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삼 박사의 생애와 칼빈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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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삼 박사의 생애와 칼빈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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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서 발췌)
이근삼 박사

1923년 10월 28일 부산 서구 부용동, 이영식과 한귀련 사이의 3남으로 출생
1937년에 부산의 부민보통학교 졸업
부산 제2상업학교(당시 5년제 중고등학교, 부산상고 전신 입학
대동아전쟁 발발로 인해 예정보다 4개월여 앞당겨진 “1941년 12월 말”에 졸업
일본어 신약성경을 구입하여 읽고 부산 항서교회를 다니기 시작
졸업 후 징용영장 발부되기 전 보통학교 제3종 훈도 채용에 지원 신청, 거제도 옥포 보통학교 부임
그곳에서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

해방 직후 부산 대신보통학교로 전근 발령
1946년 3월 부산 남조선대학교(현 동아대) 설립되자 교사직을 그만두고 대학교 입학.
1946년 9월 20일 부산 좌천동 금성중고등학교(전 일신여학교)에서 개교한 고려신학교의 입학시험 합격 제1회 입학생
한상동 목사가 외삼촌

개교된 고려신학교는 2년의 예과와 3년의 본과 과정. 5년 동안 신학 공부

1950년 6.25동란으로 중단되었던 신학교 수업은 이듬해 첫 학기에 재개
제1회 입학생들은 1951년 5월 27일 초량교회당에서 거행된 졸업식에서 5년간 공부하는 본과생 10명과 3년만 공부하는 별과생 15명을 합쳐 모두 25명으로 제5회 졸업생
학창시절,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1948년부터 고려신학교 주최로 시작된 여름과 겨울 방학 수련회에서 행정업무 담당
이 수련회가 6.25사변 이후 조직된 “청년신앙운동(YFC)과 학생신앙운동(SFC)”의 모태. 당시 오병세 홍반식과 솔선수범

1951년 9월에는 초량교회 주일학교 담당전도사로 부임
당시 고려신학교 제5회 졸업생들은 전도목사로 9월 노회에서 안수를 받았지만 이박사는 자신에 대해 회고하기를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 9월 노회에 안수를 받지 못하고 다음 노회 시에 받도록 연기.”

배필은 조영진 사모다. 그녀는 당시 삼일교회 주일학교 교사와 찬양대원으로 봉사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박윤선 교장의 주례로 1952년 1월 22일 삼일교회당에서 결혼식

목사안수는 그 해 9월 삼일교회당에서 개최된 고려파 총회
설교실습 시험에서 고시부원들로부터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하듯 한 설교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통과 삼일교회 부목사로 담임목사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일은 분주

안수 받기 전에 이미 고려고등성경학교에서 영어 과목 강의
목사안수 받고 난 이후에는 박윤선 교장의 명령으로 히브리어 기초문법을 맡아 강의
유학 진행이 신속하게 이루어져 이 히브리어 강의를 오래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