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복제 된 인간의 영혼은 과연 영혼인가?
복제된 인간의 영혼은 과연 영혼인가? (up date...2000/10/05 조선일보)
시인 키플링은 1889년에 발표한 시(시) ‘동서의 발라드’에서 “오, 동양은 동양이며 서양은 서양이라, 그들은 영원히 만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외쳤다. 그러나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은 현재 동양과 서양은 이미 서로 만나고 있으며 또한 서로 만나야 한다는 뜻으로 ‘키플링이여 안녕’이라는 작품을 만들어 전세계에 큰 감명을 주었다.
최근 세계적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인간 복제와 인간게놈 지도 완성 등을 추진해 나가고 있는 과학자 그룹과 종교인들의 관계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들은 영원히 만나지 않을 것이다”로 표현될 수 있었다.
종교인들은 인간복제가 신의 영역을 침해하는 프로메테우스적인 작업일 뿐이라고 생각해 왔고, 과학자들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앞으로 모든 인간이 최소한 200년을 살 수 있는 단계로 돌입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관계는 물과 기름의 관계였다.
강남대 우원사상연구소와 기독교사상사는 지난 9월 25~26일 미국 유니온 신학대학 부설 신학ㆍ자연과학센타(Center for Theology and Natural Scienceㆍ CTNS)와 템플톤 재단의 후원을 받아 ‘인간복제와 휴먼게놈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의 국제회의를 공동 주최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인 테드 피터스 교수, 최재천 서울대 생물학부 교수 등 6명의 학자가 논문을 발표하고 김용준 고려대 교수 등 10여명의 학자가 열띤 토론을 벌였다.
회의와 토론의 핵심은 ‘당면한 과제로 다가온 인간 복제와 그 영혼성 인정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일부 사회를 맡았고 세미나 전 과정에 참여했던 황필호 강남대 교수의 글을 통해 주요 쟁점을 살펴 본다.
신용관 주간부 기자(qq@chosun.com)
인간의 생명·자유·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
인간복제는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다. 지난 6월에는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었다고 발표됐지만, 인간의 염색체 23쌍 중 현재 염색체 지도를 발견한 것은 21번과 22번 뿐이다. 그 중에도 99.997%라는 최고 신뢰도까지 발견한 것은 21번의 염색체 뿐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축적된 유전자 공학의 성과는 가공할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벌써 영국에서는 정신이상자가 있는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은 취직이나 승진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는 항의시위가 있었으며, 인간게놈 프로젝트에서 구조가 거의 판독된 21번 염색체에는 다운증후군 알츠하이머병 백혈병 등 20개 이상의 질병관련 인자가 포함되어 있어서 앞으로 질병치료에 커다란 성과를 기대하게 되었다. 물론 인간게놈 프로젝트는 염색체를 잘게 분류하여 지도를 만드는 단계, 분류된 염색체의 염기(염기)서열을 분석하는 차례세우기의 단계, 염기서열 속에서 의학적 치료에 필요한 염색체를 찾아내는 단계, 끝으로 거기에 맞는 약을 개발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완성될 수 있으며, 현재까지의 결과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결과만 가지고도, 이제 우리는 인간의 생명, 인간의 권위, 인간의 자유, 인간의 정체성 등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요구받고 있다.
이런 일련의 소용돌이는 단연 1997년 2월 27일 영국 스코트랜드 에딘버러 소재 로슬린 연구소의 윌머트(Ian Wilmut)가 ‘돌리’라는 복제양을 탄생시킴으로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 돌리의 탄생에 대하여 세 가지 획기적인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지금까지 의학자들은 일단 분화된 세포(differentiated cell)는 분화 이전의 세포(predifferentiated cell)로 되돌아 갈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것이 포유동물의 정상적 발달과정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즉 인간이 자연의 순리를 거역한 것이다.
둘째,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 아닌 비성적출산(비성적ㆍasexual reproducition)이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돌리는 난자와 정자의 결합이 아닌 체세포 배양에 의한 출산이다. 전통주의자들은 이것도 자연의 순리를 거역한 것이라고 말한다.
셋째, 유전자 과학에 의한 돌리의 탄생은 수많은 시행착오의 결과며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것이었다. 실제 실험에서도 277건 중 29건의 경우만 6일을 생존했으며, 14일이 되어서는 전체의 62%가 사망했는데, 이것은 자연분만의 6%에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 하여간 이번에 277마리 중에서 8마리만이 새끼를 낳았고, 그 중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것이 돌리였다. 이것은 결국 우리가 앞으로 생명공학을 계속 연구할 수 있는 비용을 어떻게 장만하느냐는 현실적 문제를 제기한다.
하나님의 창조성과 인간의 창조성
이번 국제회의에서 발표된 논문 중에서 역시 최근의 유전학적 발견과 발명을 최대한도로 소개하면서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는 외국인들의 발표였는데, 여기서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두 논문을 소개하겠다.
세인트 폴 신학대학 학장 호웰(Nancy Howell)은 ‘인간복제에 대한 과학과 신학의 대화’에서 우선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바버(Ian Barbour)의 네 가지 유형을 소개한다. 갈등으로 보는 성서(성서)적 문자주의와 과학적 유물론 독립 혹은 분리로 보는 신(신)정통신학과 실존주의 대화로 보는 자연숭배론 통합으로 보는 (계시신학에 반대되는) 자연신학 등이다.
호웰은 이 중에서 세 번째 관계를 은연 중에 추천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지구적 담론(a global conversation)의 전제조건을 제시한다.
첫째, 인간복제가 허용되려면 먼저 정의사회가 실현되어야 한다. 인종, 계급, 성별, 장애, 국적, 종교 등에 의한 차별이 먼저 사라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복제는 결국 지금까지의 차별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둘째, 우리는 가정(가정)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인정해야 한다. 혼혈가정, 동성애 부부, 시험관 수정을 통해 임신한 레즈비언 가정 뿐만 아니라 복제된 아이들을 기르는 가정까지 인정할 수 있는 아량을 가져야 한다.
셋째, 이제 우리는 자연 뿐만 아니라 동물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동물 복제를 인간행복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순순히 허락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이 과정에서 ―인권과 비슷한―동물권(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인간복제가 가지고 올 환경파괴에 대해서도 충분히 준비하고 있지 않다.
넷째, 인간복제와 관련된 모든 논의는 종교다원주의와 이념다원주의라는 입장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기독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논의를 이슬람교와 같은 비기독교 종교와, 불교와 같은 동양종교로 확대시켜야 한다.
호웰의 주장 중에서 가장 열띤 토론을 일으킨 것은 그녀가 인간을 ‘피조된 공동 창조주(created co-creators)’라고 주장한 헤프너(Philip Hefner)의 사상을 소개한 대목이다. 후자에 의하면, 인간은 분명히 하느님의 피조물이지만 동시에 또 다른 인간을 창조할 수 있는 공동 창조주며, 인간의 이런 공동 창조주적 역할은 인간복제도 포함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주장이 바로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이 태어났다는 주장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헤프너는 1993년에 출판한 ‘인간적 요소(Human Factor)’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피조된 공동 창조주며, 공동 창조주의 목표는 우리를 탄생시켜 준 자연, 즉 우리들의 유전적 상속 뿐만 아니라 전체 인간 공동체와, 우리가 살고 있고 속해 있는 유전적 및 생태적 실재라는 자연에게 가장 유익한 미래를 자유롭게 탄생시키는 대리인이다. 이 대리권을 행사하는 것이 바로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의지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하느님의 창조성과 인간의 창조성이 동일하지는 않다. 인간의 창조성은 우선 ‘없음으로부터의 창조’가 아니며, 인간의 창조행위는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애매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공동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 능력은 복제의 기술까지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헤프너는 복제를 ‘자연의 한 과정’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호웰은 몇 가지 주의사항을 제시한다.
첫째로 우리는 인간복제 과정에서 인간보다 그 인간을 구성하는 유전자를 더욱 중요시하는 실수를 범할 수 있으며, 둘째로 복제인간과 유전자 제공자를 도구적 가치로 전락시킬 수 있으며, 셋째로 어떤 사람을 복제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그만치 가치가 없다는 상업주의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제 과학과 종교의 대화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필수적인 과제가 되는 것이다.
영혼을 복사할 수 있는가?
이제 이번에 발표된 논문 중에서 가장 중요한 피터스(Ted Peters)의 ‘복제의 충격과 신학적 반응’의 내용을 살펴 보겠다. 그는 신학·자연과학센타의 소장이며, 이번 국제회의의 후원자이기도 하다.
돌리의 탄생이 발표되자 사방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코트랜드 교회는 즉각 신학적 반대입장을 발표했으며, ‘타임’지는 이 사건을 ‘영혼전율(soulquake)’이라고 부르면서 “영혼을 복사할 수 있는가?”(Can souls be xeroxed?)라고 질문했으며, 97년 3월 3일자 ‘슈피겔’지는 아돌프 히틀러, 알버트 아인슈타인, 클로디아 쉬퍼를 합성한 사진을 실으면서 ‘타락(Der Sundenfall)’이라는 큰 제목을 달았다. ‘타임’지는 다시 “인간복제는 하느님의 뜻을 어기는 것인가?”라는 설문을 실시했는데, 74%가 그렇다고 답변했고 오직 19%만이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미국 감리교 유전자연구 특별위원회는 대통령이 인간복제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재판을 신청했으며, 신학자 말티(Martin Marty)는 “새로운 과학적 지평을 넘어가는 행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원히 닫혀 있기를 바라는 문의 열쇠를 과학이 갖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반인들은 “자연을 우습게 보지 말라”(Don’t fool with Mother Nature)거나 “하느님을 데리고 놀지 말라”(Don’t play with God)는 전통적으로 내려온 문구를 다시 외치고 나왔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인간복제를 반대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그것이 하느님이 인간에게만 준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위배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제 우리는 이 주장을 좀 세밀하게 관찰해 보자. 우선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전제를 가지고 있다. 첫째, 인간이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갖기 위해서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둘째, 하느님은 각자에게 다른 사람의 유전자와 상이한 유전자를 주었다. 셋째, 유전공학은 실수로 동일한 정체성을 가진 두 사람을 생산하여 창조주의 의도를 거역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첫째 가정은 전혀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복제인간은 그의 DNA를 채취한 사람의 유전자와 동일한 유전자를 갖게 된다. 즉 DNA 기증자와 거기서 복제된 인간은 동일한 유전형(genotype)을 갖게 된다. 비록 그들이 동일한 표현형(phenotypeㆍ눈에 보이는 생물의 체질)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하여간 DNA는 항상 한 가지의 일정한 방향으로만 표현되지 않는다. 또한 음식, 운동, 건강관리 등과 같은 환경적 용인도 중요한 영향을 준다.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가 성장과정에 따라서 서로 상이한 의식, 자아개념, 사고과정, 윤리적 책임감을 갖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복제인간을 ‘연기된 일란성 쌍둥이’(a delayed twins)라고 말할 수 있다. 쌍둥이는 몇 분 간격으로 나오지만 복제인간은 형보다 수십년 후에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전자는 개인의 정체성 결정에 큰 영향을 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주장을 인간영혼에 적응시켜 보자. 유전자가 동일하다고 해서 그들의 영혼이 동일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영혼이란 유전자로부터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련에서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을 인간의 어떤 속성이나 실체로 보지 말고 ‘하느님과의 관계성’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신학적 논증도 인간복제가 그의 고유한 정체성이나 영혼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고 피터스는 말한다.
‘요한1서’는 “우리가 사랑함은 하느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이다”(3장 19절)라고 말한다. 조직신학자인 피터스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나는 이 구절을 하느님은 우리들의 유전적 구성에 관계없이 각자를 사랑하시며,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구절을 첨부해서 읽는다. 이런 종교적 신념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취급하지 말고 목적 자체로 취급해야 된다는 계몽시대의 원칙 혹은 세속적 원칙을 동반한다. 이 두 가지가 바로 인간권위의 중심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권위’가 관계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마치 인간의 영혼이 하느님과의 관계라는 개념으로만 설명될 수 있듯이, 사랑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관계적 힘(relational force)’이듯이.
물론 피터스도 인간복제가 수많은 문제점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우선 그것은 아이를 상품화시킬 수 있다. 현재 불임여성의 임신은 적어도 당분간은 인공수정, 정자와 난자의 기증, 시험관 수정, 대리모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전공학은 모든 인간복제를 상품의 품질관리(quality control) 같이 취급할 수 있으며, 한심한 과대망상자는 자신의 영원한 불멸을 위해 복제인간을 만들 수 있으며, 더욱 한심한 경우로는 앞으로 신혼부부가 우량 유전자를 상품 고르듯이 선택하는 ‘시장보기’가 전개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터스는 유전공학의 탐구는 계속되어야 하며, 그것은 절대로 인간의 정체성이나 신의 의지를 파괴하지 않으며, 오히려 무자녀 가정에 자녀를 주어 행복하게 만들 수 있으며, 그 이외의 여러 가지 방면에서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킬 것이라고 예견한다.
그러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유전자공학을 그대로 방치해야 하는가? 이 마지막 질문에 대한 피터스의 답변은 이렇다. “나는 청색등(등)이나 영원한 적색등보다는 안전성과 윤리적 문제들이 해결될 때까지 모든 탐구를 임시 금지시키는 황색등을 지지한다.” 그의 이런 주장은 현재 이 방면의 연구에 대하여 앞으로 5년 동안 국가지원을 하지 않을 것이며, 개인연구소들도 자발적으로 이 임시적 금지조항에 협조해 주기를 바란다는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과 동일한 것이다.
복제인간은 당장 내일 태어날 수도 있다
이번 국제회의에서 수많은 목회자 신학자 철학자 과학자들이 서로 거리를 맞대고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여러 가지 비판과 찬성이 있었고, 기발한 제안도 많았다. 후자의 실례로는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은 예수”라는 입장이 있었다. 예수라는 인물은 ‘없음으로부터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영)을 가지고 마리아의 육체를 통해 탄생되었으며,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과 예수를 동일시하는 삼위일체론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이번 회의에 대한 전체적인 감상과 앞으로의 문제점을 간단히 언급하겠다.
첫째, 스노우(C. P. Snow)는 역저 ‘두 개의 문화’에서 모든 지식인을 휴머니스트와 과학자로 분류하고, 휴머니스트는 뉴톤의 법칙을 모르고 과학자는 소크라테스를 모르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는 진정한 대화가 있을 수 없게 되고, 그래서 현대는 전혀 다른 두 개의 문화가 병존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까지 신학자들은 최신 과학의 이론을 모르고 과학자들은 정교한 신학의 이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만날 수 없었다. 마치 ‘주기도문’을 전혀 모르는 불교인이 기독교를 비판할 수 없으며, ‘반야심경’을 전혀 모르는 기독교인이 불교를 비판할 수 없듯이. 그런데 이번에 결국 이 장벽이 어느 정도나마 허물어졌으며, 그래서 이번 국제회의는 한국지성사에 새로운 발자국을 남기게 될 것이다.
둘째, 이번에 발표한 대부분의 서양학자들은 과학자가 아닌 조직신학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최신 과학적 성취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무턱대고 인간복제를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우리들의 태도는 진정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다“는 상식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셋째, 이 회의에 참석한 거의 모든 발표자들은 인간복제가 몰고 올 현실적ㆍ윤리적ㆍ종교적ㆍ사회적ㆍ경제적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도 인간복제를 당장 금지해야 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문제가 많다고 해서 무서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넷째, 그러나 발표자들의 현실적 결론은 극히 소극적이다. 앞으로 당분간 무분별한 유전자 탐구와 조작을 금지해야 된다는 ‘황색등 이론’은 정말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은 호기심의 존재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에 의하여 저질러지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5년이라는 기간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다시 말하지만 복제인간은 당장 내일 태어날 수도 있다.
( 황필호 강남대 종교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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