을 강하게 만들어 스스로 생산하게 하는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평신도 끼리 서로 봉사하는 상호 사역을 중요하게 다루는 제자훈련이 어느 단계에 오르게 되면 영적 생명을 서로 공유하며 사랑 안에서 하나되는 여러 형태의 유기적 모임들이 크게 발달하여 나타나게 된다. 평신도 가 교회의 주체로서 그 본연의 위치를 바로 찾아 그 기능과 역활을 다할수 있도록 교역자가 그들을 섬기는 교회라면 그것아 바로 평신도 중심의 체제라 할수 있다. 교역자를 괴롭히는 공통 가운데 하나는 자기가 아니면 교회 안에 일할 사람이 없다는 고독감 이요, 곧 말씀 과 기도로 형제들을 세워주는 영적인 사역을 나누어진 평신도 사역 동반자 가 필요하다. 교회 부흥은 행사뒤에 따라오는 결과로만 생각치 말아야 한다 제자 훈련하다 보면 교역자 가 은혜를 받을뿐 아니라 평신도 의 영적 요구가 무었이며, 그들 의 언어가 어떠한 것인지 배우게 된다. 또 제자 훈련은 평신도 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성장하는 교회는 엄격하다. 엄격함을 상실하는 교회는 자신의 힘을 상실한다. 엄격함은 관대함 으로 저하되기에 이를 경계해야 한다. 자연스레 꾸준히 성장하는 건강한 교회 체질을 원하면 제자 훈련을 할때 "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겟고 그 약한자 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 가 속히 이루리라 " ( 사 60:22) 함을 보게 될 것이다.
개정판 제 18장 제자 훈련의 목적
제자 훈련은 성경 공부가 아니요, 성경 공부는 제자 훈련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제자 훈현은 전도와 가르침에 유능한 평신도 기능인을 만들어 내는 코스로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예수님이 제시한 표준에 따라 나의 신앙 인격이 성숙한 단계를 지향하고 있는가 ? 선교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자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살펴야 한다. 진정한 제자 훈련은 평신도 가 날마다 사회 속에서 성과 속을 따로 구별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산 제자로 드리는 제사장 으로서 의 소명을 분명히 가르치는 것을 중요하게 다룬다. 제자 훈련은 중산층 이상의 평신도 에게만 가능한 것이 아니고 지도자 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훈련은 학습 할동으로 일정한 목표나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서 실천 시키는 실제적 활동 이다. 제자를 만들라는 준엄한명령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훈련이라는 말보다,더 좋은 말이 없다. 제자 훈련은 궁극적 목표와 구체적 훈련 방법 설정, 훈련에 합당한 선택된 대상을 가져야 한다. 영적 훈련은 하나님을 위하여 지속적 으로 열려있는 시간과 공간의 테두리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고독도, 예배도, 봉사도, 훈련을 필요로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임재를 인정하고 응답할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준비해 놓을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제자 훈련의 공적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본받는 신자의 자아상을 확립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제자는 예수 의 제자요, 제자 훈련은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하는 거룩히 여김을 받을수 있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소명자로 만드는 것이 제자 훈련이다. 그리스도로 충만히 살수있도록 가르치고 훈련하는 사역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교회에 명하신 사역에 직 간접의 헌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성도를 온전케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하고 그리스도 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것을 어느 하나 빼거나 순서를 바꾸어서는 안됨이 목회의 절대 법칙이다. 건강한 목회는 성경의 원리를 충실하게 따르는데서 기대할수 있다.
제 19장 제자 훈련은 누가 시킬 것인가
그것은 교역자 의 책임이다. 교역자 의 역량은 평신도의 인격과 삶에서 증거되는 복음의 능력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교역자의 영성, 실력, 인격은 자기 안에 뭍어둘 것이 아니라 평신도 라는 토양에서 썩는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로 증명되어야 한다. 목회자 자신이 제자로 만들어지는 실제적 훈련을 받아보라. 제자 훈련은 예배석의 평신도를 볼때 세상으로 보냄받은 사도의 계승자 라고 여기는 믿음을 가지는 지도자 만이 손을 댈수있다. 교역자들은 예수님께 고용된 종이다. 예수님 처럼 목회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목회자는 성도를 돌보는 목사인 동시에 성도를 훈련하는 교사이다. 훌륭한 설교는 역시 훌륭한 교육이요, 그 안에 설교자의 선포적 특징이 들어있다.
제 20장 어찌 시작할 것인가?
목회 철학은 지도자 가 손으로 자은 것이요 눈으로 본 것이다. 지도자가 제자 훈련의 꿈을 사람들 과 효과적 으로 나누기 위해서는 사용하는 용어와 내용이 명료하고 , 미래 지향적이고, 시각적 이고, 도전적 이고, 현실적 인 것 이어야 한다. 목사는 설교와 함께 제자 훈련의 비젼을 기도의 일 순위로 정하고 공적 모임에서 빼지말고 기도하라. 기성 교회에서 처음 시작하는 제자 훈련은 무조건 장로들 과 권사들을 택해야 한다. 개척 교회의 경우는 목회자가 제자 훈련을 그 교회의 기본 목회 방법으로 결정하였다는데 의의가 더 크다. 인격 교육에서는 수학적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제 21장 무엇으로 가르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 과 자신의 모범과 제자들 의 경험, 이는 인격적 인 진리요, 인격적 인 모범이요, 인격적 인 경험 이었다. 제자 훈련에서 성경 사용은 언제나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는 산 진리로 다루어야 한다. 배우고 본 진리는 각자의 생활 현장에서 순종을 통해 개인적으로 체험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제자 훈련 담당 지도자는 먼저 그리스도의 말씀이 자기 마음에 풍성히 거할수 있게 준비해야한다. 지도자 가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피할수 없는 십자가 이다. 경험적 지식은 생활 현장을 가까이 접하고 직접 보고 귀를 귀울이는데서 얻는 것이다. 제자 훈련은 방안 에서만 아닌 실습에 의한 실 생활 적용이 있어야 한다.
제 22장 훈련 교제는?
1. 복음이 살아있어야 한다.
2. 내용이 균형잡힌 체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3. 말씀 적용이 강조 되어야 한다.
4. 교리적 뼈대가 유지 되어야 한다.
5. 목회 철학이 반영되어야 한다.
6. 귀납적 접근 방법을 따르는 것이어야 한다.
복음과 교리와 생활이 균형되며 목회자의 철학을 공유할수 있어야 하며 귀납적 접근 방법을 택한다. 제자 훈련과 사역 훈련으로 제자훈련 - 구원 진리에 대한 피, 구원의 감격, 성숙한 인격과 삶을 위한 제자 훈련의 기초, 구원의 진리, 신앙 인격 과 삶으로 짜였다. 사역훈련은 평신도 동역 과정, 의식 바꾸고 이론과 실습, 목회 철학과 평신도 의 자아상, 소그룹 모임과 리더쉽 , 신 구약 성경의 주제와 내용.
제 23장 소그룹 환경
자리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 인격적 상호 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교육 환경이다. 소 그룹은 생산성 뿐 아니라 인간 관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며, 개인의 인격에 변화를 일으켜 준다. 제자 훈련은 평신도 지도자를 생산하는 일 뿐 아니라 교회 체질을 인격적 인간 관계 형성에 더 큰 강조점을 두는 유기적 성격의 그룹으로 바꾸어 놓음에 목적이 있다. 기동성 높은 형식을 통해 교제의 단위를 이루고 있다. 각 계층에 형성된 작은 교제의 단위 속에서 접촉하는 계층 들에게 자유케 되는 해방의 멧시지를 들으며, 멧시지가 주는 영향을 볼수있게 하여 신축성이 있었으나 무질서 하지 않았다. 소 그룹 기능은 태도 , 가치관, 성격에 새로이 변화 시키는 역할을 한다. 소 그룹은 성경에 의하여 말씀 중심으로 영적 깊은 교제에 의한 치료를 가능케 한다. 소 그룹 에서는 자기 개방이 보다 쉽게 나타난다. 소그룹에서 인격 상호간 의 학습은 치료의 또 다른 요소를 이룬다. 소 그룹에는 애착심(cohesiveness) 이라는 요소가 있다. 또 감정 교환에 의한 카타르시스에 의한 치료가 가능하다. 제자 훈련시 함께 둘러앉아 말씀의 거울에 각자의 마음을 반사시킴에서 , 인격적 상호 관계를 통해 일 하시는 성령 역사를 기대하기 원할하다. 모든 소 그룹은 자격있는 평신도 지도자 들이 맡아야 한다.
제 24장 귀납적 방법을 이해하라
1. 참가자 전원이 교사요 학생이 된다.
2. 증명의 논리가 아닌 발견의 논리를 따른다. 이때 지도자는 모든 이가 자기 것을 발견토록 격려하고 동기를 부여하면 좋다.
3. 의사 소통이 일방적 이 아닌 복합적 양상을 띤다.
4. 지식 전달 보다 인격의 변화 , 새 생명의 성숙이 그리스도를 닮아 가도록 함에 역점을 둔다. 우리의 문제는 많이 알지 못해서 가 아니라 바른 인격이 되지 못해서 이다.
5. 말씀의 적용을 중시하여 발견하고 깨닳은 진리를 형제들 과 나누며, 실천할수 있는 구체적 결단을 요구한다 귀납적 방법은 1. 성경 펼칠때 항상 처음 읽는 말씀 처럼 보고 읽듯이 밀씀을 관찰하게 한다. 2. 해석 과정 시 본문 의 숨은 뜻을 찾고자 집중한다. 3. 반응 과정은 말씀을 자기 것으로 받아 들이는 내면화로 성경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 안에 역사하기 시작한다. 4. 적용에 있어서 말씀에 감동에 의해 순종함은 자신의 인격과 삶에 변화를 가지게 하는 실제적 기회와 공간을 만들어 준다. 그 적용은 구체적 이고 실천 계획을 수반하며 즉각적 들어감의 결단또한 요구된다. 귀납적 성경 공부 지도자는 질문을 적절히 던질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질문시 폐쇄형 질문은 대화를 단절 시킬 위험이 있기에 피해야 한다. 귀납적 방법은 훈련생 으로 하여금 말씀의 권위를 스스로 안정하게 만들수 있다. 또 혼자 성경을 공부할수 잇는 자신 감도 심어 준다.
제 25장 제자 훈련에 필요한 리더쉽
지도자 만 훌륭하면 그릇은 질이 조금 떨어져도 큰 지장이 없다. 예수님의 리더쉽의 특징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요 그 상징은 열린 귀이다. 자신이 무었을 행하시기 전 리더쉽은 자기 존재의 안전을 배우는 데서 생기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변화를 주는 리더쉽 특징은 진리를 스토리 속에 담아 전달하는 능력이다. 권한을 위임하는 것으로 제자 들에게 자신의 권한을 위임하엿다. 자신의 손에 있는 권한을 위임 함이요, 제자 훈련은 먼저 듣고, 먼저 보고, 먼저 말하고, 먼저 들어 줄수 있는 지도자로 준비되어 있을때 비로서 다른 사람의 인격과 삶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의 기적을 기대할 수 있다. 지도자는 자식을 사랑하고 돌보는 부모와 같은 자세를 지녀야 한다. 편애가 없어야 한다. 솔찍해져야 한다. 일방적 평정 이나 강요를 일삼는 태도를 취하면 안된다. 설득형 스타일 에는 지도자 의 권위가 커지면서 상대적 으로 그룹의 자유가 위축된다. 일반적 으로 제자 반에서 지도자가 자주 선택하는 스타일은 대화형 이라 할수있다. 기독교의 코치는 자기 자신의 위치를 높이는 일 보다도 다른 사람들을 계발 하는 일에 더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다. 좋은 리더쉽은 훈련생 들이 신나게 뛰게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제26장 첫 시간은 이렇게 진행해 보자
1. 훈련 대상자를 사전에 심방하는 일 - 훈련생의 영적 배경을 점검해야 한다.
2. 훈련에 들어와서 지켜야 할 지침을 알려줌 이 요구된다. 훈련생들의 형편과 수준을 잘 참작하여야 한다. 허물 투성이 인 사람 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훈련에 임해야 함을 강조하라.
제 27장 현장의 필요성
우리는 현장에서 목회자의 철학을 읽을수 있어야 한다 공동체를 지배하고 있는 정신을 감지 할수 있어야 한다.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체크 할수 있어야 한다.
제 28장 한국 교회의 뿌리 - 초창기 의 그 정신
네비우스 방법에서 첫째. 신자는 누구든지 자기가 전도받은 그곳에 살면서 그리스도를 위한 개인 사역자 가 되어야 하고 생업에 종사하며 이웃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는 교육 중심 목회를 가능케 한다. 또 또 전 교회가 세상에서 복음 중심으로 부름 받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평신도 가 상호 사역을 함 으로서 초창기 한국 교회는 각자 의 은사를 할용하고 발전 시킬수 있는 교회가 되어 하나 같이 지식과 힘 과 능률 면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둘째. 가정 중심의 목회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셋째. 개인 전도 중심의 목회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 한국 교회가 선교 사상 가장 성공한 사례 의 하나 가 된 배후에는 이와 같은 평신도 훈련 중심의 목회 정신이 깃들여 잇다.
제 29장 사랑의 교회 제자훈련 뿌리내리기
78년7월에 시작한 것이 미제는 수 만명 , 소위 담임 목사가 정기적 으로 소 그룹 에서 훈련 시키는 특혜 받는 몇 사람을 둘수 없기에 이르럿다. 목회 현장 에서 이유없는 열매도 없고 이유없는 성장 도 없는 범이다. 궤도 수정 하지 않고 제자 훈련 목회를 하기로 결정 했다. 사랑의 교회 에서는 한번도 길을 잃고 방황 하거나 길을 잘못 들었다고 궤도 수정한 일이 없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내 하면서 한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목회자를 교회가 신뢰한다. 청탁 역시 제자 훈련 목회를 변질 시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강도를 떨어 뜨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수용해야 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자기 교회를 잘 목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전체를 위하는 것이다. 지도자 가 먼저 집중해야 제자 훈련이 교회를 젊고 건장하게 만드는 심장 구실을 할수있다. 제자 훈련 시작 하는 목사는 스스로 자기 발에 족쇄를 채우고 목회 하기로 단단히 결심 해야 한다. 제자 훈련 목회는 엄청난 부담감 과 스트레스를 지도자에게 강요하는 고약한데가 있기에 오직 주님 앞에서 땀 과 눈물이 젖은 자신을 채찍질 할뿐 , 때로는 부담 스러워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들고 너무 지쳐서 모든 것을 손에서 놓고 싶은 충동을 느낌이 사실이다. 계속 전진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무서운 주인되어 담임 목사를 밤낮없이 감시할수 있다는 대답은 감히 할수 있다.
* 훈련을 받지 않으면 사역 시키지 않는다. 제자 훈련 하거나 사역을 시키면서 사람을 너무 못살게 굴거나 어느 한 쪽으로 끌고가는 일이 없도록 자상한 배려를 해 주어야 한다. 영적 사역은 단 거리 선수 처럼 하면 오래 가지 못한다. 훈련 마치고 사역에 뛰어든 자들이 자신의 부족한 영역을 찾아 보완 할수 잇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함이 좋다* 여러 과외 활동 프로그램을 추가하고 있다. 여름 과 겨울 약 4개월 자유롭게 풀어준다. 연중 몇차례 봉사 기회를 만들어 준다. 제자 훈련은 우연을 기다리는 자 에게는 찾아오지 않는다.
제 30장 제자 훈련 에서 순장 교육까지
열린 자세로 제자 훈련을 일반 목회에 적용 하였고, 고수 할 것 가운데 버릴 것은 미련없이 포기하는 결단이 필요했다. 평신도 의 잠재력, 그리고 위대성을 그들 에게서 언제든지 확인 할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가슴 뭉클한지 모른다. 사람이 바뀌니까 뒤 따라 가정과 사회 생활 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자기가 누구 인가를 바로 아는데서 생기는 정체성이고 지도자의 목회 철학을 함께 나누는 데서 오는 새로운 패러다임 이라 할수잇다.
* 제자 훈련과 사역 훈련은 전도를 가르치는데 결정적 약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평신도 가 사역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계속 필요한 자료를 공급해 주어야 한다. 영적 으로 필요한 은혜를 끊임없이 보충해 주어야 한다. 영적 사역이란 일종의 전쟁이다. 일을 많이 한느 사람 일수록 영적으로 많은 침체를 경험할수 있다. 평신도가 훈련을 잘받고 능력있는 사역자로 헌신하게 되면 대부분이 자신의 사역을 손에서 놓으려 하지 않는다.
제 31장 기쁨 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교회 역사 가 수년이 넘어가면 그 교회를 가이드 하는 보이지 않는 어떤 정신이 생기게 된다. 제자 훈련은 평신도 에게 세상으로 보냄 받은 자로서의 강한 소명감을 심어준다. 자기가 교회 주체라는 분명한 자 의식을 갖게 한다. 교회가 주는 직분은 명예 라고 생각치 않고 다만 섬기는 사역으로 생각한다. 교회 생활 과 사회 생할은 서로 나눌수 없는 거룩한 산 제사 임을 늘 염두에 두고 처신한다. 이와 같이 교회를 통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으로 가지게 된 어떤 확신이 응집되어 형성되는 것이 바로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강력한 정신이 된다. 모임은 성경 공부를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닮아 가고자 하는 또 하나 의 제자를 만드는 도장이라 할수 있다. 서로가 섬기는 지체가 되어 그리스도 의 몸을 세우는 사랑의 장 이기도 하다. 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일에 무관심 하거나 무기력 하다면 그 교회는 주님이 원하는 교회가 아닐 것이다. 훈련된 평신도 사역자의 특징은 그들이 지도자 의 목회 철학 으로 철저하게 무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다루는 일은 청구서 에 도장을 찍는 행정상의 일 하고는 그 성격이 너무 다르다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케 하기 위하여 땀과 눈물을 아끼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지도자 로서의 이미지 이것이 바로 제자 훈련하는 목회자 의 이미지 라 할수있다. 마주 앉아서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쏟는 땀과 눈물은 훨씬 진하게 평신도 의 가슴으로 전달된다.
제 32장 남아있는 문제
평신도 가 영적 으로 깨어나면 지도자 한테 바라는 기대치가 그만큼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믿음이 자라고 의욕적 으로 헌신 하기를 원하는 자 일수록 그들 의 영적 체력을 뒷 받침 할수있는 자양분이 적절하게 공급되어야 한다. 이것은 고스란히 지도자 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 로 남는다.
제 33장 21세기 에 활짝 열려 있는 문
정보 사회의 교회는 어느때 보다 평신도를 예수 의 제자 로 세우려는 확고한 목회 철학을 필요로 한다. 평신도 의 성경적 인 위치와 역활을 바로 회복 시킴은 인격적 만남을 통하지 않고는 그들을 세울수 없다. 성령의 손에서 말씀으로 철저하게 훈련하여 평신도를 예수의 제자로 만들기 위한 목회 철학을 정립할 때요 예수님 이 가르쳐주신 제자도 에 입각하여 평신도를 온전한 자로 세울 기회이다. 21세기 에 건강한 목회, 생산적 목회, 사회를 이끄는 목회를 하기 원하면 혼자 뛸 생각 말고 평신도 와 함께 무었을 할수 있는가 를 염두에 두는 리더쉽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