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조선교회의 두번 헌금 [한국교회사]
분류: 교회사- 한국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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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헌금"과 "애국헌금" 1938-45년 기간
[신세원 목사의 교회사 이야기] 문소재文巢齋에서=부끄러운 ‘두번의 헌금’
1907년 1910년까지 4년간은 한국 근대사상 정치, 종교 등 허다한 사건이 발생한 기간이었다.
정치에서는 일본이 1905년에 대한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들더니 1910년에 와서 합병이란 조약을 짜내어 한국의 정치적 독립을 종식시켰다.
1911년에는 소위 신 교육령이 발표되었는데 여기에서 말하기를 조선에 있어서의 교육의 주요한 목적은 일본 황제가 발표한 교육칙어의 정신에 의하여 조선백성을 일본의 충성스러운 좋은 속국인으로 양성함에 있다고 하였다.
1938년 9월 10일 제27회 총회가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개최되었을 때에 경관 97명이 193총대의 틈틈이 끼어 앉아 살기등등한 눈길로 회의 진행을 감시했다.
첫날은 임원선거가 있었고 둘째 날 오전 10시에 홍택기 총회장의 가결획책으로 신사참배가 기독교 신앙에 배치되지 않는다고 결의하고 말았다.
그 후 한국 교회는 주일 예배에서 두 번 헌금을 하였다. 먼저는 주일헌금(연보)이고 다음은 ‘애국헌금’ 또는 ‘국방헌금’이었다.
교회 밖에서 ‘친일파’ 논쟁이 뜨겁다. ‘교회 밖’의 역사만은 아닐텐데….
김은홍 기자 등록일 200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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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재文巢齋에서 - 신세원 목사의 교회사 이야기 (105)
여름성경학교
여름성경학교란 여름방학을 맞은 아동들이 교회에서 단기간의 집중적인 교육을 받는 것을 말한다.
초기 이 학교의 수업은 2주간 또는 3, 4주간을 계속하기도 했다. 여름방학 기간, 간혹 아동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소일했다. 또 아동들이 보다 많은 성경에 관한 지식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 등지의 교회 지도자들이 이 두가지를 모두 해결하는 해답으로 찾아낸 것이 바로 여름성경학교다. 1866년의 보스톤제일교회, 1877년 몬트리올의 로얄아더(공립)학교, 1894년 일리노이주 호프데일감리교회, 1898년 뉴욕 주현(主顯)교회 등이 여름성경학교를 설립했다.
1901년에는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1922년에는 한국에서도 실시했다. 최초로 시작한 교회가 정동 제일감리교회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평북 선천에서 마펫 부인(S.A. Moffett)이 시작했다는 기록(기독신보 1932. 5.18)도 있다. 이와 별도로 1923년에는 서울중앙YMCA에서 ‘아동성경학회’라는 이름으로 같은 프로그램을 시작한 바 있다. 이는 또한 같은 해, 서울 시내 8개소에서 시행되었다.
한편 1924년 3월 31일에는 조선주일학교연합회 안에 하기아동성경학교 위원회를 조직한 바 있다(기독교대백과). 이리하여 여름성경학교는 경향 각지에서 활발히 실시되었다. 그간 여름성경학교를 통해서 많은 아동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김희돈 기자 등록일 2004-07-02