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서문 - (박윤선에 대한 평가) [한국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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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서문 - (박윤선에 대한 평가) [한국교회사]


분류: 교회사- 한국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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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한국교회는 19세기 말 개신교가 들어온 후 한 세기 동안 골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이제 한국 개신교는 4천만의 남한 인구 가운데 16퍼세트인 6백 5십만 명에 달한다. 정확한 통계를 알 수는 없지만, 한국교회가 신학으로는 보수적이며 교단으로는 장로교회가 그 숫자나 영향력에서 앞서고 있다고 하는 데에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보수적이 장로교회가 한국교회의 지배적이 새력이다.

이 보수적인 장로교회 중에서 우뚝 선 두 신학자가 있다. 그들의 영향력은 교단을 초월하는 것이고, 심지어 진보 진영도 그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주로 신학의 분야에서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전투적으로 신학적 보수주의를 변호하였고 또한 한국교회 정치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두 신학자는 다름아닌 박형룡과 박윤선이다. 박형룡 박사(1987~1978)는 구 프리스턴 신학교 졸업생으로서 변증학자였다가 후에 교의 신학자가 되었다. 그는 평양장로회신학교의 한국인 교수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1928년부터 가르쳤다. 그는 일곱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그 유명한 ≪교의신학≫을 비롯하여 많은 저술과 논문을 남겼고 여러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또한 그는 한국교회에 침투해 들어오던 자유주의적인 혹은 진보적이 영향들을 차단하려 하였다. 이런 활동을 통하여 그는 한국교회를, 자신이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이라고 자랑스럽게 믿은 바 "청교도 개혁주의 신학" 위에 굳건히 세웠다. 그는 자신의 신학이 독창적인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초기의 장로교 선교사들이 전달해 준 보수적 칼빈주의의 횃불을 다음 세대에 그대로 전수해 주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겼다. 또한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의 교리를 필수적인 교리로 정착시키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하였다.

박윤선(1905~1988) 박사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초창기 졸업생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국교회를 위하여 중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도 역시 여러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많은 책과 논문을 썼다. 그는 성경신학자로서 성경 66권전권을 주석해 기념비적인 주석을 저술하였다. 그 주석은 신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주석은 단순히 학문적인 업적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박윤선은 목회자의 마음을 가진 학자로서 그가 어떤 다른 책임을 받든간에 반드시 지역 교회의 목사로서 봉사하기를 고집하였다. 그의 주석은 목회적인 향취를 풍기고 있으며, 또한 목회적인 목적을 가지고 쓰여졌다. 즉 많은 신학 훈련을 받지 못하였고 시간에 항상 쫓기는 한국의 목회자들이 설교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위한 긴박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그는 한국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셈이다. 그가 주석을 쓴 중요한 목적과 관심은 "강단이 메마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그의 주석은 많은 설교와 설교 요약들로 가득 차 있다. 또한 단지 장로교 목사들만 그의 주석을 보는 것은 아니다. 다른 교단의 수많은 목사들의 서재와 기도실에서, 그리고 그 강단에도 그의 신학에 영향을 미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석과 설교를 이용하는 거는 오직 하나님만 아실 것이다. 성경의 무오성과 하나님의 주권에 기초한 칼빈주의적이고 개혁주의적인 신학이 마치 신선한 공기와도 같이 셀수 없이 많은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그의 주석 한 가지만으로도 그의 영향력이 막대하지만, 그는 또한 여러 신학교의 교수였고 여러번 신학교 학장을 역임하였다. 그의 주석과 더불어 그의 제자들도 수많은 강단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지역교회를 위하여 봉사하고 하였고 또한 교단에서도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박박사에게서 배운 것은 신학 이상의 그 무엇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들은 박박사로부터 기독교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 기도생활이 무엇인지, 얼마나 정직하며 하나님을 깊이 사랑해야 하는지, 때로 혼자 있을 때에라도 얼마나 원칙에 충실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목회자로서 또한 학자로서의 박윤선 외에도 교회의 지도자로서의 박윤선을 우리는 간과할수 없다. 그의 정중한 태도로 보아 교회 정치의 지도자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타입의 사람이지만, 그는 교회의 공적인 논쟁과 갈등의 장 속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박윤선은 좌초해가는 한국교회의 방향타를 잡게 되었고 그 결과 신학교들과 교단들을 설립하였다. 한국 개신교의 역사와 거의 일치하는 박윤선의 긴 생애 동안에 , 그의 삶은 한국교회 역사의 날줄과 씨줄로 얽혀 들어갔다. 그가 평화로운 시기에 났더라면 조용한 학자로서 인생을 마쳤겠지만, 그는 혼돈과 반목의 시대를 살아가며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 그래서 한국교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위에서 말한 두 위대한 한국교회의 신학자 가운데 나는 박윤선을 연구하기로 결정하였다. 내가 박윤선을 선택한 것은 어느 하나가 다른 사람보다 중요하다거나 해서가 아니다. 다만 그의 어떤 설명할 수 없는 매력에 이끌렸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이 연구를 하면서 가지고 있는 나의 의도와 목적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겠다.


무엇보다도 우선 박윤선의 전기를 쓰는 것 자체가 가치있는 일이 될 것으로 믿는다. 그가 받은 교육, 신학적 훈련, 그의 삶에서의 중요했던 순간들, 그가 남긴 업적과 저술들을 분석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가 성인전(hagiography)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에는 이미 이런 류의 전기가 많이 있고, 박윤선 박사는 이미 많은 존경을 받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탤 필요는 없겠다. 그에 관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에서 그와 그의 신학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통찰을 줄 수 있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를 위하여 연대기적 접근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둘째, 나는 박윤선의 신학 가운데서 다른 사람들의 신학과 구별되는 특징이나 강조점이 있는지 찾아보려 한다. 박윤선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이해한 바 칼빈주의적 전통을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이를 반복하기 있기 때문에, 그의 신학 체계를 상세하게 묘사하거나 평가하는 일이 필요하다고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 그의 수많은 저서나 행동 가운데서 이 전통으로부터 이탈된 독특한 경향이나 지향성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될 때에는 이 점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이것이 그의 신학의 다른 분야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본서의 주제가 광대한 기독교 세계에 비추어 볼 때 상대적으로 작은 지역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아주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종교적 정치적 상황들을 자세히 말해야 할 때가 있어 한국 신학의 초심자들을 당황케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서론의 뒷부분에 중요한 인물과 날짜와 장소를 중심으로 한 연기를 붙여 놓았다. 독자들은 이를 통하여 수많은 낯선 이름과 사건들에 대하여 개략적인 이해를 가지게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셋째, 이 책을 통하여 가끔씩은 암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오해를 교정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때로는 민족적인 자긍심 때문에 진실을 희생하여 시건들을 미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하여 그러한 사건들이 재평가됨으러써 정당한 칭찬만이 돌려지게 되기를 기대한다. 민족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오직 진실만이 그 민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